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 교/이규왕목사

복된 소식이 시작되었습니다./막1:1~8

미션(cmc) 2015. 1. 6. 16:55


복된 소식이 시작되었습니다.

(막 1:1-8)


(막 1:1)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의 시작이라” (막 1:2) “선지자 이사야의 글에 보라 내가 내 사자를 네 앞에 보내노니 그가 네 길을 준비하리라” (막 1:3) “광야에 외치는 자의 소리가 있어 이르되 너희는 주의 길을 준비하라 그의 오실 길을 곧게 하라 기록된 것과 같이” (막 1:4) “세례 요한이 광야에 이르러 죄 사함을 받게 하는 회개의 세례를 전파하니” (막 1:5) “온 유대 지방과 예루살렘 사람이 다 나아가 자기 죄를 자복하고 요단 강에서 그에게 세례를 받더라” (막 1:6) “요한은 낙타털 옷을 입고 허리에 가죽 띠를 띠고 메뚜기와 석청을 먹더라” (막 1:7) “그가 전파하여 이르되 나보다 능력 많으신 이가 내 뒤에 오시나니 나는 굽혀 그의 신발끈을 풀기도 감당하지 못하겠노라” (막 1:8) “나는 너희에게 물로 세례를 베풀었거니와 그는 너희에게 성령으로 세례를 베푸시리라”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을 믿음의 조상으로 택하시고 그의 후손을 통해서 하나님이 통치하시는 새로운 나라를 세우시기로 작정하셨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브라함의 자손인 히브리 백성들이 애굽 제국에서 하나님의 특별한 은총으로 생육하고 번성하여 땅에 충만하게 되었습니다. 

(출 1:7) “이스라엘 자손은 생육하고 불어나 번성하고 매우 강하여 온 땅에 가득하게 되었더라”

 애굽 왕 바로가 볼 때 그처럼 이스라엘 백성들이 생육하고 번성하는 것을 두려워  하여 이스라엘 민족을 말살 시키려고 사내아이들을 낳게 되면 다 죽이라고 명령을 한 것입니다.

(출 1:16) “이르되 너희는 히브리 여인을 위하여 해산을 도울 때에 그 자리를 살펴서 아들이거든 그를 죽이고 딸이거든 살려두라”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은 모세가 태어나게 하시고 오히려 이스라엘 민족을 괴롭히던 애굽의 바로 왕에 의해 400면 만에 유월절 재앙을 통해서 애굽에서 자유와 해방을 얻어 가나안 땅에 들어가 이스라엘 나라를 세우는 축복을 받았습니다.


 하나님이 통치하시는 신정국가인 이스라엘은 그 시대마다 하나님이 친히 세우신 왕과 제사장과 선지자들을 통해서 왕이신 하나님의 말씀을 대언하게 하시고, 하나님의 통치를 대행하게 하셨습니다. 

 그러나 이스라엘 말기에 역대 왕들이 선지자들의 경고를 무시하고 끝내 하나님의 말씀을 불순종하고 우상을 숭배하다가 결국 멸망을 당하였습니다. 

 그것이 바로 바벨론을 배반한 시드기야 왕 때 예루살렘 성과 성전이 훼파 당하고 왕을 비롯하여 고관과 수많은 백성들이 바벨론으로 잡혀가고 유다의 역사는 종말을 고하게 되었습니다. 그 기간이 바로 주전 601-586년까지의 유다 멸망의 역사입니다. 

 하나님은 주전 430년 전의 말라기 선지자를 끝으로 예수님이 세상에 오실 때까지 무려 400년간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선지자를 세워 계시하시거나, 이스라엘 역사에 개입을 하시지 않으셨습니다. 

 그 기간이 구약과 신약 사이에 하나님이 침묵하신 400년간을 신학적으로 중간기 또는 영적 암흑기라고 합니다.

 만일 하나님께서 계획하신 하나님의 나라가 인간들의 불순종의 범죄로 말미암아 물거품이 된다면 과연 전능하시고, 영원하신 하나님이라고 할 수 있을까요? 

