믿음의 아내와 남편
(벧전 3:1-7)
(벧전 3:1) “아내들아 이와 같이 자기 남편에게 순종하라 이는 혹 말씀을 순종하지 않는 자라도 말로 말미암지 않고 그 아내의 행실로 말미암아 구원을 받게 하려 함이니” (벧전 3:2) “너희의 두려워하며 정결한 행실을 봄이라” (벧전 3:3) “너희의 단장은 머리를 꾸미고 금을 차고 아름다운 옷을 입는 외모로 하지 말고” (벧전 3:4) “오직 마음에 숨은 사람을 온유하고 안정한 심령의 썩지 아니할 것으로 하라 이는 하나님 앞에 값진 것이니라” (벧전 3:5) “전에 하나님께 소망을 두었던 거룩한 부녀들도 이와 같이 자기 남편에게 순종함으로 자기를 단장하였나니” (벧전 3:6) “사라가 아브라함을 주라 칭하여 순종한 것 같이 너희는 선을 행하고 아무 두려운 일에도 놀라지 아니하면 그의 딸이 된 것이니라” (벧전 3:7) “남편들아 이와 같이 지식을 따라 너희 아내와 동거하고 그를 더 연약한 그릇이요 또 생명의 은혜를 함께 이어받을 자로 알아 귀히 여기라 이는 너희 기도가 막히지 아니하게 하려 함이라
사람은 누구나 한평생 행복한 삶을 원합니다. 그러나 정작 한 평생 행복하기만 했노라고 말하는 사람은 별로 없습니다. 그 이유가 무엇일까요?
그것은 한평생 행복한 삶을 위해서는 최소한 세 가지 조건이 충족되어야 하는데 하나는 좋은 부모의 사랑을 받으며 자라가야 하고, 좋은 배필을 만나서 서로 사랑하며 살아가야 하고, 좋은 교회를 만나서 사랑의 하나님을 만나야 하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아무리 좋은 부모 슬하에서 사랑을 받으며 자라고 아무리 좋은 교회에서 하나님의 사랑을 받으며 신앙생활을 한다고 할지라도 신랑과 신부가 앞으로 살아가는 동안 얼마나 서로 사랑하는가 여하에 따라 두 사람의 평생의 행복이 좌우됩니다.
다시 말해서 아무리 좋은 가문에서 태어나 아무리 좋은 교회를 다닌다고 할지라도 부부가 얼마나 서로 사랑하는가의 여부에 따라 두 사람의 행복이 달라진다는 것입니다.
참으로 행복한 가정을 이루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먼저 온 가족 전체가 예수 그리스도를 마음에 구주로 모셔야 합니다.
그러나 그것만으로 가정의 행복이 저절로 이루어지는 것이 아닙니다. 성경은 부모 자식 부부 각자가 가정에서 마땅히 감당해야 할 책임과 의무에 대해서 상세하게 가르치고 있습니다. 우리는 다만 그 말씀대로 순종하기만 하면 됩니다.
사도 바울은 아내는 남편에게 복종하고 남편은 아내를 사랑하라고 말씀하였지만 구체적으로 어떻게 하는 것이 사랑하는 것이라고 시행 세칙은 말하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결혼을 하여 가정생활을 경험한 베드로 사도는 오늘 성경에서 아내가 남편을 위해 남편이 아내를 위해 무엇을 어떻게 하는 것이 사랑하는 것인지에 대해서 구체적으로 명시하고 있습니다.
1. 아내에게
여인의 아름다움에는 두 가지가 있습니다. 내면의 아름다움과 외면의 아름다움입니다. 예수 믿는 아내들은 내면의 아름다움을 잘 개발하라고 합니다. 즉 남편을 존경하고 존중하는 아름다움을 개발해야 합니다.
(벧전 3:3) “너희의 단장은 머리를 꾸미고 금을 차고 아름다운 옷을 입는 외모로 하지 말고” (벧전 3:4) “오직 마음에 숨은 사람을 온유하고 안정한 심령의 썩지 아니할 것으로 하라 이는 하나님 앞에 값진 것이니라”
성경은 그 아름다움을 가리켜 남편에게 ‘순종’하는 것이라고 오늘 성경에 말씀하고 있습니다.
