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5~16 프리미어리그가 레스터시티의 우승으로 막을 내렸다. 창단 132년만의 우승이었다. 축구는 영국에서 귀족 자제들의 놀이로 출발되었다. 영국 축구의 기원은 1840~50년대 사립학교에서 탄생했다. 당시 영국사회의 청소년들은 음주와 폭력에 익숙해져 있었다. 이런 청소년들에게 페어플레이 정신을 키워주자는 의도에서 명문럭비고의 토마스 아놀드 같은 교육자들에 의하여 창안된 것이었다. 귀족 청소년들의 훈육 과정에서 탄생한 공차기는 점점 사회 저변으로 퍼져 나갔고 지금은 세계인들이 최고로 즐기는 지구촌의 경기가 되었다.
학교 다닐 때부터 공을 차던 저들은 졸업 후에도 공을 차게 되면서 1863년 공식적인 축구협회 (Football Association)가 창설되었다. 이들은 축구협회 결성 후 가정 먼저 경기규칙을 만들었는데 이 원조가 1848년에 만들어진다. 이것이 케임브리지 경기 규칙이었다. 드리볼링 게임으로 만들어진 이 경기는 손을 사용할 수 없었고 상대방의 정강이를 발로차는 행위인 해킹(Hacking)을 금하는 것이었다. 드리볼링 게임은 어소시에이션 풋볼(association football)이었다. 어소시에이션(association)의 중간 부분인 soc를 따서 싸커(soccer)라는 명칭이 나왔다.
지금 세계인들에게 EPL로 유명한 프리미어리그의 원조가 되는 프로팀이 만들어진 것이 1885년 이었다. 축구클럽은 회사처럼 경영했는데 수익이 생기면 회원들에게 5%정도를 배당하는 방식으로 운영되었다. 지금 세계에서 제일 비싼 팀으로 알려진 맨체스터 유나이티드와 일부 팀들은 자신들의 전용구장을 갖추기도 했던 것이 그 당시였다. 그 시절 대기업 경영주들은 축구가 건전한 놀이라는데 뜻을 같이하고 축구 장려에 힘을 쓴 결과 1890년경 대표적인 겨울 스포츠가 된다.
20세기 초엽인 1905년에는 영국 전역에 1만개 이상의 클럽이 생겼고 프로와 아마츄어를 합쳐서 30만명이나 되는 선수가 협회에 등록을 하게 된다. 토요일 오후가 되면 직장이 끝난 노동자들은 오후 3시에 시작되는 축구경기를 관람하면서 주말을 보냈다. 당시 기독교 국가였던 영국은 일요일에는 경기를 하지 않았기에 축구를 하는 ‘영국식 토요일’은 인기가 있었다. 그러던 것이 지금은 축구가 종교가 되어 버렸고 개신교가 탄생한 나라 영국은 가장 저조한 복음화율의 나라가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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