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 교/이규왕목사

주의 복을 받은 자들/(시 37:22-28)

미션(cmc) 2014. 7. 29. 10:27
  • 주의 복을 받은 자들
    (시 37:22-28)

    (시 37:22) “주의 복을 받은 자들은 땅을 차지하고 주의 저주를 받은 자들은 끊어지리로다” (시 37:23) “여호와께서 사람의 걸음을 정하시고 그의 길을 기뻐하시나니”(시 37:24) “그는 넘어지나 아주 엎드러지지 아니함은 여호와께서 그의 손으로 붙드심이로다” (시 37:25) “내가 어려서부터 늙기까지 의인이 버림을 당하거나 그의 자손이 걸식함을 보지 못하였도다” (시 37:26) “그는 종일토록 은혜를 베풀고 꾸어 주니 그의 자손이 복을 받는도다”(시 37:27) “악에서 떠나 선을 행하라 그리하면 영원히 살리니”(시 37:28) “여호와께서 정의를 사랑하시고 그의 성도를 버리지 아니하심이로다 그들은 영원히 보호를 받으나 악인의 자손은 끊어지리로다”


     사람들이 가장 듣기 좋아하는 말은 ‘복 받은 사람’이라는 말이라면, 정반대로 사람들이 제일 듣기 싫어하는 말은 ‘저주를 받은 사람’이라는 말입니다.
     오늘 성경 본문 22절에 ‘주의 복을 받는 자들’이라는 말과 ‘주의 저주를 받는 자들’이라는 말이 동시에 있습니다.
    (시 37:22) “주의 복을 받은 자들은 땅을 차지하고 주의 저주를 받은 자들은 끊어지리로다”
     여기서 ‘땅을 차지하고’ 라는 말(vr'y: 야라쉬)은 돈을 주고 사고파는 것이 아니라 누구도 빼앗을 수 없는 ‘상속권’을 뜻하는 말입니다.
     또한  '끊어지리로다‘ 라는 말(tr'K;, 카라트)은 땅을 빼앗기는 정도가 아니라 언약에서 제외됨으로 영영 ’땅을 기업으로 받을 수 없는 상태‘를 뜻하는 말입니다.
     그렇다면 언약에서 끊어지는 ‘주의 저주’를 받은 사람은 어떤 사람일까요?  물론 악을 행하며 불평하고 불의하고 시기를 일삼아 하는 사람을 가리킵니다.  ‘주의 복’을 받은 사람은 여호와를 의뢰하고 선을 행하는 사람을 킵니다.
    (시 37:1) “[다윗의 시] 악을 행하는 자들 때문에 불평하지 말며 불의를 행하는 자들을 시기하지 말지어다” (시 37:3) “여호와를 의뢰하고 선을 행하라 땅에 머무는 동안 그의 성실을 먹을 거리로 삼을지어다”
     과연 오늘 성경 말씀과 같이 세상은 ‘주의 복을 받은 자’는 땅을 차지하고 ‘주의 저주를 받은 자’는 땅에서 끊어지고 있습니까? 아마도 그렇다고 말 못할 것입니다.

