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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복을 회복한 가정/(룻4장13-17)

미션(cmc) 2011. 10. 24. 17:55

행복을 회복한 가정(룻4장13-17)

성경본문| 룻기 4장 13절 ~17절

13 이에 보아스가 룻을 맞이하여 아내로 삼고 그에게 들어갔더니 여호와께서 그에게 임신하게 하시므로 그가 아들을 낳은지라

14 여인들이 나오미에게 이르되 찬송할지로다 여호와께서 오늘 네게 기업 무를 자가 없게 하지 아니하셨도다 이 아이의 이름이 이스라엘 중에 유명하게 되기를 원하노라

15 이는 네 생명의 회복자이며 네 노년의 봉양자라 곧 너를 사랑하며 일곱 아들보다 귀한 네 며느리가 낳은 자로다 하니라

16 나오미가 아기를 받아 품에 품고 그의 양육자가 되니

17 그의 이웃 여인들이 그에게 이름을 지어 주되 나오미에게 아들이 태어났다 하여 그의 이름을 오벳이라 하였는데 그는 다윗의 아버지인 이새의 아버지였더라

과거 프랑스에는 모두 69명의 군주가 있었습니다. 그 중에서 백성들로부터 진정한 사랑과 존경을 받았던 군주는 겨우 세 명에 불과했습니다. 생 루이, 루이 7세, 그리고 앙리 4세, 세 사람입니다.

프랑스의 어느 작가는 그들에겐 백성의 아픔을 이해하고 상처를 싸매 줄 줄 아는 매력이 있었다고 평가합니다. 그러면서 다른 군주들과 달리 그들만이 사람을 사랑할 줄 알고 감쌀 줄 아는 특별한 인간미를 가질 수 있었던 데에는 한 가지 이유가 있다고 합니다.

그것은 바로 어머니와의 정 깊은 대화였습니다.

다른 군주들은 어머니와 떨어져 유모의 손에 의해 키워졌지만, 유독 그 세 군주만은 어머니의 품에서 자라며 따뜻한 대화를 나누었기 때문이라고 합니다. 어머니의 품이 이렇게 놀라운 영향력을 발휘합니다.

인간이 세상에 태어나서 최초로 들어가는 학교는 어머니라고 하는 사랑의 학교입니다. 따라서, 어머니는 최초의 스승이며 최고의 스승입니다. 어머니의 얼굴은 우리들의 교과서였고, 어머니의 무릎은 우리들의 교실이었으며, 어머니의 말씀은 비타민이고, 어머니의 손길은 우리들의 천국이었습니다. 그리고 어머니의 가슴은 모든 인간의 고향입니다.

어머니의 사랑은 이 세상 어떤 어느 것과도 비교가 안 될 만큼 넓고 깊고 높습니다.

예컨대, 새들은 힘써 만든 둥지일지라도 1년 뒤엔 철수합니다. 그러나 어머니의 사랑은 기한이 없습니다. 새들은 불구가 된 새끼는 둥지에서 떨어뜨리지만, 어머니는 부족한 아이일수록 더 사랑합니다. 어미 새가 하는 일은 먹고 지키는 두 가지 뿐입니다.

그러나 어머니는 간호사가 되고 교사가 되고 요리사가 되고, 재봉사가 되고 운전기사가 되고 상담자가 되고 청소부가 되고 때 미는 자가 되고 동무가 되어주십니다. 이밖에도 어머니의 역할은 수없이 많습니다. 새들의 어미는 시한부로 새끼를 돌보고 책임을 벗으나, 어머니의 사랑은 영원합니다.

세상에는 진통제가 많지만 어머니의 입맞춤만큼 효력이 있는 진통제는 없습니다. 아이들의 가슴속에 쓰는 어머니의 편지는 세상의 어떤 거친 바람도 지울 수가 없습니다.

우리나라의 훌륭한 영문학자요 시인 피천득 선생님이 이런 고백을 들려줍니다.

그의 어머니는 30대 젊은 시절에 세상을 떠나셨지만, 어머니의 인상과 아름다운 추억은 영원히 지워지지 않기에, 그는 이런 소원을 노래합니다.

