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석위에 세워진 교회
(마 7:21-27)
(마 7:21) 나더러 주여 주여 하는 자마다 다 천국에 들어갈 것이 아니요 다만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의 뜻대로 행하는 자라야 들어가리라
(마 7:22) 그 날에 많은 사람이 나더러 이르되 주여 주여 우리가 주의 이름으로 선지자 노릇 하며 주의 이름으로 귀신을 쫓아 내며 주의 이름으로 많은 권능을 행하지 아니하였나이까 하리니
(마 7:23) 그 때에 내가 그들에게 밝히 말하되 내가 너희를 도무지 알지 못하니 불법을 행하는 자들아 내게서 떠나가라 하리라
(마 7:24) 그러므로 누구든지 나의 이 말을 듣고 행하는 자는 그 집을 반석 위에 지은 지혜로운 사람 같으리니
(마 7:25) 비가 내리고 창수가 나고 바람이 불어 그 집에 부딪치되 무너지지 아니하나니 이는 주추를 반석 위에 놓은 까닭이요
(마 7:26) 나의 이 말을 듣고 행하지 아니하는 자는 그 집을 모래 위에 지은 어리석은 사람 같으리니
(마 7:27) 비가 내리고 창수가 나고 바람이 불어 그 집에 부딪치매 무너져 그 무너짐이 심하니라
창조주 하나님은 인간을 지으시되 보이는 육신과 보이지 않는 영혼을 아울러 지으셨습니다. 보이는 육체의 행복한 삶을 위해서 가정을 세워주셨다면 보이지 않는 영혼을 위해서는 교회를 세워주셨습니다.
우리는 지난 2014년을 ‘복된 가정 행복한 교회’라는 표어를 걸고 가정의 중요성에 대해서 강조를 하였습니다.
이제 맞이하는 2015년 새해는 ‘반석위에 세워진 교회’라는 표어를 걸고 교회의 중요성에 대한 다짐과 더불어 우리의 신앙의 기초를 견고하게 다지는 새해가 되기를 소원합니다.
전쟁을 앞둔 군인이나 경기를 앞둔 선수는 더욱 강훈련에 들어가는 것처럼 우리가 사는 이 세대가 점점 더 교회에 대한 비판과 저항이 거세지고 있다면 그 때문에 위축되거나 겁먹지 말고 오히려 믿음의 기초를 더욱 견고하게 할 때입니다.
지난날의 교회 역사를 돌이켜 보면 2000여 년 전 베들레헴 마구간에서 아기 예수가 탄생하실 때부터 기독교에 대한 수없는 박해가 있어왔습니다.
그렇다고 해서 기독교회가 이슬람처럼 무력으로 맞서 싸운 적이 없고 모진 박해를 고스란히 다 받았지만 결코 기독교는 그들이 바람처럼 소멸되거나 약화되기는커녕 오히려 더욱 번성하고 더더욱 순결해지는 기회로 삼았습니다.
과연 그 이유가 무엇일까요? 교회는 인간의 필요에 의해서 인간이 세운 세속 집단이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께서 친히 세우신 신령한 공동체이기 때문입니다.
예수께서 제자들에게 제자들에게 너희는 나를 누구라고 하느냐? 라는 질문하셨을 때 베드로 사도가 대답하기를 “주는 그리스도시오, 살아계신 하나님의 아들입니다” 라고 고백하였을 주님이 놀라운 약속을 하셨습니다.
그것이 바로 내 교회를 세우시겠다는 약속하셨으며, 또한 그 교회를 ‘음부의 권세가 이기지 못하리라’고 약속하셨습니다.
(마 16:18) “또 내가 네게 이르노니 너는 베드로라 내가 이 반석 위에 내 교회를 세우리니 음부의 권세가 이기지 못하리라”
여기서 ‘음부의 권세’라는 말(a{/dh"하데스)은 ‘죽음의 권세’라는 뜻이고 ‘이기지 못하리라’는 말씀은 교회의 권세보다 더 강하거나 우월하거나 교회를 지배할 수 없다는 뜻입니다.
