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학연수과/생활 신앙

[방선기 목사의 생활신앙(14)] 안식에 대해서

미션(cmc) 2011. 6. 23. 16:59

안식 없는 헌신은 ‘짐’이 된다

영적 충전은 하나님 명령… ‘힘’을 얻는 진정한 ‘쉼’ 가져야


   
  ▲ 방선기 목사  
휴가의 계절이다. 나름대로 누구나 다 가지는 휴식이지만 우리 크리스천들은 일상생활의 신학의 잣대를 대어보아야 한다. 창세기를 읽다가 하나님이 안식하셨다는(창 2:1-3) 부분에서는 도대체 하나님이 왜 쉬셨을까 의문이 들곤 한다. 하나님이 피곤하실 것이 무엇이 있었는가? “빛이 있으라” 등 몇 마디 말씀하신 것이 전부인데, 혹시 그것이 힘이 들었다고 하더라도 전능하신 하나님이 피곤해서 쉰다는 것이 어색하게 들린다(시 121:3-4).

그러다가 요즘 우리 사회 현대인들의 모습을 생각하면서 하나님이 왜 쉬셨는지 이해가 되었다. 하나님의 안식은 전적으로 우리들을 위함이었던 것 같다. 안식의 필요성을 말로 가르치기 전에 하나님께서 친히 모범을 보여주신 것이다. 이런 하나님의 뜻을 이해한다면 쉼은 사람들이 일하다가 피곤해지는 경우를 대비한 선택사항이 아니라 모든 사람이 필수적으로 지켜야할 하나님의 명령임을 알 수 있다.

가끔 헌신적인 목회자들 중 하나님의 일을 하는데 어떻게 쉴 수 있느냐고 말하는 경우가 있다. 목회에 대한 열정과 헌신적인 믿음의 자세로 들리지만 가만히 따져보면 하나님을 무시하는 말이 아닐 수 없다. 아마도 하나님이 듣고 이렇게 반응하실지 모른다. “나는 쉬었는데 너는 안 쉬고 하니? 뭘 그렇게 열심히 하는데?”

이 세상에서 육신을 입고 사는 동안에 우리가 안식하는 것은 몸을 쉬는 것에 그치지 않고 창조행위와 연관하여 하나님의 하나님 되심을 인정하는 것이다. 하나님이 창조 사역을 완성하고 축하하고 보전하시는 안식에 동참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안식을 취하는 것은 세속적인 일이 아니라 영적인 일이다. 따라서 우리는 안식을 세상 사람들이 흔히 레저 활동과 혼동하는 자세와 구별해야 한다.

그래서 쉬는 것이 또 다른 일이 되어서는 안 된다. 물론 힘들게 산행을 하고 와서 잘 쉬었다고 할 수 있다. 휴식의 기회가 생기면 잠만 자는 것이 진정한 휴식은 아니다. 그러나 레저 활동이 너무 지나쳐 무언가 레저 활동을 해야만 쉬는 것으로 생각하는 것은 문제가 있다. 특히 우리의 경우는 어딘가에 갔다 와야 하고 무언가를 해야 한다는 강박관념 때문에 진정한 쉼을 놓치는 경우가 있다. 주말마다 고속도로가 극심하게 정체되고 휴가철에는 그야말로 평소 다니던 지역 주민들이 제대로 활동을 할 수 없는 것은 또 다른 일에 빠져서 진정한 안식을 잃어버린 현대인의 안타까운 모습이라고 할 수 있다.

또한 우리 크리스천들의 경우는 교회에서 보내는 시간이 그렇게 되기 쉽다. 예배를 드리고 교회에서 아이들을 가르치는 것은 영적으로 안식의 한 방법이다. 그것은 산행이 사람들에게 쉼이 되는 것과 비슷한 이치이다. 산행이 힘이 되듯이 교회의 활동은 삶의 힘이 될 수 있다. 그러므로 쉬기 위해서는 교회의 활동까지 다 그만 두어야 한다고 생각해서는 안 된다. 그러나 교회 활동도 지나치면 또 하나의 일이 될 수 있다. 교회활동이 ‘힘’이 되지 않고 ‘짐’이 되기 시작하게 되면 문제가 생긴 것이다.

이 둘 사이를 잘 분별해야 한다. 조용히 우리 자신이 교회에서 하고 있는 일들을 살펴보자. 과연 이것이 내게 또 하나의 일이 되고 있지는 않은지 확인해야 한다.

사람들에게 쉰다는 것은 가장 기본적으로 몸이 쉬는 것을 의미한다. 레저 활동이든, 교회활동이든 끝난 후에 피곤해서 또 쉬어야겠다는 생각이 든다면 그것은 무리한 것이다. 사람의 몸을 지나치게 아끼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지만 몸을 잘 관리하는 것은 청지기의 사명이다. 이를 위해서는 잠시 일을 중단하는 것도 필요하다. 이것은 예수님이 몸소 본을 보여주셨다. 사람들이 예수님께 몰려왔을 때 예수님은 일종의 리트릿을 시행하여 한적한 곳에서 기도하셨다(눅 5:15-16).

쉰다는 것은 또한 마음을 쉬게 하는 것이다. 그러기 위해서는 종종 혼자만의 시간을 갖는 것이 필요하다. 사람들 사이에 있을 때 우리의 마음은 계속 움직여야만 한다. 그래서 피곤해진다. 그러므로 마음을 쉬면서 자기 자신을 돌아보며 하나님과의 시간을 가질 필요가 있다. 역시 예수님이 가장 좋은 모범이 되셨으며 위대한 사역을 이루었던 엘리야 선지자가 쉼을 통해 새롭게 된 것이 좋은 예가 된다(왕상 19:1-8).

이와 같은 진정한 안식의 시간은 개개인이 주 안에서 결단을 해야 할 것이지만 교회가 공동적으로 결정할 필요도 있다. 현재 교회 안의 헌신적인 교사들은 진정한 안식을 필요로 한다. 율법주의적인 전통 속에서 진정한 자유와 안식을 누리지 못하고 지내는 사람들이 많다. 그렇다고 안식을 위해서 개인이 자유롭게 결정을 하다보면 자칫 편의주의에 빠지기 쉽다. 그러므로 율법주의에서 벗어나면서 편의주의에 빠지지 않도록 하는 대안이 필요하다.

목회자들이 휴가기간을 갖거나 경우에 따라서는 안식년을 가지는 것을 보면서 이런 축복이 평신도 사역자들에게도 주어져야하지 않을까 생각해본다. 너무 지나친 생각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