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7년 제49주 / 회복을 넘어 부흥으로
(12월 9일 주일설교 / 느7:1-4, 구약 735면)
▣ 인도자 : 환영인사
1. 지난 한 주간 동안 은혜 받았던 내용들을 나누어 봅시다.
2. 만약에 운영하는 사업이나 기업이 수년간 적자나 현상유지가 연속이었다면 어떻게 처리하리 하시겠습니까?
▣ 찬양이 : 경배찬양
복음성가나 찬송가를 2-3곡 선곡하여 부릅니다. 새찬송가 및 개역개정판 성경을 사용 바랍니다(참고:450장, 421장).
▣ 인도자 : 말씀 나눔 / 느7:1-4
1. 지난 1년간 걸어온 길을 돌아볼 시점입니다. 어떤 치유와 회복과 부흥이 있었습니까? 그리고 적자나 현상 유지의 삶이 되었다면 왜 그랬는지 말씀해 보십시오.
2. 전심전력한 결과 52일 만에 성벽이 완공됩니다. 어떤 수고가 있었습니까? 그리고 하나님을 의지하는 것이 무엇을 말합니까?(느6:16,2:17,18,3:1,4:22.5:19, 시27:1,115:11, 잠29:25).
느6:12 깨달은즉 그는 하나님께서 보내신 바가 아니라 도비야와 산발랏에게 뇌물을 받고 내게 이런 예언을 함이라/느2:17 후에 그들에게 이르기를 우리가 당한 곤경은 너희도 보고 있는 바라 예루살렘이 황폐하고 성문이 불탔으니 자, 예루살렘 성을 건축하여 다시 수치를 당하지 말자 하고/느2:18 또 그들에게 하나님의 선한 손이 나를 도우신 일과 왕이 내게 이른 말씀을 전하였더니 그들의 말이 일어나 건축하자 하고 모두 힘을 내어 이 선한 일을 하려 하매/느3:1 그 때에 대제사장 엘리아십이 그의 형제 제사장들과 함께 일어나 양문을 건축하여 성별하 고 문짝을 달고 또 성벽을 건축하여 함메아 망대에서부터 하나넬 망대까지 성별하였고/느 4:22 그 때에 내가 또 백성에게 말하기를 사람마다 그 종자와 함께 예루살렘 안에서 잘지니 밤에는 우리를 위하여 파수하겠고 낮에는 일하리라 하고/느5:19 내 하나님이여 내가 이 백성을 위하여 행한 모든 일을 기억하사 내게 은혜를 베푸시옵소서/시 21:1 여호와여 왕이 주의 힘으로 말미암아 기뻐하며 주의 구원으로 말미암아 크게 즐거워하리이다/시115:11 여호와를 경외하는 자들아 너희는 여호와를 의지하여라 그는 너희의 방패시로다/잠29:25 사람을 두려워하면 올무에 걸리게 되거니와 여호와를 의지하는 자는 안전하리라
3. 신앙과 번영의 회복이 더 중요합니다. 재건 후에 두 가지에 역점을 두었는데 무엇입니까? 그리고 성을 완벽하게 지키기 위해 어떤 방법을 사용했습니까?(느7:1, 6:6,18,19, 7:2,3,4, 엡6:11~13).
느7:1 성벽이 건축되매 문짝을 달고 문지기와 노래하는 자들과 레위 사람들을 세운 후에/느 6:6 그 글에 이르기를 이방 중에도 소문이 있고 가스무도 말하기를 너와 유다 사람들이 모반하려 하여 성벽을 건축한다 하나니 네가 그 말과 같이 왕이 되려 하는도다/느 6:18 도비야는 아라의 아들 스가냐의 사위가 되었고 도비야의 아들 여호하난도 베레갸의 아들 므술람의 딸을 아내로 맞이하였으므로 유다에서 그와 동맹한 자가 많음이라/느6:19 그들이 도비야의 선행을 내 앞에 말하고 또 내 말도 그에게 전하매 도비야가 내게 편지하여 나를 두렵게 하고자 하였느니라/느7:2 내 아우 하나니와 영문의 관원 하나냐가 함께 예루살렘을 다스리게 하였는데 하나냐는 충성스러운 사람이요 하나님을 경외함이 무리 중에서 뛰어난 자라/느7:3 내가 그들에게 이르기를 해가 높이 뜨기 전에는 예루살렘 성문을 열지 말고 아직 파수할 때에 곧 문을 닫고 빗장을 지르며 또 예루살렘 주민이 각각 자기가 지키는 곳에서 파수하되 자기 집 맞은편을 지키게 하라 하였노니/느7:4 그 성읍은 광대하고 그 주민은 적으며 가옥은 미처 건축하지 못하였음이니라/엡6:11 마귀의 간계를 능히 대적하기 위하여 하나님의 전신 갑주를 입으라/엡6:12 우리의 씨름은 혈과 육을 상대하는 것이 아니요 통치자들과 권세들과 이 어둠의 세상 주관자들과 하늘에 있는 악의 영들을 상대함이라/엡6:13 그러므로 하나님의 전신 갑주를 취하라 이는 악한 날에 너희가 능히 대적하고 모든 일을 행한 후에 서기 위함이라
4. 느헤미야의 꿈은 회복을 넘어 부흥이었습니다. 정착을 위해 어떤 방법을 사용했습니까? 그리고 느헤미야의 열심에 일어난 반응은 무엇입니까?(느7:5,66,70~73, 히10:38,39, 살전3:5).
