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상설교'무릎으로 일하는 지도자(느1:4-11) |
권숙 목사(서울남부교회) |
중국 내지 선교의 아버지였던 허드슨 테일러는 기도의 비밀을 알고 있었던 기도의 사람이었습니다. 그는 이렇게 말합니다. 『오직 기도를 통해서 하나님만이 사람을 움직일 수 있다』. 일찌기 지혜자도 이렇게 말하고 있습니다. 『왕의 마음이 여호와의 손에 있음이 마치 보의 물과 같아서 그가 임의로 인도하시느니라』(잠언 21:1). 하나님은 우리로 먼저 기도하게 하시고, 하나님의 위대하신 역사를 기도하는 사람들을 통해 이루어가십니다.
그렇습니다. 하나님은 평범한 사람들을 기도를 통해 비범하게 사용하십니다.
I본문에 보시면 하나님께서 위기의 때를 살았던 느헤미야로 하여금 기도하게 하시고 평범한 지도자인 느헤미야를 비범하게 사용하시는 하나님의 역사를 발견할 수 있습니다.
페허가 된 예루살렘의 슬프고 비참한 소식을 접한 느헤미야는 어떠한 반응을 보였습니까?
『내가 이 말을 듣고 앉아서 울고 수일동안 슬퍼하며 하늘의 하나님 앞에 금식하며 기도하여 가로되』(느 1:4). 무엇이 지도자 느헤미야의 최우선의 관심이었습니까?
『 . . . 수일동안 슬퍼하며 하늘의 하나님 앞에 금식하여 가로되』. 그의 최우선의 사역은 바로 무릎을 꿇는 것이었습니다.
성경은 지도자와 하나님과의 관계, 이것이 가장 첫째 되고 가장 위대한 원동력이라는 사실을 가르쳐줍니다. 기도는 그에게 있어서 최우선의 일이요 하나의 습관이었습니다. 2장에서 수심에 차있는 느헤미야에게 아닥사스다왕이 『네가 무엇을 원하느냐?』고 물어 올 때 그는 『내가 곧 하늘의 하나님께 묵도하고』(2:4)라고 답했습니다.
그는 『기도외에 다른 것으로는』(막 9:21)능력이 있을 수 없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는 사람이었습니다. 어떤 목회자가 이렇게 말한 적이 있습니다. 『사도행전 2장을 보면 초대교회 성도들은 10일동안 기도했고, 사도 베드로가 10분을 설교하니 3000명이 회개하고 돌아왔는 데, 오늘날 교회들은 10분도 채 기도하지 않으니 목사는 10일을 설교해도 단지 3명만 구원을 받는다』. 기도하지 않으면, 하나님의 도우심이 없으면 아무것도 할 수 없습니다.
II
그러면 이제 느헤미야의 기도의 내용을 살펴봅시다. 먼저 그는 「가 지금 누구에게 기도하는 것인가?」하는 기도의 대상에 대해 말합니다. 언제나 기도에 있어서 중요한 것은 기도의 대상입니다. 우리는 상대방에 대해 알고 있는 범위 안에서만 믿을 수 있고 기도 할 수 있습니다. 기도할 때 우리는 기도의 대상에 대해 적어도 두가지는 알고 있어야 합니다. 우리가 바라는 것을 그가 할 수 있다는 것과, 또한 그가 그것을 해주시려고 하신다는 것을 말입니다. 손이 발이 되도록 빌어도 기도의 대상이 돌부처면 아무 소용이 없습니다. 기도는 『지성이면 감천』이나 신세타령의 넋두리도 아닙니다. 나의 기도의 대상이신 하나님 아버지는 어떤 분이신가, 내가 그 분에게 기도를 한다는 것은 도대체 무엇을 의미하는 것인가 하는 것을 떨쳐버리고 기도를 시작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느헤미야의 기도는 그 기도의 대상이신 하나님에게 초점을 맞추고 있습니다. 『로되 하늘의 하나님 여호와 크고 두려우신 하나님이여 . . . 언약을 지키시며 긍휼을 베푸시는 주여 간구하나이다』(1:5). 느헤미야는 『크고 두려우신 하나님』 즉, 하나님의 전지 전능하심을 붙잡고 기도하고 있습니다. 크고 두려우신 하나님은 모든 것을 하실 수(can) 있습니다. 언약을 지키시며 긍휼하신 하나님께서는 구하는 자에게 어떤 것이라도 해주실(will) 것입니다.
다음으로 느헤미야는 『 . . . 언약을 지키시며 긍휼을 베푸시는 주여 . . . 』라고 기도하고 있습니다. 그는 하나님의 긍휼에 소망을 두고 있습니다. 그는 환경 때문에 절망하지도 않고, 환경때문에 소망을 갖지도 않았습니다. 지금 느헤미야는 절망적인 소식을 듣고 있지 않습니까? 예루살렘 성벽이 다 무너지고 훼파되었다는 소식을 전해 듣지 않았습니까? 그러나 그는 환경 때문에 절망하거나 소망을 두지 않고, 오직 그의 소망을 긍휼을 베푸시는 살아계신 하나님에게 두었던 것입니다.
