왕께 모든 영광을
(시 45:6-11)
(시 45:6) “하나님이여 주의 보좌는 영원하며 주의 나라의 규는 공평한 규이니이다” (시 45:7) “왕은 정의를 사랑하고 악을 미워하시니 그러므로 하나님 곧 왕의 하나님이 즐거움의 기름을 왕에게 부어 왕의 동료보다 뛰어나게 하셨나이다” (시 45:8) “왕의 모든 옷은 몰약과 침향과 육계의 향기가 있으며 상아궁에서 나오는 현악은 왕을 즐겁게 하도다” (시 45:9) “왕이 가까이 하는 여인들 중에는 왕들의 딸이 있으며 왕후는 오빌의 금으로 꾸미고 왕의 오른쪽에 서도다” (시 45:10) “딸이여 듣고 보고 귀를 기울일지어다 네 백성과 네 아버지의 집을 잊어버릴지어다” (시 45:11) “그리하면 왕이 네 아름다움을 사모하실지라 그는 네 주인이시니 너는 그를 경배할지어다”
2014년 새해를 마지 하였을 때 누군가가 새해에 소망이 무엇이냐? 묻는 것처럼 한 해가 저물어 마지막 주일을 맞이한 우리들에게 한 해를 보내는 소감이 무엇이냐?고 묻는 다면 여러분은 무엇이라고 대답을 할 준비가 되어 있습니까?
물론 그 대답은 사람마다 제 각기 다르겠지만 크게 두 가지로 나눌 수 있을 것입니다.
1) 2014년이 비교적 순탄했던 사람은 아주 짤막하게 “모든 것이 다 감사할 뿐이지요” 라고 말할 것이고,
2) 2014년이 별로 순탄하지 못하고 악재가 거듭되었던 사람에게는 “너무 지겹습니다. 빨리 지나가기만 고대할 뿐입니다” 라고 말 할 것입니다.
만일 여러분에게 묻는다면 둘 중에 어느 것이라고 말하겠습니까? 전자입니까? 아니면 후자입니까?
그러나 분명한 사실은 어느 누구를 막론하고 2014년 일 년 내내 좋은 일만 있었던 사람도, 일 년 내내 나쁜 일만 있었던 사람도 없을 것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어떤 사람은 모든 것이 감사하다고 말하고 어떤 사람은 지겹다고 말하는 까닭은 무엇일까요? 그것은 그 사람이 좋은 일과 안 좋안 중에서 어느 것에만 집중하는가? 에 따라 답이 정반대가 되는 것입니다.
예 화
오래 전 국민일보에 실린 이야기입니다. 독일에서 있었던 일로 한 중년의 성도가 혀에 생긴 암 때문에 고생을 하다가 수술을 받게 되었습니다. 혀를 절단하는 수술을 받기 위해 수술대 위에 누워 있는데, 마취 주사를 손에 든 의사가 잠시 머뭇거리며 ‘마지막 남길 말씀은 없습니까?’라고 물었습니다. 글자로 자신의 의사를 전달할 수는 있겠지만 혀를 사용하여 언어를 통해 자신의 생각을 표현하는 것은 이것이 마지막이라는 것입니다. 간호사, 조수, 견습의사 등 둘러선 사람들의 표정과 분위기는 심각했고 잠시 침묵과 긴장의 시간이 흐르고 있었습니다. 저마다 만일 나라면, 만일 내게 한 마디의 언어만 남아 있다면 누구의 이름을 부를 것인가 생각해 보고 있는 듯한 모습이었습니다. 드디어 뺨에 두 줄기 눈물이 흐르더니 ‘주 예수여, 감사합니다’라는 말을 세 번에 걸쳐서 되풀이하는 것이었습니다. 그 순간 이를 바라보는 사람들의 눈시울도 붉어지고 말았습니다.
그렇다면 오늘 우리는 다사다난했던 2014 년 한해에 대한 소감을 누가 묻는다면 ‘모든 것이 감사할 뿐이지요. 모든 영광을 주님께 돌립니다’라고 행복한 고백을 해야 하는 사람들입니다.