느7:5 내 하나님이 내 마음을 감동하사 귀족들과 민장들과 백성을 모아 그 계보대로 등록하게 하시므로 내가 처음으로 돌아온 자의 계보를 얻었는데 거기에 기록된 것을 보면/느 7:66 온 회중의 합계는 사만 이천삼백육십 명이요/느 7:70 어떤 족장들은 역사를 위하여 보조하였고 총독은 금 천 드라크마와 대접 오십과 제사장의 의복 오백삼십 벌을 보물 곳간에 드렸고/느7:71 또 어떤 족장들은 금 이만 드라크마와 은 이천이백 마네를 역사 곳간에 드렸고/느7:72 그 나머지 백성은 금 이만 드라크마와 은 이천 마네와 제사장의 의복 육십칠 벌을 드렸느니라/느7:73 이와 같이 제사장들과 레위 사람들과 문지기들과 노래하는 자들과 백성 몇 명과 느디님 사람들과 온 이스라엘 자손이 다 자기들의 성읍에 거주하였느니라/히10:38 나의 의인은 믿음으로 말미암아 살리라 또한 뒤로 물러가면 내 마음이 그를 기뻐하지 아니하리라 하셨느니라/히10:39 우리는 뒤로 물러가 멸망할 자가 아니요 오직 영혼을 구원함에 이르는 믿음을 가진 자니라/살전3:5 이러므로 나도 참다 못하여 너희 믿음을 알기 위하여 그를 보내었노니 이는 혹 시험하여 우리 수고를 헛되게 할 까 함이니
5. 우리는 적자인생이었지만 예수 그리스도로 인해 승리하는 삶을 살게 되었습니다. 우리가 다시 세울 예루살렘 성이 무엇이며, 남은 한 해를 어떻게 마무리 하겠습니까?(롬8:37,요일5:4).
롬8:37 그러나 이 모든 일에 우리를 사랑하시는 이로 말미암아 우리가 넉넉히 이기느니라/요일5:4 무릇 하나님께로부터 난 자마다 세상을 이기느니라 세상을 이기는 승리는 이것이니 우리의 믿음이니라
▣ 지킴이 : 합심기도
1. 느헤미야처럼 현상유지를 넘어 부흥을 위해 성실한 믿음으로 무장하고 기도와 물질로 더욱 헌신하는 삶을 살도록 기도합시다.
2. 19일 대통령 선거에 모든 사람들이 참여해서 꼭 투표하고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대통령이 세워지도록 기도합시다.
3. 교회김장, 예결산 공동의회, 선교회비 작정, 유아세례, 08년도에 세워지는 일군들을 위해, 주일학교의 부흥을 위해 기도합시다.
4. 마지막 날까지 가정과 사업장과 교회에 치유와 회복과 부흥의 역사들이 더욱 강하게 일어나도록 기도합시다.
회복을 넘어 부흥으로
(느 7:1-4)
1 성벽이 건축되매 문짝을 달고 문지기와 노래하는 자들과 레위 사람들을 세운 후에 2 내 아우 하나니와 영문의 관원 하나냐가 함께 예루살렘을 다스리게 하였는데 하나냐는 충성스러운 사람이요 하나님을 경외함이 무리 중에서 뛰어난 자라 3 내가 그들에게 이르기를 해가 높이 뜨기 전에는 예루살렘 성문을 열지 말고 아직 파수할 때에 곧 문을 닫고 빗장을 지르며 또 예루살렘 주민이 각각 자기가 지키는 곳에서 파수하되 자기 집 맞은편을 지키게 하라 하였노니 4 그 성읍은 광대하고 그 주민은 적으며 가옥은 미처 건축하지 못하였음이니라
2007년 ‘치유와 회복과 부흥’이라는 표어를 걸고 시작한 한 해를 마무리해야 할 시점에서 과연 우리는 지난 한 해 얼마나 치유와 회복과 부흥이 있었는지 각자 지나 온 길을 돌이켜 보아야 할 시점입니다.
사단 마귀는 우리의 신앙이 부흥하는 것을 원치 않으며, 상처받은 우리가 치유를 받아 회복되지 못하도록 온갖 시험과 유혹과 도전을 통해 우리가 개인적으로 가정적으로 교회적으로 회복과 부흥이 일어나지 못하도록 훼방하고 있음을 알아야 합니다.
