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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공한 결혼, 실패한 자녀교육/(창25장19-25)

미션(cmc) 2011. 10. 24. 18:02

성공한 결혼, 실패한 자녀교육(창25장19-25)

성경본문| 창세기 25장 19절 ~ 34절

19 아브라함의 아들 이삭의 족보는 이러하니라 아브라함이 이삭을 낳았고

20 이삭은 사십 세에 리브가를 맞이하여 아내를 삼았으니 리브가는 밧단 아람의 아람 족속 중 브두엘의 딸이요 아람 족속 중 라반의 누이였더라

21 이삭이 그의 아내가 임신하지 못하므로 그를 위하여 여호와께 간구하매 여호와께서 그의 간구를 들으셨으므로 그의 아내 리브가가 임신하였더니

22 그 아들들이 그의 태 속에서 서로 싸우는지라 그가 이르되 이럴 경우에는 내가 어찌할꼬 하고 가서 여호와께 묻자온대

23 여호와께서 그에게 이르시되 두 국민이 네 태중에 있구나 두 민족이 네 복중에서부터 나누이리라 이 족속이 저 족속보다 강하겠고 큰 자가 어린 자를 섬기리라 하셨더라

24 그 해산 기한이 찬즉 태에 쌍둥이가 있었는데

25 먼저 나온 자는 붉고 전신이 털옷 같아서 이름을 에서라 하였고

26 후에 나온 아우는 손으로 에서의 발꿈치를 잡았으므로 그 이름을 야곱이라 하였으며 리브가가 그들을 낳을 때에 이삭이 육십 세였더라

27 그 아이들이 장성하매 에서는 익숙한 사냥꾼이었으므로 들사람이 되고 야곱은 조용한 사람이었으므로 장막에 거주하니

28 이삭은 에서가 사냥한 고기를 좋아하므로 그를 사랑하고 리브가는 야곱을 사랑하였더라

29 야곱이 죽을 쑤었더니 에서가 들에서 돌아와서 심히 피곤하여

30 야곱에게 이르되 내가 피곤하니 그 붉은 것을 내가 먹게 하라 한지라 그러므로 에서의 별명은 에돔이더라

31 야곱이 이르되 형의 장자의 명분을 오늘 내게 팔라

32 에서가 이르되 내가 죽게 되었으니 이 장자의 명분이 내게 무엇이 유익하리요

33 야곱이 이르되 오늘 내게 맹세하라 에서가 맹세하고 장자의 명분을 야곱에게 판지라

34 야곱이 떡과 팥죽을 에서에게 주매 에서가 먹으며 마시고 일어나 갔으니 에서가 장자의 명분을 가볍게 여김이었더라

야곱이 떡과 팥죽을 에서에게 주매 에서가 먹으며 마시고 일어나 갔으니 에서가 장자의 명분을 가볍게 여김이었더라

오늘 본문의 주인공은 이삭과 리브가가 낳은 두 아들 에서와 야곱입니다. 창세기 12장에서 마지막 장까지를 살펴보면, 이삭과 리브가의 자녀교육에 대해 의구심을 갖지 않을 수 없습니다. 이삭과 리브가는 도저히 만날 수 없는 사람들이었습니다. 아주 먼 거리에 살았습니다. 그런데도 거리와 신분을 초월해서 하나님의 비상한 섭리를 통하여 만나서 결혼을 합니다. 그런데 이런 사랑의 가정에서 태어난 에서와 야곱, 이 두 자녀의 양육이 별로 신통치 않게 되었습니다.

사랑과 결혼에는 성공했으나 자녀교육에는 실패했습니다. 에서와 야곱은 이삭과 리브가에게 있어서 20년만에 얻은 아들들이었습니다. 간절한 기도로 얻은 자녀들입니다. 이렇게 기도의 결실로 얻어진 아들들임에도 불구하고 자녀교육이 맘먹은 대로 쉽게 되어지지 않았습니다.

맏 아들 에서를 보십시오. 그는 분별력도 없고 인내심도 없는 사람입니다. 들판에서 돌아온 에서는 동생 야곱이 끓여놓은 팥죽에 구미가 당겼습니다. 너무나 배가 고픈 그는 장자의 명분을 헌신짝처럼 내버리고, 장자의 명분을 경홀히 여기면서 팥죽 한 그릇에 자기의 명예와 권한을 버렸습니다. 뿐만 아니라 인간으로서의 도덕률과 윤리성을 다 내어버린 사람입니다. 그는 자기 맘에 원하는 헷족속 브에리의 딸에게로 갔습니다. 그리고 그의 딸 유딧과 헷 족속 엘론의 딸 바스맛을 함께 아내로 취하였습니다. 아버지 어머니가 매우 섭섭해하고 근심하는 것을 보고 이스마엘의 딸이요 느바욧의 누이인 마할랏이라는 여자를 또 얻습니다.

에서는 도덕관도 없던 사람입니다. 뿐만 아니라 감정적인 사람이었습니다. 자기의 축복을 가로챘다는 한 가지 때문에 아버지가 돌아가시기만 하면 동생 야곱을 죽이겠다고 복수심에 불타던 사람이었습니다. 육체적인 욕구도 절제할 줄 모르고 성적인 욕망도 제어하지 못하고 감정적인 느낌도 절제할 줄 모르는 사람이었습니다.

한편 야곱은 어떤 사람입니까?