여기서 교회는 보이는 건물이 아니라 건물 안에 모여서 하나님께 예배하는 성도들 한 사람 한 사람을 가리키는 것입니다. 그래서 성경은 우리를 가리켜 성전이라고 말씀하기까지 하였습니다.
(고전 3:16) “너희는 너희가 하나님의 성전인 것과 하나님의 성령이 너희 안에 계시는 것을 알지 못하느냐”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나님께서 교회가 세상으로부터 박해와 소외를 당하도록 내버려 두시는 것처럼 보이는 때는 교회의 거룩성과 순결성을 회복시키시기 위함이거나 교회를 보다 더 강하게 연단하여 어떤 박해 속에서도 굳건한 교회가 되게 하기 위해서입니다.
그렇다면 죽음의 권세가 이길 수 없는 견고한 교회는 어떤 교회를 가리키는 것일까요?
예수께서 산상보훈에서 말씀하신 것처럼 교회는 두 종류가 있는데 하나는 반석위에 세운 교회와 또 하나는 모래위에 세운 교회입니다.
두 교회가 겉으로 보기에는 똑같은 교회처럼 보였을 것입니다. 그러나 교회에 외세의 바람이 불고 홍수가 밀어닥치게 되었을 때 두 교회는 확연한 차이를 보였는데 반석위에 세운 교회는 무너짐이 없었으나 모래위에 세운 교회는 크게 무너졌다고 말씀하였습니다.
(마 7:24) “그러므로 누구든지 나의 이 말을 듣고 행하는 자는 그 집을 반석 위에 지은 지혜로운 사람 같으리니” (마 7:25) “비가 내리고 창수가 나고 바람이 불어 그 집에 부딪치되 무너지지 아니하나니 이는 주추를 반석 위에 놓은 까닭이요”
여기서 ‘무너짐’이라는 말(ptw'si", 프토시스)은 기둥하나 부러지는 것이 아니라 ‘멸망하다’ 라는 뜻입니다.
그 원인은 외부적인 도전이 있고 없고의 차이가 아니라 기초의 차이 때문이었다는 것입니다.
만일 반석위에 세워진 교회라면 아무리 외부적으로 거센 도전을 받는다고 할지라도 넘어지지 않지만 모래 위에 세워진 교회는 쉽게 무너져 버리고 만다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오늘의 한국 교회의 정황은 어떠합니까? 세상의 반기독교적인 정치 사상 종교 계층의 사람들이 교회를 향해 계속 돌을 던지고 반기독교적인 홍수가 쓰나미처럼 밀어닥치고 교회 안에는 균열이 일어나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본래 한국교회는 그렇지 않았었는데 언제부터 왜 교회가 요동을 치게 되었는지 그 원인을 찾아야 합니다.
그것은 한국교회가 본질인 말씀을 가까이 하지 않는 헛된 신앙생활을 하였기 때문입니다.
(마 7:26) “나의 이 말을 듣고 행하지 아니하는 자는 그 집을 모래 위에 지은 어리석은 사람 같으리니” (마 7:27) “비가 내리고 창수가 나고 바람이 불어 그 집에 부딪치매 무너져 그 무너짐이 심하니라”
이런 때에 한국교회가 사는 길은 무엇일까요? 한국교회가 무너지지 않고 견고하게 설 수 있는 비결이 무엇일까요?
1) 말씀을 사랑하는 성도(계 1:3)
반석위에 교회를 세웠다는 말은 (마 7:24) “그러므로 누구든지 나의 이 말을 듣고 행하는 자는 그 집을 반석 위에 지은 지혜로운 사람 같으리니” 라는 말씀처럼, 신앙의 기초가 하나님의 말씀 위에 서야 함을 뜻합니다.
그것이 바로 오늘 성경에서 예수님이 산상보훈을 통해서 가르쳐주신 비결입니다. 교회를 모래 위에 세우지 말고 반석위에 세우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2015년 우리 교회는 마태복음 7장에서 예수님께서 말씀하신 뜻을 따라 “반석 위에 세워진 교회”라는 표어로 한 해를 살아가자고 하는 것입니다.
