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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복한 가정 만들기/(벧전 3장1-7)

미션(cmc) 2011. 10. 24. 17:55

행복한 가정 만들기(벧전 3장1-7)

성경본문| 베도로전서 3장 1절 ~7절

1 아내들아 이와 같이 자기 남편에게 순종하라 이는 혹 말씀을 순종하지 않는 자라도 말로 말미암지 않고 그 아내의 행실로 말미암아 구원을 받게 하려 함이니

2 너희의 두려워하며 정결한 행실을 봄이라

3 너희의 단장은 머리를 꾸미고 금을 차고 아름다운 옷을 입는 외모로 하지 말고

4 오직 마음에 숨은 사람을 온유하고 안정한 심령의 썩지 아니할 것으로 하라 이는 하나님 앞에 값진 것이니라

5 전에 하나님께 소망을 두었던 거룩한 부녀들도 이와 같이 자기 남편에게 순종함으로 자기를 단장하였나니

6 사라가 아브라함을 주라 칭하여 순종한 것 같이 너희는 선을 행하고 아무 두려운 일에도 놀라지 아니하면 그의 딸이 된 것이니라

7 남편들아 이와 같이 지식을 따라 너희 아내와 동거하고 그를 더 연약한 그릇이요 또 생명의 은혜를 함께 이어받을 자로 알아 귀히 여기라 이는 너희 기도가 막히지 아니하게 하려 함이라

산다는 것이 말처럼 쉽지 않습니다. 악하고 음란한 세상에서 더구나 사탄의 공격이 끊임없이 계속되는 이 세상에서 서로 다른 생각과 가치관을 가진 사람들이 함께 더불어 산다는 것은 정말 쉬운 일이 아닙니다. 그러다보니 후회도 많고 아쉬움도 많고 속았다고 생각되는 때도 많이 있는 것이 바로 우리 인생입니다. 우리의 인생 속에 크고 작은 많은 위기가 있습니다. 사업의 위기, 건강의 위기, 인간 관계의 위기.......우리가 경험하는 많은 위기 가운데 아주 심각한 위기가 있는데 그 중에 하나가 바로 부부생활의 위기입니다. 가정의 위기입니다.

어제 신문에도 보도되었지만 미국사람들은 10쌍 중에 5쌍이 이혼을 한다고 합니다. 영국에서는 10쌍중 4쌍이 한국은 10쌍중 3.5쌍이 이혼을 한다고 합니다. 가정이 무너지고 있습니다. 가정이 위기를 맞고 있습니다. 가정이 무너지는 소리가 이곳 저곳에서 들려오고 있습니다.

이 땅에 하나님이 친히 세우신 기관이 둘 있습니다.

하나는 가정이고

또 하나는 교회입니다.

가정은 하나님께서 만드신 인간 사회의 가장 기초단위입니다.

그러기에 가정이 무너지면 사회가 무너지고 사회가 무너지면 국가가 무너지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사단은 늘 교회와 가정을 끊임없이 공격합니다. 그래서 오늘날 교회와 가정 안에 문제가 많습니다. 어떻게 보면 가장 문제가 없어야 할 곳임에도 불구하고 가장 문제가 많은 곳이 바로 가정과 교회입니다. 왜 그럴까요? 그것은 그만큼 사탄의 공격이 가정과 교회에 집중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사단은 오늘도 여러분의 가정이 행복한 가정이 되지 못하도록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공격합니다. 때로는 성격의 차이을 가지고, 때로는 자녀의 문제를 가지고, 때로는 성적인 문제로 술과 도박의 문제로 가정 가정을 공격합니다.

결혼 하신분들은 다 경험한 것이지만 성장환경이 다르고 성격이 다르고 가치관이 다른 두 사람이 한 몸이 되어 산다는 것이 얼마나 어렵습니까? 그래서 살다 보면 속았다는 생각이 들기도 하지 않습니까?

