하나님이 응답하실 때
R.T. 켄달 지음/이우열 옮김
예수전도단/2003년 1월/230쪽/7,500원
▣ 저 자 R.T. 켄달
R.T. 켄달 목사는 1935년 생으로 캔터키 주의 애쉬랜드에서 태어났다. 루이스빌 대학에서 석사 학위를 그리고 남침례 신학교에서 신학 석사 학위를 받았으며, 1973년 영국 옥스퍼드대학에서 박사 학위를 받았다. 런던 웨스트민스터 채플의 담임 목회자로 25년간 시무했고 2002년 은퇴했다. 현재 그는 매주 금요일마다 영국 각지에서 오는 수백 명을 대상으로 하는 공개 신학 강좌를 열고 있다.
▣ 역 자 이우열
성균관대 경영학과를 졸업하였으며, 명일동에 있는 명성교회 집사로 재직 중이다. 무역 컨설턴트로 일하며 서울 통역 외국어 학원과 온라인으로 비즈니스 영어를 강의하고 있다. 두남출판사에서 펴낸 『무역 영어』의 저자이기도 하다.
▣ Short Summary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 응답하시고, 만나 주시는 당신만의 깊고도 놀라운 방법을 가지고 계신다.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극심한 고통과 연단의 시간이 아니라면 하나님께 주의를 기울이지 않는다는 것을 이미 알고 계신다. 따라서 우리를 향한 하나님의 비밀스러운 손길을 우리는 고난의 시기가 되어서야 비로소 알아차리게 되는 것이다. 하나님께서 우리가 그분께 집중하도록 촉구하고 계시는 것은 물론이거니와 우리에게 드러내시는 방법 또한 생각지도 못한 방식이라는 것을 알고서 나는 몹시 놀랐다. 하나님은 우리가 언제 그분께 온전하게 주의를 기울이는지 잘 알고 계신다.
나는 지난 25년 간 힘겨운 고통과 좌절, 쓰라린 절망을 경험하기도 하였다. 이러한 경험으로 인하여 나는 과거와는 달리 전심으로 하나님의 얼굴을 마주하기를 갈망했고, 하나님을 향하여 나의 마음을 온전히 열게 되었다.
▣ 차 례
1. 응답 받은 기도
2. 하나님이 응답하실 때
3. 천사를 대접할 때
4. 하나님께서 비밀리에 나타나실 때
5.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시험을 당할 때
6. 유혹을 당할 때
7. 하나님을 아는 지식에서 더 자라갈 때
8. 사단과 마주치게 될 때
9. 예기치 못한 혼란을 겪을 때
10. 하나님께서 얼굴을 숨기실 때
11. 하나님의 사랑에 자신을 내어 맡길 때
12. 하나님의 뜻에 순종할 때
13. 예언의 말씀을 주실 때
14. 새로운 만남을 허락하실 때
15. 성공할 준비가 되어 있을 때
16. 복음을 증거할 준비가 되어 있을 때
17. 주님께서 다시 오실 때
하나님이 응답하실 때
R.T. 켄달 지음/이우열 옮김
예수전도단/2003년 1월/230쪽/7,500원
1. 응답 받은 기도
사가랴와 엘리사벳이 결혼한 직후 이 부부는 왜 하나님께서 자신들에게 자녀를 허락하시지 않는지 못내 궁금했다. 나중에 알게 되었지만, 엘리사벳은 아이를 임신할 수 없는 몸이었다. 사가랴와 엘리사벳은 아들을 간구하며 하나님께 기도하였고, 수 년이 지나갔다. 하나님께서 이들의 기도에 응답하실 것 같은 징조는 전혀 보이지 않았다. 그러자 부부는 자신들의 기도를 잊게 되었다. 가브리엘 천사장이, “너의 기도를 하나님이 들으셨다.”고 하자, 사가랴는 이렇게 말한다. “기도요? 무슨 기도 말씀인가요?” 천사가 이어서 “너희 부부가 아들을 위하여 한 기도 말이다.”라고 하자, 사가랴는 “아! 그 기도요. 한 25년, 아니 30년 전에 한 그 기도 말이군요.”하고 대답했다.
안타까운 일이지만 결국 사가랴는 준비되어 있지 않았다. 그는 천사와 입씨름을 하고 있었다. 왜 그가 입씨름을 하였는지 아는가? 그는 영적으로 깨어 있지 않았기 때문이다. 주목하라! 하나님의 뜻에 합당한 모든 기도는 반드시 응답된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응답하시는 구체적인 내용은 우리가 그때 준비가 되어 있는지 여부에 따라 상당히 다른 모습으로 나타난다. 사가랴는 준비되어 있지 않았다.