그렇다면 우리가 어떻게 해야만 적자의 삶이나 현상 유지에만 급급한 신앙생활을 하지 않고 ‘회복을 넘어 부흥으로’ 나아가는 승리의 삶을 살 수 있는지 오늘 성경 말씀을 통해서 그 답을 찾아야 하겠습니다.
그래서 겨우 현상 유지에만 머무는 것이 아니라 과거 잘나가던 수준으로 회복하는 정도가 아니라 회복을 넘어 부흥으로 나아갈 수 있어야 하겠습니다.
1. 예루살렘 성벽의 완성
바벨론 땅에서 오랜 세월 동안 포로 생활을 하던 이스라엘 백성들이 선지자 예레미야가 예언대로 때가 되었을 때 하나님께서 기적적인 방법으로 해방되어 3차에 걸쳐 고국 예루살렘으로 귀환하게 되었습니다.
느헤미야는 그 중에 3차 귀환을 주도한 인물이었습니다. 바사 제국 아닥사스다 왕의 술 관원장으로 수신 궁에서 안락한 삶을 포기하고 예루살렘에 귀환하여 동포들과 동고동락하면서 성벽 재건에 전심전력한 결과 불과 52일 만에 완공을 하였습니다.
느헤미야와 유다 백성들에게는 큰 기쁨과 감격이었지만 그동안 집요하게 공사를 훼방하던 산발랏과 도비야와 같은 대적들에게는 패배와 분노와 절망의 순간이었을 것입니다.
(느 6:16) 『우리의 모든 대적과 주위에 있는 이방 족속들이 이를 듣고 다 두려워하여 크게 낙담하였으니 그들이 우리 하나님께서 이 역사를 이루신 것을 앎이니라』
여기서 ‘낙담하였으니’라는 말은 미완료로 ‘떨어지다. 엎드러지다, 넘어지다, 자신감을 상실하다’ 라는 뜻으로 성벽이 재건되지 못했을 때는 그렇게 당당하고 자신만만했던 자들이 성벽이 완공되자 자존심이 무너지면서 낙담과 좌절에 빠진 것을 뜻합니다.
누가 심지도 않고 물을 주지도 않았는데 저절로 풍성한 결실을 거둘 수 없다면 예루살렘 성이 52일 만에 완공되기까지는 누군가의 수고가 있었기 때문입니다.
1) 느헤미야가 안팎으로 수많은 대적들의 온갖 훼방을 받았지만 포기하지 않고 사람들을 설득하고 하나님께 기도하고 대적들의 도전과 시험을 물리치고 예루살렘 성벽 공사를 짧은 기간 안에 완공할 수 있었던 것은 그의 탁월한 리더십과 나라를 사랑하는 애국심 때문입니다.
(느 2:17) 『후에 그들에게 이르기를 우리가 당한 곤경은 너희도 보고 있는 바라 예루살렘이 황폐하고 성문이 불탔으니 자, 예루살렘 성을 건축하여 다시 수치를 당하지 말자 하고』(느 2:18) 『또 그들에게 하나님의 선한 손이 나를 도우신 일과 왕이 내게 이른 말씀을 전하였더니 그들의 말이 일어나 건축하자 하고 모두 힘을 내어 이 선한 일을 하려 하매』
2) 산발랏과 도비야 일당의 위협에도 불구하고 각계 각층의 사람들이 공사구역을 나누어 한 손에는 무기를 들고 한 손에는 연장을 들고 주야로 교대하면서 예루살렘 성 쌓기와 파수하며 공사를 계속해온 수많은 백성들의 수고가 있었기 때문입니다.
(느 3:1) 『그 때에 대제사장 엘리아십이 그의 형제 제사장들과 함께 일어나 양문을 건축하여 성별하고 문짝을 달고 또 성벽을 건축하여 함메아 망대에서부터 하나넬 망대까지 성별하였고 (느 4:22) 『그그 때에 내가 또 백성에게 말하기를 사람마다 그 종자와 함께 예루살렘 안에서 잘지니 밤에는 우리를 위하여 파수하겠고 낮에는 일하리라 하고』
3) 그러나 아무리 사람들이 수고하고 느헤미야의 리더십이 뛰어났을지라도 사람들이 마음을 열고 느헤미야의 말에 순종할 수 있도록 배후에서 여호와 하나님의 도우심이 없었다면 공사는 중단되고 말 위기가 여러 번 있었습니다.
느헤미야는 그 때마다 하나님의 도우심을 간절히 구하는 기도를 드렸으며, 하나님은 그 때마다 느헤미야에게 유리하도록 인도하시고 지혜를 주심으로 마침내 성을 완공할 수 있었던 것입니다.
(느 5:19) 『내 하나님이여 내가 이 백성을 위하여 행한 모든 일을 기억하사 내게 은혜를 베푸시옵소서』
그 결과 지금까지 느헤미야를 훼방해 온 대적들조차 예루살렘 성이 재건된 것이 하나님의 도우심이 아니었으면 불가능한 일이었음을 깨닫고 스스로 낙담할 정도로 하나님께 영광이 돌려지게 된 것입니다.