그래서인지 결혼생활을 비유한 말들이 많이 있습니다. "신혼때에는 집안에서 음식을 끓이느라 지글지글하는 소리가 나고, 일년쯤 지나면 아기 오줌 누이느라 쉬하는 소리가 나고, 십년이 지나면 김빠지는 휴하는 소리가 난다." "신혼때에는 부부가 밤찬으로 피자를 먹으며 즐기지만. 일년쯤 지나면 냉장고에서 아무것이나 꺼내서 먹고, 십년 쯤 지나면 부부싸움 하느라고 아무것도 먹지 못한다." "부부란 10대에는 서로가 꿈속에서 살고, 20대에는 서로가 신이 나서 살고, 30대에는 서로가 환멸을 참으며 살고, 40대에는 서로가 체념하고 살고, 50대에는 서로가 가엾어서 살고, 60대에는 서로가 없어서는 안되니까 살고, 70대에는 서로가 고마워서 산다."

마귀는 우리의 가정이 깨어지고 무너지기를 원합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우리의 가정이 예수 안에서 하나되고 행복한 가정이 되기를 원하십니다. 그런데 이 행복한 가정은 서로의 노력이 없이는 이루어지지 않습니다. 왜 결혼을 합니까? 행복한 가정을 이루기 위해서입니다. 그런데 많은 사람들이 노력은 하지 않은채 서로 절망하고 낙심하고 책임을 전가시키며 상대방이 변해 주기만을 바라고 있습니다. 상대방이 나를 이해해 주기를 바라고 상대방이 나를 먼저 사랑해 주기를 바랍니다. 정원도 가꾸지 않으면 아름다운 정원이 될 수 없습니다. 아무리 아름다운 정원도 3개월만 가꾸지 않아 보세요. 온갖 잡초들이 무성하고 사람들이 갖다버린 쓰레기들로 더럽혀지고 맙니다.

지난번 우리 교역자들이 경남 거제에 있는 외도(外島)를 방문하였습니다. 다른 관광객들은 한 시간 반 만에 나가야 하는데 저희는 저희 교회 박건상 집사님 이상민 집사님의 친정 부모님들이 그 외도를 경영하고 계시기에 하룻 밤 그곳에서 묶으면서 예배도 드리며 낚시도 하고 좋은 시간을 보내고 왔습니다. 육지에서 볼 때는 정말 작은 하나의 섬에 불과했습니다. 그런데 도착하여 섬 안으로 들어가보니 수 많은 나무와 꽃들로 아름다운 공원이 조성되어 있었습니다. 모든 사람들이 입을 쫙 벌리고 감탄을 했습니다. 아니 어떻게 이런 곳에다 이렇게 아름다운 나무와 꽃들을 심을 생각을 했을까? 아니 어디서 이런 나무들들을 구해왔을까? 정말 아름다운 해상공원이었습니다 아름답지 않으면 사람들이 왜 돈을 들여 가면서까지 구경을 오겠어요? 성공시대에도 소개되었습니다만 피와 땀과 눈물의 노력이 없이는 그렇게 아름다운 공원이 조성될 수 없었습니다. 돌을 골라내며 물을 주며 추운 겨울에는 비닐봉지로 감싸주기도하며 나뭇가지를 전지하기도 하며 얼마나 가꾸고 가꾸었겠습니까?

마찬가지입니다. 우리의 마음도 가정도 가꾸지 않으면 시기와 미움과 증오의 잡초들이 무성하게 자랄 수 밖에 없습니다. 행복한 가정은 서로의 노력이 없이는 이루어질 수 없습니다. 결혼만 했다고 해서 행복한 가정이 되어지는 것이 아닙니다. 수고와 노력이 있어야 합니다. 오늘 우리가 읽은 본문은 우리의 가정이 행복해지기 위해 남편과 아내가 힘쓰고 지켜야 할 것에 대하여 가르치고 있습니다.

□ 아내가 힘써야 할 것

1. 자기 남편에게 순복하라.

