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독교가 그 뿌리요 열매였던 중세유럽에서 여성의 위상은 고대 헬라나 로마에 비해 크게 개선되고 있었다. 중세 여성은 독신과 결혼 중 선택의 기회가 있었다. 특히 독신을 선호하던 것이 중세의 여성 문화였다. 중세의 독신은 구원을 위한 큰 선행으로 받아들여졌다. 따라서 최고의 여성학자인 빙겐의 힐데가르트(St Hildegard.d 1174)는 독신의 가치를 홍보하였다. 그녀는 여성학자로 수사학, 철학, 음악, 의학, 식물학 등 전 분야에 석학으로 학문성과 영성으로 크게 인정받았던 당대의 최고 지성이었다. 독일 베르메르샤원에서 태어난 그녀는 1148년 빙겐에 수녀원을 세웠는데 당시 그의 나이는 50세였다. 교황 유니게우스3세와 독일황제 프리드리히 바바로사도 그녀에게 자문을 구할 만큼 당대에 인정받는 인물이었다. 여성의 강단이 금지된 당시에 순회 설교자였던 것은 특이한 기록으로 남아 있다.
중세가 여성의 위상이 상승된 이유 중 하나는 결혼이 성례전에 속했기 때문이다. 고대 세계에서 행해졌던 근친혼도 교회법에 의해 금지 되었기에 혼인 질서가 바로 잡히면서 여성들의 사회적 지위도 그만큼 개선된 것이었다. 당시 왕들의 결혼은 교황이 승인하였고 백성들의 결혼은 주교와 사제들이 관여하였다. 중세에서 결혼의 목적은 자손을 낳는 것이었다. 그러나 위생상황이 좋지 않던 당시 유아 사망률은 30%에 달했고 전체 아동의 절반은 5세를 넘기지 못하였다.
고대 세계의 혼인 서약은 신부의 아버지가 했는데 그 내용은 “내 딸을 그대에게 주노라”였다. 그러나 중세의 서약은 신랑 신부 상호서약으로 바뀌었다. 중세는 서약문에 복종이라는 단어가 항상 기재 되었다. 중세의 남편은 아내를 때릴 권리가 있었고 남편을 죽이면 주인을 죽인 반역죄로 간주 되었다. 당시 가정폭력은 심각한 것이었다. 고해 성사 때도 아내에 대한 폭력고백이 제일 많았던 것이 그 시절이었다. 가정 폭력이 얼마나 심각하였던지 “엄지손가락 규정”이라는 것이 공포된다. 아내를 때릴 때는 손과 발이 아닌 매를 사용해야 하고 매는 엄지손가락 두께 이하여야 한다는 것이었다. 중세에서 여성들은 대부분의 가정 열쇠를 소유했으나 남편들이 주지 않는 열쇠가 포도주광의 열쇠였다. 삶이 고통스러운 여성들은 술로 그 고통을 달래면서 알콜중독자가 되는 경우가 종종 있었기 때문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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