2. 하나님이 응답하실 때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에게 이삭을 번제물로 바치라고 말씀하자 아브라함은 순종할 자세를 갖고 있었다. 그가 칼을 들어 아들에게 내리치려는 순간 하나님께서는 그에게 멈출 것을 명령하셨다. 무슨 일이 일어났는가? 하나님께서 전혀 예상치 못한 일을 하셨다. 아브라함이 눈을 들어 살펴본즉 한 숫양이 뿔이 수풀에 걸렸는지라 아브라함이 그 숫양을 가져다가 아들을 대신하여 번제로 드렸다.
히브리서 11장 19절을 보면, 아브라함은 하나님께서 죽은 자도 살리실 수 있다고 생각했음을 알 수 있다. 즉, 아브라함은 죽음에 처한 아들을 하나님께서 다시 살려주시리라 믿었으며, 하나님께서는 아브라함이 진정으로 순종하는지 시험하신 것이다. 아브라함이 순종함으로써 하나님께서는 생각지도 못한 방법으로 직접 역사하셨다.
요셉은 형들이 자기에게 한 일로 인해 오랫동안 마음속에 쓴 뿌리를 지니고 있었다. 형들이 자기를 노예로 팔아 버렸으며, 그 후에는 이집트의 관리인 보디발의 집에서 종살이를 하기에 이른다. 이어 보디발의 아내가 그를 유혹하고 요셉이 이를 거절하자, 그는 이 여인을 욕보이려 했다는 거짓 누명을 쓰고 옥에 갇히게 된다. 이런 상황에서 요셉이 마음속에 원망의 쓴 뿌리를 가지고 있는 것은 너무도 당연한 일이다.
그와 함께 옥에 갇힌 자 중에 애굽 왕의 떡과 술을 맡은 관원장이 있었다. 요셉이 이 술을 맡은 관원장에게 말한다. “당신은 이제 삼 일 안에 이곳에서 풀려날 터인데, 바로에게 나의 사정을 고하여 나로 하여금 풀려나게 하소서. 나는 히브리 땅에서 끌려온 자로 옥에 갇힐 이유가 없나이다.”
그러나 마음속의 쓴 뿌리로 자신의 처지를 한탄하는 말을 들으신 하나님께서는 말씀하신다. “요셉아, 너는 아직 준비가 되지 않았구나. 지하 감옥에서 한 2~3년은 더 있어야 하겠구나”라고 말이다. 석방되지 못하고 옥에 갇혀 있던 2년 동안 요셉은 자신의 마음속의 쓴 뿌리 문제를 해결하였으며, 자신의 형들을 진정으로 용서하였다.
그러자 하나님의 응답이 전혀 예상치 못한 형태로 요셉에게 다가왔다. 바로 왕이 자신의 꿈을 해몽하기 위해 요셉을 찾았고, 그 결과 요셉은 애굽의 총리가 되었다. 요셉의 경우 하나님께서는 전혀 예상치 못한 방식으로 응답하셨다. 언제 이런 일이 일어났는가? 자기에게 상처와 괴로움을 주었던 이들을 요셉이 완전히 용서하자, 용서를 통해 요셉은 하나님께서 예비하신 축복의 길로 들어서게 되었다.
1982년에 십자가를 지고 전 세계를 순례하던 아더 블레씨트가 이곳 웨스트민스터 교회를 찾았을 때를 나는 지금도 생생하게 기억한다. 사람들은 웃으며 “그는 하이드 파크 공원에나 가야 제격이야”라고 비아냥거렸다. 그리고 그런 사람을 웨스트민스터 교회의 강단에는 절대로 세울 수 없다고 말했다.
그러나 나는 그를 통하여 하나님께서 우리들에게 무언가를 나타내시고자 하는데 우리가 이를 간과해 버리는 것은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나는 결국 그를 강단에 세웠다.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아는가? 그는 우리의 가치관을 완전히 바꾸어 놓았다. 전통에 사로잡혀 열정이 없던 우리에게 하나님께서 큰 은혜를 내려 주셨던 것이다.
하나님께서는 과거의 전통적인 방식을 사용하지 않을 수도 있다는 사실을 우리가 간과해서는 안 된다. 하나님께서는 지진으로, 바람으로 그리고 불을 통해서 일하셨다. 그러나 이번에 하나님께서 만약 다른 방식으로 일하신다면 우리는 하나님의 역사를 알아차릴 수 있을까?