 그러나 영원불변하신 하나님께서 오래전부터 선지자들을 통해서 예언 하신 하나님의 나라를 완벽하게 이루시기 위해서 이전과 달리 하나님이 직접 완벽한 하나님 나라를 회복하는 일을 시작하셨습니다.  그것이 바로 오늘 성경 말씀입니다. 

(막 1:1)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의 시작이라” (막 1:2) “선지자 이사야의 글에 보라 내가 내 사자를 네 앞에 보내노니 그가 네 길을 준비하리라”

 여기서 그리스도의 ‘복음’이라는 말(eujaggevlion, 유앙겔리온)은 ‘복된 소식’이라는 뜻으로 피아간의 치열한 전투로 인해 후방에서 불안에 떨고 있는 동족에게 사자를 통해 아군이 승리했다는 소식을 전하는 소식을 가리켜서 복음이라고 하였습니다.

 지금까지 성경을 통해서 전해들은 소식은 인류의 조상 아담의 패배로 그 후손이 전멸하게 되었다는 패배의 소식이었고, 하나님이 제사장 나라로 택하신 이스라엘 나라의 참패의 소식이었습니다.  

 그러나 때가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께서 직접 세상에 오셔서 아담을 넘어뜨리고 이스라엘을 망하게 했던 사단의 권세와 싸워 하나님의 나라를 회복하시기 위해 세상에 오신 것입니다.

 (막 1:1)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의 시작이라” 

 그 시작을 알리는 싸인 이 바로 이사야 선지자가 예언대로 엘리야와 같은 영성을 가지고 예수님보다 여섯 달 먼저 태어난 세례요한의 사역을 통해서 시작되었다고  마 3:1, 눅 3:3, 요 1:20 복음서들이 똑같이 말하고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세례 요한을 예수님보다 여섯 달 먼저 태어나게 하신 까닭은 자기 뒤에 오시는 하나님 나라의 왕이신 예수 그리스도가 세상에 오셨다는 기쁨의 좋은 소식을 세상 사람들에게 알리는 사명을 위해서라고 이사야와 말라기 선지자가 예언한대로입니다.

(사 40:3) “외치는 자의 소리여 이르되 너희는 광야에서 여호와의 길을 예비하라 사막에서 우리 하나님의 대로를 평탄하게 하라”  (말 3:1) “만군의 여호와가 이르노라 보라 내가 내 사자를 보내리니 그가 내 앞에서 길을 준비할 것이요 또 너희가 구하는 바 주가 갑자기 그의 성전에 임하시리니 곧 너희가 사모하는 바 언약의 사자가 임하실 것이라”

 유대인들은 30세가 되어야 공직을 맡을 수 있기 때문에 동정녀 마리아의 몸에 성령으로 잉태되어 세상에 오신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30년 동안 나사렛 동네에서 목수 일을 하셨습니다. 

 마침내 예수님이 30세가 되었을 때 세례 요한은 광야에 나가서 하나님 나라의 왕이신 예수 그리스도께서 세상에 오셨으니 사람들이 그 예수 그리스도를 맞이할 마음의 준비를 해야 할 것을 선포하였습니다. 그것이 바로 회개의 세례입니다.

(막 1:3) “광야에 외치는 자의 소리가 있어 이르되 너희는 주의 길을 준비하라 그의 오실 길을 곧게 하라 기록된 것과 같이” (막 1:4) “세례 요한이 광야에 이르러 죄 사함을 받게 하는 회개의 세례를 전파하니”

 참으로 놀라운 사실은 그와 같은 세례 요한의 외침을 듣고 전국에서 요단강으로 몰려와서 세례 요한에게 회개의 세례를 받는 것이었습니다.