오늘 성경은 우리 그리스도인들이 왜 모든 영광을 주님께 돌리고 범사에 감사하는 마음으로 한 해를 마무리해야 하는지 그 이유를 우리에게 가르쳐주는 말씀입니다.
1. 하나님은 우리 아버지
우리가 살아가는 세상에는 우주 만물과 인간이 존재하지만 세상 어디에도 그와 같은 만물이 어디에서 시작되었으며, 인간이 어떻게 존재하게 되었는지 명확하게 밝히는 곳이 없습니다.
그러나 유일하게 성경은 그 모든 것들이 창조주 하나님으로 말미암아 지음을 받았으며 그 가운데 인간은 창조주 하나님께서 공을 들여 만드신 피조물이라고 가르치고 있습니다.
(창 1:26) “하나님이 이르시되 우리의 형상을 따라 우리의 모양대로 우리가 사람을 만들고 그들로 바다의 물고기와 하늘의 새와 가축과 온 땅과 땅에 기는 모든 것을 다스리게 하자 하시고”
인간을 만물의 영장이라고 하고 만물을 지배하는 자가 된 것은 인간이 동물 중에 가장 키가 크고 힘이 세기 때문이 아니라 인간은 모든 동물보다 지혜롭기 때문입니다. 그 지혜가 곧 하나님의 형상으로 말미암은 것입니다.
하나님이 인간을 하나님의 형상으로 지으신 것은 만물보다 인간을 가장 사랑하셨기 때문입니다.
창조주 하나님께서 인간을 특별히 사랑하신 여러 가지 증거 중에 하나는 인간에게만 유일하게 선택할 수 있는 자유의지를 주신 것과 지상 낙원 에덴동산에서 살게 하신 것과 생육하고 번성하여 땅에 충만하고 땅을 정복하라는 문화명령을 주신 것입니다.
하나님은 그와 같은 인간을 지으시고 심히 기뻐하셨으며 그 인간을 통해서 영광을 받으시는 것을 가장 기뻐하셨습니다.
하나님은 인간이 자기를 낳아 기르신 이를 아버지라고 부르는 것처럼 하나님은 하나님의 모양과 형상대로 지으신 인간에게만 아버지가 되어주셨습니다.
(신 32:6) “어리석고 지혜 없는 백성아 여호와께 이같이 보답하느냐 그는 네 아버지시요 너를 지으신 이가 아니시냐 그가 너를 만드시고 너를 세우셨도다”
육신의 아버지가 자기가 낳은 자식의 모든 문제를 책임지는 것처럼 하늘에 게신 하나님 아버지께서도 인간의 모든 필요를 공급해 주시기 때문에 인간이 마치 고아처럼 자신의 생존 문제에 대해서 염려하고 근심하고 걱정하지 말아야 한다고 성경이 가르치고 있습니다.
(마 7:9) “너희 중에 누가 아들이 떡을 달라 하는데 돌을 주며” (마 7:10) “생선을 달라 하는데 뱀을 줄 사람이 있겠느냐” (마 7:11) “너희가 악한 자라도 좋은 것으로 자식에게 줄 줄 알거든 하물며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께서 구하는 자에게 좋은 것으로 주시지 않겠느냐
오늘 우리는 하나님이 우리를 지으신 창조주 아버지이심을 믿는 사람들입니다. 그렇다면 2014년 한해를 무사히 보낸 것은 우리의 염려와 수고의 결과가 아니라 하늘에 계신 하나님 아버지께서 우리의 염려와 걱정과 근심을 모두 맡아 주셨기 때문입니다.
(시 55:22) “네 짐을 여호와께 맡겨 버리라 너를 붙드시고 의인의 요동함을 영영히 허락지 아니하시리로다”
여기서 ‘맡겨’라는 말(&l'v 샬라크)은 ‘’내 던지다‘라는 뜻으로 다시는 돌아보지 않는 모습을 뜻하며, 또 ’붙드시고‘라는 말(lWK, 쿨)은 ’부양준비, 제공하다, 감당하다‘ 는 뜻의 미완료로 마치 노부모를 공양하는 것처럼 끝까지 책임을 지시기 때문에 흔들리지 않게 하시겠다는 말입니다.