(느 6:16) 『우리의 모든 대적과 주위에 있는 이방 족속들이 이를 듣고 다 두려워하여 크게 낙담하였으니 그들이 우리 하나님께서 이 역사를 이루신 것을 앎이니라』
만일 느헤미야가 하나님보다 대적들을 더 두려워하고 그들과 타협하거나 하나님을 의지하지 않고 자신의 지혜나 사람들을 의지하였다면 대적들이 아니라 느헤미야가 낙담하고 말았을 것입니다.
하나님만을 의지한다는 것이 인간적으로 어리석거나 무모하게 보일 수 있으나 가장 안전한 길이요, 승리를 얻게 하는 최선의 길인 것입니다. 그래서 성경 여러 곳에 하나님을 믿는 다는 것이 바로 여호와 하나님을 의지하는 것임을 가르치고 있는 것입니다.
(시 27:1) 『여호와는 나의 빛이요 나의 구원이시니 내가 누구를 두려워하리요 여호와는 내 생명의 능력이시니 내가 누구를 무서워하리요』(시 115:11) 『여호와를 경외하는 자들아 너희는 여호와를 의지하여라 그는 너희의 도움이시요 너희의 방패시로다』(잠 29:25) 『사람을 두려워하면 올무에 걸리게 되거니와 여호와를 의지하는 자는 안전하리라』
2. 예루살렘 성의 회복
예루살렘 성을 재건한 궁극적인 목적이 성을 쌓는 것이 아니라 성을 쌓으므로 이전처럼 사람들이 모여서 하나님의 성전에 나아가 제사를 드리고 하나님을 찬양하며, 예루살렘에 모여 서로 이웃하고 사랑하며 살아가기 위한 것입니다.
만일 성은 완공되었으나 예루살렘 성안에 거주하는 사람이 없다거나나 아니면 하나님께 제사를 드리지 않고 우상을 숭배한다면 예루살렘 성이 재건된 일이 기쁜 일이 아니라 차라리 성을 재건하지 않은 것만 못한 것이 되고 마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예루살렘 성이라는 건물만의 회복이 아니라 다윗 왕 시대의 신앙과 솔로몬 왕 시대의 번영을 회복하는 것이 더 중요하였습니다.
느헤미야는 이를 위해 예루살렘 성을 재건할 후에 무엇보다 두 가지에 역점을 두었습니다. 하나는 영적으로 하나님과의 관계를 회복하는 일이고 또 하나는 언제 공격해 올지 모르는 대적들을 막아내고 예루살렘 성의 평화를 위해 성을 든든히 지키게 하는 일이었습니다.
1) 하나님 성전의 내적인 회복
느헤미야가 성을 완공하면서 제일 먼저 한 일은 자기 집을 짓는 일이 아니라 하나님을 섬기는 일꾼들을 세우는 일이었습니다.
(느 7:1) 『성벽이 건축되매 문짝을 달고 문지기와 노래하는 자들과 레위 사람들을 세운 후에』
여기서 ‘세운다’는 말은 돌보다, 계수하다, 임명하다는 뜻을 가진 미완료 동사로 문지기와 노래하는 자들과 레위 인을 세우는 일을 한번으로 끝낸 것이 아님을 뜻합니다.
물론 문지기와 노래하는 자와 레위인의 직무는 성전 봉사 직무를 수행하는 사람들을 제일 먼저 세운 것은 느헤미야가 예루살렘 성을 완공한 궁극적인 목적이 어디에 있었는가를 잘 나타내 보여주는 것입니다.
그 이유는 예루살렘 성의 가치는 튼튼한 성벽에 있는 것이 아니라 성안에 세워진 하나님의 성전을 지키는 보루라는 점에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예루살렘을 거룩한 성이라고 일컫는 이유가 바로 예루살렘 성안에 거룩한 성전이 있었기 때문인 것입니다.
성전조차도 건물이기 때문에 성전의 존재 이유가 건물 때문이 아니라 하나님께 올바른 제사를 지속적으로 드리기 위함인 것입니다. 아무리 성전이 건재할지라도 제사장이나 레위인이나 노래하는 자들이 없다면 성전은 유명무실해 지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성전이나 교회는 건물이 위주가 아니라 어떤 일꾼을 세우는가? 하는 사람이 위주인 것입니다. 그러므로 성을 쌓고 성전을 재건하는 일이 외적인 회복이라면 사람을 세우는 일은 내적인 회복인 것입니다.
2) 리더십의 이양
느헤미야의 대적들이 성을 재건하지 못하도록 훼방한 내용 중에 하나는 느헤미야가 성을 재건하는 목적이 유다의 왕이 되기 위함이라는 거짓 소문을 유포한 적이 있습니다.