(막 1:5) “온 유대 지방과 예루살렘 사람이 다 나아가 자기 죄를 자복하고 요단 강에서 그에게 세례를 받더라”

 여기서 ‘다 나아가’ 라는 말(ejkporeuvw, 에크포류오)은 ‘줄지어 내 보내다’ 라는 뜻의 미완료 동사이고, ‘자복하고’라는 말(ejxomologevw, 엑소몰로게오)은 ‘고백하다, 시인하다’는 뜻의 동분사 현재 진행형으로 전국에서 사람들이 꾸역꾸역 광야로 나가서 세례 요한 앞에 자기들의 죄를 회개하고 세례를 받는 거국적인 운동이 시작되었음을 뜻합니다.

  그들은 세례 요한이 당시 화려한 법의를 걸친 종교 지도자들과는 너무 대조적으로 낙타털 옷을 입고, 허리에는 가죽 띠를 띠고 메뚜기와 석청을 먹는 모습을 보면서 세례 요한이 오래전부터 선지자들을 통해 약속하신 메시아가 아닌가? 하는 기대감으로 몰려든 것입니다.

 그것은 사람들이 얼마나 메시아의 오심을 갈급하게 기다리고 있었는가? 하는 것을 단적으로 보여주는 모습입니다. 

 이 소식을 들은 예루살렘의 종교 지도자들이 세례 요한에게 제사장들과 레위인을 보내어 세례 요한의 정체를 물었을 때 ‘나는 그리스도가 아니라’고 하였습니다. 

 세례 요한이 그리스도가 아니라고 부인할 수 록 그들은 더욱 세례 요한의 정체가 궁금하여 그렇다면 네가 누구냐? 네가 그리스도도 아니고, 엘리야도 아니요 선지자도 아니면서 어찌하여 사람들에게 세례를 베푸는 것인지 네 정체를 밝히라고 닦달하였습니다.

 (요 1:25) “또 물어 이르되 네가 만일 그리스도도 아니요 엘리야도 아니요 그 선지자도 아닐진대 어찌하여 세례를 베푸느냐” 


1. 세례 받으시는 예수님

 세례요한은 사람들의 잘못된 기대감에 대해서 자기는 그리스도가 아니라 자기 뒤에 오시는 이가 그리스도이시며, 자기는 그 분과 비교가 되지 못하는 미미한 존재로 마치 주인이 집에 오면 하인은 달려가서 주인의 신발 끈을 풀고 냄새나는 발을 씻기는 종과 다름이 없다고 하였습니다.

(막 1:7) “그가 전파하여 이르되 나보다 능력 많으신 이가 내 뒤에 오시나니 나는 굽혀 그의 신발끈을 풀기도 감당하지 못하겠노라”

 그 이유는 세례 요한이 지금 사람들에게 물로 회개의 세례 베풀고 있지만 자기 뒤에 오시는 하나님 나라의 왕이신 그리스도는 물이 아니라 성령으로 세례를 베풀 것이라고 자기는 낮추고 그리스도만을 높였습니다. 

(막 1:8) “나는 너희에게 물로 세례를 베풀었거니와 그는 너희에게 성령으로 세례를 베푸시리라”

  그렇다면 과연 누가 세례 요한이 증거하는 능력 많으신 분이요, 성령으로 세례를 베푸실 분인지 사람들이 어떻게 알 수 있을까요? 사실 세례 요한조차 그 분이 누구인지 알지 못하고 있었습니다. 

 다만 세례를 받으시는 이 가운데 성령이 그 위에 임하여 머무는 이를 보거든 그 분이 바로 성령으로 세례를 베푸실 분이 하나님 나라를 세우기 위해 세상에 오신 메시아라는 증거라는 계시를 받았을 뿐입니다.

(요 1:33) “나도 그를 알지 못하였으나 나를 보내어 물로 세례를 베풀라 하신 그이가 나에게 말씀하시되 성령이 내려서 누구 위에든지 머무는 것을 보거든 그가 곧 성령으로 세례를 베푸는 이인 줄 알라 하셨기에”

 그 때 나사렛에서 목수 생활을 하면서 삼십년 동안 은둔하셨던 예수께서 갈릴리를 떠나 요단강으로 나아가서 세례 요한에게 세례 받으시기 위해 나아가셨을 때 세례 요한은 예수님이 바로 ‘보라 세상 죄를 지고 가는 하나님의 어린양이로다’(요 1:29) 라고 한 것처럼 이스라엘 백성들이 기다리는 메시아이심을 알려 주었습니다.