(벧전 5:7) “너희 염려를 다 주께 맡겨 버리라 이는 저가 너희를 권고하심이니라”
여기서 ‘맡겨 버리라’는 말(ejpirivptw, 에피립토)도 ‘던져 버리라’는 뜻이고, ‘권고하심’이라는 말(mevlei, 멜로)은 ‘관심을 가지다, 돌보다, 염려하다’는 뜻으로 사후 책임을 지시겠다는 말입니다. 그것도 좋은 것이 아니라 염려와 근심 걱정거리를 책임지시겠다니 어찌 감사하지 않을 수 있습니까?
지난 한 해 동안 내가 이해할 수 없고 쉽게 받아드릴 수 없을 정도의 어려움이나 고통스런 문제가 있었다면 이제 우리는 그것까지도 하나님 아버지께 다 맡겨 버리고 2014년 한해를 보내는 소감을 묻는 사람에게 우리도 기꺼이 ‘주여 감사합니다’ 라고 고백할 수 있어야 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그 이유는 나를 존재하게 하신 하나님 아버지의 생각은 나의 생각보다 깊으시고, 그 능력은 나보다 훨씬 더 크시기 때문에 내가 고민하고 염려하기 보다는 그 하나님 아버지께 모든 것을 온전히 다 맡길 때 비로소 오늘 우리도 ‘주여 감사합니다’라고 고백할 수 있을 것입니다.
2. 하나님은 우리의 왕
다수의 시편을 기록한 다윗은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존경받는 왕이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시편 기자 다윗은 항상 하나님 앞에서는 겸손하였습니다. 그리고 하나님을 가리켜 나의 왕이라고 불렀습니다.
(시 2:6) “내가 나의 왕을 내 거룩한 산 시온에 세웠다 하시리로다” (시 5:2) “나의 왕, 나의 하나님이여 내가 부르짖는 소리를 들으소서 내가 주께 기도하나이다” (시 44:4) “하나님이여 주는 나의 왕이시니 야곱에게 구원을 베푸소서” (시 68:24) “ 나의 하나님, 나의 왕이 성소로 행차하시는 것이라” (시 74:12) “하나님은 예로부터 나의 왕이시라 ” (시 84:3) “나의 왕, 나의 하나님, 만군의 여호와여 주의 제단에서 참새도 제 집을 얻고 제비도 새끼 둘 보금자리를 얻었나이다”
오늘 성경에서 시편 기자는 왕이신 하나님을 아름다움을 글로 표현하고 싶어서 붓을 들었다고 하였습니다.
(시 45:1) “내 마음이 좋은 말로 왕을 위하여 지은 것을 말하리니 내 혀는 글솜씨가 뛰어난 서기관의 붓끝과 같도다”
그 왕은 인생보다 아름다고 은혜가 충만하며 진리와 온유와 정의를 사랑하는 왕이 었습니다. 그 왕은 악을 미워하는 왕으로 세상의 왕들은 불의를 위해 전쟁을 하지만 그 왕은 오직 의와 진리와 온유를 위해 대적과 싸워 승리는 왕이라고 하였습니다.
그 같은 왕을 하나님께서 그 왕을 사랑하셔서 그 왕에게 기름을 부어 다른 왕들보다 뛰어나게 하셨다고 하였습니다.
(시 45:7) “왕은 정의를 사랑하고 악을 미워하시니 그러므로 하나님 곧 왕의 하나님이 즐거움의 기름을 왕에게 부어 왕의 동료보다 뛰어나게 하셨나이다”
이스라엘의 역사상 그와 같은 실제 인물이 어느 왕이었을까요? 아무리 눈을 씻고 찾아보아도 그러한 왕을 찾을 수 없을 것입니다. 그렇다면 시편 기자가 자기를 빗대어 왕을 그렇게 묘사한 것일까요? 그러나 우리가 잘 아는 것처럼 시편 기자도 그와 같이 완벽한 왕은 되지 못했습니다.