"내 인생의 간절한 소원이 있다면, 나는 여전히 어머니의 아들로 태어나는 것입니다."

"너는 알고 있는가, 네가 기뻐할 때 어머니도 기쁘고, 네가 슬플 때 어머니도 슬프고,

너의 성공이 곧 어머니의 성공이며, 너의 부끄러움이 어머니의 부끄러움이라는 것을......"

반면에 어머니는 겉으로 울고, 아버지는 속으로 키운다고 합니다. 또, 어머니의 과잉 사랑을 견제하는 역할을 아버지가 하고 있습니다. 어머니의 사랑이 배의 돛이라면 아버지의 사랑은 키와 같습니다. 키는 물 속에 잠겨 보이지 않으나, 배의 방향을 인도하는 막중한 역할을 합니다.

아버지의 미소 속에는 아이를 위한 장래의 걱정이 있고, 아버지의 주머니 속에는 아이를 위한 희생적 준비가 있습니다.

아버지의 가슴속에는 아이에게 훌륭한 모범이 못 되고 있다는 가책이 있고, 아버지의 심장 속에는 좀 더 좋은 아버지가 되려는 결심이 있습니다.

아버지란 '내가 훌륭한 아버지 구실을 하고 있나?' 라고 날마다 자책하는 분이십니다.

아버지란 결혼식 같은 때에 눈물을 별로 안보이지만, 목구멍 속으로 우는 분이십니다.

아들딸이 늦게 돌아올 때 어머니는 열 번 걱정하는 말을 하고, 아버지는 열 번 현관을 내다봅니다.

아버지는 날마다 일터로 나가지만 그 머릿속에는 언제나 아이들이 있습니다.

아버지는 속으로 울고 겉으로 위로하는 자입니다. 또한, 아버지는 속으로 사랑하고 겉으로 책망하는 자입니다. 아버지는 엄한 얼굴을 가졌으나 부드러운 심장을 가진 자입니다. 아버지는 최후의 존재하는 아이의 고향이며, 배신하지 않는 아이의 친구입니다.

아버지의 마음은 착잡하십니다. 그 이유는 아들딸이 '나를 닮아주었으면' 하고 생각하면서도, '나를 닮지 않아 주었으면' 하는 생각을 동시에 하시기 때문입니다.

아버지란 돌아가신 뒤에도 두고두고 그 말씀이 생각나는 분이십니다.

그러므로 아이들은 아버지를 통해 하나님을 배웁니다. 왜냐하면 아버지는 두려움과 자비, 위엄과 사랑의 양면을 동시에 가진 분이기 때문입니다.

어머니날을 상징하는 꽃은 사랑과 존경의 뜻을 품고 있는 카네이션이지만, 아버지날을 상징하는 꽃은 민들레입니다. 민들레는 짓밟힐수록 다시 일어나 더 힘차게 성장하기 때문입니다. 아버지의 사랑을 뭉개 없앨 만한 힘은 없습니다. 아버지의 사랑은 어떤 풍파와 역경도 감수하는 순교자적 사랑입니다.

"높고 높은 하늘이라 말들 하지만, 나는 나는 높은 게 또 하나 있지

낳으시고 기르시는 부모님 은혜, 푸른 하늘 그보다 더 높은 것 같아"

사랑하는 교우 여러분,

행복한 가정생활을 위해서는 세 가지 요소가 필요하다고 말합니다(Jack Dominian).

『지지, 치유, 그리고 성장』입니다.

아마 이런 내용이 오늘 우리가 읽은 룻기에 가장 리얼하게 나타나고 있다고 느껴집니다.

원래 룻의 가정 배경은 참 불행합니다. 완전히 패가망신한 가정입니다.

그런데 룻기의 메시지는 행복의 회복입니다. 좀 더 구체적으로 말하면 행복을 회복한 가정 이야기입니다.

이 책은 세 사람의 장례식으로 시작하나, 마지막은 결혼식의 기쁨과 탄생의 축제로 회복합니다.