 1) 예수님은 세례를 받으시기 전에 이미 많은 사람들이 세례 요한에게 세례를 받았습니다. 예수님도 다른 사람들과 똑같이 세례 요한에게 세례를 받으셨습니다. 

 2) 예수님의 세례와 다른 사람들의 세례와 근본적인 차이가 있었습니다. 그것은 다른 사람들은 세례를 받을 때 지금까지 지은 죄를 회개한 후에 세례를 받았습니다. 

 3) 예수님은 다른 사람들처럼 회개할 이유가 없는 나면서부터 거룩하신 분이었습니다. 그렇다면 예수님은 왜 세례를 받으셨을까요? 

 그렇다면 예수님은 다른 사람들처럼 회개할 필요가 없으신 분임에도 불구하고 회개의 세례를 받으신 까닭은 무엇 때문일까요? 

 예수님은 세례를 받으실 때 다른 사람들과 달리 하나님 아버지께 기도하셨습니다. 기도는 하나님 아버지를 부르는 것입니다. 초청하는 것입니다. 도움을 구하는 것입니다. 교제를 요청하는 것입니다.

  (눅 3:21) “백성이 다 세례를 받을 새 예수도 세례를 받으시고 기도하실 때에 하늘이 열리며” 

 여기서 ‘기도하실 때에’라는 말(proseuvcomai 프로슈코마이)은 처음 기도하시는 것이 아니라 동분사 현재 형으로 예수께서 하나님께 지속적으로 꾸준히 기도하시고 계심을 뜻합니다.

 그러므로 회개의 세례가 필요없으신 예수님은 회개가 아니라 세례를 받으시면서 기도를 하셨을 때 하나님이 세 가지 형태로 응답하셨습니다.

 1) 하늘이 열렸다고 하였습니다. 

 2) 성령이 비둘기 같은 형체로 예수님 위에 임하셨습니다. 

 3) 예수님을 가리켜 ‘너는 내 사랑하는 아들이라 내가 너를 기뻐하노라’라는 하나님의 음성이 들렸습니다.

(눅 3:22) “성령이 비둘기 같은 형체로 그의 위에 강림하시더니 하늘로부터 소리가 나기를 너는 내 사랑하는 아들이라 내가 너를 기뻐하노라 하시니라”

 이는 하나님께서 예수 그리스도가 하나님 나라를 시작하시기 위해서 세상에 오신 구세주요 하나님의 아들이심을 만천하에 공포하신 인증 샷이었습니다. 

 세례 요한도 그 신비로운 상황을 목격하고서 비로소 예수님이 메시아이심을 확인하게 된 것입니다. 

 바로 그 예수님이 세상에 오심으로 온 세상에 큰 기쁨의 좋은 소식인 하나님의 나라가 시작된 것입니다.

(막 1:1)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의 시작이라” 

 여기서 ‘시작’이라는 말(ajrchv, 아르케)은  창 1:1 ‘태초에 하나님이 천지를 창조하시니라’는 말씀에서 ‘태초’라는 히브리어를 신약 성경을 기록한 헬라어로 번역한 70인 성경에서 오늘 성경 말씀과 똑같은 단어인 ‘시작(ajrchv, 아르케)’이라는 단어로 번역을 하였습니다.