     1. 악인이 난무하는 세상
     정말  하나님이 세상을 통치하시고 하나님의 공의가 살아 있다면 의로운 사람이 복을 받고 행악 자는 징벌을 받아야 하는데 때로 현실 세계는 정반대일 때가 많을 것입니다.
     다시 말해서 악행하는 자들이 번성하고 무엇을 하든지 하는 일이 잘되는 반면 하나님을 경외하는 사람은 도리어 힘들게 세상을 살아가는 모습을 자주 경험할 것입니다.
     그러한 모순은 오늘 우리가 사는 시대만이 아니라 성경 전반에 나타나고 있음을 볼 수 있습니다. 그 대표적인 예를 찾는다면 하박국 시대일 것입니다.
    (합 1:2-4) “여호와여, 내가 언제까지 부르짖어야 주께서 들어주시겠습니까? 내가 `횡포!' 라고 외쳐도 주께서 구해 주시지 않으십니다. 어째서 나에게 불의를 보게 하시며 악을 목격하게 하십니까? 파괴와 폭력이 내 앞에 있고 다툼과 분쟁이 곳곳에 있습니다.그래서 법이 무시되고 정의가 실현되지 못하고 있습니다. 악인이 의로운 자를 둘러싸고 있으므로 부정이 판을 치게 되었습니다.”
     물론 이 성경 말씀은 지금으로부터 2650여년 전의 말씀이지만 지금 우리들이 살고 있는 이 시대와 조금도 다르지 않다는 생각이 들지 않습니까?
     그래서 하박국 선지자는 그와 같은 불공평과 정의 부재의 시대를 보면서 하나님이 왜 그러한 시대를 용납하고 계시는지 잘 이해가 되지 않아서 고민하고 있었습니다.
     하박국 시대만 아니라 우리가 지난 주일에 살펴보았던 시편 36편에서도 시편 기자가 살던 시대 역시 크게 다르지 않았음을 볼 수 있었습니다.
    (시 36:1-4) “악인의 마음 깊은 곳에는 반역의 충동만 있어, 그의 눈에는 하나님을 두려워하는 기색이 조금도 없습니다. 그의 눈빛은 지나치게 의기 양양하고, 제 잘못을 찾아내 버릴 생각은 전혀 없습니다. 그의 입에서 나오는 말이란 사기와 속임수뿐이니, 슬기를 짜내어서 좋은 일을 하기는 이미 틀렸습니다. 잠자리에 들어서도 남 속일 궁리나 하고, 범죄의 길을 고집하며, 한사코 악을 버리려고 하지 않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오늘 성경에 보면 시편 기자는 하박국 선지자와 달리 설령 그러한 모순이 눈에 보일지라도 그것을 보고 불평하거나 시기하지 말아야 한다고 가르치고 있습니다.
    (시 37:1) “[다윗의 시] 악을 행하는 자들 때문에 불평하지 말며 불의를 행하는 자들을 시기하지 말지어다”
     여기서 ‘불평, 시기’라는 말(hr;j, 하라)은 둘 다 같은 단어로 ‘성내다, 노하다. 후끈 달아오르다’라는 뜻의 미완료입니다.
    아마도 일말의 양심이나 정의감이 있는 사람은 악한 자들이 행하는 불의한 행동을 보고 분노하지 않을 사람은 아무도 없을 것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성경은 그것을 보고 성내지 말아야 할 뿐 아니라 세상이 그럴수록 오히려 적극적으로 여호와를 의뢰하고, 선을 행하고, 성실을 먹을거리로 삼으라고 가르치고 있습니다. 
    (시 37:3) “여호와를 의뢰하고 선을 행하라 땅에 머무는 동안 그의 성실을 먹을 거리로 삼을지어다”
     물론 쉽게 납득이 가지 않는 말씀일 것입니다. 악인이 판을 치는 세상에서 만일 그렇게 살아갈 때 사람들이 어떻게 평가할까요? 마치 바보처럼 보이지 않겠습니까?
     그럼에도 불구하고 오늘 성경 말씀은 왜 바보와 같은 삶을 살라고 하시는 이유는 때문일까요?
    (시 37:7) “여호와 앞에 잠잠하고 참고 기다리라 자기 길이 형통하며 악한 꾀를 이루는 자 때문에 불평하지 말지어다”
     그 이유는 악인에 대해서 분노하며 불평하는 것이 결과적으로 악을 제거하는 것이 아니라 결과적으로 더 악하게 만드는 결과를 가져오기 때문이라는 것입니다.
        (시 37:8) “분을 그치고 노를 버리며 불평하지 말라 오히려 악을 만들 뿐이라”
     그 좋은 증거가 악인에 대해서 억울한 일을 당해 법에 호소하였으나 법이 근본적인 해결을 해주지 않고 오히려 악인을 두둔하는 것을 보고 의분을 느낀 사람이 자신의 힘으로 복수를 하겠다고 마음을 먹고 악인들을 무자비하게 복수를 하는 영화이야기와 같은 뜻입니다.
     그렇다고 해서  ‘여호와 앞에 잠잠하고 참고 기다리는 것’은 악을 관용하거나 악과 타협을 하는 것이 아니라 가장 공평하게 재판하시고 죄에 대해서 가장 엄중하게 벌하시는 여호와 하나님의 판단을 받게 하는 것이라는 뜻입니다.
     왜냐하면 세상에서 하나님은 가장 공의로우신 재판장이실 뿐 아니라 뇌물을 받고 악인에 대한 판결을 번복하시는 분이 아니라 악인에 대해서 매일 분노하시는 정의로우신 하나님이시기 때문입니다.
        (시 7:11) “하나님은 의로우신 재판장이심이여 매일 분노하시는 하나님이시로     다”
     여기서 ‘분노하시는’이라는 말(!['z:, 자암)은 ‘화가 나 있는 상태’를 뜻하는 하나님께서 세상에 난무하는 악에 대해서 지금 굉장히 화가 나 있는 상태라는 것입니다.
     만일 그 하나님께서 나의 죄악에 대해서 그렇게 분노하고 계시는 것처럼 나의 숨겨진 죄악에 대해서도 분노하신다면 과연 나는 하나님앞에 설 수 있겠는가 하는 것입니다.
     악인에 대한 하나님의 분노하심은 오늘 나 역시 하나님의 심판의 대상이라는 것을 보여주는 거울이 될 것입니다.

