러시아의 대문호 톨스토이의 단편 <사람에게는 얼마의 땅이 필요한가>라는 소설이 있다. 여기에 나오는 주인공 바훔 이야기는 독자들에게 여러 가지 의미를 시사하고 있다. 평소 바훔의 꿈은 드넓은 대지의 주인공이 되는 것이었다. 요즘말로 땅 부자, 부동산 사장이 되는 것이 그의 꿈이었다. 이런 바훔에게 땅 부자가 될 수 있는 절호의 기회가 찾아온다. 신선을 만난 것이었다. 신선은 바훔에게 네가 하루 종일 밟는 땅은 너의 것이 된다는 선물을 안겨 준다. 놀라운 선물을 받은 바훔은 다음 날 새벽 밖으로 나간다. 그리고 자신이 평소 보아두었던 대지로 나가 자기 소유가 될 땅을 밟기 시작했다.
해가 뜨면서부터 해가 질 때까지 밟는 땅을 모두 줄 것이라는 신선의 말 때문에 바훔은 천천히 걸을 수가 없었다. 드디어 해가 저물기 시작했다. 해가 지기 전에 그가 출발했던 곳으로 돌아와야 했기에 바훔은 힘을 다해 출발한 곳으로 뛰고 또 뛰었다. 그러나 온종일 한 치의 땅이라도 더 밟아야 된다는 의욕에 지친 그는 그가 그토록 소망했던 땅에 쓰러져 영면했다는 이야기이다.
오늘도 대부분의 사람들은 바훔의 후예로 살아간다. 크리스천을 ‘크리스토퍼’라고 부른다. 이 말은 “그리스도를 등에 업고 다니는 사람”이란 뜻이다. 그리스도를 등에 업고 다닌다는 것은 그리스도를 높이고 사랑하고 섬긴다는 것이다. 한 마디로 “그리스도처럼 산다”는 것이다. 우리들 모두가 예수 그리스도일 수는 없다. 그러나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그분의 삶과 정신과 발자취를 따르기 위해 결단한 사람들이다. 주님의 교훈은 매우 직설적이고 현실적이다. 그리스도께서는 이렇게 생각하고 이렇게 알면 된다는 식의 교훈은 하지 않으셨다. 주님은 “너도 가서 이와 같이 하라”는 매우 직설적이신 분이었다. 한국 기독교인의 약점은 삶이 없다는 것이다. 가는 곳마다 어디든지 사랑 풍년이고 믿음의 풍년이다. 그러나 거기엔 삶이 없다.
신앙은 변화를 요구한다. 그리고 순종하면 강력한 힘을 창조한다. 그러니까 우리들이 그리스도 예수를 주로 믿는 사람들이라면 이미 삶이 변화되어야 하고 지금도 변화되어져가고 있어야 한다. 그리고 ‘나’라는 개인주의적 삶의 자세가 ‘우리’로 집약되어야 한다. 믿음의 힘, 신앙의 힘은 우리들의 시야를 나에게서 너에게로 그리고 모두에게로 회전케 해 준다. 그러기에 2016 교회자립지원 전진대회가 의미가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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