"아내들아 이와 같이 자기 남편에게 순종하라 이는 혹 말씀을 순종하지 않는 자라도 말로 말미암지 않고 그 아내의 행실로 말미암아 구원을 받게 하려 함이니"(1절)

여기서 순복은 아첨이나 부득이함이나 외식으로가 아니라 자원하는 순종을 말합니다. 사랑하기에 자원하는 마음으로 순종하는 것을 말합니다. 어떤 분들은 왜 아내만 남편에게 순종하라고 말하는가? 그래서 받아들이지 못하겠다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그러나 성경은 남녀의 평등을 말합니다. 그러면 왜 성경은 이것을 가르치고 있습니까? 가정의 질서 때문입니다. 가정의 질서 때문에 남편은 아내를 사랑하고 아내는 남편에게 순복하라고 말합니다.

성경이 기록될 당시 여성은 여자라고 하는 것 때문에 아무런 권리도 없었습니다. 단지 한 남편의 소유에 불과했습니다. 남자는 아내의 지참금만 돌려주면 언제든지 제 멋대로 이혼할 수도 있었습니다. 고대 로마의 기록을 보면 만일 아내가 부정한 행위를 하다가 체포되면 그녀를 재판없이 죽여도 죄가 되지 않았습니다. 이런 시대적인 상황에서 기독교는 여성들을 어떻게 대우했는가? 공개적인 모임에 함께 참석을 하게 했습니다. 남자와 함께 성찬에 참여하여 떡과 잔을 함께 떼며 교제했습니다. 이것은 일종의 혁명에 가까운 일이었습니다.

왜 남편에게 순종해야 하는가? "그 아내의 행실로 말미암아 구원을 받게 하려 함이니"(1절)"라고 했습니다. 불신자의 남편일지라도 그 아내의 행위로 구원을 얻도록 하기 위함입니다.

어떻게 순종해야 하는가?

"전에 하나님께 소망을 두었던 거룩한 부녀들도 이와 같이 자기 남편에게 순종함으로 자기를 단장하였나니"(5절)

" 사라가 아브라함을 주라 칭하여 순종한 것 같이"(6절)

여기서 말하는 거룩한 부녀들은 사라나 한나같은 여인들을 말합니다. 그런데 그 거룩한 부녀들은 소망을 자식이나 남편에게 두지 않고 하나님께 두었습니다. 왜 소망을 우리가 하나님께 두어야 할까요? 그래야 실망치 않습니다. 사람에게 소망을 두면 기대를 걸면 반드시 실망을 하게 됩니다. 자식과 남편을 두신 하나님께 소망을 두면 결코 실망하지 않습니다.

사라는 남편 아브라함을 주라 칭하였습니다. 사라가 처음부터 그렇게 순종하는 여자가 아니었습니다. 그녀 역시 성깔이 있는 여자였습니다. 사라가 아이를 낳지 못하여 그 종 하갈과 동침하였습니다. 하갈이 잉태를 하자 자식을 못낳는 사라를 멸시했습니다. 그러니까 사라가 열 받았습니다. "사래가 아브라함에게 이르되 나의 받는 욕은 당신이 받아야 옳도다"(창16:5)

하지만 하나님의 은혜를 입어 자식을 낳을 것에 대한 말씀을 들었을 때에 아브라함을 나의 주인이라고 했습니다. 하나님의 은혜를 입은 결과입니다. 그러니까 은혜를 받아야 남편에게 그렇게 대할 수 있는 것입니다.

2. 속 사람을 단장하라

"너희의 단장은 머리를 꾸미고 금을 차고 아름다운 옷을 입는 외모로 하지 말고"(3절)

"오직 마음에 숨은 사람을 온유하고 안정한 심령의 썩지 아니할 것으로 하라 이는 하나님 앞에 값진 것이니라 (4절)

"전에 하나님께 소망을 두었던 거룩한 부녀들도 이와 같이 자기 남편에게 순종함으로 자기를 단장하였나니"(5절)