    2. 저주를 받은 사람들
     우리라는 존재는 많은 한계를 가지고 있는 존재로 아무리 악에 대해서 미워하고 의분을 품고 있다고 할지라도 내 속에도 허물과 약점을 가지고 있을 뿐 아니라 아무리 악을 미워하고 증오한다고 할지라도 그것을 내 손으로 직접 심판하고 제거할 수 있는 권한이나 능력을 가지고 있지 않은 사람들입니다.
     그러나 항상 정의로우시고 악에 대해서 분노하시는 하나님은 악에 대한 철저한 심판에 대한 계획을 미리 다 수립해 놓으셨기 때문에 악한 자들이 그 하나님의 심판을 피해갈 수 없다는 것입니다.

     1) 악인을 언약에서 끊어버리신다.
    (시 37:9) “진실로 악을 행하는 자들은 끊어질 것이나 여호와를 소망하는 자들은 땅을 차지하리로다”
    여기서 ‘끊어질 것이나’ 라는 말(tr'K;, 카라트)은 ‘잘라버린다’ 라는 뜻으로 하나님이 약속하신 축복의 언약에서 배재되는 것을 뜻하는 말입니다.
     에서가 장자권을 팥죽 한 그릇에 팔아넘긴 후 장자의 축복에서 배제된 후 일평생 후회하며 고통한 것을 생각하면 언약에서 배제된 다는 것이 얼마나 무서운 형벌인가를 짐작할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현재 악인의 번영을 볼지라도 그것을 보고 분노하거나 시기할 필요가 없다는 것입니다.

    2) 악인의 번성은 한시적이다.
    (시 37:10) “잠시 후에는 악인이 없어지리니 네가 그 곳을 자세히 살필지라도 없으리로다”
     여기서 ‘잠시’라는 말(f['m, 메아트)은 '아주 조금, 소수, 소량‘이라는 뜻으로 백년도 채 살지 못하는 인간들 생각에는 악한 자들이 땅위에 사는 동안 수년 혹은 수십년 동안 번성하며 사는 것처럼 보이지만 천년이 하루 같으신 하나님의 시계로는 마치 초침이 한 번 움직이는 것처럼 잠시 잠깐 후에는 악인이 자취도 없이 사라지게 하시겠다는 말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악인들이 일시적인 번성 때문에 오만해지고 교만해져서 의인들을 죽일 계획만 하고 의인을 향해 칼을 빼고, 활을 당기며, 정직한 자를 죽이려고 하지만 오히려 자멸을 재촉하는 것이고 자기 자신을 향해 칼을 빼는 자살 행위가 됨을 보시고 비웃으시겠다는 것입니다.
    (시 37:13) “그러나 주께서 그를 비웃으시리니 그의 날이 다가옴을 보심이로다”