즉 1장에서는 엘리멜렉과 말룐과 기룐이라는 세 사람의 죽음으로 시작하나, 4장에서는 오벳과 이새와 다윗이라는 세 사람의 역사적 출생으로 회복됩니다.

눈물로 시작한 내용이 축가로 전환됩니다. 사별의 통곡으로 시작했으나 탄생의 기쁨이 연속됩니다.

가난하게 출발했는데 풍요가 찾아옵니다. 고독하게 등장했는데 희열에 찬 모습으로 부각됩니다.

모든 것을 잃었던 불행에서 이전 것보다 더 풍족하게 회복하고 누리는 행복이 강조됩니다.

이방 땅의 죽은 우상으로부터 약속의 땅의 살아 계신 하나님의 품에 안깁니다.

지난 10년 동안의 고생이 영원한 영광으로 바뀝니다.

사랑하는 교우 여러분,

우리 가정이 어떤 환경에서 출발했던지, 새로운 회복이 있기를 원합니다.

지나온 세월 동안 어떤 쓰라린 아픔과 상처와 고통이 있었던지, 더 풍족한 회복이 있기를 원합니다.

오늘 우리가 읽은 룻기 4장 15, 16절에서는 가정의 행복을 위한 세 가지 중요한 단어가 나옵니다.

『회복자(Restorer), 봉양자(Nourisher), 양육자(Care)』입니다.

모든 불행으로부터 완전하게 회복된 가정의 진면목을 부각시켜줍니다.

오늘 우리에게도 이런 황홀한 회복의 은총이 있기를 원합니다.

1. 하나님이 돌보시는 가정입니다

룻의 가정이 행복을 회복할 수 있었던 근저는 『하나님의 돌보심의 은총』입니다.

본문 13절에서는 "여호와께서 그에게 임신하게 하시므로 그가 아들을 낳은지라 "고 상기시켜줍니다.

『돌보심의 은총.』이것이 룻기의 중심주제이기도 합니다.

같은 시대에 쓰여진 구약성경의 사사기는 "한 나라(이스라엘)를 돌보시는 하나님"을 주지시켜준다면, 룻기는 "한 개인, 한 가정을 돌보시는 하나님의 은총"을 부각시켜줍니다.

그래서 룻기는 네 장 밖에 안되는 짧은 책이지만, 『여호와』라는 이름을 18번이나 반복합니다.

『여호와 하나님』은 "돌보시는 하나님"이십니다.

한 나라와 한 민족, 한 가정, 한 개인을 자상하게 돌보시는 하나님이십니다.

원래 행복(beatus)이라는 말은 "하나님의 돌보심의 은혜를 받고 있을 때 나타나는 현상"을 뜻합니다.

시편 128편에서는 "여호와께서 돌보시는 가정은 그 손이 수고하는 대로 먹을 것이요, 복되고 형통할 것이며, 아내와 자식과 함께 온 가정이 행복과 안식을 누릴 것이라"는 확신을 줍니다.

사무엘의 가정도 원래는 불행한 환경이었으나, 하나님께서 어머니 한나를 돌보아주시므로 행복이 회복된 것입니다.

우리가 잘 아는 Dale Carnegie 역시 불행한 가정 환경에서 자랐으나, 어머니의 애절한 기도를 힘입어 하나님이 돌보아주신 은총으로 행복을 누리게 된 것입니다.

어머니는 아버지 없이 불쌍하게 자라고 있는 어린 아들 Dale을 위해 늘 이렇게 기도해주셨잖아요.

「대일아, 하나님이 너를 돌보아주실거야」(Dale, God will take care of you)

우리 자녀들을 하나님이 특별한 은총으로 돌보아주시기를 바랍니다.

남편의 직장과 사업, 아내의 건강, 자녀들의 진로와 결혼, 부모 형제, 온 가족을 돌보시는 은총이 충만하기를 원합니다.

우리가 애송하는 "너 근심걱정 말아라 주 너를 지키리... 아무 때나 어디서나 주 너를 지키리 늘 지켜주시리"라는 찬송가는 Martin 목사 부부가 작사 작곡한 것입니다.

