변화된 믿음으로 나아가는 교회
(요 3:3-5)
(요 3:3) “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진실로 진실로 네게 이르노니 사람이 거듭나지 아니하면 하나님의 나라를 볼 수 없느니라” (요 3:4) “니고데모가 이르되 사람이 늙으면 어떻게 날 수 있사옵나이까 두 번째 모태에 들어갔다가 날 수 있사옵나이까” (요 3:5) “예수께서 대답하시되 진실로 진실로 네게 이르노니 사람이 물과 성령으로 나지 아니하면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갈 수 없느니라”
필리핀이나 몽골이나 캄보디아에 가면 우리나라 중고차들이 씽씽 잘 달려가는 모습을 보게 됩니다. 그 차들은 우리나라에서는 수령이 오래되어 폐차할 수밖에 없는 차들이었으나 그것들을 모아 동남아 국가들로 수출한 차들입니다.
그 나라들은 과거 우리나라도 그랬지만 어떤 차라고 해도 그것을 수리하면 굴러가게 하는 기술이 있기 때문입니다.
세상에서 고치기 어려운 것은 오래된 아파트나, 다 낡은 중고차를 수리하는 일이 아니라 타락한 인간을 변화시키는 일이고 오랫동안 잘못된 습관을 고치는 일입니다.
2009년을 보내고 2010년을 맞이한 우리는 일 년 중에 그 어느 때보다 가장 많은 다짐과 결심을 하게 되는 연말연시를 보내고 있습니다. 이 맘 때면 어느 누구를 막론하고 새로운 결심과 다짐을 많이 하게 될 것입니다.
몰래 피우던 담배를 끊어야겠다, 아침마다 운동을 해서 다이어트를 하고 체력을 강화시켜야 하겠다, 한 달에 한 권씩이라도 신간서적을 읽어야 하겠다고 결심을 합니다.
믿음의 사람들은 매일 새벽 기도를 시작하고, 주일을 성수하고, 하루에 성경을 석장씩 주일에는 다섯 장씩 읽어 신구약을 일독을 하겠다는 다부진 결심을 하기도 합니다. 아마도 우리 중에 그 같은 결심을 금년에 처음 하는 사람은 없을 것입니다.
물론 이 모든 것들이 다 변화에 대한 노력입니다. 문제는 지난 세월을 돌이켜 보면 작심삼일이라는 말처럼 끝까지 이행하지 못한 적이 한 두 번이 아닙니다.
그 이유가 무엇이며 어떻게 하면 금년에는 그 결심을 지킬 수 있는지 오늘 성경 말씀을 통해서 답을 얻어야 하겠습니다.
1. 거듭남이 필요한 사람
오늘 성경은 우리가 추운 날씨에도 불구하고 교회를 나온 것처럼 예수님 당시 종교지도자 그룹 속에 속해 있는 니고데모라는 사람이 밤중에 은밀하게 찾아온 이야기입니다.
(요 3:1) “그런데 바리새인 중에 니고데모라 하는 사람이 있으니 유대인의 지도자라”
여기서 ‘지도자’라는 말(a[rcwn)은 '통치자, 지휘자, 군주'라는 말로 높은 지위에 있는 사람을 뜻하는 것입니다.
흔히 사람들이 성공이라고 말하는 보편적인 잣대로 니고데모를 잰다면 크게 성공한 인물입니다. 그에 비해 예수님은 아무것도 소유하고 있지 못한 가난뱅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대부분의 바리새인들은 예수님을 비천한 목수의 아들로만 알고 무시하고 비하하기에 급급하였으나, 니고데모는 평소 예수님을 예리하게 관찰하면서 그들과 전혀 다른 시각으로 예수님을 바라보았습니다.
(요 3:2) “그가 밤에 예수께 와서 이르되 랍비여 우리가 당신은 하나님께로부터 오신 선생인 줄 아나이다 하나님이 함께 하시지 아니하시면 당신이 행하시는 이 표적을 아무도 할 수 없음이니이다”
여기서 니고데모는 예수님을 선생님이라고 호칭하는 말 ‘랍비’라고 불렀으며, 랍비 중에서도 하나님께로부터 오신 선생님이라고 인정하였으며, 그 근거는 평소 예수님이 누구도 따라서 할 수 없는 놀라운 기적을 행하시는 것으로 입증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이 같은 니고데모의 고백은 지금까지 예수님이 제자들에게조차 들어본 적이 없는 완벽한 신앙고백처럼 생각이 될 것입니다.