옛날 고대에서 남자들은 주로 밖에서 활동하고 여자들은 주로 집에서 생활을 하였습니다. 그런데 여자들은 집안에서 별로 할 일이 없으니까 얼굴과 몸을 화장하는데 많은 시간을 소모하였습니다. 외모를 무시하라는 말이 아닙니다.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신 육체도 외모도 단장해야합니다. 머리는 빗지 않아 까치집이나 지어 다니고 얼굴도 창백하게 하고 다니고 옷도 지저분하게 입고 다니면 누가 좋아하겠습니까? 전도도 그런 사람이 하면 되지 않습니다. 적당하게 화장을하고 옷도 단정하게 입고 머리도 단장을 하고 살아야 합니다. 너무 떡칠을 하면 곤란하지요 . 명성훈 목사님의 말씀이 생각납니다.

10대가 화장을 하면 화장이지만 20대가 화장을 하면 치장이고 30대가 화장을 하면 분장이고 40대가 화장을 하면 가장이고 50대가 포장을 하면 포장이라고 한답니다. 이 말을 했더니 식사 중에 나이 많이 드신 한 여성도님이 그러면 60대는 뭐라고 부르느냐고 물어서 모른다고 했더니 그분이 하시는 말씀이 '환장'이라고 하시더랍니다.

외모의 단장 보다 중요한 것은 사실 마음의 단장입니다. 결혼해서 살다보면 육체의 아름다움 보다는 마음의 아름다움이 더 중요한 것임을 실감합니다. 마음이 아름다워야합니다. 그러므로 아내는 마음을 단장해야합니다.

본문에서 마음에 숨은 사람은 거듭난 내적 자아 곧 속 사람을 말합니다.

어떻게 단장할까요?

그런데 그 속 사람을 어떻게 단장하라고 말합니까?

① 온유와 안정한 심령으로

사실 우리의 속 사람은 온유하고 안정되어 있습니다. 그런데 우리가 거듭난 내 영의 지배를 받지 못하고 육의 지배를 받으며 살기 때문에 쉽게 분노하고 평정을 잃어버리고 살아갑니다. 그런데 우리가 성령의 지배를 받으면 우리가 온유하고 안정된 삶을 살 수가 있습니다.

아내는 무엇으로 단장을 해야 합니까? 온유함입니다. 부드럽고 따뜻한 매력이 흘러 나와야합니다.

아내는 무엇으로 단장을 해야할까요? 안정된 심령입니다. 안정한 심령은 환경에 지배를 받지 않는 평온한 마음, 정숙한 마음입니다.

오늘 우리 남편들은 아내들에게 이것을 요구합니다. 사람이 중년기가 되면 남자가 여성화되고 여자가 남성화 된다고 합니다. 그래서 남자는 집 안에만 있고 싶어 하고 여자는 나가고 싶어합니다. 남자는 하루 종일 세상에서 할 말을 다 하고 들어와서는 말하기 싫어 침묵하는데 여자는 하루 종일 제대로 말 한마디 못하고 살림만 하다가 남편이 돌아오면 말하고 싶어합니다. 그런데 그것이 안되면 바가지를 긁기 시작합니다. 그런데 그렇게 하면 안됩니다. 아무리 힘들고 어려운 일이 있더라도 아내는 가정을 안정되게 해야 합니다. 평온하게 해야합니다. 아내는 돕는 배필입니다. 그러므로 남편을 늘 위로하고 격려하고 용기를 심어주어야합니다. 끊임없이 남편의 부족한 점을 격려해 주어야합니다. 그래서 피고해지친 남편이 빨리 집으로 돌아올 수 있도록 해야 합니다.

② 순복함으로 단장하라(5절)

여성의 매력은 여성의 아름다움은 온유함입니다. 안정된 심령입니다. 다음에는 순종입니다. 왜 우리가 순종해야합니까? 그것이 하나님의 명령이기 때문입니다. 그것이 하나님의 뜻이고 창조의 질서이기 때문입니다. 또 그것이 복음이 증거되는 통로가 되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세 번째로는 자신을 단장하는 수단이 되기 때문입니다.