그는 자신의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았던 간교한 사람입니다. 장자의 명분을 빼앗기 위해서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눈 먼 아버지의 약점을 이용하여 별미를 제공하면서 아버지의 축복을 가로챘던 간교한 사람이었습니다. 자신이 그토록 증오하던 형 에서를 닮아서 비윤리적인 생활을 답습하여 네 명의 아내의 남편이 되는 육적인 존재로 전락을 합니다. 두 사람은 융화할 줄 몰랐습니다. 자신의 이해 득실을 따라 미워하고 증오하며 서로의 감정을 따라서 시기 질투하던 사람이었습니다.

이것은 결코 우연의 결과가 아니라 그들 부모의 양육 방법에 큰 영향력을 받았다는 것입니다. 우리가 자녀를 어떻게 양육하는가에 따라 비열한 인간도 되고 신령한 인간도 될 수 있고, 자녀다운 자녀가 될 수도 있고 자녀답지 못한 자녀로 전락할 수도 있다는 사실입니다.

하나님이 여러분에게 맡겨주신 우리의 모든 자녀는 내 자녀가 아니라 하나님의 자녀라는 사실을 알아야 합니다. 누가 귀한 귀중품을 맡기면 얼마나 관리를 잘해야 합니까. 이처럼 하나님이 우리에게 길러보라고 맡겨주신 자녀를 우리가 소홀히 해서 망친다면 하나님 앞에 우리는 잘못된 양육자가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자녀 양육의 청지기로 세우셨습니다.

이삭과 리브가의 자녀양육의 실패를 통하여 하나님의 자녀를 어떻게 양육해야 할 것인지에 대해서 두 가지로 결론지을 수 있습니다.

자녀양육의 시발점이 무엇일까요?

그것은 자녀들의 개성을 존중하는데서 출발하는 것입니다.

본문 말씀의 24절 이하를 보면 해산 기한이 다 되어 쌍둥이가 태어났습니다. “그 아이들이 장성하매 에서는 익숙한 사냥꾼이었으므로 들사람이 되고 야곱은 조용한 사람이었으므로 장막에 거주하니”(27절)라고 되어 있습니다.

에서와 야곱은 쌍둥이였습니다. 그러나 이들은 외모는 물론 성격도 정반대였습니다. 그래서 살아가는 삶의 방법도 전혀 달랐습니다. 여기서 우리는 에서와 야곱의 서로 다른 개성의 면모를 보게 되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삭과 리브가는 이 점을 간과했습니다. 자녀들의 개성이 얼마나 다릅니까. 개성이 다르기 때문에 생각하는 것, 말하는 것, 관심분야, 행동습관도 다른 것입니다. 그러므로 이삭과 리브가처럼 고정관념을 갖고서 편애하는 마음으로 자녀를 양육해서는 안 됩니다. 하나님이 이 세상의 모든 것을 만들 때에 개성을 따라 종류를 따라 지으셨습니다. 그러므로 개성을 존중할 때 인간관계도 제대로 되는 것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개성을 존중하는데서 출발하는 자녀의 양육은 무엇으로 양육됩니까?

사랑의 올바른 분배로 완성되는 것입니다.

이삭과 리브가의 사랑에 대해 본문은 이렇게 지적합니다. 28절을 보면 “이삭은 에서가 사냥한 고기를 좋아하므로 그를 사랑하고 리브가는 야곱을 사랑하였더라 ”고 했습니다.

자식을 사랑하기는 했는데 자식에 대해 편애가 지나쳤다는 말입니다. 아버지 이삭은 맏아들 에서를, 어머니 리브가는 야곱을 사랑했습니다. 그들의 사랑은 하나님께서 인간을 사랑하는 아가페적 사랑이 아니었습니다. 그들의 사랑은 치우치는 사랑이었습니다.

이삭은 맏 아들 에서를 왜 사랑했을까요?

▶ 첫째는 자기중심적인 사랑이었습니다.

자기에게 유익을 주기 때문이었습니다.

▶ 둘째는 물질 중심의 사랑이었습니다.

자기가 좋아하는 고기를 많이 사냥하므로 자기의 필요를 채워주기에 사랑했습니다.

그런 반면 그런 사랑을 받지 못하는 야곱이 얼마나 상처가 많겠습니까? 리브가는 그런 야곱을 불쌍히 여겨 모성본능으로 사랑하였습니다. 이런 감정적인 사랑으로 서로가 서로를 망치고 있는 것입니다. 이삭은 도저히 이해할 수 없었습니다.

23절 후반절을 보면 “큰 자가 어린 자를 섬기리라”고 했는데, 하나님께서는 리브가에게 어린 두 생명이 들어있을 때 야곱이 에서보다 훌륭한 존재라고 했습니다. 그러나 농경사회에서는 씩씩하고 듬직하고 활동적이고 사회성이 강한 에서가 듬직해 보이고 매일 어머니 곁에서 집안에만 있는 야곱은 정말 볼품없다고 생각했습니다. 이렇게 부모 입장에서 자식을 편애하기 시작하니까 이런 편애의 정신이 그 아이들에게까지 깊이 전달되었습니다.

자식의 마음 속에 하나님의 사랑이 들어가고 믿음이 들어가면 부모는 하나님께서 하나님을 대신해 세우신 대리자라고 생각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로 인해 공경하게 되는 것입니다. 사랑을 편애하는 방법으로 사용하면 안됩니다. 사랑을 골고루 베풀어 줄 수 있는 부모가 되려면 하나님의 마음을 가져야 합니다. 하나님의 마음을 가지려면 신앙이 바로 서야 합니다. 그래서 자녀는 믿음으로라야 이해가 됩니다. 하나님이 기뻐하는 자녀는 믿음 안에서 생기는 것을 믿으시길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출 처: 길자연 목사 (왕성교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