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학연수과/백향목

교황청 이야기

미션(cmc) 2016. 12. 17. 20:42

교황청 이야기


로마 교황 중 알렉산더 6세(Pont 1492-1503)가 있다. 이 사람은 ‘스페인의 건달’로 불리는 가장 악명 높은 교황이었다. 그는 단 하루도 사제로 일한 적이 없는 사람이었지만 교황이었던 삼촌 칼릭스투스 덕에 추기경에 임명되어 교황청에 입성하였다. 알렉산더 6세는 추기경과 주교직위에 자신의 아들, 사위, 조카, 심지어는 자기의 정부까지도 요직에 앉히는 족벌주의(Nepotism)로 교황청을 운영했다.

1400년대 시작된 교황청의 족벌주의는 한 세기 이상 지속되었고 1692년에 만들어진 법에 의하여 교황은 딱 한 명의 친척만 추기경에 임명할 수 있다는 규정이 생기면서 감소되었다. 이렇게 신학도 안 한, 사제가 아닌 사람이 교황이 되면서 교황청은 ‘강도들의 천국’이 되고 있었다. 알렉산더 6세가 삼촌에게서 배운 일은 ‘협잡’이었다. 그가 한 일은 재산축재와 악행이었고 관심사는 매일 벌어지는 환락파티와 춤추는 창녀들을 따라잡는 놀이였다. 자신의 딸과 가진 수치스런 근친관계는 로마가 알고 있는 비밀이었다.

알렉산더 6세는 자신을 비판한 피렌체의 개혁자 사보나롤라도 화형시킨다. 또 면죄부를 팔면서 축재에 열을 올리고 있었다.

1503년 역사상 가장 후안무취였던 교황 알렉산더 6세는 정적의 손에 의해 피살되어 생을 마감하였다. 극심한 고통 속에서 피를 토하고 죽어 마치 중세의 죽음을 상징하는 모습이었다. 그의 장례식에는 가족을 빼고는 단 4명만 참석했다. 그의 시신은 성베르토 대성당 지하에 있는 교황들의 묘지에서 쫒겨나야 했다. 다음과 같은 참담한 추모사에서 그의 생애에 대한 평가를 보게 된다. ‘증오와 투쟁의 마음으로 살았고, 싸움과 대결과 살육을 멈추지 않았던 사람, 죽어서 오히려 모든 이를 기쁘게 한 그가 여기 누웠노라.’ 

1503년 9월 알렉산더 6세의 뒤를 이어 교황에 등극한 사람이 피우스 3세였다. 이 사람은 당시로서는 너무도 정상적인 사고를 가진 사람이었다. 로마시민들은 새 교황의 등극을 환영하면서 기대를 걸었다. 새 교황은 무너진 교황청, 사유화된 위기의 교황청을 바로 세우고자 알렉산더 6세가 임명한 부패한 귀족 추기경들을 축출하였다. 그러나 불행하게도 교황청 개혁은 피우스 3세의 의문사로 막을 내렸다. 그리고 율리우스 2세(Pont 1503-1513)가 새 교황이 되었다. 이 사람은 당시 동성연애에 대한 의혹을 받았던 인물이었다. 이렇게 종교개혁 전 교황청은 타락한 교황들이 만든 강도의 천국, 위기의 교황청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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