우리가 여전히 소망을 버리지 않는 이유는 무엇입니까? 긍휼을 베푸시는 하나님께서는 언약을 지키시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은 언약을 지키시며 긍휼을 베푸시는 주님 이십니다. 어제나 오늘이나 영원토록 동일하신 분이시기에 그분은 약속하신 것을 그대로 이루시는 분이시기에 여기에 소망이 있는 것입니다. 『여호와의 선하심을 맛보아 알지어다.』 『내가 과연 너희를 버리지 아니하고 과연 너희를 떠나지 아니하리라』(히 13:5). 느헤미야는 하나님의 신실하심을 붙잡고 긍휼을 베푸시는 하나님께 이렇게 간구 하고 있습니다. 『 . . . 옛적에 주께서 주의 종 모세에게 . . . 하신 말씀을 이제 청컨대 기억하옵소서』(1:9). 자기 백성에게 말씀하신 모든 약속을 기억해 달라고 기도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은 권능의 회상자 (God is the powerful rememberer!)이십니다. 그분이 한 번 기억하시기 시작하시면 엄청난 역사가 일어납니다. 애굽에서 고통중에 부르짖엇던 자기 백성들을 고통을 돌아 보시고,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에게 말씀하셨던 언약을 기억하시고 출애굽의 엄청난 역사를 일으키셨 던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하나님은 권능의 회상자 이십니다. 그 분은 언약을 기억하시고, 약속하신 대로 이루시는 크고 두려우신 하나님 이십니다. 하나님은 신실하시고 변함 이 없으신 분입니다. 그 분은 참으로 우리의 삶을 다 바쳐 신뢰하고 의지 할 만한 분이십니다.
III
기도의 대상에 초점을 맞추고 그 기도의 대상이신 하나님 때문에 소망중에 기도하던 느헤미야는
이제 자신의 문제를 하나님 앞에 고하고 있습니다. 『 . . . 이스라엘 자손의 주 앞에 범죄함을 자복하오니 . . .』(1:6). 느헤미야의 기도의 내용은 대부분 하나님 앞에 범죄함을 회개하는 기도 였습니다(느 1:6,7 참고). 옛적에 하님은 모세를 통하여 또한 선지자들을 통하여 여러번 경계하셨습니다. 「너희가 이방의 신들을 섬기고 거지 절하면 반드시 그것이 너희 옆구리의 가시가 될 것이다. 가까이 하지마라. 주의해라」. 그러나 하나님의 백성들이 그 경고를 무시하고 우상을 섬기며 바알에 무릎꿇기 시작했습니다. 그들이 제사 지내는 데 가보니까 신나게 제사를 지내고 있습니다. 황홀경에 빠져서 남녀가 춤을 추며 성관계를 맺고 있습니다. 재물이 넘치고 포도주와 쾌락이 넘쳐납니다. 그들은 바알신을 섬기고 있는데 여호와 하나님을 섬기고 있는
자기들보다 더 잘 삽니다. 처음에는 달콤한 유혹을 뿌리치다가도 은밀하게 유혹의 손길을 잡아보니 그렇게 달콤 할 수가 없습니다. 이렇게 하나님의 백성들이 서서히 조금씩 우상숭배의 쾌락에 빠져들어가기 시작한 것입니다. 하나님의 백성이 세상에 선한 영향을 미치는 것이 아니라, 세상이 오히려 교회에 영향을 주고 하나님의 백성들을 오염시키고 있습니다. 개혁의 주체가 오히려 개혁의 대상이 되버렸습니다.
교회가 왜 힘이 없습니까? 그리스도인이 왜 세상에서 힘을 잃어버리고 있습니까? 하나님의 백성이 하나님 앞에 바로 서기만 하면 이 민족에 소망이 있습니다. 세상의 번영과 세상의 성공과 세상의 가치가 교회에 들어와서 질식하게 되면 교회는 겉으로는 아무 문제가 없는 것 같은데 속으로는 푹푹 썩어가고 잇는 것입니다. 삼손이 들릴라의 무릎을 베고 달콤한 잠을 자고 있는 동안에 그는 서서히 무너지고 있는 것입니다.
무너진 성벽, 무너진 신앙, 무너진 예배, 무너진 가정, 무너진 사회를 다시 일으키시길 원합니까? 죄악을 버리고 돌아오면 아골 골짜기로 소망의 문을 삼아 주신다고 약속하셨습니다.
크고 두려우신 하나님 언약을 기억하시고 긍휼을 베푸시는 하나님께서 눈물의 골짜기, 절망의 골짜기, 죽음의 골짜기를 소망의 문으로 활짝 열려지게 하실 것입니다.
한국 교회의 위대한 부흥을 보기 원하십니까? 무릎으로 일하지 않으면, 기도하지 않으면 역사는 달라지지 않습니다. 느헤미야는 진실로 무릎으로 일하는 지도자 였습니다. 무릎으로 일하는 지도자, 기도하는 지도자 느혜미야를 통해 크고 두려우신 하나님께서 역사를 바꾸어 놓으셨습니다. 예루살렘 성벽을 재건하는 대역사가 무릎으로 일한 지도자 느헤미야 한사람의 기도에서 시작 되었다는 사실입니다. 한 사람이 입을 열어 기도하기 시작하면, 지도자 한 사람이 하나님 앞에 겸비하여 무릎으로 일하기 시작하면 하나님의 크고 놀라운 일들이 벌어지기 시작합니다.
이 시대에 느헤미야는 어디 있습니까? 기도하는 평범한 사람들을 비범한 지도자로 세워 위대한 일을 이루시는 하나님은 오늘도 무릎으로 일하는 이 시대의 느헤미야를 찾고 계십니다. 우리의 기도를 들으시는 크고 두려우신 하나님, 언약을 지키시고 긍휼을 베푸시는 주여, 이 땅에 무릎으로 일하는 지도자들을 많이 일으켜 주옵소서.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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