3. 하나님께서 비밀리에 나타나실 때
나는 하나님의 임재를 얼마나 빨리 알아차리는가로 영적인 능력을 정의하는 것이 일리 있다고 생각한다. 특정한 경우에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원하시는 뜻이 있었는데, 그 당시에는 그것이 하나님의 뜻인지 몰랐다고 하자. 불과 얼마 지나지 않아서 우리는 그것이 하나님의 뜻임을 뒤늦게 알게 된다. 따라서 앞으로는 마음이 내키지 않는 어떤 일이 있는 경우에 “어쩌면 이것이 하나님의 뜻인지도 모른다.”고 생각해 보는 것도 좋으리라. 영적인 능력이란 ‘하나님의 뜻이 우리에게 임한 순간과 우리가 이것이 하나님의 뜻임을 알아차리는 그 시간의 간격을 줄이는 능력’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아마 여러분도 처음에는 결코 하나님의 방법이 아니라고 확신했던 일에 대해 마치 야곱의 경우처럼 “하나님이 여기에 계셨는데, 내가 모르고 있었구나.”라고 오류를 범한 경험이 있을 것이다. 우리 자신이 언제나 영적으로 깨어 있어서 결코 하나님의 임재를 알아차리지 못하는 일이 없을 것이라고 자만하지 않도록 주의하자.
열왕기하 5장에 문둥병을 앓고 있던 나아만의 이야기가 나온다. 그는 자기 아내의 이스라엘 출신 계집종으로부터 유명한 선지자 엘리사에 관한 이야기를 듣는다. 이 아이가 말했다. “그 주모에게 이르되 우리 주인이 사마리아에 계신 선지자 앞에 계셨으면 좋겠나이다. 저가 그 문둥병을 고치리이다.”(왕하 5:3). 나아만이 이 말에 따라 모든 준비를 갖추고는 마침내 엘리사가 있는 곳에 도착한다.
그러나 엘리사는 일국의 군대 장관인 나아만에게 얼굴도 내비치지 않고, 자신의 종을 시켜 메시지만을 전달한다. “요단강에서 일곱 번 몸을 씻으면 상처가 낫고 몸이 깨끗해질 것”이라는 전갈을 받고는 분을 내며 돌아가려고 했다. “감히 나를 모욕해도 분수가 있지. 뭐. 요단강에서 몸을 일곱 번 씻으라고?” 하며 분을 삭이지 못하는 그에게 그의 종들이 그를 설득하였고 마침내 나아만은 요단강에 들어가서 몸을 씻었다.
그러나 여전했다. 두 번째도 아무런 변화가 없었다. 세 번째 씻고 나오면서 그는 이번에는 상처가 조금이라도 나았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심지어 여섯 번째 몸을 씻고 나올 때까지도 아무런 변화가 없었다. 마침내 일곱 번째까지 순종하는 마음으로 몸을 씻기를 마치니, 그의 피부가 어린아이처럼 완전히 깨끗하게 치료된 것이다!
어쩌면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분명한 말씀을 하셨어도 우리가 그것을 싫어할 수도 있다. 우리는 어떤 다른 말씀을 원할 수도 있다. 하지만 일단 하나님께서 주신 말씀에 순종하라. 결국에 어떤 일이 일어날지 어찌 알겠는가? 비록 지금 당장은 우리가 하나님의 뜻을 알지 못한다고 할지라도, 우리가 지금 겪고 있는 극심한 고난 속에는 우리를 향한 하나님의 깊은 뜻이 있으며, 지금 이 고난의 현장에 우리와 함께 계신다.
4.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시험을 당할 때
하나님께서는 신실한 이를 들어 쓰신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시험하시거나 우리에게 고난을 허락하실 수 있다. 왜냐하면 우리가 영적으로 성숙하고 겸손한 자세로 시련을 통과하는가, 혹은 징징 울면서 내내 하나님을 원망하며, 시련에 줄곧 끌려 다니는가 알기 원하시기 때문이다. 요셉이 하나님의 사역을 감당할 정도로 영적으로 성장하자 하나님께서는 그를 애굽의 총리로 들어 쓰셨다.
하나님께서는 신실한 이를 찾으실 때에, 우리가 그분의 이런 의도를 전혀 모르고 있다 할지라도, 우리를 시험하실 수 있다. 내가 결혼한 지 얼마 되지 않아서 나의 아내는 법률사무소에 근무하게 되었다. 하루는 변호사가 아내에게 책상 위에 있던 돈에 대하여 물었다. 실은 그가 내 아내의 정직성을 떠보기 위하여 꾸민 일이었다. 아내는 보관하고 있던 돈을 변호사에게 돌려주었다.
마찬가지로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모르고 있는 순간에도 우리의 신실함을 아시기 위하여 우리를 시험하신다. 시험을 통과하면 하나님의 영광에 함께 참여할 수 있다. 우리가 고난을 하나님의 뜻에 합당하게 통과한다면,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들어 쓰시고 더욱 신뢰하실 것이다. 하나님의 더 큰 사역, 더욱 품위 있는 일, 건강과 물질의 풍부함 등으로 우리에게 축복하실 것이다. 또한 성령의 기름 부으심으로 우리를 더욱 영적으로 성숙하게 하실 것이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허락하신 상황이 때로는 그분의 진의가 아닌 경우도 있다. 하나님께서 모세에게 말씀하신다. “너도 알다시피 너를 따르는 이 백성은 패역한 백성이라 내가 이제 행할 바를 네게 이르노니 이 백성을 모조리 멸하고 너로 새로운 백성을 이루어 그들을 강한 백성이 되도록 하리라.”