□ 남편이 힘써야 할 것

"남편들아 이와 같이 지식을 따라 너희 아내와 동거하고 그를 더 연약한 그릇이요 또 생명의 은혜를 함께 이어받을 자로 알아 귀히 여기라 이는 너희 기도가 막히지 아니하게 하려 함이라"(7절)

먼저 남편은 가장이기 때문에 가정의 모든 문제에 일차적인 책임이 있습니다. 아내가 잘못하여 문제가 생겼든지, 자식이 잘못하여 문제가 생겼든지 그러므로 남편은 일차적인 책임의식을 가져야 합니다.

1.지식을 따라 아내와 동거하라

"지식을 따라 아내와 동거하라"고 했습니다.

헬라말 가운데 지식이라는 말이 둘이 있습니다.

①「기노스코」라는 말로서 지각과 이해력으로 얻은 지식을 말합니다.

②「에피 기노스코」 라는 말로서 체험을 통해 인격적으로 얻는 지식을 말합니다.

여기서 말하는 지식은 바로 경험적으로 인격적으로 얻은 지식을 말합니다. 아내를 알아야 사랑할 수 있습니다. 경험을 통해서 아내가 무엇을 좋아하는지 성품과 감정의 미묘함을 알아야 합니다. 내가 이해한 아내가 아니라 아내의 마음과 생각을 알아야 합니다.

불신자인 남편을 위해 오래동안 기도해 오던 아내가 있었습니다. 가까스로 어렵게 남편이 교회를 출석하게 되었고 예수님을 믿기로 작정하였습니다. 그런 남편이 무척 고마웠습니다. 모처럼 남편과 둘이서 경포대 관광호텔을 빌려 오븟이 여행을 하였습니다. 저녁이 되어 보름달이 뜨자 아내는 잠시 산책을 하고 싶었습니다. 남편이 샤워하는 동안 산책을 하다가 문득 이런 자연 속에서 사랑하는 남편의 신앙을 위해 뜨겁게 기도하고 싶은 마음이 들었습니다. 그래서 가까운 나무 아래에 앉아 남편을 위해 열심히 기도하기 시작했습니다. 얼마쯤 기도했을까 고개를 들어보니 철야기도를 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습니다. 그때에 아내는 남편에게 자기가 얼마나 좋은 현모양처인가 하는 생각을 하였습니다. 기도로 내조하는 아내가 있기에 남편은 훌륭한 믿음의 사람이 될 것이라는 확신이 들었습니다. 그러나 그날 저녁 남편은 머리끝까지 화가 나서 혼자 차를 몰고 집으로 가 버리고 말았습니다.

어느 교포가 한국에 나와 마음에 드는 아가씨를 만나서 결혼을 했습니다. 결혼 후 자신은 아내를 맞이할 준비를 하기 위해 먼저 미국으로 들어갔고 얼마 후 아내도 뒤따라 갔습니다. 공항에 마주 아나 보고 싶었던 아내의 얼굴을 보니 남편의 마음이 무척 기뻤습니다. 사랑하는 아내와 좋은 시간을 갖고 싶었습니다. 어디가 좋을까 생각해 보니 자신이 가본 곳 중에 가장아름다운 광경으로 기억에 남는 곳이 센프란시스코의 금문교였습니다. 그래서 금방 도착한 아내를 태우고 금문교를 향해서 갔습니다. 미국의 도로 중에서도 아름다운 고속도로를 따라 장시간 운전을 하며 달렸습니다. 아내도 처음에는 경치를 구경하며 즐거운 기분이 들었지만 이내 피로를 느꼈습니다. 잠깜 쉬고도 싶었지만 지는 석양을 바라보며 남편과 그 동안 하지 못했던 대화도 나누고 싶었습니다. 금문교 보다는 남편이 더 중요했습니다. 그래서 남편에게 꼭 가지 않아도 되니 쉬었다 가자고 했습니다. 그런데 남편은 무슨 소리냐고 펄쩍 뛰었습니다. 사랑하는 아내와 그곳에 꼭 같이 가보고 싶었습니다. 혼자 관광하면서 이 다음에 사랑하는 사람이 생기면 반드시 같이 오리라 다짐했었습니다. 남편은 빨리 가야 겠다는 생각에 아내 쪽은 돌아보지 않고 9시간 내내 운전만 했습니다. 새벽 2시가 되었습니다. 참다 못한 아내는 강제로 차를 세우게 합니다. 화가 난 아내는 차에서 내려 오던 길을 되돌아갑니다. 남편이 불러도 돌아보거나 대답도 하지 않았습니다. 남편은 당황하여 아내를 부르며 차를 타고 따라갑니다. 그 옆을 지나가던 운전자가 이 광경을 보았습니다. 한 여자는 맨 발로 걷고 있고 그 뒤에서는 차가 따라가니까 이상하게 여겨 경찰에 신고를 했습니다. 경찰 차가 출동했습니다. 할 수 없이 아내는 차에 오르긴 했지만 너무나 화가 나서 금문교는 보지 않겠다는 바람에 1시간 만 더 가면 도착할 수 있는 거리였는데도 다시 로스엔젤레스로 돌아올 수밖에 없었습니다.

