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 교/ 각종 설교 모음

오늘의 종교개혁

미션(cmc) 2009. 1. 26. 15:35

'지상설교'오늘의 종교개혁
수원제일교회 이규왕 목사

 

오늘의 시대는 과거 그 어느 때보다 정치 경제 사회 종교 모든 분야에서 개혁이 절실하게 요청되고 있습니다. 만일 개혁되지 아니하면 변화 무쌍한 세대 속에서 존립조차 위태하게 되는 시대가 왔습니다.
교회도 예외는 아닙니다. 그러나 교회는 아무리 세상이 변할지라도 변할 수 없는 전통진리를 고수해야 하는 보수적인 면과 또 하나는 그 변치 않는 진리를 변하는 세대에 효과적으로 증거하기 위한 방법에 변화가 일어나야 한다는 것입니다.
진정한 개혁은 무조건 다 뜯어고치고 바꾸는 것이 아니라 성경에서 벗어난 잘못된 현실을 성경으로 돌아가게 하는 과거로의 회귀와 또 하나는 시대가 변하고 있는데도 구태의연한 현실을 과감하게 바꾸어 발전적인 미래로 나아가고자 하는 도전이라는 양면을 적절하게 조절해 나가는 것입니다.
1. 신학적인 개혁에서 교회개혁으로
지난날의 교회사를 돌이켜 보면 1517년 10월 31일 루터가 당시 로마교회가 개혁되어져야 할 95개 조항을 지적하고 공개토론 하기 위해 비텐베르그 교회 정문에 대자보를 붙인 날을 시점으로 칼빈 즈빙글리 낙스와 같은 개혁자들에 의해 개신교가 만들어짐으로 종교개혁은 이미 끝이 났습니다.
분명히 개신교는 종교 개혁을 통해서 존재하게 되었으면서도 세상 사람들은 개신교가 천주교보다 더 많이 개혁되어지고 선진화된 종교라고 생각하지 아니하고 때로는 천주교가 개신교보다 더 많이 개혁되어진 종교처럼 오해하고 천주교에 지지를 보내고 있다는 점입니다. 과연 그 이유가 무엇 때문일까요?
그것은 개신교가 천주교의 잘못된 신학을 개혁하는 일에는 오래 전에 성공을 하였지만 개신교 인들의 의식과 생활은 천주교인보다 나은 것이 별로 없고 더 편협하고 고루하다는 생각을 가지고 있기 때문입니다.
정말 오늘의 교회는 사람들을 얼마나 변화시키고 있는가 하는 것입니다. 만일 오늘의 그리스도인들이 종교인으로 만족한 채 변화된 새 사람의 모습을 세상 사람들에게 보여주지 못한다면 교회는 하나님과 사람에게 다 외면을 당하고 말 것입니다.
그러므로 오늘의 기독교는 신학과 교리의 개혁으로 만족하지 말고 그것을 생활에 적용하여 성경적인 가치관 확립을 통한 의식의 전환과 빛과 소금된 생활의 개혁을 통해서 이 시대를 선도해 나가는 빛과 소금이 되어야 합니다.
그렇게 되기 위해 무엇보다 시급한 것은 교회의 외적 구조나 제도를 바꾸고 프로그램을 개발하는 피상적인 변화로 만족하지 말고 교회의 실체인 교인 한 사람 한 사람이 그리스도안에서 새로운 피조물로 거듭나 그 지식과 인격이 새롭게 변화되는 영성 회복이 선행되어질 때 교회도 개혁되어질 수 있습니다(고후 5:17).
이처럼 집단적이고 교리적이고 외형적인 명목상의 종교 개혁에서 개별적이고 실제적이고 내부적인 교회 개혁이 이루어질 때 비로소 교회는 어두운 세상을 밝히는 등대가 될 수 있고 세속 속에서 교인들은 갈 바를 알지 못하는 사람들에게 영적 길잡이가 될 수 있습니다(마 5:14-16)
2. 만인 제사장에서 만인 사역자로
오늘의 한국 교회는 과거 그 어느 때보다 불신자들에 대한 관심이 높아졌기 때문이 아니라 교회 성장의 침체의 한계를 극복하기 위하여 교회마다 전도 운동을 벌이고 있습니다. 그 결과 가장 인기 있는 강사는 유명 부흥사가 아니라 전도 왕이라고 이름 부쳐진 평신도 전도자들을 각 교회들이 서로 모셔가기 경쟁을 벌리고 있는 모습은 안쓰럽기까지 합니다.
세계 교회 앞에서 기적적인 교회 성장을 자랑하던 한국 교회가 이제 정체에서 감소라는 하향곡선을 그리고 있는 시점에서 그 대안과 해결책은 무엇이어야 합니까?
루터가 일으킨 종교 개혁의 이슈 중에 하나가 바로 교황과 사제 중심의 계급적인 교회를 만인 제사장적인 교회로 개혁하는 일이었습니다. 그로 인해 중세 교회에 엄청난 변화가 일어나 평신도들도 사제들처럼 성경을 자유롭게 읽을 수 있게 되었으며 사제를 통한 고해성사 없이 예수 그리스도의 피로 정결함을 얻고 당당하게 하나님께 나아가 기도를 드릴 수 있게 되었습니다(히 10:22).