 지금까지 사단과의 싸움에서 패배함으로 사람들을 고통과 파멸에 빠뜨린 첫 아담의 실패와, 하나님이 왕으로 통치하시기 원하셨던 이스라엘 나라의 범죄와 멸망과는 본질적으로 다른 둘째 아담의 승리, 음부의 권세가 이기지 못하리라고 하신 영원한 승리의 나라를 세상에 세우시는 일이 시작되었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창 1:1의 ‘시작’이 첫 창조라면, 오늘 막 1:1의 ‘시작’은 재창조입니다. 인간의 죄로 말미암아 망가진 세상을 재창조하실 수 있는 분은 인간이 범죄하기 전 아름다운 세상을 창조하셨던 창조자의 능력과 지혜로만 가능한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가 바로 처음 창조인 천지와 만물을 창조하실 때 말씀으로 존재하시고 말씀으로 역사하신 그 분이라고 성경이 가르치고 있습니다.

 (요 1:1) “태초에 말씀이 계시니라 이 말씀이 하나님과 함께 계셨으니 이 말씀은 곧 하나님이시니라”  (히 1:10) “또 주여 태초에 주께서 땅의 기초를 두셨으며 하늘도 주의 손으로 지으신 바라”

 오늘 성경은 바로 그 창조자가 이 세상에 오셔서 하나님의 나라, 하나님이 통치하시는 나라를 세우시기 위해 세상에 오셨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가 인간의 범죄로 말미암아 사단이 접수한 세상을 포기하지 않으시고 하나님이 통치하시는 영원한 하나님의 나라를 시작하시기 위해 이 세상에 오셨다는 소식은 세상에서 그 어떤 소식보다 기쁘고 좋은 소식입니다.

 그래서 천사들이 베들레헴 들판에서 양을 치는 목자들에게 찾아와서 강보에 싸여 구유에 누인 아기의 탄생이 하늘에 계신 하나님께는 영광이요 땅에서는 기뻐하심을 입은 사람들 중에 평화요, 온 세상에 미칠 큰 기쁨의 좋은 소식이라고 한 것입니다.

(눅 2:10) “천사가 이르되 무서워하지 말라 보라 내가 온 백성에게 미칠 큰 기쁨의 좋은 소식을 너희에게 전하노라”

  그 큰 기쁨의 좋은 소식을 오늘 성경에서는 한 단어로 표현한 것이 바로 ‘복음’이라는 말입니다.

 (막 1:1)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의 시작이라 

 여기서 ‘복음’이라는 말은 무슨 소리가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가 복의 근원이시기 때문에 그 ‘예수님의 오심과 사역과 죽으심과 장사됨과 부활’이라는 전 생애가 세상의 모든 백성들에게는 구원의 축복이 되기 때문에 예수 그리스도의 생애를 기록한 성경을 가리켜 ‘복음서’라고 하는 것입니다.

 

2. 시험에서 승리하신 예수

 예수님이 오시기 전까지 세상은 온통 어두움의 세력인 무신론과 다신론이 판을 치고 있었습니다. 그 가운데 황제숭배를 강요하는 로마 제국이 대표적인 어두움의 세력이었고 심지어 예루살렘 성전의 주인행세를 하는 종교 지도자들조차 시기와 탐욕과 거짓과 심지어 살기가 등등해 있었습니다.

 더구나 힘이 없는 백성들은 귀신이 걸려 이성을 잃어버리고 자신과 가족들을 고통스럽게 하고 수많은 무리들은 온갖 질병으로 고통을 당하고 대부분의 사람들이 먹을 것에 주리고 있었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정치적으로는 로마의 압제 하에서 황제숭배의 강요에 굴복을 하고 경제적으로 착취를 당하고 종교적으로는 형식과 율법에 노예가 되어 고통과 죽음의 굴레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었습니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그것이 인간이 벗어날 수 없는 숙명이라고 생각을 하면서 거기서 벗어날 생각조차 하지 않고 체념 상태에 있었습니다. 

 그들의 모습은 지난 날 이스라엘 백성들이 애굽에서 바로왕의 압제아래 온갖 고난을 당하던 노예 시절과 다름이 없었습니다. 

 예수께서 세상에 오신 것은 그와 같은 압제를 당하고 있는 이스라엘 백성들을 출애굽시키신 것처럼 자유와 해방과 구원을 주시기 위함이었습니다.