2015년도에 우리 수원제일교회는 반석위에 세워진 교회, 즉 하나님의 말씀대로 순종하는 교회를 함께 세워가길 원합니다.
그런데 여기서 중요한 점이 있습니다. 이는 ‘세운’ 교회가 아니라 ‘세워진’ 교회‘ 라는 의미입니다.
교회는 하나님께서 세우십니다. 우리의 노력여하가 아니라 하나님의 뜻에 달려 있습니다. 하지만 하나님께서 약속하신 것은 우리가 바른 믿음으로 나아가면 주께서 역사하신다는 사실입니다.
하나님은 약속을 변개치 않는 분이시기에 우리가 바른 믿음으로 하나님 앞에 서 있으면 우리 자신과 가정 교회를 견고하게 세우시고 성장하게 하시고 열매 맺게 하실 것입니다. 반석위에 든든히 세워주실 것입니다.
중세 교회가 성경 중심이 되지 못하고 의식과 형식 중심이 되고, 예수 중심이 되지 못하고 마리아 중심 교황 중심이 되었을 때 영적으로 암흑기를 맞았을 때 루터가 칼빈이나 쯔빙글리와 같은 종교 개혁자들이 교회가 성경 중심으로 돌아가야 함을 외쳤던 것처럼 오늘의 교회와 성도들이 그 어느 때보다 성경중심의 신앙의 터위에 세워져야 할 때입니다.
성경을 읽지 않고 성경을 묵상하지 않고 성경 말씀에 순종하지 않으면서 성경 중심의 신앙이 된다고 하는 것은 모순입니다.
그러므로 반석위에 세워진 교회와 성도들은 신앙의 최우선 순위를 성경 말씀을 읽고 듣고 묵상하고 그 말씀대로 순종하는 삶을 사는 성도들이 모인 교회를 뜻합니다.
물론 새로 처음 듣는 말씀이 아닐 것입니다. 이론적으로는 이미 다 알고 있는 말씀일 것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문제는 세월이 갈수록 그리스도인들이 독서를 강조하면서도 성경을 읽고 묵상하고 성경 말씀대로 살고자하는 노력을 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반석위에 세워진 교회는 말씀을 읽고 듣고 실천하는 삶을 사는 성도들이 모인 교회입니다.
(마 7:24) “그러므로 누구든지 나의 이 말을 듣고 행하는 자는 그 집을 반석 위에 지은 지혜로운 사람 같으리니”
(1) 말씀은 구원받은 성도들의 신앙을 거룩하게 하고, 말씀은 우리를 지혜롭게 하고 영혼을 소생케 합니다.
(2) 말씀은 악한 마귀를 대적하게 하고 하나님의 뜻을 분별하여 거룩하게 살아갈 수 있게 합니다.
(3) 말씀을 주야로 묵상하는 자는 시냇가에 심기운 나무처럼(시 1:2,3). 믿음의 풍성한 열매를 맺습니다.
2015년이 되어서 우리가 가장 먼저 말씀에 근거해서 든든한 토대를 놓을 때, 말씀에 나와 있는 기본적인 신앙의 내용들에 충실하게 순종하고자 합니다.
말씀을 사랑하고 그 안에 기록된 대로 지켜 행하며, 기도의 자리로 나아오며, 예배의 감격을 회복하고, 오직 십자가와 부활의 복음을 심장에 새기는 출발을 하고자 합니다. 믿음의 기초가 회복되어야 건강한 그리스도인이 됩니다.
이를 위해 1월 4일 첫 주부터 ‘복음과 하나님의 나라’라는 주제로 2주간 걸쳐 진행하는 마가복음 14일 캠페인과 더불어 다양한 성경말씀 운동을 적극적으로 벌리고자 합니다. 온 성도님들이 합십 동참을 통해서 놀라운 성령의 역사를 체험하기 바랍니다.
2. 경건한 믿음의 가정
개인적으로 경건한 신앙을 유지하는 것도 귀한 일이지만 그 신앙이 가족들에게 영향을 끼치지 못한다면 그 신앙은 오래가지 못합니다.