우리가 이스라엘의 열왕들의 역사가 기록된 열왕기나 역대서를 살펴 보면 수많은 왕들의 이름을 볼 수 있습니다. 그러나 그 왕들 가운데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정의로운 왕들은 찾아보기 어렵습니다.
그 가운데 가장 이상적인 왕은 다윗이었습니다. 그렇다고 해서 다윗왕이 완벽하였습니까? 그렇지 못했음을 우리가 잘 알고 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스라엘이 존재할 수 있었던 이유가 무엇일까요? 그것은 정의를 사랑하시고 악을 미워하시는 정의로우신 왕이신 여호와 하나님이 이스라엘을 다스리고 계셨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이스라엘 백성들이 그 하나님을 마다하고 우상을 숭배하고 앗수르나 바벨론이나 애굽이나 로마와 같은 강대국의 왕의 힘을 의존하려고 하였을 때 이스라엘 나라는 도리어 그 강대국들에게 밥이 되고 말았던 것을 기억합니다.
우리는 그와 같은 이스라엘의 역사를 통해서 우리나라를 보아야 합니다. 물론 우리나라는 왕이 통치하는 전제주의 나라가 아니요 국민들이 대통령을 선출하는 민주주의 국가입니다.
설령 왕이 아니라 민주주의 방식으로 세워진 대통령이라고 할지라도 옛날로 말하면 오늘의 대통령은 옛날의 왕과 다름이 없는 것입니다. 그러나 옛날 왕과 달리 대통령 독단으로 나라를 통치하는 것이 아니라 사법부와 입법부와 삼권이 공조를 하여야 하기 때문에 국회위원을 선출합니다.
그래서 모든 국민들이 대통령을 새로 뽑고 국회위원을 새로 뽑을 때마다 이 나라를 잘 통치하여 군사적으로 평화 통일과 정치적인 안정과 경제적으로 풍요로운 대한민국이 되게 해달라는 것이 온 국민들의 한결같은 염원입니다.
역대 대통령 중에서 지지율이 가장 높았던 적은 박근혜 대통령이 집권 1년이 되었을 때 국민의 65%의 지지를 받았을 때가 역대 대통령 중 최고였으나 지금은 2 주 연속 30% 대로 급락하였습니다.
2014년 한해에는 마치 쓰나미처럼 각종 재해에 대형사건 사고들이 유난히 많았던 해였습니다. 그렇다고 해서 남북관계나 정치나 경제가 2015년에는 더 좋아질 것이라는 희망도 보이지 않습니다.
오늘 시편 기자의 고백처럼 이 나라를 통치하시는 왕이 계시는데 그 왕은 하나님이시며 이 나라를 지금까지 붙들고 이 대한민국을 불쌍히 여기시고 축복하고 계시기 때문에 북한이 여러 차례 남한을 불바다를 만들겠다고 하였지만 대한민국이 여전히 건재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참으로 이상한 것은 여전히 대한민국은 세계 속에 건재하고 있다고 하는 것입니다. 인간적으로 생각하면 벌써 문제가 터졌어야 하는데도 대한민국이 세계 속에서 건재한 이유가 무엇일까요? 그 원인이 무엇일까요?
(시 45:2) “왕은 사람들보다 아름다워 은혜를 입술에 머금으니 그러므로 하나님이 왕에게 영원히 복을 주시도다”
3. 신랑되신 예수 그리스도
오늘 성경 말씀은 하나님과 우리와의 관계를 창조주와 피조물과의 관계에서 진일보하여 신랑과 신부의 관계로 비유하여 말씀하고 있습니다.
성경에 나타난 예언의 독특한 면이 바로 계시의 점진성이라는 것입니다. 구약에서 그 신부는 이스라엘을 가리키기도 하였습니다.
(사54:5) “이는 너를 지으신 이가 네 남편이시라 그의 이름은 만군의 여호와이시며 네 구속자는 이스라엘의 거룩한 이시라 그는 온 땅의 하나님이라 일컬음을 받으실 것이라”
(사62:5) “마치 청년이 처녀와 결혼함 같이 네 아들들이 너를 취하겠고 신랑이 신부를 기뻐함 같이 네 하나님이 너를 기뻐하시리라”
그러나 신부된 이스라엘이 신랑 되신 하나님을 불신앙한 죄로 말미암아 멸망하였습니다.