(벧전 3:1) “아내들아 이와 같이 자기 남편에게 순종하라 이는 혹 말씀을 순종하지 않는 자라도 말로 말미암지 않고 그 아내의 행실로 말미암아 구원을 받게 하려 함이니” (벧전 3:2) “너희의 두려워하며 정결한 행실을 봄이라”
성경에서 남편이 먼저 나오지 않고 아내가 먼저 나온 것은 가정에서 아내의 역할이 그만큼 중요함을 뜻하는 것입니다.
믿음의 아내가 남편에게 순종해야 하는 이유가 다른데 있는 것이 아니라 불신의 남편을 구원하여 하나님의 뜻을 이루는 일에 부부가 서로 협력하게 하기 위함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아내가 믿음을 핑계로 남편과 각을 세우고 대립하는 가정을 통해서는 결코 하나님의 뜻이 도리어 훼방을 당하고 말 것입니다.
(고전 7:16) “아내 된 자여 네가 남편을 구원할는지 어찌 알 수 있으며 남편 된 자여 네가 네 아내를 구원할는지 어찌 알 수 있으리요”
그렇기 때문에 믿음을 먼저 가진 아내는 남편이 하나님의 뜻에 요셉처럼 겸손히 순종하는 사람으로 만들기 위한 제일 첫 단계가 바로 남편에게 순종하는 아내가 되는 일이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앞서간 믿음의 여인들의 공통점은 모두가 다 남편이 하나님의 뜻을 이루고자 할 때에 묵묵히 순종한 여인들이었습니다.
노아의 아내, 아브라함의 아내, 아므람의 아내, 요셉의 아내, 아굴라의 아내가 모두 다 남편에게 묵묵히 순종한 아내들이었습니다.
(벧전 3:5) “전에 하나님께 소망을 두었던 거룩한 부녀들도 이와 같이 자기 남편에게 순종함으로 자기를 단장하였나니” (벧전 3:6) “사라가 아브라함을 주라 칭하여 순종한 것 같이 너희는 선을 행하고 아무 두려운 일에도 놀라지 아니하면 그의 딸이 된 것이니라”
여기서 우리가 주목해야 할 것은 ‘단장’이라는 말(kosmevw, 코스메오)은 ‘정돈, 관리, 장식, 꾸밈, 공급, 존경이라는 뜻의 미완료 형입니다.
다시 말해서 아내가 남편에게 순종하는 것은 선천적인 성품처럼 저절로 되는 것이 아니라 마치 화장을 하는 것처럼 꾸미고 정돈하고 장식하는 지속적인 노력으로만 가능한 것임을 뜻하는 말입니다.
그러므로 오늘도 지혜로운 여인은 자기 남편이 예수 그리스도에게 복종하는 믿음의 남편으로 만들기 위해서 묵묵히 남편에게 복종하여 남편의 믿음을 키우는 믿음의 아내입니다.
그것은 남편이 신앙적이고 인격적으로 아내를 대할 때 뿐만 아니라 때로 부당한 요구 비인격적인 처사로 아내를 대할 때에도 분노대신 믿음으로 기도하면서 미소로 순종하는 여인이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설령 남편의 부당한 요구, 온당치 못한 대우를 신앙으로 잘 극복할 때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신앙은 성장할 수 있습니다.
이렇게 해서 연단된 믿음은 급작스럽게 닥친 시험일지라도 능히 이겨내며, 강인함을 갖추고 있어서 아무리 거칠고 험악한 시험일지라도 감당해 냅니다.
더욱이 믿지 않는 남편을 통한 신앙의 연단은 전투적인 여성이 아니라 도리어 온유하고 착하고 정결한 여성으로도 만든다는 것입니다.
남편에 대한 복종을 통해 아내들은 모든 사람들이 사랑하고 흠모할 만한 성품을 갖추게 됩니다. 그러한 아내는 언제가 때가 되면 결국 남편으로부터 칭찬과 인정함을 받게 되는 날이 반드시 오게 되는 것입니다.
(잠 31:28) “그의 자식들은 일어나 감사하며 그의 남편은 칭찬하기를” (잠 31:29) “덕행 있는 여자가 많으나 그대는 모든 여자보다 뛰어나다 하느니라” (잠 31:30) “고운 것도 거짓되고 아름다운 것도 헛되나 오직 여호와를 경외하는 여자는 칭찬을 받을 것이라”
그러므로 아내 된 자들은 성도의 참된 성품을 갖추고 인격적인 여자가 되어 고요하고 침묵하는 여성의 미덕을 나타내어야 할 것입니다. 물론 이 일을 굴욕적으로, 혹은 마지못해 해서는 안 됩니다. 남편을 사랑하고, 남편을 그리스도 앞에 인도한다는 마음으로 해야 합니다.
