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연은 크리스천의 결단 문제
‘몸의 청지기’ 신앙인, 하나님 영광 위해 술·담배 끊어야
▲ 방선기 목사 |
한편 반작용으로 술·담배를 자유롭게 하는 성도들도 있다. 복음과 무관한 기호에 관한 문제라면서 정당화하기도 한다. 사소한 문제에서 이와 같이 양극단으로 나뉘는 것은 우리들의 일상생활의 문제를 해석하고 설명해주는 생활신학이 없기 때문이다.
예수를 믿기 위해서는 술·담배를 끊어야 한다거나 예수를 믿는 사람은 술·담배를 해서는 안 된다고 하는 것은 신학적으로는 정확한 표현이 아니다. 반면 술·담배를 하는 것은 신앙과 무관하다는 주장 역시 신학적으로 올바른 주장이 아니다. 신앙과 삶은 뗄 수 없는 관계이기에 술과 담배의 문제가 신앙과 무관할 수 없다. 그렇다면 술·담배 문제는 크리스천의 신앙과 어떤 관계가 있을까?
먼저 담배 문제를 생각해보자. 담배 문제는 술 문제에 비해서 단순하다. 담배는 성경이 기록될 당시 존재하지 않았기에 전혀 기록이 없다. 그렇지만 우리가 아는 대로 사회에서도 담배는 해로운 물질로 비판을 받고 있다. 아마도 포장지에 건강에 해롭다는 강한 경고문을 넣는 상품은 담배밖에 없을 것이다. 심지어 담배를 마약이라고 말한다. 그러므로 담배를 피우는 것은 몸의 청지기이며 이웃을 사랑해야 할 크리스천들에게 어울리지 않는 행동이다. 크리스천이 담배를 피울 수 있느냐 없느냐의 문제는 종교적인 규율의 문제가 아니라 믿음의 사람이라면 삶 속에서 내려야 할 결단의 문제이다.
술 문제는 담배와는 조금 다르다. 술 자체가 나쁜 것만은 아니다. 술 좋아하는 사람들이 종종 드는 예인데, 바울이 디모데의 건강을 위해서 물만 마시지 말고 포도주를 마시라고 한 것을 보면(딤전 5:23) 술에 유익한 요소가 있다. 예수님의 첫 번 이적이 물로 포도주를 만드신 것이었고, 예수님이 제자들과 마지막 식사 때에 새 언약의 피를 기념하기 위해서 나누어주신 것도 포도주였다. 세례 요한과는 달리 예수님은 사람들로부터 ‘먹기를 탐하고 포도주를 즐기는 사람’이라는 비판을 받으셨다(눅 7:33-34). 그들의 비판을 옹호할 필요는 없지만 예수님이 포도주를 마신 것은 분명해 보인다.
포도주가 보편화된 유럽에서는 보수적인 교회에서도 포도주를 나누는 것은 그리 이상한 일이 아니다. 개인적으로 몸이 받지 않으면 마시지 않을 뿐 특별한 제약은 없다. 그런데 우리나라의 술 문제는 좀 다르다. 문제는 술 자체가 아니라 우리나라의 음주 문화이다. 술을 즐기는 수준을 넘어서서 폭음에 빠지는 경우가 많다. 건강도 나빠지지만 그로 인해 일어나는 부작용 또한 심각하다. 피차 별로 마시고 싶지 않더라도 모이면 어쩔 수 없이 마시고 결국에는 취한 상태로 끝을 맺고 또한 성적으로 실수하거나 범죄로 치닫는 경우도 있다. 이런 음주 문화에 대해서는 사회에서도 우려하는 목소리가 높다.
이런 문화 속에서 사는 크리스천들의 술에 대한 처신은 분명하다. 다니엘이 바벨론 왕이 제공하는 진미와 포도주를 거절할 때의 자세가 필요하다. “다니엘은 뜻을 정하여 왕의 음식과 그가 마시는 포도주로 자기를 더럽히지 아니하리라 하고 자기를 더럽히지 아니하도록 환관장에게 구하니”(단 1:8). 즉 음주문화가 심각한 사회문제가 되는 곳에서 신앙인의 구별된 모습을 보여주기 위해서는 술을 절제하거나 아예 술을 끊는 것이 바람직하다. 이것은 종교적 규율이 아니라 신앙적 결단이다. 사도 바울이 이 문제를 푸는데 중요한 열쇠를 보여준다. 모든 것이 가하나 모든 것이 유익한 것이 아니다. 모든 것이 가하나 모든 것이 덕을 세우는 것이 아니다(고전 10:23).
술과 담배 자체를 종교적으로 금기할 필요는 없다. 그러나 그것들은 한편으로는 유익하지도 않고 다른 한편으로는 덕을 세우지도 못하기 때문에 거절하는 것이 좋겠다. 우리가 무엇을 먹든지 마시든지 다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서 해야 하기에(고전 10:31) 이 땅에 살면서 하나님의 영광을 생각하는 사람이라면 술·담배는 금하는 것이 자연스러운 신앙인의 자세이다.
아직도 술이나 담배에 대해서 해결을 못한 사람들이 있다면 죄책감에 빠지기보다는 아직 영적으로 미숙한 것을 인정하고 성령의 충만함을 위해 기도하며 노력해야 할 것이다. 그리고 주변에 그런 사람들이 있다면 그들을 정죄하기 보다는 영적으로 미숙한 점을 안타깝게 여기며 그들을 위해 기도하며 권면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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