마틴 목사는 어느 날 이웃 교회로부터 설교 초청을 받았는데, 병석에 누워있는 아내의 병간호 때문에 갈팡질팡하고 있었습니다. 그 모습을 보고 있던 어린 아들이, "아빠, 아빠가 오늘밤 설교하는 것이 하나님이 원하시는 것이라면, 아빠가 안 계실 동안에도 하나님이 엄마를 돌보아주실 것이라는 확신이 안 드세요?"

어린 아들의 말에 큰 감동을 받은 엄마 Civiela가 하나님의 돌보심의 은총을 믿고 작시한 것입니다.

God will take care of you!

4절은 이런 내용입니다. "네가 어떤 시험을 당하더라도 하나님이 너를 돌보아주실 것이다. 그러니 구주의 품에 거하기만 하거라. 그러면 하나님이 너를 돌보아주실 것이다."

(No matter what may be the test, God will take care of you. Lean, weary one, upon His breast, XZ)

오늘도 여전히 한 개인, 한 가정을 자상하고 섬세하게 돌보아주시는 하나님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2. 서로 상부상조하는 가정입니다

며느리 룻과 시어머니 나오미의 관계는 『생명의 회복자, 노년의 봉양자, 손자의 양육자』이었습니다.

너무나 이상적입니다. 룻기의 내용은 처음부터 끝까지 서로 상부상조하는 내용으로 가득 차 있습니다.

시어머니와 며느리가 최대한 서로 상부상조합니다.

오늘 본문 17절을 보면, 이웃집 여인들까지도 서로 상부상조하는 행복한 광경을 보여줍니다.

유명한 여성 가정학자 버지니아 사타이아는 행복한 가정의 네 가지 중요한 특징을 이렇게 정의합니다.

▶ 첫째로, 자기의 가치를 인정하고 자기를 존중히 여기는 가정

▶ 둘째로, 서로 간의 뜻이 통하는 가정

▶ 셋째로, 규칙이 있고 질서가 있는 가정

▶ 넷째로, 이웃과 잘 융화하고 사이가 좋은 가정입니다.

그렇습니다. 서로 사이가 좋고 융화가 잘되는 가정은 행복하게 살아갑니다.

저는 오늘 말씀을 통하여 두 가지 중요한 단어를 강조하고 싶습니다.

룻은 부유한 남편 보아스를 만나 유복하게 살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그는 자기 시어머니 나오미를 잊지 않고, 나무나 대견스런 봉양자가 됩니다(15절).

여기 봉양자라는 말은 「잘 받들어서 보살펴드린다」는 뜻입니다.

요셉이 자기 아버지 야곱을 이집트로 이민 초청하여 잘 받들어 보살펴드릴 때 썼던 단어입니다(창 45:11).

오늘 우리도 노 부모님들을 잘 받들어 보살펴드리시기를 바랍니다.

한 사회학자가 이런 정의를 합니다.

19세기는 여성을 발견한 세기요, 20세기는 어린이를 발견한 세기라면, 21세기는 노인을 발견하는 시대가 될 것이다.

최근 통계자료에 의하면 노인들아 자녀들로부터 바라는 것 중의 1순위는 현찰로 용돈을 받는 것이라고 합니다.

오늘 우리는 자식 된 도리로서 노 부모님을 최대한 봉양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엄밀한 의미에서 부모는 부양하는 것이 아니라, 봉양하는 것입니다. 부양이란 경제력이 없는 사람을 도와드리는 단어요, 봉양이란 잘 받들어서 보살펴드린다는 뜻입니다. 잘 모시는 정신이 중요합니다.

동시에 시어머니 나오미는 손자를 잘 양육해주는 아름다운 하모니를 보여줍니다(16절).

어린 손주가 할머니 가슴에 안겨 건강하게 성장하니 얼마나 행복합니까! 꼭 업어주세요!

디모데가 훌륭한 인물이 되었던 것은 할머니 로이스가 신앙으로 양육해주셨기 때문입니다(딤후 1:5).