(느 6:6) 『그 글에 이르기를 이방 중에도 소문이 있고 가스무도 말하기를 너와 유다 사람들이 모반하려 하여 성벽을 건축한다 하나니 네가 그 말과 같이 왕이 되려 하는도다』
그러나 중요한 사실은 소문이 아니라 진실입니다. 과연 느헤미야가 예루살렘 성을 재건한 의도가 무엇인가는 사람들의 억측이나 소문이 아니라 느헤미야가 성을 재건한 후에 어떻게 행동을 하였는가 하는 것입니다.
당시 유대 귀족들 중에는 족장과 제사장들 중에는 이미 적과 내통을 하고 심지어 사돈관계를 맺고 대적자들을 칭송하는 이적행위를 하는 사람들이 있었습니다. 그러므로 힘들여 완공한 예루살렘 성을 아무에게나 맡길 수 없었습니다.
(느 6:18) 『도비야는 아라의 아들 스가냐의 사위가 되었고 도비야의 아들 여호하난도 베레갸의 아들 므술람의 딸을 아내로 맞이하였으므로 유다에서 그와 동맹한 자가 많음이라』(느 6:19) 『그들이 도비야의 선행을 내 앞에 말하고 또 내 말도 그에게 전하매 도비야가 내게 편지하여 나를 두렵게 하고자 하였느니라』
그렇다고 해서 느헤미야는 대적들이 소문대로 성을 재건한 후에 유다의 왕으로 취임을 한 것이 아니라 예루살렘 성을 다스리는 리더십을 다른 사람에게 이양하는 절차를 밟음으로 그 동안의 소문이 거짓이었음을 입증하였습니다.
(느 7:2) 『내 아우 하나니와 영문의 관원 하나냐가 함께 예루살렘을 다스리게 하였는데 하나냐는 충성스러운 사람이요 하나님을 경외함이 무리 중에서 뛰어난 자라』
물론 비판하기를 좋아하는 사람들은 하필이면 왜 아우에게 세습을 하였는가 라고 불평을 하였을 것입니다. 그러나 느헤미야가 그의 아우에게 리더십을 이양한 이유는 아우이기 때문이 아니라 하나니가 누구보다 적임자였기 때문입니다.
느헤미야는 예루살렘 성을 자기 동생 한 사람에게만 이양한 것이 아니라 어느 누구보다 믿음이 좋은 사람으로 칭송을 받고 있는 하나냐라는 사람과 더불어 연정을 하므로 서로 견제하여 예루살렘의 안정을 회복하게 하는 뛰어난 정치력인 것입니다.
3) 예루살렘 성의 파수
예루살렘 성을 재건하는 일이 착공한지 52일 만에 완공되어 훼방하던 대적들을 낙담하게 만들었다고 해서 느헤미야와 예루살렘 시민들은 두 다리를 쭉 뻗고 편안한 생활을 할 수 있게 되었을까요?
결코 아닙니다. 왜냐하면 예루살렘 성이 무너졌을 때는 대적들의 공격 목표가 되지 않기 때문에 그 성을 지킬 필요가 없었습니다. 그러나 이제 예루살렘 성이 완공된 후에는 대적들이 호시탐탐 성을 함락하기 위해 기회를 엿보는 표적이 되었기 때문입니다.
아무리 예루살렘 성을 완벽하게 재건하였을지라도 만일 주야로 성을 지키는 자가 없다면 한순간에 대적들의 손에 넘어갈 가능성이 상존하고 있기 때문에 예루살렘 성을 건축하는 못지않게 예루살렘 성을 지키는 일도 중요하였습니다.
예루살렘 성을 재건하는 데는 불과 52일로 끝날 수 있었으나 예루살렘 성을 지키는 일은 죽을 때까지도 끝나지 않는 일이었습니다.
느헤미야가 바벨론에서 귀환한 유다 백성들과 더불어 온갖 역경을 극복하고 예루살렘 성을 완공하기 전에는 예루살렘 성은 치안이 불안하기 때문에 거주하는 사람들이 그렇게 많지 못했습니다.
반면에 예루살렘 경내에 거주하는 인구에 비해 예루살렘 성이 방대하기 때문에 소수의 사람들만으로는 예루살렘 성을 완벽하게 지킨다는 일이 매우 어려운 일이었습니다.
(느 7:4) 『그 성읍은 광대하고 그 주민은 적으며 가옥은 미처 건축하지 못하였음이니라』
느헤미야는 물량적인 숫자가 적다고 해서 부정적인 생각을 하지 않고 그 적은 숫자를 어떻게 활용하여 문제를 지혜롭게 해결할 방안을 찾았습니다.
가) 성문 개폐시간의 조절
예루살렘 성은 사방이 다 연결되어 있기 때문에 반드시 성문을 통해서만이 출입이 가능했습니다. 성문을 24시간 개방을 한다면 백성들의 출입이 자유롭기 때문에 편안할 수 있을지 모르나 그만큼 대적들에게 노출되어 있기 때문에 언제 기습을 당할지 모르는 위험성이 있었습니다.