어떤 면에서 모세에게는 이 말씀을 환영할 만한 충분한 이유가 있었다. 어쩌면 목회를 하고 있는 교역자들 중에도 이러한 심정을 이해하는 분이 있으리라. 만약 하나님께서 “네 말썽꾸러기 집사들을 모조리 쫓아버리고, 내가 새로운 성도들을 네게 주리라”고 말씀하실 때 “오, 예수님 감사합니다. 하나님께 영광을 돌립니다”라고 말하고 싶은 목회자들도 많으리라.
모세에게 드디어 골칫거리 백성들에 대한 앙갚음의 기회가 왔다. 그러나 모세는 그렇게 하지 않았다. 오히려, 하나님의 말씀에 그는 반대하고 나섰다. 모세는 자신에게 항상 불만을 토로하며 불순종하던 백성들을 위하여 하나님께 중보 기도를 드렸다. 사실 그것이 하나님께서 모세에게 진정으로 바라시던 것이었다. 이러한 시험을 통해서 하나님께서는 우리의 인간됨을 밝혀 드러내신다.
5. 유혹을 당할 때
돈에 대한 지나친 집착을 가진 이들이 있으며, 사단은 이들의 약점을 잘 알고 있다. 나는 오랫동안 절친한 친구들이 결혼에 실패하고, 가정은 무너지고, 영적으로도 타락하는 것을 지켜보았다. 이것은 모두 이들이 돈을 빨리 벌 수 있는 길에 집착했기 때문이다. 돈에 집착하는 이들이 유혹에 걸려 넘어지게 되는 것이다. 예수님을 배반한 유다 역시 본성적으로 돈에 지나치게 집착하고 있던 자였다. 예수님을 삼 년 동안이나 바로 옆에서 모시던 자가 마지막에 자신의 스승을 은 삼십에 팔아 넘기리라고 누가 상상이나 했겠는가?
아나니아와 그의 아내 삽비라는 예수를 주로 시인한 자들이었다. 성령께서는 초대 교회의 많은 이들에게 자신의 소유를 팔아서 사도들의 발 앞에 가져다 바치도록 함으로써, 이들이 재물에 집착하지 않도록 인도하셨다. 하지만 아나니아와 삽비라는 자신들의 소유를 판 것의 일부를 뒤에 숨기고 나머지를 가지고 전부인 양 거짓말을 함으로써 돈에 집착하는 모습을 드러냈다. 결국 그들은 하나님의 심판으로 죽음을 당하였다.
또한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하나님이 정하신 성도덕 기준에 합격할 수 있는지 아시기 위하여 우리를 시험하신다. 부부가 아닌 이들의 성적인 접촉은 하나님의 뜻에 어긋난다. 이러한 시험에 걸려 넘어지는 자들은 곧 쓰라림을 맛보게 된다. 빌리 그레함 목사님이 얼마 전에 내 친구에게 “하나님께서 크게 들어 쓰시는 이들의 3/4정도는 사단이 성적인 유혹으로 넘어뜨리는 것 같다.”고 말했다.
요셉은 보디발 아내의 유혹을 받았다. 이것은 유혹을 받아들이기에는 더없이 좋은 기회였다. 왜냐하면 요셉은 고향과 아버지와 형제들을 떠나온 외로운 처지였고, 보디발의 아내가 자신의 남편에게 이 일을 비밀로 할 경우 어느 누구도 이 일을 아는 사람이 없을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요셉은 이 여인에게 “나는 그럴 수 없습니다. 내가 섬기는 당신의 남편과 하나님께 죄를 짓는 일이기 때문입니다”라고 말했다. 당신에게 들통나지 않고 바람을 피울 수 있는 절호의 기회가 왔다면 무슨 생각을 하겠는가? 혹시 ‘그래, 이건 누구도 알 수 없겠지’라고 하지 않겠는가?
야망이란 어떤 일을 성취하고자 하는 욕망으로 하나님이 주시는 것이다. 그러나 ‘자신을 위한 야망’이란 성령님의 뜻을 거스르는 것으로, 이는 우리가 어떤 것에 사로잡히도록 하여 ‘저것을 꼭 하고 말 거야’하는 마음이 들게 한다.
우리가 영적으로 깨어 있지 않다면 이러한 야망으로 인해 중요한 직책과 존경받는 지위, 그저 겉보기에 괜찮은 사람으로 보이는 일 등에 마음을 빼앗기게 되고 말 것이다. 우리가 자신의 야망에 너무도 몰두한 나머지, 하나님께서 우리를 내려다보시고는 “저런 일은 하지 말았어야 했는데” 혹은 “저런 이들과 어울려 다녀서는 안 되는데” 또는 “저렇게 교만하게 자신을 떠벌려서는 안 되는데”라고 말씀하시는 일이 있어서야 되겠는가?