사랑하는 교우 여러분,

우리 모든 가정마다 부모자식 간에, 특히 고부간에 상부상조의 아름다운 하모니가 있기를 원합니다.

3. 신앙이 일치하는 가정입니다

룻기의 중심인물들인 나오미, 룻, 보아스 세 사람은 모두가 신앙적으로 일치된 모습을 보여줍니다.

영적 주파수가 맞는 사람들입니다.

이 세 사람을 각각 뜯어놓으면 신분과 배경이 서로 다릅니다.

나오미는 자식 농사의 실패자요, 룻은 이방 여자요, 보아스는 전형적인 유대인입니다.

그러나 이들은 믿음 안에서 하나가 되었습니다.

사랑하는 교우 여러분,

교육 수준이 높다고 가정이 행복한 것이 아니요, 경제적으로 풍요하다고 안식을 누리는 가정이 되는 것 아닙니다. 예수 안에서 하나가 되어야 합니다.

영혼의 교감이 이루어져야 하고, 영성이 같아야 합니다.

침대가 고급이 아니더라도, 영적 교감이 이루어지는 곳에 행복이 감돕니다.

Karl Barth라는 신학자는 "부부관계로써 경험할 수 있는 가장 고상하고 숭고한 성취가 있다면 그것은 진실과 헌신으로 하나 되는 것이다" 라고 말합니다.

우리 지구촌교회는 모든 가정이 온전한 구원의 은총을 누리시기 바랍니다.

말씀을 믿으세요. 주님의 약속을 믿으세요. 지금 반쪽 신앙이라고 기죽지 마세요.

『주 예수를 믿어라. 그리하면 너와 네 집이 구원을 얻으리라』(사도행전 16:31).

사랑하는 교우 여러분,

우리가 성경을 통해서 찾아볼 수 있는 행복한 가정의 공통점이 있습니다.

『남자의 신앙이 탁월할수록 반드시 행복합니다』

아브라함이나 욥의 가정이 그 대표적입니다. 그들의 영성이 가정을 행복하게 만들었습니다.

그러나 롯의 가정은 남편 롯이 믿음이 없는 만큼 불행했습니다. 신앙적 영성지수에 따라 행복과 불행이 좌우됩니다.

한 때는 아브라함도 신앙심이 약해져서 이집트로 내려갔더니 가정불화가 생겼던 것입니다.

그러므로 남자들이 제사장적 축복권을 바로 행사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아버지들이 거룩한 손을 들어 기도하는 행복의 창조자가 되시기를 바랍니다(딤전 2:8).

세계적인 가정 사역자인 James Dobson은 행복한 가정의 조건 4가지를 이렇게 정의합니다.

▶ 첫째, 부부간의 원만한 사랑입니다.

▶ 둘째, 부부의 신앙과 헌신입니다.

▶셋째, 안정된 가정입니다.

▶그리고 넷째, 건실한 교회에의 참여입니다.

건실한 교회는 지구촌교회입니다. 그리고 여러 부서와 활동에 적극적으로 함께 참여하는 것입니다. 건강한 교회에서 함께 헌신하는 가정은 행복합니다.

사랑하는 교우 여러분,

오늘 룻기의 중심 주제처럼 가난에서 풍요로, 죽음에서 생명으로, 눈물이 변하여 기쁨으로, 고독한 삶에서 축제적인 인생으로, 마라의 쓴 물에서 엘림의 생수로 회복되는 행복한 가정이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기도초청) (찬송가 304장)

사랑하는 여러분,

가정은 행복의 보금자리입니다. 하나님이 돌보시는 은총을 구하십시다. 아무 때나 어디서 주 너를 지켜주시리.

주 안에서 화목하며 상부상조하는 가정, 이 시간 나의 부모님을 축복하십시다. 숙부 숙모도 축복하십시다.

이제는 부부가 함께 예수 믿고 신앙으로 일치하고, 함께 헌신하므로 모든 에덴 동산의 행복이 회복되는 축복이 있기를 원합니다.

출 처| 조봉희목사(지구촌 교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