이를 해결하는 방법은 더 많은 군사력을 보강하여 주야로 파수꾼을 세워 자주 교대를 하게 하거나 아니면 성문의 개폐시간을 제한하므로 인력을 최소화 하는 방법이 있습니다. 흔히 사람들은 전자의 방법을 택하지만 느헤미야는 후자를 택하여 보다 더 안전을 기하였습니다.
(느 7:3a) 『내가 그들에게 이르기를 해가 높이 뜨기 전에는 예루살렘 성문을 열지 말고 아직 파수할 때에 곧 문을 닫고 빗장을 지르며
나) 자가(自家) 방어의 무한 책임
느헤미야는 적은 인력을 가지고 예루살렘의 치안을 어떻게 유지하며 그 책임을 누가 지을 것인가? 에 대해 그 누구도 아닌 예루살렘 성안에 거주하는 시민 스스로가 예루살렘 치안 유지에 대한 무한 책임을 지게 하였습니다.
(느 7:3b) 예루살렘 주민이 각각 자기가 지키는 곳에서 파수하되 자기 집 맞은편을 지키게 하라 하였노니
요즘으로 말하면 범죄없는 마을 만들기 위해 동네 사람들이 자경단을 만들어 순서를 따라 밤이면 동네를 순찰하게 하는 방법처럼 자기 집 앞에 둘러 쳐져있는 성벽의 안전을 각자 맡아서 하게 한 것입니다.
지금도 이스라엘은 적은 군사력을 가지고 사방을 둘러싸고 있는 아랍국가들의 침략과 테러를 방어하는 방법 중에 하나가 전 예비군에게 총기와 실탄을 지급하여 전 국민이 군인이 되고 전국 방방곡곡이 요새가 되게 하는 방법을 쓰고 있습니다.
예루살렘 성을 지키는 일만이 아니라 세상만사가 다 그러합니다. 마라톤에서 가장 스트레스를 많이 받는 사람은 뒤쫓아 가는 선수가 아니라 앞서가는 선수입니다. 언제 순위가 바뀔지 모르기 때문에 추월을 당하지 않도록 거리를 두고 계속 앞서가야만 하기 때문입니다.
우리의 신앙도 마찬가지입니다.마치 예루살렘 성벽을 재건하는 것과 같습니다. 본래 죄와 허물로 죽은 인생은 공중권세를 잡은 사단에게 종노릇하는 동안에는 물질적인 여유가 있고 건강이 좋은 사람들이 얼마든지 많이 있습니다.
그러나 예수를 믿어 사단 마귀의 손에서 구원을 받고 하나님의 자녀가 된 후에는 도리어 사단의 공격 목표가 되기 때문에 예수를 믿지 않고 사단 마귀를 섬기는 사람보다 더 신상이 괴롭고 시험과 유혹이 믿지 않을 때보다 더 많을 수 있습니다.
그 이유가 무엇일까요? 그래야만 하나님을 부인하고 신앙이 타락할 수 있기 때문에 좋은 믿음을 가진 사람일 수 록 악한 마귀는 더욱 도전하고 시험하고 흔드는 것입니다.
만일 영적으로 깨어서 우리의 신앙을 지키지 않는다면 언제 시험에 빠져 허우적거리게 될지 장담을 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신앙의 전신갑주로 무장을 하여 마귀의 기습에서 자신의 믿음을 지키라고 성경은 가르치고 있는 것입니다.
(엡 6:11-13) 『[11] 마귀의 간계를 능히 대적하기 위하여 하나님의 전신 갑주를 입으라 [12] 우리의 씨름은 혈과 육을 상대하는 것이 아니요 통치자들과 권세들과 이 어둠의 세상 주관자들과 하늘에 있는 악의 영들을 상대함이라 [13] 그그러므로 하나님의 전신 갑주를 취하라 이는 악한 날에 너희가 능히 대적하고 모든 일을 행한 후에 서기 위함이라』
3. 예루살렘 성의 부흥
느헤미야는 예루살렘 성의 재건과 회복으로만 만족하지 않았습니다. 느헤미야의 꿈은 예루살렘 성을 다윗 왕이나 솔로몬 왕 때처럼 부흥시키는 일이었습니다. 그러나 예루살렘 성은 치안이 불안했기 때문에 사람들이 거주하기를 꺼려하였으며, 성이 재건되었다고 할지라도 그 성을 스스로 지켜야 하는 부담과 여러 가지 불편함 때문에 사람들에게 관심 밖이 되고 말았습니다.
문제는 어떻게 하면 예루살렘 성을 회복이 아니라 회복을 넘어 부흥으로 가게 할 것인가 하는 것이 느헤미야의 최대 관심사였습니다. 과연 그 문제를 어떻게 해결하였을까요?