6. 사단과 마주치게 될 때
사단이 우리를 공격하거나 시험할 때는 언제나 하나님의 허락을 받은 경우에 한정된다. “여호와께서 사단에게 이르시되 네가 내 종 욥을 유의하여 보았느냐…. 사단이 대답하여 가로되 욥이 어찌 까닭없이 하나님을 경외하리이까(욥1:8-9).” “여호와께서 사단에게 이르시되 내가 그의 소유물을 다 네 손에 붙이노라. 오직 그의 몸에는 네 손을 대지 말지니라(욥1:12).”
우리가 사단의 공격을 받을 때 그 일이 일어나기 전에 하나님께서 이를 허락하셨다는 사실을 기억해야 한다. 사단은 언제나 술책을 부리다가 실패하는 존재다. 사단의 이러한 전형적인 모습은 예수님의 십자가 처형이 그 결정적인 증거다. 우리는 어떤 의미에서 그 ‘멋진 금요일’에 있었던 일을 꾸민 장본인은 사단이라고 말할 수도 있다.
예수님의 십자가 처형은, 우리가 생각하기에 따라서는 사단이 의도한 바였다. 사단은 자신이 한 일 중에서 가장 멋진 일을 했노라고 생각했음이 틀림없다. 그러나 결과적으로 이 일은 하나님께서 온 세상을 구원하시는 방법이었다. 이 세상이 생긴 이래 가장 은밀하게 숨겨진 비밀은 ‘왜 예수님께서 십자가상에서 돌아가셨는가’ 하는 것이다.
고린도전서 2장 8절은 말씀하고 있다. “이 지혜는 이 세대의 관원이 하나도 알지 못하였나니 만일 알았다면 영광의 주를 십자가에 못박지 아니하였으리라.” 사단은 교만히 행하다가 결국에는 하나님의 나라를 확장하는 도구에 불과한 존재가 되고 마는 것이다.
7. 예기치 못한 혼란을 겪을 때
만일 당신에게 좋은 직장과 충분한 수입이 보장되고 있는데, 하나님께서 “나는 네가 나를 위해 새로운 일을 하기를 원한다.”고 말씀하실 경우 어떻게 하겠는가? 만약 그분께서 당신을 전임 사역자로 부르시거나, 혹은 선교사로 부르셨다면 무슨 말을 하겠는가? “에이, 제가 어떻게요. 저는 못합니다‘라고 말하겠는가?
나에게 일어났던 일을 이야기해야겠다. 나와 아내는 콜로라도 덴버에 있는 남부 침례교회를 방문한 적이 있는데 당시 나는 플로리다의 포터 로더데일의 한 교회의 목사로 일하고 있었다. 그때 성령님께서 며칠 동안 나를 특별히 다루고 계셨다. 나는 당시에 매주 삼십 분씩 라디오에서 설교를 했으며, 텔레비전에도 정기적으로 출연하고 있었다. 나는 모든 것이 만족스러웠다.
그때 하나님께서 “나는 네가 신학교에 가길 원한다”라고 말씀하시는 것 같아서 마음이 편치 않았다. “제가 무엇 때문에 신학교엘 가야 합니까? 저는 지금 설교할 수 있고, 성경을 알고 있는데요.” 그런데도 하나님께서는 말씀하셨다. “너는 신학교를 가야 한다.” 나는 생각했다. “제 나이가 몇인데요? 학교를 졸업하면 사십은 될텐데요.”
우리는 덴버 교회의 베란다 높은 곳에 앉아 있었다. “주님, 지금 말씀하고 계신 것이 진정 주님이신지 제가 어찌 알겠습니까? 지금 누리는 안락한 생활을 모두 포기해야 하는데 그 이유가 뭐죠? 제가 이미 복음이 무엇인지 알고 있는데, 무엇 때문에 신학교육이 필요하며, 그들이 저에게 도대체 무얼 가르칠 수 있겠습니까?”
그리고 이어서 주님께 말씀드렸다. “지금 저에게 그런 말씀을 하고 계신 분이 진정 주님이시라면, 제가 가지고 있는 이 작은 성경책을 폈을 때 그것을 확인할 수 있도록 해주십시오.” 나는 성경을 집어 들고 “하나님, 저를 위해 적절한 구절을 펼쳐 보여 주세요.”라고 말했다. 내가 읽은 말씀은 다음과 같다. “모세가 애굽 사람의 학술을 다 배워 그 말과 행사가 능하더라. 나이 사십이 되매 그 형제 이스라엘 자손을 돌아볼 생각이 나더니.”(행 7:22~23).