    3) 악인은 반드시 멸망을 당한다.
     (시 37:20) “악인들은 멸망하고 여호와의 원수들은 어린 양의 기름 같이 타서 연기가 되어 없어지리로다”
     여기서 ‘멸망하고’라는 말(db'a;, 아바드)은 ‘사라지다, 소멸하다’는 뜻의 미완료로 세상에 흔적조차 없게 하시겠다는 뜻입니다. 그것을 가리켜서 오늘 성경은 잠시 번성하였다가 일 년도 채우지 못하고  없어지는 잡초로 비유하여 말씀하였습니다.
    (시 37:2) “그들은 풀과 같이 속히 베임을 당할 것이며 푸른 채소 같이 쇠잔할 것임이로다”
     물론 때로는 악인이 잡초가 아니라 나무처럼 번성하기도 하는데 그것은 의인을 시험하여 낙심하게 하기 위해서입니다. 그러나 한 여름에 온 산을 덮었던 푸른 나무 잎들이 가을이 와서 낙엽이 되어 다 떨어지고 나면 앙상한 가지만 죽은 듯이 남아 있는 것처럼 악인은 마지막에 아무것도 남지 않게 하시겠다는 것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악인의 종말에 대해서 미쳐 알지 못하는 사람은 일시적인 악인의 번성을 보고 부러워하거나 하나님의 정의에 대해서 회의를 느끼고 분노하는 사람도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오늘 성경은 악인이 일시적으로 잘되는 것처럼 보이는 것은 결코 축복이 아니라 마치 고기를 낚기 위한 미끼처럼 악인에게 더 악을 범하여 심판의 장작불의 온도를 높이는 저주의 삶임을 가르치고 있는 것입니다.
    (시 37:22) “주의 복을 받은 자들은 땅을 차지하고 주의 저주를 받은 자들은 끊어지리로다”
     그러므로 우리는 하나님 앞에서 옳지 않은 방법으로 일시적으로 번영하는 사람들을 보고 낙심하거나 분노하거나 부러워하지 말고 오히려 경계하고 나도 그렇게 되지 않도록 더욱 조심하는 삶을 살아야 하겠습니다.
     왜냐하면 악하게 살면 하나님의 저주를 받기 때문이 아니라 악하게 살고 있는 것 자체가 이미 저주를 받은 삶이기 때문입니다. 마치 믿지 아니하면 결국 심판을 받게 되는 것이 아니라 믿지 않는 것이 이미 심판을 받은 삶인 것과 같은 뜻입니다.

     3. 주의 복을 받은 사람들
     하나님이 만드신 세상에는 빛과 어두움, 밤과 낮, 선과 악, 정의와 불의, 구원과 심판, 영생과 멸망과 같이 두 가지 가운데 주의 저주를 받은 사람의 삶은 어두움과 악과 불의한 삶이며, 그 마지막은 멸망과 심판입니다.
     그렇다면 그와 같이 저주 받은 사람과 정반대로 주의 축복을 받은 사람들은 어떤 삶을 사는 사람일까요?
     하나님의 축복을 받았기 때문에 세상에서 아무런 걱정과 근심 없이 만사가 형통하며 인생살이가 날마다 즐겁기만 한 것이 아니라 정반대로 악인에 비해 가난하거나 비천하거나 고통스러울 수도 있음에도 불구하고, 여호와께 복을 받은 사람의 삶은 여호와께 저주를 받은 사람과는 차별화된 삶을 사는 사람입니다.  그러므로 여호와 하나님께 복을 받은 사람은,