그러므로 말씀을 사랑하는 성도는 더 나아가서 온 가족이 신실한 믿음의 가정이 되기 위해서 기도하고 최선의 노력을 다해야 합니다.
우리는 이미 2014년 복된 가정 행복한 교회라는 표어로 가정의 중요성을 강조하면서 무엇보다 가정 예배의 회복과 자녀들에게 성경을 가르치는 부모가 되기 위해서 토요 성경학당을 개설하여 토요일마다 자녀들과 더불어 교회에 모여서 30여가정이 토요성경학당을 개설하여 진행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바라기는 더 많은 가정들이 토요 성경학당에 동참하여 자녀들이 영적으로 건강하게 자라 신앙의 대물림을 하는 신령한 가정들이 되시기 바랍니다.
그러한 가정이 될 때 부부간에 화목하고 형제간에 우애가 있고 다음 세대를 이끌어갈 꿈나무를 키우는 요람이 될 뿐 아니라 이웃에게 좋은 영향을 끼쳐 복음을 전하여 구원을 받게하는 축복의 통로가 되는 가정이 되어야 합니다.
성경에서 그와 같은 역할을 한 이상적인 가정을 손꼽는다면 행 10장의 고넬료 가정을 손꼽을 수 있을 것입니다.
1) 온 가족의 신앙화
(행 10:1) “가이사랴에 고넬료라 하는 사람이 있으니 이달리야 부대라 하는 군대의 백부장이라”
당시 로마 총독이 주재하고 있던 본부로서 총독의 안전을 위하여 로마군의 일단이 여기에 주둔하고 있었습니다.
로마군의 보병 부대 편제는 1개 군단이 500명 또는 600명으로 편성되어 있었고, 이 군단 사령관을 천부장이라 했으며, 이를 10개 부대로 나누어 백부장의 지휘 하에 두었습니다.
이 백부장들은 로마군의 중심 세력으로서 중요한 위치에 있었습니다. 고넬료는 이 백부장의 한 사람이었습니다.
그는 로마인으로서 이달리야인의 지원병들로 구성된 이달리야대의 백부장이었습니다. 아마도 이들은 총독과 총독 관저를 안전하게 지키기 위해서 특별히 본국인들로만 편성된 근위병(경호원)들이었을 것으로 생각됩니다. 그만큼 고넬료는 신임을 받고 있던 백부장이었습니다.
(행 10:2) “그가 경건하여 온 집안과 더불어 하나님을 경외하며 백성을 많이 구제하고 하나님께 항상 기도하더니”
고넬료는 로마 군대의 장교이면서도 유대인이 믿는 하나님을 경외하고 있었으며, 유대인들의 관습을 따라 구제하는 일과 기도하는 일에 열심 있는 경건한 사람이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와 그의 가족들이 가난한 자들을 구제하고 유대인들의 정해진 기도 시간에 기도하는 생활을 했다는 것은 그가 얼마나 신앙심 깊은 사람이었는가를 증명하는 일들과 함께 하나님을 경외하며 산 사람입니다.
(행 10:3) “하루는 제 구 시쯤 되어 환상 중에 밝히 보매 하나님의 사자가 들어와 이르되 고넬료야 하니”
이 기도 시간에 저가 '환상'을 보았다는 것은 그가 높은 영적 수준에 있었음을 의미합니다. 하나님은 그 '환상'을 통하여 당신의 뜻을 천사를 보내서 계시하셨습니다. 깊은 기도 생활은 하나님의 계시를 받기에 합당한 영적 통로를 개설합니다.
(행 10:4) “고넬료가 주목하여 보고 두려워 이르되 주여 무슨 일이니이까 천사가 이르되 네 기도와 구제가 하나님 앞에 상달되어 기억하신 바가 되었으니”
이 기도 시간에 저가 '환상'을 보았다는 것은 그가 높은 영적 수준에 있었음을 의미합니다. 하나님은 그 '환상'을 통하여 당신의 뜻을 천사를 보내서 계시하셨습니다. 깊은 기도 생활은 하나님의 계시를 받기에 합당한 영적 통로를 개설합니다.
