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학연수과/종 교 개 혁

종교개혁자들의 신학 교류와 논쟁] ② 종교개혁의 정수 ‘그리스도인의 자유’

미션(cmc) 2011. 10. 7. 08:06

[여름특집/ 이야기로 보는 종교개혁자들의 신학 교류와 논쟁]

② 종교개혁의 정수 ‘그리스도인의 자유’

칼빈, 루터·쯔빙글리를 융합하다

‘율법으로부터의 자유’ 개념 보완·확장
‘소극적 이해’나 ‘적극적 계율 거부’ 아닌
‘양심의 자유’ 통한 ‘자발적 준수’ 강조

“그리스도인은 전적으로 만물의 주이며 아무에게도 예속되어 있지 않다. 또한 그리스도인은 전적으로 충실한 만물의 종이며 모든 사람에게 예속되어 있다.” 1520년 마틴 루터가 교황 레오10세의 파문조치에 항의하기 위해 발표한 <그리스도인의 자유> 선언의 서두 부분이다. <그리스도의 자유> 선언은 로마가톨릭에 대항해 복음의 정신에 입각한 인간의 신앙에 집중함으로써, 종교개혁운동의 근본 목표를 제시했다. 그러나 <그리스도인의 자유> 선언은 여기에 그치지 않는다. 비록 루터가 반대를 했지만 이 선언의 영향으로 농민전쟁이 일어난 것처럼, <그리스도인의 자유>는 근대 시대 새로운 인간이해의 근간을 제공한 중요한 선언이었다. 루터의 <그리스도인의 자유> 선언은 이후 종교개혁자 쯔빙글리와 칼빈으로 이어지며 새롭게 확장된다. 특집 두 번째 글은 종교개혁운동의 핵심인 <그리스도인의 자유>를 루터 쯔빙글리 칼빈이 어떻게 이해하고 발전시켰는지 살펴본다. 한국칼빈학회에서 발표한 조용성 교수(영남신대)의 <쯔빙글리와 칼빈의 그리스도인의 자유>를 참고했다. <편집자 주>

‘그리스도인의 자유’ 개념은 종교개혁운동의 핵심이었다. 루터가 처음 <그리스도인의 자유> 선언을 내놓은 이후, 종교개혁자들은 자신의 신학과 상황 속에서 ‘그리스도인의 자유’를 발전시켰다.

루터, 복음적 인간이해를 세우다
루터가 제시한 ‘그리스도인의 자유’는 한마디로 율법으로부터의 자유였다. 반교황적 정치성향을 가진 제후들의 후원을 받았던 루터는 ‘그리스도인의 자유’를 로마가톨릭교회의 개혁과 율법으로부터 해방된 인간의 신앙 자유에 초점을 두었다.

신학적으로 이것은 행위를 통해 구원받을 수 있다는 신앙에서 해방이었으며, 오직 복음으로서 구원을 얻는 ‘그리스도인의 신앙의 자유’였다. 구원받기 위해 어떤 행위도 필요하지 않을 때, 비로소 인간은 자유로운 영혼으로 하나님께서 주신 왕직과 제사장직을 수행하게 된다. 여기에서 도출된 ‘만인제사장론’으로 일반 성도들도 하나님의 제사장과 왕으로서 존재하게 된다.

그리고 신앙의 자유를 획득한 그리스도인은 사랑을 실천하는 자유를 획득한다. 루터가 <그리스도인의 자유> 서문에서 밝힌 “그리스도인은 전적으로 충실한 만물의 종이며 모든 사람에게 예속되어 있다”는 선언은 바로 사랑의 실천을 강조한 것이다.

   
  ▲ 종교개혁자들은 루터가 제시한 ‘그리스도인의 자유’ 개념을 신학뿐만 아니라 사회 전반으로 발전시켜 나갔다. 칼빈과 지지자들이 회의를 하는 모습의 판화.(한국칼빈주의연구원 제공)  
 
루터는 그리스도인이 “신앙을 통하여 그리스도 안에서 살며, 사랑의 통하여 그의 이웃 안에서 산다. 그는 전자를 통하여 하나님께 올라가며, 후자를 통하여 이웃을 향해 내려간다. 그는 항상 하나님과 그의 사랑 가운데 존재한다”고 강조했다. 루터는 올바른 신앙과 사랑의 선행을 통해 그리스도인은 신앙이 단련되고 지속적으로 성장한다고 했다.

 

쯔빙글리, 인간적 규율을 거부하다

쯔빙글리가 종교개혁운동을 전개한 스위스는 루터와 상황이 달랐다. 제후와 같은 봉건제도의 잔재가 사라지고 의회가 종교개혁을 지지하고 있었다. 바야흐로 시민자치권력이 확립되는 지역이었다.

쯔빙글리의 ‘그리스도인의 자유’는 기본적으로 ‘복음과 율법’을 구분한 루터의 이해에 기초해 있다. 그러나 쯔빙글리는 이 율법 가운데 로마가톨릭교회에서 임의적으로 만든 규정을 비판하고 거부했다.

발단은 1522년 사순절 금식기간에 육식을 금지하는 규정을 어기고, 인쇄노동자들이 소시지를 먹은 것이 발단이었다. 쯔빙글리는 사순절 금식기간에 육식을 섭취할 수 없다는 규정은 인간적 규율이기에 인쇄노동자들은 죄가 없다고 변호했다. 당시 로마가톨릭교회의 전통적 계율을 거부한 것이다. 특히 쯔빙글리는 “전체 그리스도인들이 금식규정을 반포한 것이 아니라 일부 주교들이 여론수렴을 하지 않고 계율을 제정했다”며, 효력을 지닐 수 없다고 밝혔다.

결국 쯔빙글리는 루터의 ‘율법으로부터의 자유’를 더욱 철저하게 적용해 ‘왜곡된 율법으로부터의 해방’으로 이해했다. “우리는 사랑의 율법 외에 다른 어떠한 율법을 준수해야 할 의무가 없기 때문에, 그리고 음식선택의 자유가 이웃사랑을 방해하지 않기 때문에, 우선적으로 자유가 올바로 가르쳐져야 하고, 로마가톨릭 교회가 가르치는 율법을 준수할 필요가 없다,”

칼빈, 복음과 율법을 융합하다

칼빈 역시 루터와 동일하게 ‘행위를 통해 구원을 얻을 수 있다는 신앙으로부터 해방’, 곧 율법으로부터 자유를 근간으로 한다. 그러나 그리스도인은 성화의 삶을 살도록 부름을 받았기 때문에, 경건을 실천하도록 노력해야 한다. 율법은 경건의 실천, 곧 선을 행하도록 가르치는 효용성을 갖는다.

율법을 소극적으로 이해한 루터나 적극적으로 거부한 쯔빙글리와 달리, 칼빈은 율법의 자발적 준수를 이야기한다. 강요로 율법을 지키는 것이 아니라, 자유를 얻은 그리스도인으로서 율법을 실천해야 한다. 칼빈은 이것을 양심의 자유와 연결시켰다. 칼빈에게 자유와 양심은 분리되지 않았다.

나아가 칼빈은 양심의 자유를 세속의 영역으로 확장시켰다. 그리스도인이 하나님 앞에서 자유를 얻었다고 해도, 세속의 법을 준수할 의무가 있다고 밝혔다. 그렇지만 그리스도인으로서 양심이 세속의 법과 규칙에 종속되는 것은 단호히 반대했다. 결국 칼빈은 루터의 그리스도인의 자유의 의미를 간직하면서, 비복음적이고 비인간적인 규정을 거부한 쯔빙글리의 율법의 새로운 이해를 융합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