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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정의 관계를 정립합시다/(엡 5장31-6장9)

미션(cmc) 2011. 10. 24. 18:09

가정의 관계를 정립합시다(엡 5장31-6장9)

성경본문|에베소서 5장 31절 ~6장9절

31 그러나 너희도 각각 자기의 아내 사랑하기를 자신 같이 하고 아내도 자기 남편을 존경하라

6:1-9

1 자녀들아 주 안에서 너희 부모에게 순종하라 이것이 옳으니라

2 네 아버지와 어머니를 공경하라 이것은 약속이 있는 첫 계명이니

3 이로써 네가 잘되고 땅에서 장수하리라

4 또 아비들아 너희 자녀를 노엽게 하지 말고 오직 주의 교훈과 훈계로 양육하라

5 종들아 두려워하고 떨며 성실한 마음으로 육체의 상전에게 순종하기를 그리스도께 하듯 하라

6 눈가림만 하여 사람을 기쁘게 하는 자처럼 하지 말고 그리스도의 종들처럼 마음으로 하나님의 뜻을 행하고

7 기쁜 마음으로 섬기기를 주께 하듯 하고 사람들에게 하듯 하지 말라

8 이는 각 사람이 무슨 선을 행하든지 종이나 자유인이나 주께로부터 그대로 받을 줄을 앎이라

9 상전들아 너희도 그들에게 이와 같이 하고 위협을 그치라 이는 그들과 너희의 상전이 하늘에 계시고 그에게는 사람을 외모로 취하는 일이 없는 줄 너희가 앎이라

가정이라고 하는 것은 너와 나의 관계 속에서 출발을 합니다. 그래서 이 관계가 바로 되면 행복하고 이 관계가 제대로 되지 못하면 불행해 지는 겁니다. 이런 의미에서 가정은 천국이 될 수도 있고 지옥이 될 수 도 있습니다.

사실은 부부 사이는 너와 나. 남남이 아닙니까? 하나의 부부라는 관계를 맺게 되어 이 관계 속에서 출발하는 부부, 또 부모와 자식으로, 한 가정을 이루고 우리 직장에서는 윗사람과 아랫사람의 이런 관계가 있습니다.

그런데 정립이 라고 하는 건 무슨 뜻이 있냐하면 옛날 제가 시골에 살아서 보기도 했고 알기도 하였지만 마당에서 솥을 걸고 음식을 만들 때 둥그렇게 쇠로 띠를 두르고 그 다음에 다리 세 개 를 세우지 않아요? 그렇게 하고 그 위에다가 솥을 올려놓는 거예요. 그렇게 하고 마음대로 불을 때서 음식을 만듭니다. 그 세 발이 정확한 위치에 든든히 서 있을 때 그걸 정립이라고 합니다. 만약에 그 중에 다리 하나가 약하거나 없거나 하면 반드시 넘어지고 쏟아지게 됩니다. 그 세 다리가 대립하여 제자리에서 제 구실을 해 줄 때 이것을 정립이라고 합니다.

오늘은 우리가 해마다 5월 첫 주일은 가정 주일로 지키는 날입 니다. 본문의 가르침을 따라 상고해 보겠습니다.

첫째로 부부의 관계를 정립합시 다(5:31-33).

하나님께서 에덴 동산에 온갖 좋은 것들을 다 갖추어 놓았습니다. 그리고 남자 아담을 만들 었는데, 그렇게 좋은 동산에 남자 하나가 다니면서 외롭게 지내고 있습니다. 하나님이 보실 때 너무 좋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성경은 사람 이 독처하는 것이 좋지 못하니라고 하였습니다. 그래서 아담이 잠들었을 때 갈빗대를 뽑아 여자를 만들어 아담에게로 끌어왔습니다. 그런데 여기서 생각해 볼 수 있는 것은 혼자 사는 것은 안 좋다. 그리고는 여자를 아담 남자에게 이끌어 오시니 라는 말씀은 아담에게 가장 적합한 여자를 끌어다가 짝을 지어 주셨다는 말씀입니다. 이 말씀을 나에게 두고 생각해 보면 김창인이라고 하는 남자에게 김기옥이라고 하는 여자를 이끌어 오시니. 이 말입니다. 좀 더 구체적으로 얘기를 하자면 이 세상에 많은 여자가 있는데 하나님 이 여자 하나를 꼭 집어서 나에게 짝을 지어 주었다는 말씀입니다.

그러니까 이 말씀을 이렇게 해석하면 좋습니다. 김창인이라고 하는 사람에게 가장 적합한 여자는 바로 이 여자다 하여 짝을 지어 준 것입니다.

