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교수의 개혁주의 설교학] (26)설교란 ‘하나의 작품’이다박태현 교수(총신대학교 설교학)
하나의 주제로, 완결된 작품돼야
설교란 ‘하나의 작품’이다. 설교는 반드시 하나의 주제만을 다루고, 동시에 완결된 작품이어야 한다.
본문 주해가 완결된 후 설교문 작성에 앞서 묵상을 통해 얻은 설교주제와 설교대지들을 중심으로 설교문 전체의 ‘개요’(outline)를 작성한다. 개요는 일종의 뼈대로서 건물의 설계도와 같다. 설교의 내용을 배열하고 배치하는 설계도이다. 설교문의 개요 작성은 설교자에게 최소한 세 가지의 유익을 준다. 개요 작성의 첫 번째 유익은 무엇보다도 설교 내용의 논리적 흐름을 시각적으로 보여줄 뿐만 아니라 설교주제의 통일성을 확보하도록 도움을 준다. 대지들은 일정한 논리적 흐름에 따라 배열되어야 한다. 그리고 그 흐름은 내용상 점차 심화되어 가는 것이 좋다. 마치 양파 껍질을 한 꺼풀씩 벗겨 하얀 속살을 드러내듯 설교는 점점 더 중심 내용을 향해 심화되는 것이 좋다. 설교의 개요는 각각의 대지들이 지닌 “보석들”을 논리적으로 일관되게 하나의 실로 꿰어서 완전한 보석 목걸이로 만드는 것이다.
개요 작성의 두 번째 유익은 설교의 전개 구조를 한 눈에 보여줌으로써 각 대지들의 균형을 점검할 수 있게 해 준다. 주해나 적용에 관련된 정보들이 모자란 부분은 보충하여 균형을 맞추고, 과잉된 부분은 과감하게 잘라내는 용기가 필요하다. 균형 잡힌 대지들은 설교 전체를 떠받치는 굳세고 효과적인 기둥들이다. 건물의 기둥들 가운데 하나가 유난히 크거나 작다면 건물은 균형은 깨져 비틀어지고 불안하게 된다.
개요 작성의 세 번째 유익은 설교자로 하여금 대지들을 적절하게 배열하도록 도움을 준다. 각각의 대지들은 서로 배타적이어야 한다. 하나의 대지는 자신만의 독특한 내용을 담고 있어야 한다. 다른 대지들과 겹치는 내용을 담아서는 안 된다. 내용이 중복되면, 청중들은 설교가 나아가지 못하고 제자리에서 맴돈다고 느끼게 된다. 설교자가 중언부언한다고 여기게 된다. 동시에 대지들은 설교주제에 종속되어야 하며 주제로부터 파생된 것이어야 한다. 주제와 연관 없는 대지들이 등장하면 “한 지붕 세 가족”이 되기 십상이다. 설교란 다이아몬드를 한 면씩 찬찬히 바라보는 보석상처럼 각 측면이 지닌 독특성과 아름다움을 소개하는 것이다.
설교에서의 서론과 결론은 매우 중요하다. 마치 비행기가 이륙하고 착륙하는 것처럼 중대한 순간이다. 항공기 안전사고는 주로 이착륙 시에 발생한다. 따라서 설교자는 서론과 결론에 각별한 주의가 필요하다. 서론은 청중들로 하여금 설교를 주의 깊게 듣도록 이끄는 역할을 한다. 따라서 서론은 청중들에게 전할 메시지의 ‘맛보기’를 보여주는 것이다. 서론은 영적 식탁의 식욕을 돋구는 ‘전채요리’(appetizer)이다. 서론은 주제에 대한 짤막한 힌트를 주는 오리엔테이션이다. 따라서 서론은 설교의 주제를 짤막하게 소개하는 동시에 청중들의 삶과 연관된 어떤 연결고리를 가져야 한다. 서론은 반드시 서재에서 미리 준비되어야 한다. 설교자는 원고를 보지 않은 채 청중들과 눈을 맞추며 자연스럽게 이야기할 수 있도록 서론을 충분하게 숙지해야 한다.
설교자는 이유야 어찌되었든, 설교를 충분히 준비하지 못했더라도, 설교를 변명으로 시작하지 말아야 한다. 자기 나름의 변명을 함으로써 설교자는 청중들의 이해를 얻으려 하지만, 기껏해야 동정을 얻을 뿐이다. 또한 설교자는 본문 혹은 주제와 상관없는 무익한 이야기로 시작하지 말아야 한다. “오늘 내게 주실 하나님의 말씀이 무엇일까?” 하는 기대를 갖고 나아온 성도의 기대감을 희석시키지 말아야 한다. 때때로 설교의 첫 시작을 서먹서먹한 분위기를 풀기 위해 유머로써 소위 ‘아이스 브레이킹’(Ice Breaking)을 시도하는 설교자가 있는데, 이것은 설교와 예배에 대한 올바른 신학의 부재를 보여준다. 예배는 거룩하신 하나님께 드리는 언약 공동체의 엄숙한 예식이요, 설교는 구원을 위한 하나님의 말씀 선포다. 그리고 실제에 있어서도 설교자의 유머는 삶의 깊은 고통과 한숨을 안고 나아온 성도를 배려하지 못한 몰지각한 처사이기도 하다.
서론은 짧게 하는 것이 유익하다. 서론을 장황하게 늘어놓는 설교자에 대한 불평이 있다. “그분은 식탁을 까는 데 너무나 오랜 시간을 소비하고 있어서 식욕이 그만 가셔 버렸다.” 스펄전 역시 “조그만 집을 지으면서 현관을 크게 만든다는 것은 우스꽝스러운 일이다”라고 꼬집어 지적하였다. 또한 서론은 겸손해야 한다. 서론은 본론에서 줄 수 있는 것보다 더 크고 거창한 것 혹은 지나치게 많은 것을 약속해서는 안 된다. 설교자가 서론에서 제시한 만큼 필요를 충족시켜 주지 못할 때 회중은 속았다는 느낌을 지울 수가 없기 때문이다. 따라서 서론은 소박한 어휘 선택과 절제된 감정으로 시작해야 한다. 그래야 설교의 클라이맥스인 결론을 위한 여지를 남겨두게 되고, 용두사미가 되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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