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교수의 개혁주의 설교학] (32) ‘아’ 아르고 ‘어’ 다르다박태현 교수(총신대학교 설교학)
설교자, 소리에도 주의 기울여야
말로 하는 의사소통은 주로 말하고자 하는 내용의 전달에 중점을 두기 때문에 말의 전달 방식이 갖는 다양한 면들을 흔히 간과하기 쉽다. “같은 말이라도 ‘아’ 다르고 ‘어’ 다르다”라는 속담에서 보듯이, 말의 어감이 전달하는 내용까지 결정짓는다. 사실 말하는 문맥과 말하는 방식에 따라 말하고자 하는 내용마저 변하는 것이다. 예를 들어, 두 사람이 “이야기하다”라는 것과 “쑥덕대다”라는 말은 전혀 다른 감정을 표현한 것이다.
게다가 설교자는 말의 ‘소리’를 내용에 따라 바르고 알맞게 사용하는 법을 알아야 한다. 제이 아담스(Jay E. Adams)의 지적은 참으로 적절하다. “소리! 우리가 감각들에다 호소할 때 소리가 얼마나 중요한지 모른다. 음률의 고저, 음의 속도, 음질(또는 음색), 음량 등 이 모든 요소들은 참으로 중요한 것들이다. 더욱이 어떤 때는 말보다 소리가 더 중요할 때도 있다.”
내용에 따라 소리를 내는 방식이 조절되어야 한다. 음의 고저와 속도는 감정의 흥분과 가라앉음, 근육의 긴장 및 이완과 깊이 연관되고, 음질이나 음색은 말하는 내용에 적합해야 한다. 그리고 이러한 소리는 무엇보다도 설교자의 의식적인 발현이라기보다는 마음 상태의 자연스런 표출이어야 한다. 따라서 설교자는 의미를 전달하는 말의 내용만 아니라 말의 전달 방식인 소리에도 주의를 기울여야 한다.
첫째, 설교자가 단어나 문장을 바르게 말하기 위해서는 발성에 가장 중요한 복식호흡의 훈련이 필요하다. 복식호흡은 깊은 목소리로 설교할 수 있게 도와준다. 목에서 나오는 얕은 목소리가 아니라 배에서 나오는 깊은 목소리로 설교하는 것이 좋다. 그래야 설교자는 신체적 피로를 낮추고 회중들도 듣기에 편하다.
둘째, 설교자의 성대는 복음을 전하기 위한 필수 기관이다. 평생 복음을 전해야 할 도구인 성대를 함부로 사용하면 안 된다. 우리 선배 목회자들은 밤새워 철야기도와 산기도로 목이 쉬도록 기도하였다. 비록 성대가 망가진다 해도 하나님의 은혜로 목회하기를 선호했던 것이다. 그러나 아쉽게도 성대가 망가져 목소리가 탁해지거나 만성 후두염으로 고생한 목회자들이 적지 않다. 이제는 하나님의 은혜도 놓치지 않으면서 지혜롭게 성대를 사용하는 법을 배울 때가 되었다.
필자가 유학할 때 설교연습 시간에는 설교학 교수와 더불어 언어치료사(logopedist)가 함께 참관하여 학생 설교자의 잘못된 발음과 발성을 교정해 주었다. 언어치료사는 단지 수업시간만 아니라 과외로 일주일에 1시간씩 학생들의 발음 연습과 발성 습관을 지도해 주었다. 발음과 관련하여 가장 많은 주의를 주었던 것은 입술을 게으르게 움직이지 말라는 충고였다. 정확하고 똑똑하게 발음하기 위해 의식적으로 입술을 부지런히 움직이라는 요구였다.
말 전달의 네 가지 요소는 속도, 고저, 음량, 휴지다. 이 가운데 속도와 휴지 두 가지만 살펴보자. 설교 전달에 있어서 말하기 속도는 중요하다. 설교는 긴장된 순간과 고조된 시점에 빠르게 말하는 것이 필요하다. 하지만 설교자의 말하기 속도가 너무 빠르면 발음이 부정확해지기 십상이다. 그리고 연로하신 분들에겐 빠른 템포의 설교는 긴장을 부추기고 숨이 차기 마련이다. 반대로 설교자의 말하기 속도가 너무 느리면 긴장감을 놓쳐 지루해지기 쉽거나, 갑갑하게 느껴지기까지 한다. 설교자의 말하기 속도에 비례하여 청중들이 설교를 듣는 행위가 상호 작용하기 때문이다.
전달에 있어서 휴지(pause)는 매우 중요하다. 휴지는 마치 음악의 쉼표 기호와 같다. 아름다운 멜로디는 끊임없이 이어지는 음표들의 연속이 아니라 적절한 자리에 반드시 쉼표가 있어야 한다. 쉼표 없는 음악이 없듯이, 휴지 없는 설교란 존재하지 않는다. 설교자가 강조한 것을 마음속으로 되새김질 할 시간적 여유, 혹은 설교자가 제시한 질문에 마음속으로 응답할 시간적 여유, 쉼표를 가져야 한다.
또한 설교할 때 불필요한 잡음이 들리지 않도록 의식적으로 훈련해야 한다. 습관적 잡음인 “아”, “어”, “에”, 들숨의 “쓰”, 입안의 “쩝”소리 등은 청중의 설교 청취를 방해하는 대표적인 잡음이다. 이런 잡음이 제거되면 청중들은 설교가 매우 깔끔하고 선명하다는 인상을 받는다.
무엇보다도 표준어를 사용하도록 노력해야 한다. 설교자는 사적인 자리가 아니라 공적인 자리에서 말하는 사람이기 때문이다. 물론 목회 환경에 따라 사투리가 허용될 수는 있으나, 표준어를 사용하는 것이 복음의 내용을 정확하게 전달하는데 유익하다.
속어, 은어, 비어는 하나님을 예배하는 성도들이 회집한 설교 강단에 어울리지 않는다. 특히 상스러운 욕설이나 저속한 농담은 강단에서 가당치도 않은 일이다. “누추함과 어리석은 말이나 희롱의 말이 마땅치 아니하니 오히려 감사하는 말을 하라”(엡 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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