2) 이웃의 신앙화
하나님께서는 고넬료와 그의 가족을 위하여 하나님의 사자를 통하여 능력의 종 베드로를 보내시기로 작정하신 것입니다.
고넬료에게만 아니라 베드로에게도 임하여 성령께서는 미리 고넬료의 청원을 어떻게 처리해 놓으실 것인 지까지 예비해 놓으셨습니다.
즉 하나님께서는 고넬료와 그의 가족을 위하여 하나님의 사자를 통하여 능력의 종 베드로를 보내시기로 작정하신 것입니다. 고넬료는 이미 베드로의 방문을 예상하고 그의 모든 일가들을 모아 기다리고 있었다.
(행 10:24) “이튿날 가이사랴에 들어가니 고넬료가 그의 친척과 가까운 친구들을 모아 기다리더니” (행 10:25) “마침 베드로가 들어올 때에 고넬료가 맞아 발 앞에 엎드리어 절하니”
베드로의 설교 내용들은 우리 성도들이 불신자들에게 복음을 전할 때 필수적으로 전해야 할 내용이었습니다.
(1) 십자가의 대속
(행 10:39) “우리는 유대인의 땅과 예루살렘에서 그가 행하신 모든 일에 증인이라 그를 그들이 나무에 달아 죽였으나”
(2) 부활의 생명
(행 10:40) “하나님이 사흘 만에 다시 살리사 나타내시되
십자가와 부활은 복음의 수레에 달려 있는 두 바퀴와 같은 것입니다. 부활이 없으면 십자가의 죽음도 무의미합니다.
십자가의 죽음은 부활을 전제로 한 것이며, 죽음이 없으면 부활, 또한 있을 수가 없습니다. 또한 죽음을 극복한 생명만이 참 생명이라는 것을 그리스도의 부활은 계시하고 있습니다.
베드로가 예수님의 메시아이심을 설교할 때 설교를 듣고 있던 이방인의 무리 위에 성령이 강림하였습니다.
(행 10:44) “베드로가 이 말을 할 때에 성령이 말씀 듣는 모든 사람에게 내려오시니”
이 성령의 강림은 마가 요한의 다락방에서와 마찬가지로 모든 사람에게 다 임했습니다. 이처럼 하나님의 은혜는 이방인 고넬료에게도 전혀 차별 없이 주어졌습니다.
성령을 받은 이들은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며, 하나님을 높였습니다. 베드로는 성령 받은 자들에게 세례를 줌으로써 하나님의 역사하심을 인정하였습니다.
이렇게 함으로써 베드로는 '가서 세례를 주어 모든 민족을 내 제자로 삼으라.'는 명령을 성실히 수행하였던 것입니다(마 28:19, 20).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 개개인이 말씀의 반석위에 신앙의 기초를 견고히 해야 하는 이유는 나로 말미암아 우리 가정을 회복하기 위함입니다.
우리 가정이 회복이 되어야 하는 이유는 바로 고넬료 가정처럼 이웃을 구원하기 위해서입니다.
2015년 믿음의 가정들이 고넬료 가정처럼 이웃을 복음화시키는 이 시대의 고넬교 가정이 되기 위해서 구역을 살리는 가정이 되어야 합니다. 구역 구역들이 살아날 대 교회가 살고 교회가 살아야 민족이 사는 것입니다.
3) 하나님께 영광 돌리는 교회
(빌 1:11)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의의 열매가 가득하여 하나님의 영광과 찬송이 되기를 원하노라”
그런데 하나님께서는 이 모든 일을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의의 열매를 가득 맺는’ 신앙과 사역을 통해 얻기를 원하십니다.
우리 개개인의 신앙이 말씀 중심이 되어 회복이 되고 가정 가정들이 성령충만하여 구역이 회복될 때 교회가 살아나게 됩니다.
이상적인 교회는 개개인이 모인 교회가 아니라, 믿음의 가정들이 모인 교회이어야 합니다. 그러한 성도들과 가정들이 교회에 모여서 무엇을 해야 할까요?
크게 두 가지입니다. 하나는 하나님이 교회를 세우신 궁극적인 목적인 하나님께 영과 진리로 예배하는 교회가 되게 하기 위함입니다.