나는 팔꿈치로 아내를 찌르며 말했다. “우리는 지금의 모든 것을 포기해야 하겠소.” 이것은 내게 엄청난 혼란이었다. 그 후로는 이런 일이 없었다. 또한 이것이 하나님의 뜻이었음을 결코 의심한 적이 없다. 하나님은 우리의 삶을 흔드시는 한 가지 방법을 가지고 계시는데, 이것은 주님을 향한 우리의 헌신일 수 있다. 우리가 가지고 있는 것을 포기하도록 하심으로써 우리를 부르실 수 있다.
8. 하나님께서 얼굴을 숨기실 때
우리가 인생을 살아가면서 어려운 일을 극복해야 하는데, 나는 ‘하나님께서 얼굴을 숨기실 때 좌절감을 극복하는 것’이 참으로 어려운 일이라고 여겨진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얼굴을 숨기실 때면 우리 모두가 이를 극복해야 한다. 이 일은 아주 어려운 일로 우리 중에 이를 제대로 해내는 이들이 거의 없지 않나 하는 생각이 든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얼굴을 숨기실 때, 우리는 그분이 우리에게 등을 돌려버리신 것 같은 생각이 들어서 마치 우리가 그렇게 믿었던 이가 자신이 했던 철석같은 약속을 지키지 않는 것 같은 배신감으로 인해 깊은 절망감에 빠져든다. 우리는 때로는 “어떻게 하나님께서 나에게 이렇게 하실 수가 있나요?” 하며 즉각적인 반응을 보이기도 한다.
목사로서 내 경험에 비춰 볼 때, 우리 모두는 조만간에 하나님께서 자신에게 등을 돌려버리신 것 같은 경험을 틀림없이 하게 될 것이다. 그러나 열 명 중에 한 명만 이러한 고난의 시기를 제대로 극복하는 것 같다. 열 명 중에 아홉은 심히 낙담하고 분을 내며 말한다. “하나님께서 나를 이런 방식으로 다루신다면 나는 이제 하나님을 생각하고 싶지도 않고, 더 이상 그분을 섬기지도 않겠다.”
그러나 열 중에 하나는 이러한 좌절을 극복한다. 그는 히브리서 기자가 말하는 것처럼 세상이 감당치 못하는 사람이다(히 11:38). 사드락과 메삭과 아벳느고가 불타는 용광로 속에 던져졌을 때 자신들과 함께 하고 있는 네 번째 사람을 만나게 되는 것과 같다.
모든 일이 순조롭게 되어 가고 있을 때 “하나님을 찬양합니다.”라고 말하는 것이 영적으로 성숙한 증거라고 볼 수는 없다. 진정으로 영적으로 성숙한 증거란 인생의 모든 길이 막히고, 하나님께서 얼굴을 숨기시고 등마저 돌리신 것 같은 상황에서 욥과 같이 말하는 것을 의미한다.
“그가 나를 죽이시리니 내가 소망이 없노라. 그러나 그의 앞에서 내 행위를 변백하리라”(욥 13:15). 이렇게 할 수 있는 이들이 하나님의 얼굴을 뵐 수 없을 때 좌절을 극복할 수 있는 것이다. 따라서 모든 일이 순조로울 때 하나님을 섬기는 것은 큰 문제가 없다. 우리는 시험을 당해 보지 않고서는 자신이 얼마나 강한지 알 수 없다.
마르틴 루터가 1521년 교회의 많은 지도자들에게 불려가서 그들 앞에 섰을 때, 이들은 루터에게 물었다. “루터 박사, 이 소책자가 당신이 쓴 것이요?” 그 책자는 심문자들의 책상 위에 놓여 있었다. 루터는 “예, 제가 쓴 것입니다”라고 말했다. “루터 박사, 당신은 이 소책자의 내용을 철회할 수 있겠소?” 루터는 이에 대해 생각할 24시간의 말미를 요청했고, 이들은 이를 허락했다.
그 날 밤 루터는 자신의 방을 이리저리 서성이며 “어떻게 하나님께서 저에게 이러실 수가 있습니까?”라고 말했다. 루터는 처절한 절망감에 울부짖고 있었다. 다음날 루터는 다시 교계의 지도자들 앞에 섰다. “루터 박사, 당신은 이 소책자의 내용을 철회할 수 있겠소?” “예, 할 수 있습니다. 만약 제가 쓴 내용이 하나님의 말씀과 다르다는 것을 입증하시기만 한다면 말이지요. 그렇지 못하다면, 저도 철회할 수 없습니다. 하나님 저는 아무것도 할 수 없사오니 저를 도우소서. 아멘.”