     1) 여호와 하나님을 끝까지 신뢰합니다.
    (시 37:3) “여호와를 의뢰하고 선을 행하라 땅에 머무는 동안 그의 성실을 먹을 거리로 삼을지어다”,
     여호와 하나님은 우상처럼 눈에 보이는 신이 아니기 때문에 과연 누가 여호와 하나님을 의뢰하며 사는 사람인지 쉽게 구별할 수 없을 것입니다.
     그러나 과연 누가 여호와 하나님을 신뢰하며 사는 사람인지 다른 사람을 눈으로 보고서는 알 수 없지만 자기 자신의 내면을 돌이켜 보면 금방 알 수 있습니다.
     그것은 평소에 만사가 잘되는 때는 잘 모릅니다. 그러나 막상 어려운 환난이 몰아닥칠지라도 흔들림이 없다면 그 사람이 바로 여호와 하나님을 신뢰하며 사는 사람입니다.
      (시 37:5) “네 길을 여호와께 맡기라 그를 의지하면 그가 이루시고”
     여기서 길은 인생의 여정을 뜻하는 것입니다. 인간이 가지고 있는 절대적인 한계는 내일을 알지 못한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나의 날은 지나간 어제도 아니고 아직 오지 않은 내일도 아니라 유일하게 오늘만이 내 날인 것입니다.
     그러므로 제일 많이 걱정해야 할 것은 아직 오지 않은 내일에 대한 염려가 아니라 당면한 오늘을 하나님 앞에서 바르게 선하게 살아가고자 최선을 다해야 합니다.
     그리고 아직 오지 않은 내일은 하나님의 통치 영역이기 때문에 하나님께 맡기고 염려하지 않는 사람이 진심으로 여호와 하나님을 신뢰하는 사람이라는 증거입니다.
        (잠 16:3) “너의 행사를 여호와께 맡기라 그리하면 네가 경영하는 것이 이루어      지리라”(시 55:22) “네 짐을 여호와께 맡기라 그가 너를 붙드시고 의인의 요동      함을 영원히 허락하지 아니하시리로다”(벧전 5:7) “너희 염려를 다 주께 맡기      라 이는 그가 너희를 돌보심이라”

     2) 여호와 하나님을 기뻐하는 사람입니다.
    (시 37:4) “또 여호와를 기뻐하라 그가 네 마음의 소원을 네게 이루어 주시리로다”
     여기서 잘 구분해야 할 것은 여호와 하나님을 기뻐하는 것인지 아니면 여호와 하나님이 주시는 축복을 기뻐하는 것인지 둘 중에 어느 것을 기뻐하느냐? 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평소에 부부의 관계가 좋을 때는 아무런 선물이 필요 없습니다. 그저 함께 있는 그 자체만으로도 행복을 느낍니다. 그러나 부부관계가 악화되었을 때는 아무리 값비싼 선물도 냉랭해진 마음을 녹이거나 닫힌 마음을 열지 못하는 것입니다.
     만사가 형통할 때 기뻐하지 않을 사람은 아무도 없을 것입니다. 그러나 만사가 불통인 것처럼 보이는데도 여호와 하나님께 그 모든 것을 전적으로 위탁하고 사는 사람의 마음속에는 기쁨이 있습니다.
      하나님께 무엇을 받았기 때문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나 같은 것을 사랑하신다는 것만으로도 하나님이 좋고 하나님이 기쁘게 되는 것입니다.
     다시 말해서 여호와 하나님을 의뢰하는 사람의 기쁨은 여호와 하나님이 주시는 어떤 축복이 기쁨의 대상이 아니라 여호와 하나님만으로도 기뻐하게 됩니다.

     3) 여호와 앞에서 잠잠히 참고 기다리는 사람입니다.
    (시 37:7) “여호와 앞에 잠잠하고 참고 기다리라 자기 길이 형통하며 악한 꾀를 이루는 자 때문에 불평하지 말지어다”
      우리의 하루는 24시간이지만 하나님의 하루는 천년이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초침이 돌아가는 24시간의 시계를 가지고 하나님이 하시는 일을 보면 하나님이 악인을 형통하게 하시고 의인을 고난 중에 내 버려두시는 것 같이 생각되지만 천년이 하루 같은 하나님의 시계로 지난날 역사를 돌이켜 보게 되면 하나님이 반드시 악인을 용납하지 않으신 것처럼 지금도 악인을 용납하지 않으시며 다만 집행하시는 시간이 사람마다 각기 다를 뿐이라는 것을 깨닫게 될 것입니다.
     마치 땅에 씨를 심으면 싹이 나는 시간이 각기 다른 것처럼 정의로우신 하나님께서 어떤 악인은 즉시, 어떤 악인은 몇 달, 어떤 악인은 몇 년, 어떤 악인은 몇 십년, 심지어 어떤 악인은 사후에 심판을 받게 하시기 때문에 조급한 인간의 안목으로 볼 때 낙심하게 되는 것입니다.
     세상에 모든 시계는 하루 24시간만 가르치고 있습니다. 모든 시간의 기준은 초침입니다. 똑딱하는 일초가 매우 빠른 것 같지만 올림픽 경기장에서 육상선수나 수영 선수의 기록은 초 단위가 아니라 초를 백으로 나누어서 계산을 합니다.
     사람의 눈으로 볼 때는 결승점에 똑같이 들어 온 것 같으나 비디오 판독을 해보면 반드시 100분의 몇 초라도 먼저 들어 온 사람이 있습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을 신뢰하고 매사를 믿음으로 성실하게 사는 것은 설령 일시적으로 불이익을 당하고 악한 자에게 손해를 보는 것처럼 생각되어도 여호와 하나님은 정의로우신 분이며 악에 대해서 분노하시는 분임을 확신하기 때문에 불의한 세상에서 억울한 일을 당해도 바보처럼 묵묵히 하나님께 그 악한 자를 맡기고 잠잠히 기다리게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성경은 하나님께 복을 받은 우리에게 '(약 1:4) ‘인내를 온전히 이루라 이는 너희로 온전하고 구비하여 조금도 부족함이 없게 하려 함이라, (약 5:7) '그러므로 형제들아 주의 강림하시기까지 길이 참으라'고 권면하고 있는 것입니다.