2. 남편에게
(벧전 3:7) “남편들아 이와 같이 지식을 따라 너희 아내와 동거하고 그를 더 연약한 그릇이요 또 생명의 은혜를 함께 이어받을 자로 알아 귀히 여기라 이는 너희 기도가 막히지 아니하게 하려 함이라 또는 그 아내를 더 연약한 그릇 같이 여겨 지식을 따라 동거하고”
여기서 우리가 주목해야 할 것은 (벧전 3:7) “남편들아 이와 같이 지식을 따라” 라는 말씀 가운데 ‘지식을 따라’ 라는 말(gnw'si", 그노시스)은 선천적이 아니라 탐구하고 노력하여 얻어지는 후천적인 지식을 뜻하는 말입니다.
흔히 소크라테스가 ‘네 자신을 알라’라고 말했다면 결혼한 남편에게 성경은 ‘네 아내를 알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1) 아내에 대한 지식
성경은 그와 같은 남편에게 무엇보다 제일 먼저 자기 아내가 어떤 사람인지를 바로 알아야 한다고 가르치고 있습니다.
대부분의 남편이 착각하고 있는 것 중에 하나는 자기 아내를 누구보다 자신이 가장 잘 알고 있다고 생각하는 것입니다. 내가 말을 하지 않지만 아내를 얼마나 사랑하는지 아내는 알고 있기 때문에 구태여 아내에게 사랑한다는 말을 할 필요가 없다고 착각하는 것입니다.
남편의 도리는 지금까지 우리가 사도 바울을 통해서 남편에게 아내를 사랑하라고만 가르쳤던 것과 달리 매우 실제적임을 알 수 있습니다.
그것은 일평생 독신으로 보낸 사도 바울과 달리 베드로 사도는 예수님을 따를 때 이미 장가 계셨다고 말한 것처럼 결혼한 사람으로 가정의 경험을 가진 사람이었기 때문에 이론이 아니라 경험에서 나온 말로 다른 성경에서는 아내를 이해하도록 노력하라고 번역하기도 하였습니다.
남편들은 결코 아내와 몇 년 동안 연애를 했기 때문에 아내를 이미 다 잘 알고 있다고 착각해서는 안 된다는 것입니다. 아내는 남편에게 평생 연구의 대상이라는 것입니다. 마치 양배추처럼 아무리 벗겨도 속이 다 드러나지 않는 것처럼 평생 연구의 대상이 아내라는 것입니다.
다시 말해서 지혜로운 믿음의 남편은 아내를 눈으로 보고 마음으로 느끼는 감정대로 단순하게 대하지 말고 아내에 대한 깊은 연구가 필요함을 뜻하는 것입니다.
가) 연약한 그릇
오늘 성경에서 ‘연약한 그릇’이라는 말(ajsqenhv", 아스데네스) )은 ‘강하지 않은, 힘이 없는, 약한’이라는 뜻으로 남편은 자기 아내가 마치 유리그릇처럼 민감하고 연약한 존재이기 때문에 상처를 받기 쉽다는 것을 먼저 알고 아내에 대해서 말하는 것이나 행동하는 것을 조심해야 합니다.
그러므로 성경이 아내에게 남편에 대한 순종을 명하였다고 할지라도 그것을 강요하는 식으로 하지 말고 자기 아내의 성격과 취미, 감정의 상태 등 자세한 것을 알고 그에 따라 적절하게 대응하므로 남편을 존경하고 사랑하는 마음으로 순종할 수 있게 하는 지혜로운 남편이 되어야 함을 뜻합니다.
그래서 남자들이아내의 생일이나 결혼기념일 등을 잘 기억하지 못하고 대충 대충 넘어가기 쉽지만 연약한 그릇인 아내는 정반대로 그러한 작은 일들을 꼭 기억하고 거기에 특별한 감정을 가지고 있음을 바로 아는 것이 아내에 대한 지식입니다.
마귀가 그것을 잘 알고 에덴동산에서 아담이 아니라 하와를 유혹한 것이며 대부분의 광고의 대상은 홈쇼핑의 고객이 대부분 여성인 경우가 많은 것은 함께 사는 부부이지만 아내는 남편과 전혀 다른 성품을 가졌기 때문입니다.
