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상설교'두가지 신자(마6:1-18)
예수님은 광야 40일간의 금식기도로 공생애를 준비하시고 마귀의 시험을 승리하신 후 밤이 맞도록 기도하시고 열두 제자를 선택하셨습니다.
자연계시가 풍성한 팔복산에 그 제자들을 모으시고 천국시민의 대헌장과 같은 설교를 하셨습니다. 말씀으로 천지를 창조하신 그 능력의 입을 열어 가르치신 교훈은 5장을 천국시민의 자격 6장은 그 생활내용 7장은 경계를 분류가 됩니다.
오늘 본문은 그 당시에 하나님을 믿는 자들을 두가지로 분류하신 것입니다.
Ⅰ.첫째 종류의 신자
6장 1절 초두에 사람에게 보이려고란 말씀이 나옵니다. 그절에는 『사람에게 영광을 얻으려고 』다시 6:5과 6:16에 『사람에게 보이려고』란 구절이 거듭 반복됩니다.
당시 경건생활에 구제와 기도와 금식인데 이 세가지는 경건생활을 순전히 사람에게 보이려고 한다는 것입니다. 구제는 우리의 재물을 하나님께 드림이요 기도는 우리의 영혼을 금식은 악에 젖은 우리의 신체를 드리는 경건입니다.
구제는 가난한 형제가 대상이요 기도는 전능하신 하나님 아버지가 대상이며
금식은 내 자신을 대상을 삼는 것인데 이러한 경건 생활을 순전히 사람에게 보이려고 하니 얼마나 한심한 일입니까? 이러한 신자는 주님당시에 외식 주의자들인 서기관과 바리새인들이 있습니다. 그 당시 바리새인들이 구제하고 기도하며 금식하는 것은 세가지 경건자체가 아니라 사람들에게 칭찬과 영광과 인정과 상급을 얻고자 함이었습니다. 예수님은 이러한 바리새 주의를 가장 미워하셨습니다. 마태23장에서 7번씩이나 반복하여 『화있을진저 서기관과 바라새인들이여』하시며 우맹이요 소경이며 회칠한 무덤이라고 뱀같고 독사의 새끼들이라고 책망하셨습니다. 성직자에게 마귀가 던져준 미끼중에 가장 매력있는 것은 인간들에게 영광을 얻고 인간에게서 명성을 얻는것입니다. 『저희는 사람의 영광을 하나님의 영광보다 더 사랑 하였더라 』(요12:43)고 예수님은 말씀하셨습니다. 주님은 절대로 『사람에게 영광을 취하지 아니』(요5:41) 하셨습니다.
Ⅱ.둘째 종류의 신자
예수님은 본문에서 『은밀한 중에 보시는 너희 아버지가 갚으시리라』(6:4)는 말씀은 6:6과 6:18에 거듭 반복하여 언급하셨습니다. 둘째 종류의 신자는 구제와 기도와 금식을 은밀한 중에 보시는 하나님만 알아주시면 더 이상 바랄것이 없다고 생각하는 신자입니다. 그래서 그들은 오른손이 하는 구제를 왼손도 모르게 하여 골방에 들어가 문을 닫고 은밀한 중에 보시는 아버지께 기도하며 아무도 모르게 깨끗이 단장을 하고 금식을 하는 것입니다. 이러한 경건은 반드시 하나님께서 보시고 후히 갚아 주신다고 했습니다.
토인비는 『은퇴와 복귀』를 잘하는 사람이 영웅이 된다고 했습니다. 부루스는 『우리가 감추고 싶을 때 나타나야 하고 나타내고 싶을 때 감추어야 한다』고 했습니다. 참된 경건은 인간들의 칭찬이나 영광앞에서는 숨어야 합니다. 그리고 고난의 십자가 앞에는 주님처럼 『내 뜻대로 마옵시고 아버지의 원대로 되기를 원하니이다』하고 골고다까지 지고 가야 하는 것입니다. 『한알의 밀이 땅에 떨어져 죽지 아니하면 한알 그대도 있고 죽으면 많은 열매를 맺는 』(요12:24)것입니다. 성직자는 인기나 사람들에게 얻은 영광에 현혹되어서는 안됩니다.모든 신자들도 물론안됩니다. 어떤 목사님은 자기 집 벽에 이런 글귀를 써 붙여놓고 자기를 감추는 삶을 살았습니다.
『아사(我死)면 교회생(敎會生)하고 아생(我生)이면 교회사(敎會死)한다』는 것입니다. 교회는 목사의 무대도 장로의 무대도 아니고 우리 주님의 출연 무대입니다.
신약교회는 주인이 성령님이십니다. 사도행전13장1-3에 『주를 섬겨 금식할때에 성령이 가라사대 내가 불러시키는 일을 위하여 바나바와 사울을 따로 세우라』고 했습니다. 교회는 누가 가라사대가 아닙니다. 『성령이 가라사대』입니다. 인간 지도자들은 숨고 주의 성령님이 나타나 역사하는 교회가 참되고 살아있는 교회입니다.
Ⅲ.두종류의 신자들이 얻은 상급
ⅰ)첫째 종류의 신자 곧 『사람에게 보이려고』경건생활을 하는 신자도 받을 상급이 있습니다. 본문 6:2에 『저희는 자기 상을 이미 받았느니라』고 했고 또 6:5과 6:16에 3번 반복하고 있습니다. 『자기상』이 무엇일까요? 이는 자기자신이 만들어서 자기에게 주는 상입니다. 상은 높은 분에게 받아야 하는데 나아가서 하나님께 받아야 하는데 제가 만들어 제자신에게 주니 한심한 상입니다. 그들은 사람에게 칭찬 영광을 이미 다 받아 갖고 더 이상 다른 상은 없습니다. 『받았느니라』시제는 과거를 섰습니다.