여러분에게는 이 여자가 이 세상 그 많은 여자 중에서 가장 나에 게 적합한 여자이기에 하나님이 골라 주셨다. 이렇게 생각하면 이 여자와 짝지어 진 것이 그렇게 복되고 기쁨이 되는 겁니다. 또 그 여자에게는 이 남자가 좋다 하고 짝을 지어 주셨다는 얘기입니다. 그리고 는 남자가 부모를 떠나 여자와 합하여 한 몸을 이룰지니라 라고 말씀하십니다. 그러니까 남자가 부모 떠나라는 겁니다. 그러니까 결혼하게 되면 부모는 내 보내라 그런 뜻이기도 합니다. 즉 간섭하지 말라는 말씀입니다. 지금까지는 결혼하기 전에 아들이 월급을 타오게 되면 전부 어 머니한테 갖다 바치지 않았어요? 결혼해서 제 마누라를 맞이하게 되면 이제는 관여하지말라. 그 말입니다. 이걸 자꾸 관여를 하다 보니까 시어머니와 며느리가 문제가 심각해 져서 고부간의 갈등이 일어나지 않습니까? 일단 내 아들이지만 장가를 보내면 남의 남편이 됩니다.

그런데 시어머니는 자기 남편이 벌어 온 것이나 쓸 일이지 남의 남편이 벌어 온 것을 왜 가로채서 쓰려 합니까? 아들에게는 엄연히 제 아내가 있는 데 말입니다. 제발 그렇게 하지 마십시오.

서양 사람들은 결혼 시켜 놓으면 절대 간섭 안하고 알아서 생활하도록 합니다. 한 집안에 살지라도 그렇게 하는 겁니다. 그러니까 고부간의 갈등이 없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 다음에 결혼하게 되면 부모를 떠나라는 말씀은 경제적으로 독립하고 자립해서 살라는 뜻입니다. 그리고 둘이 합하여 한 몸을 이룰지라고 하셨습니다. 이둘 사이에 시어머니가 끼어 들지 말아야 합니다. 이 사이에 올케가 끼어드는 것이 아닙니다. 부부 둘이 한 몸이 되라고 하셨는데 여러분 천년을 함께 살아보세요. 한 몸 됩니까? 내가 밥 먹었다고 아내가 배부르냐는 말입니다. 똑같이 함께 먹어야 되지 않습니까? 그런데 어떻게 한 몸이에요? 그러나 이것은 한 몸처럼 살아가라는 뜻입니다.

한 몸이라는 것은 목표가 하나 아닙니까? 삶의 방법이 하나가 아닙니까? 또 주머니가 하나 아닙니까? 믿음이 하나입니다. 빨리 하나가 될 때 두 부부는 행복해 진다는 뜻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이 가정의 제도. 즉, 부부로 짝을 이뤄 복 된 삶을 살도록 만들어 주셨다. 이것이 부부라는 얘기입니다. 이 부부에 대한 역사적인 배경은 이상과 같습니다.

본문으로 돌아가서 31절부 터 33절

"이러므로 사람이 부모를 떠나 그 아내와 합하여 그 둘이 한 육체가 될지니 이 비밀이 크도다 내 가 그리스도와 교회에 대하여 말하 노라 그러나 너희도 각각 자기의 아 내 사랑하기를 자기같이 하고 아내 도 그 남편을 경외하라"고 하였습니다.

그러면 부부가 하나 되는 비결이 무엇이냐 하는 겁니다.

그것은 하나님이 여자 하와를 만들어 남자 아담에게 이끌어 오시니 아담이 그 때 하는 말이 이는 내 살 중의 살이 요 내 뼈 중에 뼈로다. 즉 나와 불가분의 관계. 내 살이요 내 뼈라는 말입니다. 그러니까 아내 사랑하기를 내 몸처럼 아끼고 귀히 여기고 사랑해 주라. 그런 말이 아닙니까?

우리는 내 살을 얼마나 귀히 여깁니까? 조금 찢어져서 피만 나오면 야단입니다. 그 다음에는 뼈가 상할까 봐 얼마나 신경을 쓰고 귀히 여깁니까? 아내를 꼭 쥐면 터질세라 건드리면 깨질세라 그렇게 내 몸처럼 아끼고 사랑해 주는데 하나 되는 비결이 있다는 겁니다.

