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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장연 목사 |
1세기의 팔레스틴 인구는 150~200만 정도였으며, 유대인이 약 3/1정도(50~60만) 되었다고 한다. 당시 유대교는 여러 종파가 형성되었다.
① 바리새파(초자연주의자)이다. 바리새파의 기원에 대해서 마카비 전쟁 전후 일어났던 하시모니안, 즉 경건주의자들로 여겨진다.
② 사두개파(자연주의자)이다. 이들은 숫자로는 바리새파보다 소수이나 주로 교육을 받은 자들이며, 정치적으로나 경제적으로 높은 위치에 있는 자들이다. 그 시작은 다윗 당시의 사독(왕상 1:34)이며 A.D.70년 예루살렘이 멸망할 때까지 계속되었다.
③ 에쎈파(금욕주의자)이다. 성경에서는 에쎈파(the Essenes)에 대하여 침묵하고 있다. 그러나 요세푸스나 알렉산드리아의 필로(Philo), 플리니(Pliny) 등에는 기록이 있다. 그들은 흰옷을 입었고 독신을 강조했다. 어떤 그룹에서는 자녀를 위해 결혼을 허락했으나 대개는 양자를 데려다가 길렀다. 생활은 손 씻는 결례, 세례, 기도 등 수도원적 생활을 했다.
④ 서기관과 랍비들이다. 유대교인들이 바벨론에 포로로 잡혀 있을 때 율법에 대한 깊은 연구가 시작되었고 그 결과 새로운 계급, 즉 서기관이 생기게 되었다. 당시 유대인들은 여기 저기 흩어져 살고 있었기 때문에 각 회중들마다 자신의 사본을 갖기를 원했다. 그래서 구약, 그 중에서도 율법을 베끼는 전문가들이 생겼고 결과적으로 성경학자들이 되었는데 이것이 서기관의 유래이다. 서기관의 대표적 인물은 에스라(느 8:9)이다. 서기관들은 흔히 율법 교사, 또는 단순히 교사라고 불리기도 한다.
유대교는 기독교 형성에 많은 영향을 주었다. 하지만 결정적인 점에서 유대교는 기독교와 구분된다는 사실이다. 그것은 하나님을 믿는다는 차원에서는 유대교와 같은 길에 서 있지만 십자가의 그리스도를 구원자로 생각한다는 점에서 그들과 다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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