성경이 예언은 오래전부터 선지자들을 통해서 하나씩 하나씩 예언되었지만 점차 시간이 지날수록 환해지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성경이 말씀하는 궁극적인 예언의 실체는 예수 그리스도입니다. 그렇다면 그와 같이 시편에 예언된 왕이신 신랑과 왕의 사랑을 받는 신부는 과연 누구를 가리키는 것인지에 대한 해답은 신약에 구체적으로 명시하였습니다.
오늘 성경에 보면 그와 같은 왕에게는 가까이 하는 여인들이 많이 있었습니다. 그 들은 여러 왕들의 딸이라고 하였습니다. 그 여인들 가운데 왕이 사랑하는 딸이 하나 있었습니다.
왕은 그 딸에게 왕의 말을 듣고 왕을 바라보고 왕의 말에 귀를 기울이라고 하면서 그 딸이 속한 백성과 그 딸의 아버지 집을 잊어버리고 오직 왕에게 집중하라고 하였습니다.
(시 45:10) “딸이여 듣고 보고 귀를 기울일지어다 네 백성과 네 아버지의 집을 잊어버릴지어다”
여기서 그 딸이 왕의 사랑을 받게 되는 원인이 외모 때문이 아니라 왕이 무슨 말을 하는지 그 말에 귀를 기울여 경청하고 그 왕에게 집중하기 때문이고, 왕이 그 딸에게 요구하는 것은 많은 혼수가 아니라 지금까지 살아온 친정과의 관계를 단절하기 때문이라는 것입니다.
그렇게 하면 왕이 더욱 그 딸을 사랑하게 될 것이고, 그 왕은 그 딸의 주인이시며, 딸은 그 왕을 경배하라고 하였습니다.
(시 45:11) “그리하면 왕이 네 아름다움을 사모하실지라 그는 네 주인이시니 너는 그를 경배할지어다”
여기서 ‘사모하실지라’는 말(hw;a;, 아와)은 ‘바라다, 열망하다’는 뜻의 미완료 동사로 계속해서 사랑을 받는 신부가 될 것을 뜻합니다. 또 ‘경배할지어다’ 라는 말(hw;a;, 아와)은 ‘구부리다’ 라는 뜻으로 이는 이마가 땅에 닿도록 무릎을 꿇고 절하는 예배의 행위를 뜻하는 말입니다.
그렇게 될 때 왕과 딸은 신랑과 신부가 되며 신랑은 신부를 사모하고, 신부는 신랑을 경배하는 관계가 된다는 것입니다.
이는 앞서 하나님과 우리와의 관계가 창조주 아버지 하나님과 자녀인 성도들의 관계보다 영적으로 더 성숙해진 관계를 뜻하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그와 같은 신랑은 누구를 가리키며, 그 신랑의 사랑을 받는 딸은 누구를 가리키는 예언의 말씀이라는 생각이 듭니까?
성경이 예언은 오래전부터 선지자들을 통해서 하나씩 하나씩 예언되었지만 점차 시간이 지날수록 환해지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성경이 말씀하는 궁극적인 예언의 실체는 예수 그리스도입니다. 그렇다면 그와 같이 시편에 예언된 왕이신 신랑과 왕의 사랑을 받는 신부는 과연 누구를 가리키는 것인지에 대한 해답은 신약에 구체적으로 명시하였습니다.
1) 예수님은 천국을 여러 가지로 비유하시는 가운데 장차 재림하실 주님을 신랑으로 교회를 지혜로운 처녀와 미련한 처녀로 비유하여 말씀하였습니다.
2) 사도 바울은 고린도 교회를 정결한 처녀로 신랑되신 그리스도에게 중매를 한다고 하였습니다. 곧 교회는 왕이신 예수 그리스도의 신부인 것입니다.