씨 에스 루이스(C.S Lewis)는 『영광의 중요성』(The Weight of glory)이란 글에서 상을 언급했습니다.
『상은 여러 가지 종류가 있다.당신이 상을 얻기위해 행하는 것과 당연한 관계가 없는 상이 있다. 예를 들면 돈은 사랑이 상급이 아니다. 만일 돈 때문에 어떤 여자와 결혼한다면 그는 잘못된 것이다. 결혼은 참된 사랑을 하는 사람들을 위한 진정한 상이다. 사랑은 결혼을 바라는 것이지 돈을 바라지 않는다. 진정한 상은 단순히 상이 주어지는 활동에 부가 되지 않고 쟁취된 활동 그 자체이다.』참된 신앙은 하나님을 만나고 그의 자녀가 되고 구주 예수그리스도가 나의 신랑이 되고 나는 흠이 없는 신부가 되면 그것이 최상의 상급입니다. 사람에게 현재 상을 모두 받은 사람은 하나님께 미래에 받을상이 없습니다.
ⅱ) 둘째 종류의 신자 곧 『은밀한 중에 보시는 아버지가 갚으시면』그만이다 하는 신자는 무엇을 상으로 받았을까 ?
6:4, 6:6, 6:18에 반복되는 상이 있습니다. 그것은 『은밀한 중에 보시는 너희 아버지가 갚으시라』고 했습니다. 여기 본문에 구체적인 상급의 품목이 언급되어 있지 않지만 산상보훈7:7 이하를 보면 『너희가 악한자라도 좋은 것으로 자식에게 줄 줄 알거든 하물며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께서 구하는 자에게 좋은 것으로 주시기 않겠느냐?』고 했습니다. 이미 독생자를 주셨고 하나님의 자녀의 권을 주셨고 천국의 상속권을 주셨습니다. 여기 본문에 미래사를 써서 갚으시리라고 했으니 또 사는 날동안 필요한 모든 은혜와 저 천국에서의 의의 면류관을 준비 해놓셨을 것입니다. 로마서 8:32에 『자기 아들을 아끼지 아니하시고 우리 모든 사람을 위하여 내어 주신이가 어찌 그아들과 함께 모든 것을 은사로 주지 아니 하시겠느뇨』라고 말씀했습니다.
결론
하나님은 우리의 신앙을 항상 점검하시고 우리의 경건을 저울로 달아 보십니다. (다니엘5:27) 한나는 기도응답을 받아 아들을 낳은후 『여호와는 지식의 하나님이라 행동을 달아』보신다고 했습니다. (삼상2:3) 벨사살 왕의 행동은 하나님의 저울에 달려 모자람이 되어 귀인 일천명으로 만찬을 베풀던 그날밤에 죽임이 되고 메대사람 다리오에게 나라를 빼았기고 말았습니다. 만일 우리가 사람에게 보이려는 외식주의 신앙과 사람에게 영광을 얻으려는 경건을 가졌다면 당장 회개하고 참된 경건의 자리로 옮겨야 합니다.
우리의 가계부에는 이웃을 돕는 구제가 얼마나 적혀있습니까? 어떠 사람들은 자기 이름 내는데는 돈을 아끼지 않습니다. 교회를 건축하면 강대상을 해 놓겠다는 사람은 많습니다. 그러나 지붕을 덮겠다든지 벽돌장을 사겠다든지 보이지 않는 부분을 헌납하는 이가 적습니다. 한번은 모 일간지에 수재를 당한 이웃을 돕는 거액의 기금을 내고 절대로 이름을 밝히지 않고 사라진 사람에 대한 기사를 읽었습니다. 교회안에 선교나 전도나 주님의 교회를 위한 모든행사에 자기 이름과 개교회 이름을 내고자 하는 모습은 주님이 기뻐하시지 않는 일입니다.
기독교 연합운동에도 고문도 많고 명예 대회장도 많고 회장도 많습니다. 총무가 수십명 줄을 있고 무슨 부서가 많아 세계를 뒤집어 엎을 것 같지만 정작 그많은 사람들이 무엇을 얼마나 했는지 의문입니다. 주최측에서는 만일 이름이 빠진 사람이 있다면 절대로 협조를 얻지못하는 것이 관례로 되어 있습니다.
우리는 골방에 들어가 문을 닫고 하나님과 교제를 나누는 기도가 얼마나 있는지 ? 기도도 들어주실 하나님 아버지는 빠지고 우리 사람의 모습, 사람의 소리만 공기를 진동하는 기도회가 쌓인 스트레스를 씻을지는 모르나 하나님께서 응답하실 골방의 기도와 금식이 아쉬운 때입니다.
21C는 지식이 더하며 왕래가 빨라지는 (단12:4)시대라고 합니다. 사이버 시대요 광속비행기가 나와 세계 어느곳도 수십 분안에 오가며 복제동물, 복제인간이 나와서 하나님의 주권에 도전하는 시대가 될 것입니다. 교회는 어떤 모습으로 변할지 신자는 어떤 형태로 유지될지 한치 앞을 모르는 변화의 시대가 새천년을 맞는 시대입니다. 그러나 교회만은 사도 행전적인 초대교회로 돌아가는 교회, 그리고 초대교회와 조금도 변질되지 않고 신자 본래 모습을 유지하는 은혜가 있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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