(사 61:1) “주 여호와의 영이 내게 내리셨으니 이는 여호와께서 내게 기름을 부으사 가난한 자에게 아름다운 소식을 전하게 하려 하심이라 나를 보내사 마음이 상한 자를 고치며 포로된 자에게 자유를, 갇힌 자에게 놓임을 선포하며”

 만일 예수님이 그와 같은 자유와 해방을 주시기 위해 세상에 오신 큰 기쁨의 좋은 소식이시라면, 인간에게서 그와 같은 기쁨과 자유를 빼앗고, 가난과 질병과 상함과 갇힘과 죽음아래 종노릇하게 하는 어두움의 권세와 싸워서 승리하셔야만 합니다.

 왜냐하면 인류의 조상 첫 아담은 그 싸움에서 패배를 하므로 온 인류를 죄와 고통과 죽음에 빠뜨렸기 때문입니다. 


3. 사탄의 시험에서 승리하심

 예수님께서 요단강에서 세례를 받으실 때 성령이 비둘기같이 예수님의 머리 위에 임하셨다면 오늘 성경에서는 성령께서 예수님을 광야로 몰아내어 사십일 동안 사단에게 시험을 받으시게 하였다고 하였습니다.

 그 광야는 과거에 이스라엘 백성들이 사십년 동안 경험했던 광야와도 같이 황량하고 낮에는 덥고 밤에는 한기가 들고 들짐승들이 우글 거릴 뿐 아니라 사탄이 강력하게 예수님을 시험하는 장소였습니다.

 (막 1:12) “성령이 곧 예수를 광야로 몰아내신지라” (막 1:13) “광야에서 사십 일을 계시면서 사탄에게 시험을 받으시며 들짐승과 함께 계시니 천사들이 수종들더라”

 여기서  ‘몰아내신다’는 말(ejkbavllw, 에크발로)을 마 4:1, 눅 4:1 에서는 ‘이끌리어’ 라는 단어(ajnavgw, 아나고)를 썼는데 그 뜻은 ‘인도하다, 데리고 가다’라는 뜻으로 성령과 더불어 광야로 가셔서 사탄의 시험을 다 이기시고 승리하셨습니다.

 예수님보다 여섯 달 먼저 세상에 태어나서 광야에서 뭍사람들에게 ‘회개하라 천국이 가까웠느니라’고 외치며 회개의 세례를 베풀어 예수님이 오시는 길을 평탄하게 만든 세례 요한이 헤롯왕의 미움을 받아 감옥에 갇히게 되자 예수님은 하나님의 복음을 이렇게 전파하셨습니다.

(막 1:15) “이르시되 때가 찼고 하나님의 나라가 가까이 왔으니 회개하고 복음을 믿으라 하시더라”

  그 하나님의 나라는 이전의 세상 나라처럼 정치나 군사나 경제의 힘으로 세우는 나라가 아니라 첫 아담의 패배로 말미암아 사탄이 왕노릇하는 세상에서 죄와 사망의 노예가 된 하나님의 백성들을 출애굽시켜 새롭게 건설되는 영원한 나라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하나님 나라의 회복을 위해 ‘마지막 아담’(고전 15:45)으로 세상에 오셨으며 첫 아담을 넘어뜨린 사탄의 세 가지 시험을 다 이기신 승리의 왕이셨습니다.

 그 하나님 나라는 정치나 군사의 힘으로 세우는 세상 나라가 아니라 범죄한 첫 아담의 죄로 말미암아 사단의 권세아래 죄와 사망에 종노릇하는 인생들을 구원하여 하나님의 나라를 세우시기 위해 세상에 오신 왕이심을 입증하셨습니다.

 그 결과 예수님이 어디에서 하나님 나라의 복음을 전하실 때마다 그동안 사람들을 괴롭혔던 더러운 귀신들을 내 쫓으시고 각 종 질병에서 고통당하는 사람들을 고치심으로 그들을 질병과 귀신의 권세에서 자유와 해방을 주시는 영적인 출애굽 운동을 하셨습니다.