(1) 전심으로 예배하는 성도
하나님은 우리를 구원하시기 위해 독생자를 주셨습니다. 예수님은 우리를 구원하시기 위해 십자가에 달리셨습니다. 그 때문에 우리가 구원을 받았고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고 영생을 받게 되었습니다. 교회를 세우신 궁극적인 목적도 예배를 위함이었습니다.
곰곰이 생각하면 그 하나님보다 우리를 더 사랑한 이가 없습니다. 그 하나님보다 그 예수님보다 우리를 더 사랑할 수 있는 사람이 없습니다. 외아들을 주셨고 목숨을 주셨습니다.
그렇다면 이제 우리가 해야 할 일은 그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일을 해야 합니다. 무엇을 하면 하나님을 기쁘시게 할 수 있습니까?
그것은 예배보다 더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일이 없습니다. 하나님이 우리를 위해서, 예수님이 나를 위해서 최선을 다하신 것처럼 이제 우리도 하나님께 예배하는 일에 최선을 다해야 합니다. 누가 하나님을 사랑하는 사람인가? 하는 것은 예배를 떠나서 생각할 수 없습니다.
(2) 전심으로 열매 맺는 성도
또 하나는 주의 이름으로 세상을 향해 복음을 전하는 일에 최선을 다하는 교회와 성도가 되어야 합니다.
하나님이 지상에 교회를 세우신 이유가 바로 그 때문입니다. 예수님이 세상에 전심으로 하신 일이 전도와 선교입니다. 예수님이 마지막에 부탁하신 것도 바로 그 때문입니다.
그리고 이는 어려운 일이 아닙니다. 깊은 뿌리를 내리고 견실한 성장이 이뤄졌다면 이제 그리스도 안에서 열매를 기대하는 일은 너무나 자연스러운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라는 나무에 붙어 있는 가지는 열매를 풍성히 맺을 수밖에 없습니다. 예수님은(요 15:5) “나는 포도나무요 너희는 가지라 그가 내 안에, 내가 그 안에 거하면 사람이 열매를 많이 맺나니”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전도는 우리가 할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전도는 주님이 우리를 통해서 하시는 것입니다. 문제는 우리가 바른 믿음을 가지고 바로 서기만 하면 하나님께서 우리를 통해 일하시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매월마다 한 영혼 씩 주님께로 인도하고, 전후반기에 있는 새생명 축제 그래서 2015년에는 반석위에 세워진 개인과 가정과 교회를 맛보게 될 것입니다. 고 말씀을 듣고 이에 순종하며 행하는 믿음을 통해 하나님께서 어떻게 일하시는지 목도한 우리가 어찌 소망 없이 한 해를 마무리 할 수 있겠습니까?
이제까지 후회와 새로운 각오로 맞이하는 12월이었습니다. 그러나 이제 내년에는 소망으로 맞이하는 12월이 될 수 있을 것입니다. 큰 소망으로 기대하며 또 다음 해를 바라보는 시간이 될 수 있을 것입니다.
(히 11:6) “믿음이 없이는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지 못하나니 하나님께 나아가는 자는 반드시 그가 계신 것과 또한 그가 자기를 찾는 자들에게 상 주시는 이심을 믿어야 할지니라”
결 론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믿음으로 한 해를 바라보십시오. 2015년도를 우리를 위해 준비하시고 믿음으로 순종하는 자들을 위해 역사하실 하나님을 바라보십시오.
우리가 함께 이 길을 걸어가면 반석위에 든든히 세워진 수원제일 교회와 성도들을 보게 될 것입니다.
그리고 한 해를 마무리하며 하나님께서 주신 은혜보다 더 큰 일을 기대하게 될 것입니다.
‘반석위에 세워진 교회’ 이 표어를 붙잡고 영적 기본기를 든든히 하며 그 안에서 자라 풍성한 열매로 하나님께 영광 올려 드리기 위해 1) 말씀을 사랑하는 성도 (계 1:3), 2) 경건한 믿음의 가정 (행 10:2) 3)하나님께 영광 돌리는 교회(빌 1:11)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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