더구나 바리새인이요, 지도층인사라면 예수님에게 다 적대적인 입장이었음에도 불구하고 이 같은 고백을 하였다는 것은 놀라운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그렇다면 예수님은 그와 같은 니고데모를 쌍수를 들고 환영하고 입에 침이 마르도록 칭찬을 아끼시지 말고 심복으로 삼으셔서 장차 당신의 신변을 보호하는 방패막이로 키우셔도 좋을 대어를 낚으신 격입니다.
니고데모의 그 같은 고백에 대해 예수님은 흔히 우리들처럼 니고데모를 고맙다는 듯이 덥석 끌어안으시면서 좋아라하셨을까요?
결코 아닙니다. 예수님의 반응 냉정하셨습니다. 어쩌면 니고데모가 예수님에게 큰 기대를 걸고 왔다가 상처를 받고 돌아가지는 않았을까 라고 걱정이 될 정도로 지극히 원론적인 말씀을 하셨습니다.
(요 3:3) “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진실로 진실로 네게 이르노니 사람이 거듭나지 아니하면 하나님의 나라를 볼 수 없느니라”
여기서 ‘거듭나지 아니하면’이라는 말씀은 ‘지역적으로는 위로부터, 시간적으로는 처음부터, 다시, 새로이’라는 뜻의 말과 ‘생기게 하다, 태어나게 하다, 존재하게 하다’라는 뜻을 가진 두 단어입니다.
이는 육신의 태어남이 아닌 또 하나의 ‘새로운 태어남’을 뜻하는 말로 흔히 ‘중생해야 한다‘는 뜻입니다.
지금 니고데모가 아무리 예수님에 대해서 호감을 가지고 긍정적인 평가를 할지라도 예수님은 칭찬을 하신 것이 아니라 그 같은 이해만으로는 하나님의 나라를 볼 수 없으며, 니고데모가 다시 새롭게 태어나야만 한다는 뜻입니다.
예수님은 니고데모에게 ‘육으로 난 것은 육이요, 영으로 난 것은 영이니 내가 네게 거듭나야 하겠다 하는 말을 놀랍게 여기지 말라(요 3:6-7)’고 말씀하신 것입니다.
여기서 ‘놀랍게 여기지 말라’는 말씀은 거듭나야만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갈 수 있다는 말을 ‘이상하게 여기지 말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이 같은 예수님의 가르침은 니고데모에게만 해당하는 말씀이 아니라 가고 오는 역사 속에서 하나님 나라에 들어가기를 원하는 모든 사람들에게 하나도 예외가 없이 다 적용되어지는 말씀입니다.
언젠가는 우리도 반드시 한번은 죽어야 하는 사람들이요, 그러한 우리들의 궁극적인 관심은 예수를 믿고 구원을 받아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가는 것입니다.
그렇게 하기 위해서는 무엇이 필요하다고 생각이 됩니까? 우리가 잘 알고 있는 것처럼 예수를 믿고 교회를 다니고 육 개월이 지나면 학습을 받고, 또 육 개월이 지나면 세례를 받습니다. 그러나 그 과정 속에서 반드시 경험해야 할 것이 거듭남입니다.
아무리 니고데모처럼 기독교에 대해서 긍정적으로 생각하고, 성경을 많이 읽고 내용을 잘 이해하고 신비한 기적을 눈으로 보고 귀로 듣고 몸으로 경험을 하였고, 빠짐없이 공적인 예배에 참석한다고 할지라도 반드시 전제되어야 할 것은 과연 내가 위로부터 다시 태어나는 변화를 경험하였는가? 하는 것이 대전제라는 것입니다.
육신으로 태어난 인간은 누구를 막론하고 영적으로는 죽은 상태이기 때문에 설령 성경을 읽고 설교를 들어 기독교에 대해 니고데모처럼 어느 정도 이해하고 있다고 할지라도 영적인 세계에 대해서는 문외한 일 수밖에 없음을 인정해야 합니다.