(고후11:2) “내가 너희를 정결한 처녀로 한 남편인 그리스도께 드리려고 중매함이로다”
3) 그 교회는 건물이 아니라 교회를 구성하고 있는 성도 한 사람, 한 사람 곧 우리들을 뜻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바로 예수 그리스도가 사모하는 신부라면 얼마나 영광스러운 일입니까?
(엡5:23)“이는 남편이 아내의 머리 됨이 그리스도께서 교회의 머리 됨과 같음이니 그가 바로 몸의 구주시니라
예수 그리스도께서 교회를 신부로 삼으셨다는 것은 오늘 우리를 영적인 신부로 삼으셨음을 뜻하는 것입니다.
결 론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는 창조주 하나님께서 독생자보다 더 사랑하시는 자녀들입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왕으로 우리나라와, 우리 가정과, 우리 각 사람을 지난 한 해 동안도 정의와 사랑으로 다스리고 지켜 주셨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우리의 영적인 신랑으로 우리를 사랑하셨습니다. 비록 지난 한 해가 다사다난했다고 할지라도 우리는 그와 같은 하나님의 사랑으로 말미암아 건재하고 있는 것임을 깨달았다면 한 해를 보내는 우리들이 고백해야 할 말은 무엇일까요?
우리도 시편 기자처럼 모든 영광을 왕이신 주께 돌려야 합니다. “모든 것이 다 주님의 은혜였습니다. 감사합니다” 라고 모든 영광을 주님께 돌릴 때 우리의 왕되신 주님이 우리나라와 교회와 가정과 우리 모두를 기뻐하실 것입니다.
설령 오늘 우리가 처한 이고 우리의 현실 정치와 경제와 교회가 마치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에 빠진 것처럼 희망이 보이지 않을 지라도 우리의 왕이신 주님이 우리 민족과 교회와 성도들을 푸른 초장과 쉴만한 물가로 인도하실 것을 기대해도 좋을 것입니다.
우리는 부모를 떠나 서로 사랑하는 부부가 된 것처럼 만왕의 왕이신 예수 그리스도께서 사랑하시는 신부가 되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리스도의 신부된 우리는 주님보다 더 사랑하는 것이 남아 있다면 그것은 신랑에 대한 배신이며 모욕인 것입니다. 무엇보다 신랑되신 주님의 말씀에 귀를 기울이고 주님의 이름으로 모여 경배하는 일에 집중해야 합니다.
하나님의 자녀와 백성이요 신부된 교회와 성도는 왕에게 경의를 표하고 그를 사랑하고 복종하며 경배해야 될 것을 가르치고 있습니다. 그렇게 할 때 신랑 되신 주님의 신부된 교회와 성도들을 더욱 사모하신다고 하였습니다.
(시 45:10) “딸이여 듣고 보고 귀를 기울일지어다 네 백성과 네 아버지의 집을 잊어버릴지어다” (시 45:11) “그리하면 왕이 네 아름다움을 사모하실지라 그는 네 주인이시니 너는 그를 경배할지어다”
무엇보다 주의 신부된 교회와 성도들에게 특별히 더 요구되는 것은 순결성입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우리가 이전의 다른 사람들과 이전의 악한 풍습들을 반드시 잊어버리고 다시는 회상하지 말아야 합니다.(엡4:22)
오직 신랑되신 주님만을 영원히 사랑하고, 끝까지 그분의 나라에 합당한 의롭고 거룩한 풍습을 좇아 살아갈 때(엡4:23, 24), 우리는 실로 마지막 날 귀하고 아름다운 신부로서(살전5:23) 신랑되신 주님을 기쁘게 맞아 영원한 혼인잔치에 참여하게 될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설령 2014년 한해가 아무리 힘들었을지라도 한 해를 보내는 소감을 한 마디로 말하라고 누가 묻는 다면 우리는 무엇이라고 대답해야 할까요? 이렇게 대답하십시다.
“주님은 나의 왕이십니다. 나의 신랑이십니다. 오직 주님 사랑합니다. 주님께 감사드립니다. 주님께 모든 영광을 돌려 드립니다. 그것만이 신부된 저의 보람이요 기쁨이요 행복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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