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성이 국가의 주인이란 공화주의가 소개 된 것은 500년을 이어 온 조선이 패망의 기로에 서 있던 한말이었다. 당시 조선의 지식인들은 1789년에 일어난 프랑스 혁명을 소개한 글을 통해 자유와 평등을 인간의 기본권리로 이해하고 있었다. 왕정과 더불어 왕과 백성이 함께 다스린다는 입헌국가체제와 국민합의에 의하여 다스린다는 공화체제가 소개되면서 민족운동은 두 갈래로 진행된다.
사실 구한말 이 땅에서 공화주의 정치체제를 향한 움직임은 1907년 일제에 의하여 고종이 강제 퇴위를 당하고서였다. 당시 공화체제나 입헌체제는 성리학의 이념대로 나라를 다스려야 한다는 위정척사파들에 의하여 벽에 부딪힌다. 저들이 반대한 이유는 질서가 무너진다는 것이었다. 이러한 때 나라가 패망하면서 군주제를 부활시키려한 것이 복벽주의 운동이었다. 복벽주의 운동은 위정척사의 선봉장 면암 최익현의 제자로 의병장이었던 임병찬이 1914년 독립의군부라는 의병대를 만들면서부터였다. 이 일은 1915년이 되면서 충청북도와 경상북도 유생 중심의 민단 조합을 탄생시킨다. 복벽주의 운동은 이후에도 계속된다. 이러한 복벽주의가 진행되는 동안 조선의 지식인들 중에는 공화주의를 지향하는 운동이 자생적으로 일어난다. 이들이 바로 1917년 해의에서 대동단결 선언을 발표하였는데 조소앙 박용만, 박은식, 신채호, 윤세복 등이었다. 이 선언문에서 이들 지식인들은 1910년 8월 조선합병을 계기로 “황제권 소멸의 때가 민권 발생의 때요, 구한국 마지막 날은 신한국 최초의 날”이라고 하여 공화주의를 선언했다. 이들은 계몽운동과 의병운동의 흐름을 하나로 묶고자 시도했는데 그 취지가 3.1운동으로 연결된 것이었다.
이보다 앞서 1915년 11월 의병활동의 주역들과 개화파 인사들을 중심으로 조직된 단체가 대한광복회였다. 이들의 군사활동 목표는 바로 공화국 건설이었다. 대한광복회는 1917년부터 1918년까지 광산과 우편차를 습격하여 군자금을 모금했고 독립자금 모금에 비협조적인 수구 부호들을 처단하였다. 이들이 지향한 혁명의 이념이 바로 공화주의였다. 이들이 지향한 공화주의는 3.1운동과 상하이에 수립된 대한민국 임시정부로 이어진다. 이렇게 일제에 병합된 조선은 10년이 지나기도 전 절대군주제였던 대한제국을 넘어서는 공화체제의 이념을 향후 독립할 새 나라의 정치체제로 만들어가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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