그 같은 종교 개혁을 통해서 개신교가 만들어져서 오늘날에는 각 가정은 물론 각 사람마다 다 자기 성경책을 가지고 교회를 다닐 수 있게 되었고 교회 안에는 여러 개의 성경공부 프로그램이 개설되고 시간과 요일을 따라 여러 종류의 기도회가 만들어져 있기 때문에 마음만 먹으면 얼마든지 성경을 배우고 기도를 드릴 수 있는 시대가 왔습니다.
이 같은 변화는 종교개혁 전에는 상상도 할 수 없었던 일이었습니다. 그러나 문제는 평신도들도 만인 제사장이라는 명목상의 신분 변화에 만족한 채 여전히 목회자 중심의 교회가 되어 주일 예배 출석으로 만 만족하고 개인적인 성경 연구 없이 목회자의 설교에만 의존하고 직접 하나님께 나아가 기도를 드리는 대신 특별한 은사를 받은 사람을 통해서 축복을 받으려는 기복주의는 성경은 물론 종교개혁의 기본 정신과 거리가 먼 모습입니다.
이제 한국 교회는 평신도도 만인 제사장이기 때문에 목회자와 동등하다는 권위의 도전이 아니라 사역에 있어서 목회자와 차별이 없다는 만인 사역자로 하나님 앞에서 하나님이 주신 은사와 경험들을 토대로 역할을 분담하고 서로 짐을 나누어짐으로 교회를 다시 부흥시키는 교회 개혁이 일어나야 합니다(갈 6:2).
3. 은총교리에서 보은의 생활로
인간은 어느 누구를 막론하고 다 죄인이며 또 그 죄를 자신의 힘으로 속할 수 없기 때문에 의로우신 하나님 앞에 설 수 없는 것이 사실입니다. 만약에 인간에게 그것이 가능할 수 있었다면 구태여 예수 그리스도께서 성육신이나 십자가에 달려 죽으실 필요가 없으셨습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우리의 죄값을 대신하여 십자가에 못 박혀 죽으심으로 하나님의 공의를 다 충족시키셨기 때문에 누구든지 그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회개하기만 하면 무슨 죄든지 다 용서함으로 받으며 구원함을 받는다는 대속의 은총은 너무나도 큰 은혜와 축복입니다.
만일 인간이 구원을 얻기 위해 그 십자가의 구속의 은총 외에 무엇을 추가한다면 그것은 십자가의 은총을 훼손하는 구속의 효력을 감소시키는 죄를 범하는 일입니다. 중세 교회가 면죄부와 연옥 교리를 앞세워 사람들을 종교적인 노예로 만들었을 때 종교 개혁자 루터가 오직 하나님의 은혜를 주장하며 구원은 행위에 있지 아니하고 오직 믿음으로 말미암아 가능하다고 이신득의 교리는 많은 사람들을 잘못된 종교의 굴레에서 자유와 해방을 가져다주었습니다.
그렇다고 해서 개신교는 문제점이 없는 것이 아닙니다. 그것은 이신득의가 구원의 감격을 잃어버리고 신학적 지식과 한낱 교리로만 머물게 되었을 때 교인들은 이로 말미암아 죄를 심각하게 생각하지 않는 무감각한 양심과 죄를 반복하는 무감각한 양심과 방종한 삶을 살게 만드는데 간접적인 원인이 되기도 하였습니다.
믿음은 선행의 어머니입니다. 인간의 행위를 부정하는 것은 하나님의 은혜를 기억하고 자만하지 말게 하기 위함입니다. 행함이 없는 믿음은 죽은 믿음이라는 말씀처럼(약 2:26) 진정한 믿음에는 선행이 따르게 되어있습니다. 이제 한국교회는 이신득의가 단순한 은총교리가 아니라 하나님의 은혜에 보은하는 수준 높은 선행을 실천하게 하는 교회개혁의 채찍이 되게 하여야 합니다.
이제 우리 기독교는 변하는 세대 속에서 변화를 당하는 것이 아니라 세상을 변화시키기 위해 먼저 개개인이 변화되어야 교회가 변화되어야만 이 세대를 새롭게하는 주체가 될 수 있습니다. 그것은 시대적인 요청만이 아니라 너희는 이 세대를 본받지 말고 오직 마음을 새롭게 함으로 변화를 받아(롬 12:2)라고 하신 말씀같이 하나님의 요청인 것입니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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