나) 생명의 귀히 여기라
남편이 아내에 대한 올바른 이해가 없을 때 쉽게 범하기 쉬운 과오 중에 하나가 아내를 무시하여 마음에 상처를 주는 것입니다. 수많은 남편들이 강한 척 하다가 넘어지고, 부러지고, 실패하고, 범죄케 되는 일이 비일비재합니다.
아내가 남편보다 연약하다고 하는 것은 결코 약점이 아니라 오히려 그것은 남편이 가지고 있지 못한 약점을 아내가 가지고 있는 소중한 장점이라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비근한 예를 들면 가정에서 자녀들을 가르치는 아내의 모습을 유심히 관찰해 보면 남편은 백번죽었다 깨어난다고 할지라도 아내처럼 참을성 있게 아이들을 가르치지 못할 것입니다. 보기만 해도 손이 들썩 거리는데 아내는 차분히 그것을 견디면서 몇 번이고 반복해서 자녀들을 바로 잡아주는 모습은 강한 척 하는 남편이 도저히 할 수 없는 아내만이 할 수 있는 자녀 교육 방법입니다.
그래서 아내는 남편을 사별한 후에도 재혼하지 않고 자녀들을 키워내지만 남편들은 아내를 사별한 후에 몇 년은 고사하고 몇 달이 못가서 재혼을 하게 되는 것은 결코강한 존재가 아님을 뜻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남편은 연약해 보이는 아내를 무시하거나 못마땅하게 여길 것이 아니라 도리어 귀하게 여기라고 성경은 말씀하고 있습니다.
오늘 성경에서 ‘귀히’라는 말(timhv 티메)은 ‘값, 가치, 명예, 존경’이라는 뜻이고, ‘여기라’는 말(ajponevmw, 아포네모))은 ‘할당하다, 존중하다, 분배하다’라는 뜻으로 아내가 남편에게 복종할 마음이 우러나올 정도로 아내의 존재에 대해서 지속적으로 가치를 부여하라는 현재 진행형입니다.
3. 그 이유
남편이 연약한 그릇인 아내를 귀히 여겨야 하는 이유는 아내는 이 세상으로 인연이 끝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 앞에 함께 가서 구원의 유업을 받을 자이기 때문입니다.
” (벧전 3:7) “남편들아 이와 같이 지식을 따라 너희 아내와 동거하고 그를 더 연약한 그릇이요 또 생명의 은혜를 함께 이어받을 자로 알아 귀히 여기라
그렇기 때문에 땅에서 아내와 함께 사는 동안 아내와 불화하게 되면 하나님께서 남편의 기도를 막으신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벧전 3:7) “이는 너희 기도가 막히지 아니하게 하려 함이라 또는 그 아내를 더 연약한 그릇 같이 여겨 지식을 따라 동거하고”
여기서 기도가 ‘막히지 아니하게’라는 말(ejgkovptw( 엥콮토))은 ‘방해하다, 훼방놓다’라는 뜻으로 남편이 아내를 사랑하지 않고 상처를 주게 되면 아무리 하나님께 유창하게 기도를 잘한다고 할지라도 그 기도가 하나님께 상달되지 못하도록 훼방하게 된다는 것입니다.
한번 곰곰이 생각해 보십시오. 우리의 신앙생활에서 기도가 응답되지 않고 막혀 버린다면 이 보다 더 심각한 문제가 또 무엇이겠는가 하는 것입니다.
기도가 막힌다는 것은 한마디로 표현해서 하나님과 교제가 단절된다는 것인데 예수께서 산상보훈에서도 에서도 같은 맥락을 말씀을 하셨습니다.
(마 5:24) “예물을 제단 앞에 두고 먼저 가서 형제와 화목하고 그 후에 와서 예물을 드리라”
이처럼 이웃과의 불화가 하나님과의 수직적인 영적 교제를 막는 장애물이 된다면 하물며 하나님께서 한 몸으로 짝지워 주신 가장 가까운 자기 아내와 불화하는 사람의 기도와 예배를 어찌 받으시겠습니까?
그러므로 오늘도 예배에 집중이 되지 않고 기도의 줄을 놓치고 형식적인 신앙 생활로 연명해가는 남편들은 그 원인이 어디에 있는지를 오늘 성경 말씀을 통해서 깨달아야 합니다.