      결   론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도 불의가 판을 치는 세상에서 악인이 형통하고 번영하며, 반대로 의인이 어려움과 고난을 당하는 현실은 우리의 마음이 다급해지고 불평이 생겨날 수 있습니다.
     그러나 나의 사고 방식대로 악의 문제를 해결하려고 한다면 결국 아무 것도 이루지 못할 뿐만 아니라 어느 사이에 나도 악해져 가고 있음을 발견하게 될 것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축복을 받은 성도들은 하나님 앞에서 조급함을 버리고 잠잠히 참아 기다려야 합니다.
     그것은 내가 힘이 없어서가 아니라 설령 힘이 있어도 하나님은 나보다 더 정의로우시며 무슨 일이든지 완벽하게 하심을 믿고 기다려야 합니다. 그 하나님이 기필코 나를 승리하게 하실 것입니다.
    (애 3:25,26) 기다리는 자들에게나 구하는 영혼들에게 여호와는 선하시도다 사람이 여호와의 구원을 바라고 잠잠히 기다림이 좋도다
     설령 악한 자들이 일시적으로 잘되는 것을 볼지라도 유혹이나 시험을 받지 말아야 합니다. 그 이유는 악한 사람이 잘되는 것은 그 자체가 저주 받은 삶이기 때문입니다.
     만일 그 악인이 고난을 겪었다면 자신의 잘못을 돌아보았을 터인데 만사가 형통하는 것처럼 보이기 때문에 자신의 잘못을 깨닫지 못한 채 악을 더하는 것은 마치 심판의 장작더미를 더 높이 쌓고 심판의 가스 온도를 점점 더 높이는 것과 다름이 없는 삶인 것입니다.
    (시 37:22) “주의 복을 받은 자들은 땅을 차지하고 주의 저주를 받은 자들은 끊어지리로다”
     물론 그 때문에 불이익이나 고난을 당할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그 모든 것을 하나님께 맡기고 하나님을 신뢰하고 흔들림 없이 믿음으로 말씀에 순종하며 최선을 다하는 삶을 사는 것만큼 더 큰 축복과 더 큰 유익이 없음을 믿어야 합니다.
    설령 그 때문에 어려움을 당하고 돌부리에 걸려 넘어지거나 만사가 꼬여 돌아가는 것처럼 보일지라도 하나님은 결코 나를 버리시지 않고 붙들고 계시기 때문에 반드시 칠전팔기하게 될 것을 믿고 도전해야 합니다.
     (시 37:24) “그는 넘어지나 아주 엎드러지지 아니함은 여호와께서 그의 손으로 붙드심이로다”
     왜냐하면 그것은 나 한 사람만 복을 받는 삶이 아니라 내가 책임 질 수 없는 나의 후손들까지 하나님의 축복을 미리 보험을 들어 놓는 것과 다름이 없기 때문입니다.
    (시 37:25) “내가 어려서부터 늙기까지 의인이 버림을 당하거나 그의 자손이 걸식함을 보지 못하였도다” (시 37:26) “그는 종일토록 은혜를 베풀고 꾸어 주니 그의 자손이 복을 받는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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