그러므로 눈에 보이지 않는 천국이나, 과학적으로 입증하기 어려운 성경의 기적이나, 예수님의 부활과 같은 영적인 진리까지는 잘 믿어지지 않는 것이 오히려 정상적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입니다. 왜냐하면 영으로 육으로 이해한다고 하는 것은 한계가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성경에 대한 나름대로 지식을 가지고 있을 지라도 자신이 거듭난 사람이라는 확신을 갖지 못하였다면 그냥 넘어 갈 것이 아니라 반드시 어떤 경로를 통해서든지 자신이 분명히 거듭난 사람이라는 확신을 갖도록 거듭남의 과정을 체험해야만 한다는 것입니다.
만일 그렇지 못하다면 그 사람이 아무리 교회를 잘 다니고 있을지라도 죽어서 하나님 나라에 들어가기는커녕 구경조차 할 수도 없다는 것입니다. 참으로 충격적인 가르침이 아닐 수 없습니다.
예수님의 말씀을 빌려 우리 그리스도인이 거듭나야만 한다는 것은 신앙의 형식이 아니라 신앙의 본질임을 깨닫고 2010년에는 어떤 경로를 통해서든지 내 일생에 반드시 거듭남의 확신을 체험해야 할 것입니다.
2. 거듭남의 방법
니고데모는 육신적으로 하나도 아쉬울 것이 없는 신분과 지위를 가지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영적인 갈증을 느끼고 밤중에 은밀하게 예수님께 나아왔음에도 불구하고 예수님은 칭찬대신 거듭나지 않으면 거듭나야만 한다고 가르치셨습니다.
하지만 문제는 사람이 거듭나지 않으면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가기는커녕 하나님의 나라를 볼 수조차 없다고 말씀만 하시고 그 방법을 가르쳐 주시지 않았다면 그 것은 마치 의사가 아픈 곳을 진단해놓고서 치료는 환자보고 알아서 하라는 무책임한 의사나 다름이 없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명의 중에 명의이신 예수님은 사람이 거듭나는 것이 영적인 문제이기 때문에 니고데모와 같이 명석한 사람조차 잘 이해하지 못할 정도로 영적으로 깊은 진리임에도 불구하고 그것을 쉽게 설명을 하여 이해시키시려고 노력하시는 모습을 오늘 성경에서 찾아볼 수 있습니다.
(요 3:7) “내가 네게 거듭나야 하겠다 하는 말을 놀랍게 여기지 말라” (요 3:8) “바람이 임의로 불매 네가 그 소리는 들어도 어디서 와서 어디로 가는지 알지 못하나니 성령으로 난 사람도 다 그러하니라”
여기서 우리가 주목해야 할 말씀은 거듭난다는 것이 어머니 뱃속에 다시 들어갔다가 나오는 것이 아니라 성령으로 나는 것이라고 하신 말씀입니다.
거듭나게 하시는 성령의 역사는 마치 바람처럼 눈으로 볼 수 없지만 바람이 지나가게 되면 나뭇가지가 흔들리고, 낙엽이 떨어지고, 심하면 나무가 바람에 쓰러지고, 뿌리가 뽑히지만 바람은 여전히 눈으로 볼 수 없는 것과 같다는 것입니다.
다시 말해서 거듭나는 것은 해도 되고 안 해도 되는 것이 아니라 그리스도인이라면 반드시 경험해야 하는 필수적인 부분임에도 불구하고 거듭나고 거듭나지 않고 하는 주도권은 나의 선택이나 노력에 의해 좌우되는 것이 아니라 성령께서 주도적으로 하시는 일이라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거듭난 사람은 믿음이 좋고, 거듭나지 못한 사람은 믿음이 안 좋고 라고 말할 수 없고, 만일 자신이 거듭났다면 그것은 하나님의 은혜임을 깨닫고 겸손해야 하고, 감사해야 할 뿐이라는 것입니다.
정반대로 자신이 아직 거듭나지 못했다면 반드시 거듭나기 위해서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아무것도 없고 오로지 성령께서 나를 거듭나게 해 주실 것이라는 확고한 믿음을 가지고 성령님을 접할 수 있는 기회를 자주 가져야 하는 것입니다.
그것이 바로 성령께서 나를 거듭나게 해 주시기를 간절히 소원하는 마음으로 성령께 구하는 기도 생활을 지속적으로 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성령의 감동으로 기록된 성경 말씀을 읽고 듣고 묵상하는 가운데 성령이 나의 영혼을 거듭나게 하시는 체험을 하게 됩니다.