교회만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짝지어 세운 믿음의 가정은 하나님이 함께하시는 작은 교회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로 하나님이 임재하시어 가족들 한 사람 한 사람을 보살피시고 기도에 귀를 기울이시는 곳임을 뜻하는 것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만일 남편이 자기 강함만을 앞세워 연약한 아내에게 상처를 주게 될 때 하나님께서 그 사람의 기도를 들어주시지 않겠다는 말씀은 곧 아내와 남편은 서로 다른 남이 아니라, 서로 같은 하나로 아내를 사랑하는 것이 곧 남편 자신을 사랑하는 것임을 뜻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아내 사랑하기를 자신을 사랑함과 같이 하라고 말씀하고 있는 것입니다.
(엡 5:28) “이와 같이 남편들도 자기 아내 사랑하기를 자기 자신과 같이 할지니 자기 아내를 사랑하는 자는 자기를 사랑하는 것이라”
또한 남편의 그 같은 아내에 대한 깊은 관심과 사랑으로 아내를 이해할 때 남편은 아내에게 감당할 수 없는 것을 요구하거나 일방적인 순종을 말하지는 않게 되기 때문입니다.
뿐만 아니라 남편이 아내를 그와 같이 사랑하는 것이 결과적으로 아내가 남편의 뜻에 복종하고 싶은 마음이 우러나오게 하는 원동력이 되는 상부상조의 관계가 되게 하는 힘이기도 합니다.
결 론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오늘은 가정의 날 부부주일입니다. 가정의 궁극적인 목적이 먹고 마시고 잠자는 일에 불편함이 없고 온 가족이 서로 사랑하며 행복하게 사는 것이라고 생각하기가 쉽습니다.
그러나 냉정하게 현실을 직시하게 되면 어느 가정을 막론하고 일평생 아무런 걱정과 염려가 없이 모든 식구가 행복하기만 한 가정이 과연 세상에 존재할까요? 물론 대답은 ‘아니요’ 일 것입니다.
어느 가정을 막론하고 첫 아담의 가정이 뿌린 죄의 씨앗이 자라서 산고와 노고 없이는 자녀들이 번성하고 경제적으로 안정된 삶을 누릴 수 없습니다. 그러다 보니 어느 가정을 막론하고 한 가지 이상의 염려와 근심꺼리가 없는 가정이 세상에 없을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가정도 예외가 아니기 때로 크고 작은 문제에 휘말리게 될e때 부부가 서로 갈등하거나 심지어 갈라서기도 하는 것입니다.
물론 부부가 한평생 행복하게 사는 것은 모든 사람들이 원하는 꿈과 희망이지만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그리스도인들조차 부부의 꿈이 고작 한 평생 서로 사랑하며 행복하게 사는 것이라면, 인생의 궁극적인 목적이나 존재이유가 불신자와 크게 다를 것이 없습니다.
왜냐하면 예수께서 말씀하신 그리스도인의 삶은 무엇을 먹을까 무엇을 마실까? 하는 생존에 연연하는 삶이 아니라, 그 보다 더 가치 있는 삶을 추구하는 삶을 살아야 합니다. 그것이 바로 먼저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는 삶입니다.
(마 6:33) “그런즉 너희는 먼저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라 그리하면 이 모든 것을 너희에게 더하시리라”
그러므로 오늘 성경 말씀처럼 부부간에는 그의 나라와 그 의를 이루는 가정이 되기 위해서 무엇보다 부부간에 상대방의 인격을 존중하는 풍토가 뿌리내려야 하며, 더 나아가 서로의 부족함을 비난하는 것이 아니라 서로 메꿔 주는 사랑의 수고가 끊이지 말아야 합니다. 물론 그것은 이론만으로 되는 것이 아니라 희생과 수고와 인내가 동반되어야 합니다.
아무리 부부간에 입술로 사랑의 고백할지라도 사랑의 수고가 뒤따르지 않는다면 그 사랑은 결국 그 사랑은 미움이 되고 마는 것입니다.
이제부터 우리 가정도 모세를 키운 아므람과 요게벳과 같이 부부가 믿음으로 무장하고, 예수 그리스도가 탄생하신 마리아와 요셉의 가정과 같이 부부가 서로 이해하고 배려하며, 사도 바울과 동역 한 아굴라와 브리스길라처럼 부부가 서로 한 마음이 되어 교회를 사랑하고, 복음을 전하는 하나님의 일꾼들을 섬기고, 하나님의 나라를 확장하기 위해 함께 협력하며 수고하는 신실한 믿음의 아내와 믿음의 남편이 되기를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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