 그래서 오늘 성경에서 ‘귀신’이라는 말이 막 1:23, 26, 27,32,34,39 에 반복되고 있으며 예수님은 사람들을 괴롭히는 더러운 귀신들을 내쫓으시고 각종 질병에 시달리는 사람들을 고치심으로 자유와 해방을 주시는 영적인 출애굽을 통해서 하나님 나라가 이 땅위에 세우시는 일을 시작하셨습니다.

(막 1:26) “더러운 귀신이 그 사람에게 경련을 일으키고 큰 소리를 지르며 나오는지라” (막 1:27) “다 놀라 서로 물어 이르되 이는 어찜이냐 권위 있는 새 교훈이로다 더러운 귀신들에게 명한즉 순종하는도다 하더라” (막 1:34) “예수께서 각종 병이 든 많은 사람을 고치시며 많은 귀신을 내쫓으시되 귀신이 자기를 알므로 그 말하는 것을 허락하지 아니하시니라”

 예수님은 가시는 곳마다 사람들에게 하나님 나라를 가르치셨고, 사람들을 사탄의 권세에서 구원하여 자유와 해방을 주시는 영적인 출애굽을 통해서 점차 하나님의 나라가 확장되게 하셨습니다.

 그러므로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 전파와 치유와 축사의 사역은 그동안 사탄의 권세 아래 죄와 질병에서 고통당하는 인생들에게 큰 기쁨의 좋은 소식이었습니다. 


 4. 하나님 나라의 동역자들

 예수께서 얼마든지 당신 혼자의 힘으로 하나님 나라를 건설하실 수 있음에도 불구하고 하나님 나라는 왕이 독재하는 세상 나라와 달리 하나님의 백성들이 함께 더불어 세우는 나라가 되게 하기 위해서 예수께서 제일 먼저 하신 일은 하나님의 나라의 일꾼인 제자들을 세우시고 훈련시키시는 제자사역이었습니다.

(막 1:16) “갈릴리 해변으로 지나가시다가 시몬과 그 형제 안드레가 바다에 그물 던지는 것을 보시니 그들은 어부라” (막 1:17) “예수께서 이르시되 나를 따라오라 내가 너희로 사람을 낚는 어부가 되게 하리라 하시니”

(막 1:19) “조금 더 가시다가 세베대의 아들 야고보와 그 형제 요한을 보시니 그들도 배에 있어 그물을 깁는데” (막 1:20) “곧 부르시니 그 아버지 세베대를 품꾼들과 함께 배에 버려 두고 예수를 따라가니라”

 이후로 예수님은 항상 그 제자들과 더불어 하나님 나라를 어떻게 회복시켜 나가는지를 가르치시고 본보이시고 훈련시키기 위해서 항상 제자들을 대동하셨습니다.

(막 1:21) “그들이 가버나움에 들어가니라 예수께서 곧 안식일에 회당에 들어가 가르치시매”

 예수님은 그 제자들과 더불어 사람들의 신분이나 장소를 가리지 않으시고 사단의 권세아래 고통 당하는 사람들이 있는 곳에 직접 찾아가셔서 고통당하는 사람들에게 하나님 나라의 자유와 기쁨을 누리게 하셨습니다.

 때로는 회당에 들어가셔서 더러운 귀신들린 사람들을 고치시고(23절), 때로는 제자 시몬과 안드레의 집에 들어가셔서 시몬 베드로의 장모를 열병을 떠나가게 하셨고(31절), 때로는 가까운 마을에 들어가셔서 전도하시고(38절, 때로는 온 갈릴리로 다니시며 귀신들을 내 쫓으시고(39절), 심지어 한센씨 병자를 불쌍히 여기시고 손을 내밀어 깨끗이 고쳐 주심으로(41 ,42절) 선지자 이사야가 예언하신 하나님 나라의 왕이 바로 예수 그리스도이심을 증거하셨습니다.