루터는 외로움을 느꼈으나 이 고통의 시기를 잘 이겨냈고, 이 일로 인해 세상은 엄청난 변화를 목격하게 되었다. 당신도 하나님께서 얼굴을 숨기실 때, 좌절하지 않고 이겨낼 수 있겠는가? 이를 위해 우리가 대단한 사람이어야 하는 것은 아니다. 지극히 평범한 이들도 가장 위대한 일을 해낼 수 있다. 즉, 하나님께서 얼굴을 숨기실 때 이를 이겨내는 일을 절대로, 절대로 포기하지 말라. 이 순간이 생애 최고의 시간일 수 있다.
9. 하나님의 뜻에 순종할 때
하나님은 우리를 부르시는 분이시다. 하나님의 부르심이란 표현을 정의해 보면, 이는 하나님께서 당신이 원하시는 바를 우리가 알도록 주의를 촉구하시는 것을 말한다. 예를 들면, 그분께서는 우리가 예수님을 믿고 구원받도록 우리를 부르셨다. 하나님의 부르심은 두 가지로 나누어 생각해 볼 수 있다. 하나의 작은 원이 있고, 그를 둘러싼 큰 원이 있는 경우를 생각해 보자. 큰 원은 하나님의 보편적인 부르심을 의미하며, 작은 원은 특정한 부르심을 의미한다.
그렇다면 이러한 두 가지 부르심의 차이는 무엇인가? 일반적인 부르심이란 우리가 육신의 귀로 주님의 복음을 듣는 것을 말한다. 특정한 부르심이란 영혼의 귀로 주님의 음성을 듣는 것이다. 처음에는 단지 일반적인 부르심에 지나지 않던 말씀이 점차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말씀하신다는 것을 알게 되는 것이다.
좀더 깊은 단계로 부르심이 있다. 우리가 주님을 영접한 이후에 이른바 ‘특별한 부르심’이나 혹은 ‘소명’이 있을 수 있다. 당신의 삶에 대한 하나님의 뜻은 무엇인가? 어느 날 갑자기 하나님이 나를 설교자로 부르셨음이 분명해졌다. 나와 같은 켄터키 주의 산골짜기 출신이 설교자로 부르심을 받은 것은 대단한 일이다.
모든 것이 순조로운 중년의 당신에게 하나님께서 당신의 돈과 시간을 사용하는 방식, 당연하게 생각하며 누렸던 모든 안락한 생활을 지적하시면서 “나는 네게 다른 계획을 가지고 있다.“고 말씀하시면 어찌하겠는가? 고통이 클 수도 있으나, 그에 대한 하나님의 보상은 더욱 크다.
아무런 예고도 없이 하나님께서 당신에게 “너는 이제껏 충분히 네가 원하는 대로 살아왔다. 이제부터 나를 따르라.“고 말씀하신다면 어찌할 것인가? 하나님께서는 그렇게 하실 수 있는 권리를 가지고 계신다. ”너희는 너희의 것이 아니라 값으로 산 것이 되었으니“(고전 6:19~20)라는 말씀을 보면 분명해진다. 하나님께서는 언제라도 ”나는 너를 원한다.“고 우리에게 말씀하실 수 있는 권리를 갖고 계신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우리를 부르시는 방식을 예측할 수는 없다. 그분은 결혼생활이나 우정이 위기에 처하는 등 상당히 심각한 상황 속에서 우리를 부르실 수도 있다. 우리가 극심한 고통 중에 있을 때 우리를 부르실 수도 있다. 하나님께서는 아주 잠깐 사이에 우리의 삶이 바뀌도록 우리를 다루실 수 있다. 심지어 우리 자신도 알아차리기 전에 말이다.
10. 새로운 만남을 허락하실 때
우리 부부가 1958년에 포트 로더데일로 이사한 지 얼마 안 되어서, 우리가 출석하고 있던 목사님의 집으로 초대를 받게 되었다. 그곳에는 내가 처음 본 사람도 와 있었다. 제시 오클레이 목사님이 어떤 사람을 내게 소개시켜 주었다. “켄달 목사, 여기 프레드 씨와 인사하게.”
내가 프레드와 인사하는 순간, 어렸을 때 내가 아주 싫어하던 이와 많이 닮았음을 알았다. 이런 사실을 프레드는 모르겠지만, 그와는 친구가 될 가능성이 별로 없어 보였다. 왜냐하면 나는 그가 단지 내가 싫어하던 사람과 아주 닮았다는 이유만으로, 이미 그와는 친구가 되지 않기로 마음먹고 있었다.
그러나 불과 몇 주가 지나지 않아서 나는 하나님께서 이 사람을 내 인생에 새로 보내 주셨음을 알았다. 내가 호별 방문을 하며 진공청소기를 팔도록 주선해 준 사람이 바로 프레드였다. 처음에는 대수롭지 않게 생각했지만, 그를 만난 것은 내게 대단히 중요한 일이었다. 진공청소기를 파는 일은 대단한 기술을 필요로 하는 일도 아니었고, 또 자존심이 많이 상하는 일이기도 했다.