이제 예루살렘 본성이 회복되었기 때문에 하루 빨리 사람들을 불러 모아 예루살렘을 명실 공히 이스라엘 공동체의 구심점으로 부흥시키기 위해서 더 많은 사람들을 예루살렘에 정착시켜야만 하였습니다. 그것이 느헤미야의 최대 고민이었습니다.
하나님께서 그와 같은 느헤미야의 소원을 아시고 과거 고국 재건의 꿈과 기대를 가지고 예루살렘에 귀환한 사람들을 등록하게 하라는 하나님의 감동을 받게 되었습니다.
(느 7:5) 『내 하나님이 내 마음을 감동하사 귀족들과 민장들과 백성을 모아 그 계보대로 등록하게 하시므로 내가 처음으로 돌아온 자의 계보를 얻었는데 거기에 기록된 것을 보면』
당시 유다 백성들 가운데는 귀인들과 민장들과 백성이라는 세 계층의 사람들이 있었습니다. 느헤미야는 어느 편에 치우침이 없이 각 계층의 사람들을 다 소집하였습니다.
1) 여기서 ‘내 하나님이 감동하사’라는 말은 하나님께서 느헤미야의 마음에 인구조사를 하여 그 사람들을 예루살렘에 이주시키는 정책을 하도록 하나님께서 느헤미야의 마음에 생각을 주셨다는 미완료 동사입니다. 다시 말해서 그의 아이디어가 아니라 하나님이 주신 아이디어라는 것입니다.
물론 느헤미야가 평소 고민해 온 문제이기 때문에 그의 생각일 수 있겠지만 느헤미야는 그것이 자기가 아니라 하나님이 자기에게 그러한 지혜를 주셨다고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 모습을 우리는 배워야 할 것입니다.
2) 여기서 ‘모아’라는 말은 국민을 대규모적으로 소집하는 것을 가리키는 와우 계속법 미완료 동사로 느헤미야의 분주한 모습이 상상이 가게 하는 말입니다.
3) 여기서 ‘보계’라는 말은 주민등록 신고처럼 귀환자들을 등록하게 하는 것이었습니다.
다수의 사람들이 모인 공동체를 관리하는데 있어서 개인 정보를 가지고 통제하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가 하는 것을 현실 사회에서 얼마든지 경험할 수 있습니다.
어디를 가든지 무엇을 하든지 주민등록번호 하나만 알면 그 사람의 신상에 대해서 전반적으로 다 알 수 있는 것처럼 느헤미야는 귀환자들을 등록하게 하였습니다.
그 결과 예루살렘을 회복시키는 정도가 아니라 부흥시키는데 있어서 가동될 수 있는 인력이 각 지파별, 각 계층별로 얼마나 되며 누구인지를 쉽게 알 수 있는 데이터뱅크를 만들 수 있게 된 것입니다.
예루살렘 귀환자들의 총 숫자가 몇이며 그 가운데 지도층이 누구이며, 제사장들과 레위인들과 문지기들과 솔로몬의 신하의 자손들은 몇이며, 신원이 불분명한 사람들이 누구이며, 심지어 노비와 말과 노새와 낙타와 나귀의 숫자는 얼마인가까지 다 알 수 있게 되었습니다.
(느 7:66) 『온 회중의 합계는 사만 이천삼백육십 명이요』
그렇습니다. 예루살렘의 부흥은 저절로 되는 것이 아니라 흩어진 사람들이 다시 모이고 역사적인 사명감을 망각하고 있는 사람들이 다시 예루살렘에 모여 자신에게 주어진 은사를 따라 자신이 하나님 앞에서 마땅히 해야 할 일을 찾아 최선을 다할 때 예루살렘은 회복을 넘어 부흥으로 이어갈 수 있는 것입니다.
느헤미야의 그 같은 노력은 헛되지 않았습니다. 사람들이 느헤미야의 열심에 감동을 받아 두 가지 반응이 일어났습니다.
1) 예루살렘의 부흥에 필요한 많은 물질을 자원하여 헌금하였습니다.
(느 7:70-72) 『[70] 어떤 족장들은 역사를 위하여 보조하였고 총독은 금 천 드라크마와 대접 오십과 제사장의 의복 오백삼십 벌을 보물 곳간에 드렸고 [71] 또 어떤 족장들은 금 이만 드라크마와 은 이천이백 마네를 역사 곳간에 드렸고 [72] 그 나머지 백성은 금 이만 드라크마와 은 이천 마네와 제사장의 의복 육십칠 벌을 드렸느니라』
이는 이스라엘 백성들이 범죄함으로 말미암아 바벨론의 포로로 잡혀 갔으나 때가 되어 그들이 예루살렘으로 귀환하게 되었을 때 그들은 거지꼴이 된 것이 아니라 바벨론 땅에서도 나름대로 은혜와 복을 받았음을 알 수 있는 것입니다.