성령이 임하셔서 강력하게 역사하시는 자리는 두세 사람이 함께 모여 예배하고 기도하고 찬송하는 자리입니다. 몸을 씻기 위해서는 샤워기 아래로 다가서야 하는 것처럼 성령으로 거듭나기 위해서는 성령이 임재하시는 말씀과 기도와 찬송이 있는 은혜의 장소로 나아가야 합니다.
그 대표적인 예가 오순절 마가의 다락방에 120명의 남녀노소가 모여 주께서 약속하신 성령의 임재를 간절히 사모하며 기도하였을 때 마침내 각 사람이 모두 다 성령의 충만함을 받은 것과 같습니다.
(행 2:3) “마치 불의 혀처럼 갈라지는 것들이 그들에게 보여 각 사람 위에 하나씩 임하여 있더니”
그러므로 자신이 아직 성령으로 거듭난 사람이라는 확신이 없는 사람은 자신이 목사이든지 장로이든 집사이든 개의치 말고 오로지 물과 성령으로 나를 거듭나게 해 주옵소서 간절히 기도하는 마음으로 은혜의 자리에 거듭난 성도들보다 더 열심히 나아가야 합니다.
그렇게 할 때 성령께서는 말씀과 기도와 찬송이라는 통로를 통해서 우리를 거듭나게 하십니다.
1) 우리를 십자가 아래로 이끌어 회개하게 하시고 말씀으로 우리의 영혼을 정결하게 하여 주십니다.
(엡 5:26) “이는 곧 물로 씻어 말씀으로 깨끗하게 하사 거룩하게 하시고”
2) 우리를 하나님 아버지께로 이끌어 하나님이 나를 지으신 창조주 아버지로 믿어지게 하시고 하나님을 아버지라고 고백하는 하나님의 자녀가 되게 하여 주십니다.
(롬 8:15) “너희는 다시 무서워하는 종의 영을 받지 아니하고 양자의 영을 받았으므로 우리가 아빠 아버지라고 부르짖느니라”
3) 우리의 마음을 열어 하나님의 영광을 아는 빛을 비추어 주심으로 돌같은 우리의 마음이 녹아지게 하시고 부드러운 마음이 되게 하여 주십니다.
(겔 36:26) “또 새 영을 너희 속에 두고 새 마음을 너희에게 주되 너희 육신에서 굳은 마음을 제거하고 부드러운 마음을 줄 것이며”
4) 우리를 거듭나서 새로운 피조물이 되게 하시고 우리의 마음과 생각과 입술과 행동을 새롭게 변화시켜 주심으로 새로운 삶을 살게 하여 주십니다.
(고후 5:17) “그런즉 누구든지 그리스도 안에 있으면 새로운 피조물이라 이전 것은 지나갔으니 보라 새 것이 되었도다”
5) 우리가 혼자 있어 마귀의 표적이 되지 않도록 우리를 하나님의 가족이 되도록 양자의 영을 우리에게 부어주십니다.
(엡 2:19) “그러므로 이제부터 너희는 외인도 아니요 나그네도 아니요 오직 성도들과 동일한 시민이요 하나님의 권속이라”
그 같은 영적인 변화를 경험한 사람에게는 육신의 삶에도 변화가 동반되어지게 되는 것입니다. 그것이 바로 외적으로 느낄 수 있는 구체적인 삶의 변화인 것입니다.
물론 여러 가지가 있지만 그 중에 가장 요긴한 것은 물과 성령으로 거듭난 사람은 하나님을 사랑하고 형제와 이웃을 사랑하며 살아야 하겠다는 마음이 생깁니다.
(요일 4:7) “사랑하는 자들아 우리가 서로 사랑하자 사랑은 하나님께 속한 것이니 사랑하는 자마다 하나님으로부터 나서 하나님을 알고”
그러므로 예수를 믿는 것이 기쁘고 교회를 다니는 것이 감사하고 말씀을 읽고 들을 때마다 은혜가 되고 말씀을 순종하는 삶을 통해 하나께 영광을 돌리는 삶을 살 때마다 성령님이 기뻐하심을 경험하게 됩니다. 다시 말해서 행복한 그리스도인이 되는 것입니다. 그 이유는 성령께서 거듭난 사람의 영혼에 내주하여 도우시기 때문입니다.