2. 아내를 귀히 여기라

귀히 여기라는 말은 사랑하라는 말과 같습니다.

왜 귀히 여겨야 하는가?

① 더 연약한 그릇이기 때문입니다.

여인은 약합니다. 신체적으로 유혹에도 약합니다. 그러므로 힘든 일은 남자가 해야합니다. 그런데 우리나라는 그러지않았습니다. 아내는 머리에 짐을 이고 아이를 등에 업고 양 손에 물건을 들고 걷습니다. 그런데 남편은 도포자락을 흩날리며 점잖게 걷습니다. 그러나 이것은 성경적이 아닙니다. 연약한 그릇이기에 특별한 돌봄이 필요합니다.

② 생명의 은혜를 유업으로 함께 얻을 자이기 때문에 아내를 귀히 여겨야 합니다.

생명의 은혜란 영생을 말합니다. 그러니까 천국을 같이 누릴 존재라는 말입니다. 하나님은 당신의 가족이 당신의 남편이 구원받기를 원하십니다.

③ 기도가 막하지 않도록 하기 위해서 귀히 여겨야 합니다.

부부사이에 갈등이 생기면 기도가 막힙니다. 남편에게 불순종하면 기도가 막힙니다. 남편도 아내를 귀히 여기지 아니하면 기도가 막힙니다. 기도가 막힌 다는 말은 은혜의 통로가 막힌다는 말입니다.

성도 여러분!

사랑한다는 것이 정말 어렵습니다. 더구나 부부간의 사랑은 서로의 노력이없이는 불가능합니다. 행복한 가정은 저절로 만들어지는 것이 아닙니다. 진리의 말씀을 붙들고 기도하며 순종하여 나갈 떄 이루어집니다.

부부간의 관계를 언약관계라고 말합니다. 혈연관계는 서로 노력하지 않아도 사랑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언약관계는 노력하지 않으면 안됩니다. 노력하지 않으면 사랑이 계속되기 어렵습니다.

하나님은 당신의 가정이 행복하기를 원하십니다.

행복한 가정이 되기 위해서는 아내는 남편에게 순복하셔야합니다. 속 사람을 온유와 안정된 심령으로 순복함으로 단장하셔야합니다. 그리고 남편은 아내를 귀하게 여겨야합니다. 사랑해야합니다. 우리가 이렇게 살아가면 필경 자녀들은 이렇게 말할것입니다. 나는 우리 아버지같은 남자를 만나 결혼할거야..... 아들은 나는 우리 어머니와 같은 여자를 만나 결혼할거야....

내 자녀들이 그렇게 말할 수 있다면.....

그리고 어린 내 자녀들이 천국은 어떤 곳이냐?고 물어 왔을 때 우리의 가정과 같은 곳이라고 말할 수 있다면 이 가정은 행복한 가정입니다.

출 처| 김은호목사(오륜교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