그리고 두 번째로는 아내는 남편을 경외하라고 하였는데 경외라고 하는 말은 신하가 임금에게 쓰는 말입니다. 또 우리 그리스도인들이 하나님께 쓰는 말입니다. 그런데 여기 보니까 아내가 남편을 그렇게 경외하라고 한 것은 무슨 뜻입니까? 그것은 남편 알기를 왕같이 알라. 남편 알기를 하늘 같이 알라는 말입니다. 그렇게 되면 하나가 될 수밖에 없습니다. 아내가 남편 알기를 발바닥처럼 여겨보십시오. 그렇게 되면 하나일 수도 없고 얼마나 불행합니까? 그래서 사랑과 경외가 하나 되는 비결입니다. 이것이 바로 부부관계를 바로 정립하는 겁니다. 여러분들 부부간의 관계가 사랑과 경외로 정립이 될 때 행복한 부부가 됨을 명심하셔서 여러분들의 부부 사이의 좋은 관계가 되어지기를 바랍니다.

두 번째로 부자의 관계를 정립합 시다(6:1 ∼ 4).

부부간에는 뒤틀리면 헤어진다고 하지만 부자 관계는 헤어질 수 없지않습니까? 그런데 부자 사이가 뒤틀려서 평생 원수 같이 지낸다면 이것은 좋지 않은 부부 보다 더 심각한 겁니다. 그래서 부모와 자식 간의 관계가 바로 되야 되는 겁니다. 그때 그 가문이 서게되는 겁니다. 그러면 본문으로 돌아가 서 1절부터 4절까지

"자녀들아 너희 부모를 주안에서 순종하라 이것이 옳으니라 네 아버지와 어머니를 공경하라 이것이 약속 있는 첫 계명이니 이는 네가 잘 되고 땅에서 장수 하리라 또 아비들아 너희 자녀를 노엽게 하지 말고 오직 주의 교양과 훈계로 양육하라."

자녀들아 부모를 공경하라. 돈 벌어 주고 먹여주고 입혀주고 할 때만 잘 공경하라는 것 이 아니라 오히려 나이 많아 돈 한 푼 못 벌고 오히려 자녀에게 신세를 질 때도 똑같이 공경하라는 말씀입니다. 만약에 여러분들 가운데 부모가 주책부리는 그런 분 없어요? 주책 부리면 내가 기저귀 차고 오줌 똥 못 가리고 밤새도록 울고 보채며 자기만 위해달라고 하던 그때처럼 부모가 주책을 부립디까? 내가 부모에게 주책 부린 것은 생각도 안하고 열 배나 더한 주책 부린 주제에 부모가 조금 그런다고 꼴 보기 싫다하고 모시기를 싫어하는 자식. 이런 사람에게 하나님이 주실 복이 무엇이 있겠습니까?

그런데 내가 이 땅 위에 태어났고 존재하는 자체가 부모의 은혜 아닙니까?

핏덩어리를 내다 버렸으면 어떻게 했을 겁니까? 나를 낳아 주셨고 또 이만큼 키워 주셨고, 가난해서 공부를 못 시켜 고학해서 내가 성공했을 망정, 여러분 그것이 전부 다는 아니지 않습니까? 고학해서 공부했다는 것보다 그 동안에 부모의 은혜가 얼마나 큽니까? 가난한 부모일 지라도 조금도 차별하지 말고 공경하라는 겁니다.

즉 부자인 부모에게만 아니라 가난한 부모에게도 공경하라는 겁니다.

건강한 부모가 아니라 병든 부모에 게도 공경하라는 겁니다.

거기에는 반드시 축복이 약속 됐다는 것인데 네가 잘 되고 땅에서 장수하리라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잘되리라 했으면 되는 것 아닙니까?

장수하면 그것도 축복이 아닙니까?

더 이상 복이 어디 있습니까?

복이란 복은 다 주시겠다고 약속하셨습니다. 그리고 자식은 부모를 공경함과 동시에 부모는 주의 교양과 훈계로 양육하라고 본문은 말합니다. 한마디로 믿음을 잘 키우라는 말씀입니다. 여러분 믿지 않는 부모는 학교 교육에서 일등 하면 부모로서 할 일 다했다고 할지 모르지만 우리 믿는 부모는 그게 아닙니다. 학교에서 일등 하면 더 좋습니다. 회사에서 일등 하면 더 좋습니다. 그러나 그 것보다도 내 아들 딸 들을 믿음으로 키웠다는 것이 더 큰 성공이요, 기쁨입니다.

세상에서 출세해도 좋고 못 해도 좋습니다. 믿음으로 키웠다면 믿음의 부모는 정말 최선을 다 한 부모입니다. 그러기에 우리는 자녀들을 꼭 믿음으로 키워야 됩니다. 그래서 여러분 공경과 믿음으로 키우는 양육. 이 두 가지가 바로 될 때 부자 관계 는 바로 되고 정립된다는 말입니다. 여기에 그 가정에 행복이 있고 그 가문에 복이 있다는 말입니다. 여러 분들도 부모와 자녀의 관계에 좋은 관계를 정립해서 약속된 축복을 받는 여러분들이 되기를 바랍니다.