이러한 족장들의 헌신은 하나님의 일을 위하여 물질을 아끼지 않는 것으로 모든 백성의 모범이 되었을 것입니다.
이러한 족장들의 헌신을 좇아 백성들도 금 이만 다릭과 은 이천 마네와 제사장의 의복 육십칠 벌을 드렸다는 것은 나름대로 하나님의 일을 위하여 최선을 다하였음을 의미합니다.
2) 예루살렘 부흥에 필요한 사람들이 본성으로 돌아와 정착하였습니다.
(느 7:73) 『이와 같이 제사장들과 레위 사람들과 문지기들과 노래하는 자들과 백성 몇 명과 느디님 사람들과 온 이스라엘 자손이 다 자기들의 성읍에 거주하였느니라』
그렇습니다. 예루살렘 성벽이 재건되었다고 해서 온전한 성읍이 되는 것이 아닙니다. 건물보다 사람입니다. 사람의 숫자보다 일꾼입니다.
진정한 예루살렘의 부흥은 신앙의 부흥입니다. 진정한 신앙의 부흥은 하나님께 대한 헌신의 정도를 통해서 입증되어집니다.
오늘도 마찬가지입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신앙이 마귀의 공격을 받아 영적인 낙오자가 되는 것을 원치 않으십니다. 한시라도 성령의 기름 부으심과 치유를 통해서 영적으로 회복하고 건강한 믿음의 성도가 되어 하나님 나라의 확장과 교회 부흥의 역군이 되기를 우리 각자에게 기대하시는 것입니다.
그렇게 되기 위해서는 우리는 다시 모임을 회복해야 하며, 각자 자신이 누구이며 무엇을 위해 하나님이 택하시고 부르시고 은혜와 복을 주셨는지 자기 정체성을 깨닫고 사명감에 불타 자리를 박차고 일어서는 부흥의 역사가 일어나야 합니다.
(히 10:38-39) 『[38] 나의 의인은 믿음으로 말미암아 살리라 또한 뒤로 물러가면 내 마음이 그를 기뻐하지 아니하리라 하셨느니라 [39] 우리는 뒤로 물러가 멸망할 자가 아니요 오직 영혼을 구원함에 이르는 믿음을 가진 자니라』
오늘 우리의 신앙도 마찬가지로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이미 하나님의 자녀가 되고 구원을 받았다고 해서 사단 마귀가 우리를 포기하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방심하거나 자만하지 말아야 합니다.
(살전 3:5) 이러므로 나도 참다 못하여 너희 믿음을 알기 위하여 그를 보내었노니 이는 혹 시험하는 자가 너희를 시험하여 우리 수고를 헛되게 할까 함이니
결 론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하나님께서 인간을 창조하신 후 선포하여 주신 축복이 생육하고 번성하여 땅에 충만하며 땅을 정복하라는 것이었으나 인간이 범죄하고 타락함으로 인해 정반대로 상실과 상처와 고통과 죽음이라는 적자인생의 삶을 살게 되었습니다.
우리도 전에는 그 같은 삶을 살던 사람이었으나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사죄와 영생의 축복을 받았을 뿐 아니라 본래 하나님께서 인간에게 약속하신 생육과 번성과 충만과 정복이라는 승리의 삶을 살게 하셨습니다.
물론 그와 같은 승리는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부귀권세를 더 많이 소유하게 되었기 때문에 승리하게 된 것이 아니라 죄와 사망과 죽음의 권세를 이기신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말미암은 승리인 것입니다.
(롬 8:37) 그러나 이 모든 일에 우리를 사랑하시는 이로 말미암아 우리가 넉넉히 이기느니라 (요일 5:4) 무릇 하나님께로부터 난 자마다 세상을 이기느니라 세상을 이기는 승리는 이것이니 우리의 믿음이니라
오늘 우리가 예루살렘 성처럼 다시 세우고, 지키고, 더 나아가서 크게 부흥시켜야 할 이 시대의 예루살렘 성이 무엇입니까?
개인적으로는 하나님께 받은 믿음과 은혜와 가정적으로는 화목을 이루며, 교회적으로는 진리와 성결을 보수하고 개인의 신앙과 가정과 교회를 부흥시키는 일입니다.
이스라엘 백성이 맡겨진 사명을 충성스럽게 담당하고 예루살렘 성에서 거할 수 있었던 것처럼 성도는 영적 전투를 잘 담당하여 하나님의 은혜의 선물인 하나님 나라에 들어가 거하는 복을 받아 누려야 합니다.
그 과정 속에 사단의 방해가 많이 있더라도 실망치 말고 소망 가운데 하나님 나라를 바라며 나아가야 하는 것입니다.
오늘 우리가 2007년 한 해를 마무리해야 하는 시점에서 과연 한해 동안 우리의 삶은 승리육신적인 면과 신앙적인 면에서 괄목할 만한 부흥과 성장이 있었는가 아니면 손해를 본 적자 인생이었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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