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구약 중간사⑬] 분봉왕과 총독 | ||||||
신약성경을 보면 분봉(마 14:1, 눅 3:1 등)과 총독(마 10:18, 마 27:2 등)이라는 이야기가 등장한다. 어떻게 신약에 헤롯 가문이 등장하게 되었을까? 마카비 혁명이 성공한 후에 예루살렘 동남쪽의 이두메(에돔지역)를 다스리도록 총독을 두게 되는데 그 사람이 안티파스(헤롯의 할아버지)이다. 하지만 로마의 세력이 커지자 마카비 왕조를 배신하고 로마에 꼭두각시 노릇을 함으로 유대에 튼튼한 ‘왕’으로 자리매김을 하게 된다. 그러다가 헤롯 대왕이 죽게 되자 자신의 왕국을 10명의 아들 가운데 세 아들인 안티파스, 빌립, 아켈라오에게 분할해 주었다. 그런데 로마의 황제 아우구스투스는 헤롯의 계승자 문제에 대해 갈등에 부딪혔다. 그 이유는 유대인 중에는 헤롯의 폭정을 이유로 로마의 직접적인 통치를 원하는 자들이 많은 정황(情況)이 있었기 때문이다. 통치의 공백기가 생기는 틈을 타 ‘유다’라는 사람이 반기를 들어 갈릴리 지방의 ‘셉보리’(Sepphoris)도성을 점령하게 된다. 그러나 황제의 명을 받은 수리아의 총독 바루스(Varus)에 의해 포획되어 처형되었다. 총독이 철수하자 유대인들은 헤롯의 아들 아켈라우스에게 폭동으로 대항하였다. 다시금 유대에 재 진입한 바루스 총독은 폭동을 진압하고 무려 2000여 명을 십자가형에 처했다. 팔레스타인의 통치공백으로 폭동이 빈발하자 마침내 헤롯 대왕의 유언은 황제의 인준을 얻었고 왕국은 세 아들들에게 삼분할 되었다. 안티파스에게는 갈릴리와 베레아 지역(요단동편)을 주고 빌립에게는 갈릴리 북동부 지역을, 헤롯 아켈라우스에게는 유다, 사마리아, 이두메(에돔지역)의 통치권을 주었다. 이렇게 나누어진 땅을 다스리던 왕들을 가리켜 분봉왕이라고 한다. 그 중에 아켈라우스의 통치는 너무 야만적이고 독재정치를 했다. 백성들은 폭동을 일으켰고 이때 아켈라오는 2000~3000명을 죽이게 된다. 이 일로 유대는 혼란해졌다. 폭동은 더욱 심해졌고 유대와 사마리아의 대표자들은 아우구스투스 황제를 찾아가 아켈라우스의 파면을 요구하였고 마침내 황제는 아켈라우스를 고을(Gaul, 프랑스) 지방으로 추방시켰다. 그 결과 아켈라우스에게 분할된 지역은 총독 ‘코포니우스’(Coponius)의 관할 하에 들어가게 되었다. 이후로 총독제도는 계속이어 오면서 예수님 당시에는 폰티우스 필라투스(본디오 빌라도, 5대, A.D.26~36)로 이어지게 된다. 사도 바울 때에도 역시 벨릭스와 베스도 총독들이 등장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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