 예수께서 우리와 똑같은 육체를 입고 세상에 오셔서 그 엄청난 사역들을 하실 때 얼마나 힘이 드셨을까요? 얼마나 바쁘셨을까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예수님은 그 사역을 하시는 동안 소홀히 하시지 않으신 것 한 가지가 있는데 그것이 바로 기도하시는 일이었습니다.

(막 1:35) “새벽 아직도 밝기 전에 예수께서 일어나 나가 한적한 곳으로 가사 거기서 기도하시더니”

  여기서 ‘기도하시더니’라는 말(proseuvcomai, 프로슈코마이)은 ‘을 향하여 라는 말과 기도하다는 두 말의 합성어로 된 미완료 동사로 예수님은 어쩌다 한번만 새벽기도를 하신 것이 아니라 날마다 기도를 계속하셨음을 뜻하는 말입니다.

 그래서 오늘의 교회가 그 예수님을 본받을 새벽 기도를 강조하고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나라는 새벽기도와 더불어 회복되어진다는 것을 잊지 말아야 하겠습니다.

 

 결 론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오늘부터 시작되는 마가복음 캠페인을 통해  막 1:1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의 시작이라” 는 말씀처럼 복된 소식이 시작되었습니다.

 우리의 지난날을 돌이켜 보면 나도 모르는 사이에, 나도 원치 않는 원망과 불평과 미움과 시기와 갈등이 가득한 삶을 살아오지 않았습니까? 그 이유가 무엇일까요? 그것은 공중 권세를 잡은 사탄이 나를 붙들고 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나라의 왕이신 하나님께서 금번 마가복음 캠페인을 허락하셨습니다. 이제 우리는 하나님의 나라에 대해서 공부하는 시간이 아니라 첫 아담을 넘어뜨린 사탄과의 싸움에서 승리하신  마지막 아담이신 예수 그리스도가 우리의 마음과 가정과 우리 교회에 왕이 되어 하나님 나라를 회복시키시도록 자리를 마련해 드리는 기회가 되어야 합니다.  그것이 바로 회개입니다. 

 1) 회개는 하나님 나라의 왕이신 예수 그리스도께서 내 마음에 임하시도록 마음의 진입로 닦는 일입니다. 

 2) 회개는 내가 지금까지 하나님이 원치 않으시는 잘못 된 길에서 방향을 전환하는 것입니다. 

(눅 3:5) “모든 골짜기가 메워지고 모든 산과 작은 산이 낮아지고 굽은 것이 곧아지고 험한 길이 평탄하여질 것이요”

 그 골짜기가 절망입니다. 그 산이 교만입니다. 그 굽은 것이 교만입니다. 그 모든 것들을 깎고 메우고 똑바로 고치는 작업이 회개입니다. 그 회개가 전제되어야만 왕이신 주님이 우리의 마음과 우리의 가정과 우리의 교회에 임하셔서 하나님 나라를 회복시켜 주실 것입니다. 

 그러므로 악하고 음란한 불신앙의 세상을 살아오면서 광야와 같이 황폐해진 우리 마음을 평탄하게 하여 왕이신 주님이 우리의 마음과 가정과 교회에 임하셔서  자유와 해방과 치유를 통해서 우리의 마음과 우리의 가정과 우리 교회가 하나님의 나라가 회복되게 하는 시작이 되어야 합니다. 

 이를 위해서 우리가 마가복음 캠페인 기간에 하루도 빠짐없이 날마다, 새벽마다 할 수 있는 일, 반드시 해야만 하는 일은 말씀을 붙들고 성령을 의지하여 잘못 생각하고 잘못 말하고 잘못 행동했던 죄악들을 회개하는 일입니다. 

 우리가 그렇게 하기만 하면 오늘 성경 말씀처럼 하나님 나라의 왕이신 예수님이 우리의 마음과, 우리의 가정과, 우리 교회에 참 기쁨의 좋은 소식인 하나님 나라의 자유와 해방과 치유와 축사와 기쁨의 축복을 넘치도록 부어주시는 은혜가 우리 모두에게 충만히 임하게 하실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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