한편, 나는 포트 로더데일에 살면서 영적 성장에 관한 신학잡지를 발간할 수 있는 기회를 갖게 되었다. 잡지의 이름은 「주님의 증언자」였고, 대략 천 부 정도를 발송했다. 이 잡지 일을 하면서도 여전히 만족감을 느끼지는 못했다. 이 일을 통해서 하나님이 나를 사용하고 계셨지만 당시에는 몰랐다.
6년 후, 켄터키의 루이스빌로 이사를 가게 되었는데 전혀 모르는 분에게서 전화를 받았다. “이곳 루이스빌로 이사 오신다고 들었습니다.” “예. 신학교에 다니기 위해 그리로 갑니다.” “제가 이곳을 떠나게 되었는데, 저의 후임자로 이곳에 목회를 하도록 당신을 추천하고 싶어요. 어떻게 생각하세요?”
당시에 우리 부부는 살림을 꾸려가기도 벅찼고, 하나님께서 내가 신학을 공부하면서 목회 일을 하도록 허락하실 줄은 꿈에도 모르고 있었다. 나는 그분께 “저를 어떻게 아셨나요?”하고 물었다. 그러자 그는 “당신이 발행하는 「주님의 증언자」라는 잡지를 보고 알게 되었습니다.”라고 말했다.
우리가 이곳 웨스트민스터 교회에 정착한 이후, 이웃에 사는 분의 초대를 받게 되었다. 나는 이분의 초대를 별로 대수롭지 않게 여겼지만 초대에 응했다. 이분과 얘기를 나누는 말미에 그가 말했다. “우리 집에 아써 블레씨트라는 분이 와 계신데, 한번 만나 보시지요” 그가 이 말을 마치자, 아써가 계단을 걸어내려 오는 것이 아닌가?
내가 이웃집을 방문하지 않았더라면, 아써를 만날 기회를 놓치고 말았을 것이다. 나는 그를 2~3년 후에 우리 교회로 초청했다. 만약 아써와의 만남이 없었다면, 우리 교회가 지금의 모습이 아닌 것은 틀림없는 사실이다. 아써는 우리의 생각을 완전히 뒤바꾸어 놓았다. 이처럼 하나님께서 예정하신 분들과의 만남으로 엄청난 일들이 많이 일어났다. 하나님께서는 당신에게 지혜를 주시기 위해 우리의 삶에 많은 사람들을 보내 주신다.
11. 성공할 준비가 되어 있을 때
당신은 하나님께 당신의 형통함을 위해 분명하게 기도해 본 적이 있는가? 당신은 성공을 위한 준비가 되어 있다고 생각하는가? 최악의 상황은 준비가 안 된 상황에서 빨리 성공하는 것이다. 많은 이들이 성공하지만, 성공과 함께 오는 부작용을 심각하게 경험한 나머지 차라리 이런 성공을 하지 말았더라면 하고 바랄 정도다.
부와 명예, 직장에서 성공 등 당신이 지금껏 경험해 온 성공은 진정한 의미의 성공이 아니다. 진정한 의미에서 성공이란 기도생활에서 승리하는 것이다. 성경이 말씀하는 가장 감동적인 구절 중에 하나가 창세기 32장 28절인데, 여기서 야곱은 하나님과 씨름하고 있다. “그 사람이 가로되 네 이름을 다시는 야곱이라 부를 것이 아니요, 이스라엘이라 부를 것이니 이는 네가 하나님과 사람으로 더불어 겨루어 이기었음이니라.”
하나님께서는 당신이 주위의 사람들에게 영향력을 끼치기 원하신다. 만약 당신이 기도 생활에서 승리함으로써 주위 사람들에게 영향력을 끼친다면, 이는 얼마나 놀라운 일이 될 것인가? 어떤 성도들은 기도 생활에서 성공을 거둔다. 왜 그럴까? 기도에서 승리하기를 간절히 소망하기 때문이다 .
우리에게 닥칠 수 있는 최악의 상황이란 미처 준비가 되지도 않은 상태에서 성공하는 것이다. 하나님께서 “너는 성공을 감당할 모든 준비가 되었구나.”라고 말씀하신 후에 우리가 성공한다면 그 뒤 후회하는 순간은 없을 것이다. 하나님께서는 당신이 능력이 없음에도, 높은 자리를 차지하고 앉아 있도록 하시지는 않을 것이다.
당신이 기도 생활에서 성공한다면, 다른 어떤 것보다도 많은 것에서 성공하는 것이다. 우리가 기도 생활에 성공하고 나중에 하나님 앞에 서게 되면, 예수님께서 친히 우리를 바라보시며 말씀하실 것이다. “참 잘했구나.” 주님에게서 이러한 찬사를 듣는 것은 엄청난 일이고, 이러한 기쁨은 영원히 지속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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