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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장연 목사 |
성경에서는 헤롯이라는 이름이 네 사람 등장한다. 첫째, 예수님 나셨을 때 동방 박사들이 별을 보고 찾아왔다가 만난 헤롯이다(마 2:1). 이 사람을 헤롯 대왕이라 한다. 둘째, 세례 요한의 목을 벤 왕인 헤롯 안티파스이다(막 6:18). 셋째, 베드로를 잡아 가두고 벌레가 먹어 죽은 헤롯이다(행 12:23). 이 사람은 헤롯 대왕의 손자이다. 즉 헤롯 대왕의 손자인 헤롯 아그립바 1세이다. 넷째, 바울이 잡혀서 심문을 당할 때 그 앞에 섰던 아그립바 왕이 나오는데 이 사람이 아그립바 1세의 아들인 헤롯 아그립바 2세이다(행 26:31).
그러면 헤롯 가문의 시작은 언제 되었을까? 그 시작은 마카비 혁명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마카비 혁명의 성공으로 인하여 그 후계자들이 나라를 다스리게 되는데 제4대까지 내려 왔을 때에는 예루살렘 동남쪽의 이두메(에돔지역)까지 정복하게 된다. 이때 이 지역을 다스릴 수 있는 사람을 선정하게 되는데 에돔 사람 ‘안티파스’이다. 이 사람이 대헤롯의 할아버지이다. 그러는 중에 로마의 세력이 커지자 안티파스는 친로마정책을 펴게 된다. 특히 폼페이 장군은 여러 지역에 출정해서 나라들을 합병한다. B.C. 64년에는 다메섹을 점령한 후 수리아 주(州)를 만들더니 1년 후에는 그 아래로 눈을 돌려 유다를 정복한다. 이 기회를 놓치지 않은 에돔 총독이었던 안티파터는 폼페이를 도와 예루살렘을 정복하는데 일조를 한다. 혁명으로 시작된 유다의 독립이 100년 후 다시 로마에 의해 무너지는 순간이다. 폼페이는 안티파터(안티파스의 아들)를 ‘집정관’이라는 이름으로 유대지역을 다스리게 한다. 그 후에 폼페이는 가이사와 패권을 놓고 싸우게 되고 폼페이는 죽는다. 가이사가 본국으로 돌아와 그의 충신 부루투스에 의해 살해를 당한다(B.C. 44년). 그 와중에 안티파터도 살해를 당하게 되고 그의 아들 대헤롯은 정치적으로 곤궁에 빠지게 된다. 결국 헤롯은 이집트로 도망가 있다가 로마에 들어가 로비활동을 하게 되는데 로마의 원로원들은 헤롯을 유대의 왕으로 임명한다. 이때가 B.C. 37년경이다. 이때 유대 땅은 하스몬 왕조의 마지막 통치자 안티고누스가 차지하고 있었다. 그런데 헤롯을 유대의 정식 왕으로 임명한 것이다. 이는 그 땅을 빼앗으라고 하는 뜻이기도 하다. 이때 헤롯은 안토니우스의 도움을 받아 예루살렘 성을 빼앗아 다스리게 된다.
우리들도 신앙생활을 바로 하지 않으면 헤롯 가문과 같이 비열한 사람들이 될 수 있음을 잊지 말아야겠다. 주님이 오시는 순간까지 영원한 약속을 바라보며 승리하는 삶을 살아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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