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교수의 개혁주의 설교학] (28)예화는 설교의 ‘창문’이다박태현 교수(총신대학교 설교학)
소박하게 등장, 소리없이 퇴장해야
예화는 설교의 주제를 선명하게 설명하거나 효과적으로 적용하는 중요한 기능을 갖고 있다. 예화는 기억력을 도우며, 감정을 뜨겁게 하며, 필요를 깨닫게 하고, 주의를 집중시키고, 화자와 청자 사이의 친밀감을 증진시켜 준다.
‘예화(illustration)’란 그 어원에 따르면 어떤 주제에 ‘빛(lux)’을 비추어 선명하게 이해하도록 돕고, ‘예증하는(illustrate)’ 기능을 갖는다. 마치 ‘집중광선(spotlight)과 같이 자신은 드러내지 않으면서 비추는 대상을 밝히 드러내는 것이다. 따라서 예화는 반드시 주의 깊게 사용되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예화가 진리를 비추기 위한 시녀의 자리에서 일어나 여왕의 왕좌에 앉기 십상이다. 현명한 설교자는 해돈 로빈슨의 조언에 언제나 귀를 기울인다. “예화는 그 이야기 자체에 주의를 집중시키지 않고 설교 주제에 회중의 주의를 집중시켜 줄 때만 진리를 위한 봉사가 된다.” 이런 맥락에서 스펄전 역시 예화가 너무 두드러져서는 안 된다고 경고한다. 왜냐하면 예화는 그 자체를 보여주는 것이 아니라, 그것을 통해서 회중들이 성경의 진리를 보도록 하는데 그 목적이 있기 때문이다.
현대 설교학자인 데이빗 버트릭(David Buttrick)은 직유나 은유 등의 묘사를 통한 예증과 예화는 최소한 세 가지의 조건을 만족시켜야 설교에서 사용될 수 있다고 지적한다. (1)예화는 그 개념에 있어서 설교 내용의 아이디어와 연관된 분명한 유추가 있어야 한다. (2)예화는 그 형태에 있어서 설교 내용의 구조와 병행을 이루어야 한다. (3)예화는 그 성격에 있어서 반드시 설교의 내용에 ‘적절해야’ 한다. 즉 심각하고 거대하며 비중 있는 개념을 얄팍하거나 사소한 감상적 예화로 짝을 이루어서는 안 된다.
여기에 한 가지를 덧붙이자면, 예화는 설교의 흐름 속에 적합해야 한다. 예화 자체가 너무 두드러져서 설교의 흐름을 왜곡한다면 좋은 예화가 아니다. 예화는 성경의 진리를 돋보이는 동시에 자신은 쉽게 잊혀야하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설교자는 설교의 예화를 어디에서 얻을 수 있는가? 일차적으로 성경이 가장 명백한 예화의 원천이다. 성경은 이스라엘과 여러 민족들을 향한 하나님의 구속 역사를 담고 있으며, 인간의 다양한 삶의 경험을 보여주고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설교자는 자신의 삶의 경험에서, 우리 주변의 일상생활에서, TV, 신문, 인터넷, 독서 등 각종 미디어를 통해서 예화를 수집할 수 있다. 영적 민감성을 지닌 설교자의 눈에 비친 세상은 ‘하나님의 그림책’이다.
그렇다면 예화를 효과적으로 사용하기 위한 설교자의 지혜는 무엇인가? 첫째, 예화는 그 성격상 회중들의 삶에 친숙한 것이어야 한다. 예수님은 일상생활의 친숙한 예화로서 천국의 진리를 소개하셨다. 동시에 친숙한 예화는 반드시 성경의 진리와 일치되어야 한다. 예화가 성경의 진리를 비추어주지 못하고 단순히 이야기로만 그치게 된다면 오히려 하나님의 말씀을 가리고 방해하기 때문이다.
둘째, 예화는 실생활에서 발견된 신선한 것이어야 한다. 예화집에 기록된 많은 실례들은 냉동식품과도 같다. 딱딱하게 굳어진 예화요, 생명력이 없는 차가운 것들이다.
셋째, 설교자의 개인적 경험은 신선할 뿐만 아니라 효과적인 실례이기도 하다. 그러나 설교자가 무엇을 경험했느냐 하는 것보다 그 경험을 통해 성경의 어떤 진리를 발견했느냐가 더욱 중요하다. 자칫 설교자 자신이 주인공으로 전면에 부각될 수 있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설교자가 자신의 번지점프 경험을 이야기할 때 회중들은 그 스릴 넘치는 번지점프와 설교자의 대단한 용기에 압도되어 번지점프 경험이 주는 교훈과 진리(예를 들어, 안전장치의 중요성)는 뒷전으로 밀려나고 만다. 설교가 끝난 후 회중들은 번지 점프를 이야기한 설교자의 의도와는 달리, “우리 목사님은 번지점프를 하실 정도로 용기가 대단하셔!”라는 강한 인상만을 회중들의 기억 속에 남겨 놓게 된다.
넷째, 예화는 언제나 정확한 사실에 근거해야 한다. 부정확한 이야기는 설교자의 신뢰도만 떨어뜨리는 역효과를 초래한다. 설교자는 무엇보다도 정직해야 한다. 토마스 롱(Thomas Long)은 단호하게 말한다. “우리는 설교에서 많은 결함을 가질 수 있다. 별로 재미없고 제대로 조직이 안 되고 또 약간 실수할 수도 있다. 이 모든 결함은 용서받을 수 있다. 그러나 복음을 전하는 설교자가 용서받지 못할 죄는 바로 거짓말하는 것이다.”
마지막으로, 너무 많은 예화는 회중으로 하여금 설교자가 정말 진리만을 선포하는지 의심을 갖게 한다. 여기서 스펄전의 조언에 다시금 귀를 기울여 보자. “창문이 집의 핵심이 아니듯이, 설교에서도 예화가 핵심이 아니다. 따라서 예화가 지나치게 많아서는 안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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