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학연수과/백향목

리차드와 살라딘 이야기

미션(cmc) 2018. 1. 13. 11:53

중세문학에서 항상 무용담의 우위를 차지하는 인물이 사자왕으로 불리는 리처드이다. 그는 육박전과 마상전투의 일인자로 십자군 시대의 영웅이다. 그레고리 8세 교황에 의해 소집된 제3차 십자군은 역대 최강의 군대였다. 독일황제 프리드리히 바바로사, 프랑스 국왕 필립 아우구스투스, 영국왕 사자 심장의 리처드, 오스트리아의 공작 레오폴트 5세, 비쟌틴 로마황제 이삭 2세 등이 직접 자신들의 군대를 이끌고 있었다.

그러나 이 영웅들의 참전 이야기는 참담하고 황당한 비극으로 끝난다. 특히 용맹스럽기로 소문난 독일황제 프리드리히 바바로사는 마인츠 대성당에서 십자가를 수여받고 10만 대군을 이끌고 출정 했는데 어이없게도 소아시아 지방의 갑바도기아 살레강을 건너다 낙마, 익사하고 만다. 14세기 이슬람 역사가 이븐 카티어는 이렇게 언급한다. “만약 알라께서 30만 군대를 보유한 독일왕 프리드리히를 데려가지 않았다면 우리는 이집트와 시리아를 잃은 상태에서 이 나라들이 한때 이슬람 국가였다고 회상할 것이다.” 남은 군주들도 불유쾌한 해프닝으로 사라지고 30차 십자군의 서방대표로 남은 자가 리처드였다.

리처드와 상대한 슐탄이 바로 살라딘이다. 살라딘 군대의 저항으로 끝내 리처드는 예루살렘 탈환에 성공하지 못한다. 그럼에도 두 사람은 서로의 용맹함을 인정한다. 어느 날 전투를 앞두고 리처드가 고열에 시달리자 살라딘은 전투를 미루고 신비스런 헐몬산의 얼음을 가져와 리처드에게 보낸다. 성사되지는 않았지만 리처드는 살라딘에게 가문 간 정략결혼을 제안하기도 한다.

어느 날엔가는 두 군대가 전쟁이 아닌 마상경기를 벌이기도 했다. 리처드와 살라딘은 대화를 나누었고 자국의 병사들을 응원하였다. 리처드가 이스라엘에 체류하는 2년 동안 그의 동생 존의 왕위 찬탈 음모와 프랑스 왕 필립 2세의 영국령 침공으로 리처드는 더 이상 살라딘과 전투를 할 수 없게 된다. 이에 두 사람은 이스라엘 중부 라몰라(Ramola)에서 평화조약을 맺고 종전에 합의한다.

예루살렘은 무슬림의 소유가 됐고, 아크레와 여타 지중해안 도시들은 십자군 소유로 인정된다. 그리고 기독교도들의 성지 순례도 보장하기로 약속한 저들 중 협상 1년 후인 1193년 이슬람의 전쟁 영웅 슐탄(황제) 살라딘이 먼저 세상을 떠난다. 그리고 사자왕 리처드는 자신의 부모 원한을 갚겠다고 쏜 소년의 화살에 맞아 영면한다. 훗날 역사는 사자가 개미에 의해 쓰러졌다(The lion by the ant was slain)고 했다.

'신학연수과 > 백향목' 카테고리의 다른 글

칭기즈칸 이야기  (0) 2018.01.13
사제왕 옹칸 이야기  (0) 2018.01.13
청교도들 이야기  (0) 2018.01.13
방명록 헌금자 20만명 이야기  (0) 2018.01.13
비엔나 전투이야기  (0) 2018.01.1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