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무릎 꿇은 존재
대학 4학년,
사업에 실패한 우리 가정의 상황은 말이 아니었다.
나는 학비 마련을 위해 이리저리 뛰어다니다 성악을 전공하는 학생으로서 차마 내리기
어려운 결정을 하고야 말았다.
충무로의 한 음식점에서 노래를 부르는 일이었다.
학비와 생활비,
어머니의 입원비까지 감당하려면 그 방법밖에 없었기 때문이다.
나는 돈을 아끼기 위해 주린 배를 채우려고 펌프 물을 마셨는데 펌프물의 수질이
좋지 않아서인지 유사 장티푸스에 걸려 치명적인 열병을 앓으며 병원에 입원하였다.
채 병이 낫기도 전에 불어 가는 입원비에 대한 두려움으로 집안에 있던 백과사전을 팔아
입원비를 충당하고 퇴원해 버렸다.
하지만 다시 재발한 고열로 재입원을 하게 되었고,
더 큰 문제는 내 열병이 도저히 떨어질 기미를 보이지 않는다는 것이었다.
하루하루 39도가 넘는 고통스런 열기를 느끼며, 마음으로는 불어나는 입원비 걱정으로
나는 그 동안 도망만 다니던 한 존재를 그 어느 때보다도 강하게 느꼈다.
나는 단순한 한마디 말로 중얼거렸다.
"하나님, 한 번만 살려주세요. 내가 당신에게 돌아가겠나이다."
다음날 나의 체온은 정확히 36.5도로 돌아왔다.
그 존재는 이후 8만원으로 한 달을 살았던 궁핍한 이태리 유학 시절에도,
만족하지 않았던 내 성악 발성에 '벨칸토' 창법이라는 선물을 주었던, 바로 그였다.
<임웅균(테너, 한국예술종합학교 성악과 교수),
「작은 이야기」(2000년 2월호), 도서출판 이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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