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492년은 스페인의 역사에서 세 가지의 중대한 사건이 일어났다.
첫 번째 사건이 ‘래콩퀴스타’(Reconguista)였다. 1492년 3월 이사벨라 여왕 부부는 무슬림 제국으로 781년부터 지속된 그라나다 왕국을 멸망시켰다. 스페인의 저항에 항복한 그라나다의 왕인 술탄 무함마드 12세는 세계에서 제일 아름답다는 알함브라 궁전을 남겨둔 채 아프리카로 건너가야 했다. 이것이 ‘재정복’이라 불리는 래콩퀴스타였다.
1492년의 두 번째 사건은 유대인의 추방과 이단 심문이었다. 700년 이상의 그라나다 왕국을 무너뜨린 이사벨라 부부는 알함브라 포고령을 내려 무슬림과 유대교도들에게 가톨릭의 개종을 명한다. 만일 이를 거부하면 추방을 당해야 했다. 당시 유대인 공동체는 회당을 세우고 일반 공동체와 대립각을 세웠으며 기독교를 이단시함은 물론이고 예수 그리스도를 마리아의 사생아로 가르치는 파렴치를 범하고 있었다. 기독교로 개종한 유대인과 무슬림 10만명은 스페인에서 거주했지만 이를 거역한 또 다른 10여만의 유대인과 무슬림들은 스페인 땅을 떠나 유랑의 길을 가야만 했다.
1492년의 세 번째 사건은 이사벨라 여왕의 후원 아래서 성취된 콜럼부스의 신대륙 탐험이었다. 이사벨라의 지휘 아래 이루어진 신대륙 발견은 스페인을 세계적 제국으로 성장시켰다. 그러나 이렇게 권력과 부를 한껏 누린 이사벨라 여왕은 예상치 못한 비련의 주인공이 된다. 그녀는 남편 페르디난드와의 사이에 여섯명의 자녀를 두었으나 말만 부부였지 실제로는 남남에 가까운 사이였다. 장녀 이사벨은 포루투갈의 국왕 알폰소에게 시집 갔으나 과부가 되었고 또다시 포루투갈의 미구엘 1세와 재혼했지만 아들 미구엘을 낳고서 세상을 떠났다. 미구엘은 포루투갈과 스페인의 상속자로 태어났으나 두 살때 사망하는 비운을 맞는다. 이사벨라의 차녀 후안나는 남편 필리프로부터 버림받고 우울증과 정신질환에 시달려 광녀라는 별명을 얻었고 1497년 장남 후안은 19살의 나이로 세상을 떠나 불효자가 되었다. 1501년 막내 딸 캐서린은 영국왕세자 아서에게 시집갔으나 반 년만에 죽고 헨리8세와 재혼하기까지 7년을 기다려야 했다.
환희와 야망의 역사를 이루었던 기품의 이사벨라였으나 1504년 노년을 우울하게 보내던 이사벨라는 세상을 등짐으로 비운의 생을 마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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