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세의 후계자 여호수아 (수1:5~9)
이스라엘 백성들은 모세가 자기들을 이끌고 가나안까지 들어갈 줄로만 알았다. 모세는 그들에게 절대적인 지지를 받고 있었고, 그들의 영웅이었다. 그들은 모세에 의해 40년 동안 “길들여진” 모세의 사람들이었다.
그런데 하나님이 모세의 리더십을 여호수아에게 이양하도록 하셨다. 요단강 앞에서 모세에게 “너는 여기까지다”라고 선언하셨던 것이다.
그리고 40년 동안이나 모세의 ‘시종’으로 살아왔던 여호수아가 “하나님의 종”이 되었다. 그때 여호수아의 심정이 어떠했을까? 모세의 시종에서 벗어나 하나님의 위대한 종이 되게 된 것에 대해 기뻐했을까? 아니다. 그는 불안하고 두려운 가운데 있었다.
여호수아의 취임석상에서 하나님은 단 하나만 권면하셨다. 두려워하지 말라는 것이었다. 왜 무엇 때문에 여호수아가 두려워하고 있었던 것일까?
여호수아는 장군이었다. 전쟁에 능한 사람이었다. 전쟁을 두려워하는 사람이 아니었다. 그는 일찍이 가나안 정탐을 마치고 돌아와서 하나님께서 그 땅을 우리에게 주셨으니 당장 가나안으로 쳐들어가자고 했던 사람이다.
그는 하나님이 함께 하시기 때문에 가나안을 넉넉히 정복할 수 있으리라고 확신하고 있었던 사람이다.
여호수아가 8년 동안 정복한 성읍이 31개였다(수 12:7-24). 이들과의 전쟁 기록이 여호수아서에 나오는데, 이스라엘은 아이성 전투에서 하나님의 진노를 사서 한 번 패배한 것 외에는 전승을 거두었다.
여호수아가 가나안 정복에 대한 부담을 가지고 있었기 때문에 하나님이 두려워하지 말라고 하셨던 것이 아니라고 하는 것이다. 그러면 여호수아가 두려워하고 있었던 것이 무엇일까?
자신이 개척해서 대형교회, 그것도 보통 대형교회가 아니라 초대형 교회를 이룬 목사님이 은퇴하면서 그 교회 후임자로 간 목사님이 있다고 하자.
이런 교회의 경우 후임 목사가 와도 교인들에게는 여전히 전임목사가 그들의 목사로 남아있을 것이다. 후임 목사가 아무리 유능해도 전임 목사의 그늘에서 벗어나기가 쉽지 않을 것이다.
이것이 바로 모세와 여호수아의 관계였다. 더군다나 여호수아는 모세 밑에서 40년 동안 ‘시종’으로 있지 않았는가? 여호수아가 갖고 있었던 문제는 바로 이런 문제였다.
하나님은 이런 그의 심정을 헤아리시고, 그에게 모세에게 주었던 권위와 능력을 주시겠다고 하셨다. 여호수아를 모세처럼 만들어주시겠다고 하신 것이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그를 모세처럼 대하게 만들어주시겠다고 하신 것이다. 그러니 두려워하지 말라는 것이었다.
하나님께서 요단강을 기적적으로 건너가게 하셨다. 요단강을 건너는 기적을 체험하게 하신 이유가 무엇인가?
두 가지 이유가 나온다. 하나는 하나님이 어떤 분이신가를 보여주시기 위해서였다. 그리고 다른 이유는 여호수아를 위해서였다.
여호수아의 리더로서의 권위를 세워주시기 위해, 여호수아를 믿고 따르도록, 그가 하나님이 세우신 사람임을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확신시켜주시기 위해 요단강을 기적적으로 건너는 체험을 하게 하셨던 것이다.
새로 이스라엘의 리더가 된 여호수아에게 지금 무엇이 가장 필요한지 하나님은 알고 계셨던 것이다. 그래서 그를 높이기 위해 요단강이 갈라지는 기적을 여호수아를 통해서 하셨던 것이다.
여호수아가 모세의 뒤를 이어받게 되었을 때에 이스라엘 백성들도 그에게 두려워하지 말라고 하면서 이렇게 약속을 하고 있다.
“당신이 우리에게 명령하신 것은 우리가 다 행할 것이요 당신이 우리를 보내시는 곳에는 우리가 가리이다 우리는 범사에 모세에게 순종한 것 같이 당신에게 순종하려니와 오직 당신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모세와 함께 계시던 것 같이 당신과 함께 계시기를 원하나이다. 누구든지 당신의 명령을 거역하며 당신의 말씀을 순종하지 아니하는 자는 죽임을 당하리니 오직 강하고 담대하소서”(수 1:16-18).
이스라엘 백성들도 여호수아가 지금 무엇을 걱정하고 있는지 무엇을 두려워하고 있는지 잘 알고 있었다.
그래서 여호수아에게 그의 리더십을 인정하고 존중하고 그를 지도자로 섬기고 따를 테니 두려워하지 말라고 했던 것이다. 그것이 바로 여호수아가 백성들에게 가장 듣고 싶었던 말이 아니었겠는가?
우리교회의 현실이 아닐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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