세 번째로 상하 관계를 정립합시다.(5∼9) 5절부터 9절까지

“종들아 두려워하고 떨며 성실한 마음으로 육체의 상전에게 순종하기를 그리스도께 하듯 하라

눈가림만 하여 사람을 기쁘게 하는 자처럼 하지 말고 그리스도의 종들처럼 마음으로 하나님의 뜻을 행하고

기쁜 마음으로 섬기기를 주께 하듯 하고 사람들에게 하듯 하지 말라

이는 각 사람이 무슨 선을 행하든지 종이나 자유인이나 주께로부터 그대로 받을 줄을 앎이라

상전들아 너희도 그들에게 이와 같이 하고 위협을 그치라 이는 그들과 너희의 상전이 하늘에 계시고 그에게는 사람을 외모로 취하는 일이 없는 줄 너희가 앎이라

옛날 바울 사도가 에베소 교회에 편지 할 때에는 종의 제도가 있었습니다. 그래서 종이 있었고 상전이 있었습니다. 즉 주종 관계입니다. 다시 말하면 계급이라는 것이 있었습니다. 옛날에는 이런 계급 제도가 엄격했는데 계급이라는 것은 사람 위에 사람이 있고 사람 아래 사람이 있다는 말입니다.

그러나 오늘날에는 민주국가에서는 계급이라는 것은 있을 수가 없습니다. 계급 이라는 것은 없지만 계층이라는 것은 있습니다. 그래서 계층이라는 것은 일을 할 때 위에서 일하는 사람 이 있고 아래서 일하는 사람이 있다 는 것입니다. 그것은 일의 관계일 뿐이지 사람 자체가 위 아래라는 말은 아닙니다.

예를 들면 여러분들 이 직장에 나가서 일 할 때 처음에 평사원으로 입사해서 일을 할 때 계장도 있고 과장도 있고 부장도 있고 이사도 있고 사장도 있고 그러지 않습니다. 모두 평사원이라면 일을 못 합니다. 그래서 모든 일을 위해서 위가 있고 아래가 있습니다. 그래야 제대로 일이 돌아가고 일을 해 낼 수 있기 때문입니다.

"이것이 아니라"

하면 일을 못 하는 겁니다. 이 까닭에 이것은 사람 자체가

"위"라 는 말은 아닙니다. 일에 위아래가 있을 뿐이다라는 말입니다. 옛날의 종의 제도가 있어서 주종관계의 조 화를 본문에서 언급하고 있는데 오늘날 우리는 계층간의 조화를 말한 다고 보시면 됩니다.

본문에 보면 종들은 상전 섬기기를 그리스도께 하듯 하라고 하였습니다. 종들은 주인을 꼴 보기 싫은 존재로 여기지 말고 예수님이라 생각하라는 뜻입니다.

내가 어떻게 하겠는가? 를 생각해서 섬기라는 겁니다. 그 다음에 상전들아 너희도 이와 같이 하라는 말씀은 만약에 내가 예수님의 입장 이라면 즉, 예수님이 내 입장이라면 종들에게 어떻게 했을까? 그렇게 생각하고 종에게 하라는 겁니다.

그렇게 하면 그 행한대로 하늘의 아버지 께 받는다는 말씀도 첨부하고 있습니다. 그러니까 이 말씀은 한 마디로 요약하면 종이나 상전이나 예수님을 표준 하라는 뜻입니다.

즉 예수께 하듯 하라는 말입니다. 그렇게 하면 얼마나 상하 관계가 좋겠습니까?

예를 들어 직장에 나가 아랫사람에게 예수님이라면 내가 어떻게 할까? 그 결과는 뻔하지 않습니까? 또 아랫사람이라면 즉 예수님이 그 위치에 계시다면 내가 어떻게 할까? 를 생각하고 처신할 때 상하 관계가 잘 됩니다. 그렇게 하면 그 회사는 정말 복 된 회사요, 가정에서도 윗 어른이 있고 아랫사람이 서로 그리스도께 대하듯 하면 됩니다.

다시 말하면 사람 자체가 위, 아래는 아니지만 그리스도를 대하는 마음으로 윗사람을 대하고 아랫사람을 대하면 얼마나 상하 관계가 아름다우냐는 말입니다. 이런 가정에 행복이 있고, 이런 사회가 복되고 잘 되는 것입니다.

여러분 직장에서나 교회에서나 가정에서나 이런 상하 관계를 바로 정립하여 복된 가정과 잘되는 집안 이 되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출 처| 김창인목사(광성교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