물론 우리가 그러한 축복을 누리지 못하도록 온갖 마귀의 시험과 도전과 훼방이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거듭난 사람은 세상을 이긴다고 말씀하였으니 2010년에는 우리 모두 그같은 마귀의 시험을 이기고 말씀과 성령으로 내 영혼이 거듭나 새사람이 되는 축복을 반드시 경험하는 성도들이 다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결 론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예수님은 천국을 여러 가지로 비유하시는 가운데 천국은 마치 작은 한 알의 겨자씨를 땅에 심는 것과 같다고 말씀하신 이유가 여러 씨앗 중에 겨자씨가 가장 작지만 그것이 살아있게 되면 가장 많은 변화가 일어나기 때문입니다.
(눅 13:19) “마치 사람이 자기 채소밭에 갖다 심은 겨자씨 한 알 같으니 자라 나무가 되어 공중의 새들이 그 가지에 깃들였느니라”
예수님의 그 같은 겨자씨 비유가 뜻하는 것은 변화가 천국의 본질임은 물론 연장선상에 있는 교회의 본질이고, 성도들의 본질임을 뜻하는 것입니다.
우리는 오늘 성경 말씀을 통해서 거듭남이란 먹기 싫은 찬밥을 억지로 먹는 것처럼 우리를 힘들게 하는 교리가 아니라 우리의 영혼을 기름지게 하는 우리의 영혼을 기쁨이 충만하게 하는 잔치상과 같은 축복입니다.
(롬 12:2) “너희는 이 세대를 본받지 말고 오직 마음을 새롭게 함으로 변화를 받아 하나님의 선하시고 기뻐하시고 온전하신 뜻이 무엇인지 분별하도록 하라”
그럼에도 불구하고 세상에서 가장 어려운 일은 사람을 바꾸는 일입니다. 세상이 달라지려면 둘 중에 하나입니다. 다른 사람이 변화되든지 내가 변화되어져야 하는 것입니다.
문제는 내가 아니라 다른 사람을 바꾸려고 하기 때문에 거기에 비난 비판과 갈등과 분쟁이 야기되는 것입니다. 오히려 나 자신이 변화되는 것이 더 쉬운 일인지 모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많은 사람들이 새해에 그 결심을 많이 하지만 년말에 가면 옛날 가치관과 생활로 회귀해 버리는 이유가 어디에 있을까요?
어떤 사람이 연초에 운동하기 위해..헬스장에 갔음.회원권을 비싸게 끊었는데...주차장도 만차...운동기구마다 사람이 바글바글..매니저에게 불평..‘아니, 수용능력도 안되면서..회원 접수를 왜 받느냐..? 환불하라..’매니저..태평하게 대답..‘한 달만 기다리세요...한가해 집니다..’‘석달만 지나면...외로우실지 모릅니다..’
사람이 한 번 하는 것은 별로 중요해보이지 않지만 무서운 것은 그것이 습관이 되어 일생동안 반복하는 것이 무서운 결과를 초래합니다. 정반대로 미미하지만 긍정적인 습관은 삶을 변화시키는 위대한 능력이 있습니다.
마귀는 그것을 잘 알고 있기 때문에 년 초에 기도원에 가는 것을 막지 않습니다. 눈물을 흘리며 회개하거나 감사하는 것을 무서워하지 않습니다.
원수 마귀를 진정으로 긴장시키는 것은 작은 결심을 지속하는 것입니다. 왜냐하면..삶의 변화는 지속하는 작은 결심으로 이뤄지는 것입니다. 그것은 강한 의지가 필요한 것이 아니라 지속적인 관심이 필요한 것입니다. 오늘 내가 무엇을 해야하나? 무엇을 했나나? 짚고 넘어가는 것입니다.
하루 시작할 때..혹은 마무리할 때. 한 10분 정도 매일, .예수님께서 내 옆에 앉아계시다고..생각하며..하나님 앞에 내가 서있다는 것을 기억하며 단 1분이나 한 십분 정도라고 기도하고 성경을 꾸준히 읽어나가는 습관이나 다른 사람을 험담하지 않기로 결심하고 한 달을 버티는 노력은 정말 마귀를 두렵게 하는 일입니다.‘
한번 한 달 동안만이라도 꾸준히 실천한 후 그 소감을 기도로 담아 하나님께 올려 보시기를 바랍니다. 아마도 천국이 보일 것이고 내 마음에 천국이 이루어졌다는 것을 깨닫게 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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