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탄절에 드려야 할 예물
(마 2:9-11)
(마 2:9) “박사들이 왕의 말을 듣고 갈새 동방에서 보던 그 별이 문득 앞서 인도하여 가다가 아기 있는 곳 위에 머물러 서 있는지라” (마 2:10) “그들이 별을 보고 매우 크게 기뻐하고 기뻐하더라” (마 2:11) “집에 들어가 아기와 그의 어머니 마리아가 함께 있는 것을 보고 엎드려 아기께 경배하고 보배합을 열어 황금과 유향과 몰약을 예물로 드리니라”
우리 어른들이 어린 시절에 한 여름 밤, 무더위를 식히기 위해 마당에 멍석을 펴고 누워 찐 고구마나 옥수수를 먹으면서 밤하늘에 은가루처럼 뿌려진 별들을 보며 북두칠성과 북극성을 찾던 추억이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요즘 도시의 밤은 거리의 휘황찬란한 불빛 때문에 밤하늘에 별을 보기 어렵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해마다 성탄절이 가까워 오면 오색 전구와 커다란 별을 만들어 성탄 트리를 장식합니다. 그리고 성탄을 감사하는 예물도 드립니다. 과연 그 이유가 무엇인지 오늘 성경 말씀을 통해서 진정한 의미를 찾고자 합니다.
성탄절이 세상 만민의 명절이 된 것은 하나님의 독생자이신 예수 그리스도께서 성령으로 동정녀 마리아의 몸에 잉태하여 세상에 오셨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성탄절의 주연은 예수님이지만 성탄절이 만민에게 알려지게 된 것은 조연 역할을 한 몇 사람들의 헌신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 헌신적인 조연 중에 하나가 오늘 살펴보려고 하는 동방박사들입니다.
1. 별을 찾는 사람들
아기 예수가 탄생하신다는 소식은 아브라함의 자손들이 살고 있는 유대 땅만이 아니라, 우상을 숭배하는 이방 사람들이 살고 있는 동방 땅에 사는 박사들에게 먼저 전해졌습니다.
(마 2:1) “헤롯 왕 때에 예수께서 유대 베들레헴에서 나시매 동방으로부터 박사들이 예루살렘에 이르러 말하되”
성경에서 ‘동방’이라고 하면 대체로 바벨론 땅으로 생각하며, 그 동방에는 북이스라엘과 남 유다가 멸망을 당한 후에 포로로 잡혀간 유대인들이 흩어져 노예 생활을 하던 곳이기도 합니다.
여호와 하나님은 유대인들만의 하나님이 아니라 온 세계 만민의 하나님으로, 이스라엘 포로들에 의해 동방에 사는 이방 사람들에게도 하나님의 말씀이 전해지고 하나님의 예언의 말씀이 성취될 수 있는 가능성이 얼마든지 있는 것입니다.
그 좋은 예가 포로 다니엘 시대의 고레스 왕이나 느헤미야 시대의 아하수에로 왕의 이야기입니다.
(대하 36:22) “바사의 고레스 왕 원년에 여호와께서 예레미야의 입으로 하신 말씀을 이루시려고 여호와께서 바사의 고레스 왕의 마음을 감동시키시매 그가 온 나라에 공포도 하고 조서도 내려 이르되”
고레스는 페르시아 대제국의 황제였음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의 감동을 받은 후에는 마치 신앙심이 좋은 사람처럼 그 입으로 자주 하나님을 거명한 것을 성경에서 찾아 볼 수 있습니다.
(스 1:2) “바사 왕 고레스는 말하노니 하늘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세상 모든 나라를 내게 주셨고 나에게 명령하사 유다 예루살렘에 성전을 건축하라 하셨나니”
심지어 이사야 선지자는 하나님께서 고레스를 가리켜 ‘내 목자’라고 하신 말씀처럼 하나님의 양떼인 이스라엘 백성들을 예루살렘으로 귀환하게 할 목자라고 하였으며, 심지어 하나님께서 고레스에게 기름을 부으셨다고 까지 말씀하였습니다.
(사 45:1) “여호와께서 그의 기름 부음을 받은 고레스에게 이같이 말씀하시되 내가 그의 오른손을 붙들고 그 앞에 열국을 항복하게 하며 내가 왕들의 허리를 풀어 그 앞에 문들을 열고 성문들이 닫히지 못하게 하리라”
그렇다면 인류의 구세주이신 아기 예수의 탄생은 예루살렘 재건보다 더 중요한 사안으로 온 세상을 구원하시고자 하는 하나님의 계획이라면 참으로 놀라운 일이 아니겠습니까?
그러므로 여호와 하나님은 온 세상을 구원하실 구세주가 세상에 오시는 성탄의 기쁜 소식을 아브라함의 자손인 유대인들에게만 아니라 이방 사람들에게도 알리기 위해 특별한 방법으로 별을 사용하신 것입니다.
(민 24:17) “내가 그를 보아도 이 때의 일이 아니며 내가 그를 바라보아도 가까운 일이 아니로다 한 별이 야곱에게서 나오며 한 규가 이스라엘에게서 일어나서 모압을 이쪽에서 저쪽까지 쳐서 무찌르고 또 셋의 자식들을 다 멸하리로다”
여기서 ‘한 별’은 인류의 구세주를 예표하는 말이지만 하나님은 성경을 알지 못하는 이방 사람들에게 민수기에 예언한 한별을 동방에서 별을 연구하는 박사들에게 실제의 별을 통해 계시하신 것입니다.
동방 박사들은 그 별이 보통 별이 아니라 구세주의 탄생을 예고하는 별임을 굳게 믿고서 그 별을 따라 동방에서부터 머나 먼 유대 땅 예루살렘에까지 찾아와서 헤롯왕을 만난 것입니다.
동방박사들은 헤롯왕에게 구세주가 어디에서 탄생하였는지를 묻지 않고 유대인의 왕으로 나신 이가 어디 계시느냐고 물었습니다.
(마 2:2) “유대인의 왕으로 나신 이가 어디 계시냐 우리가 동방에서 그의 별을 보고 그에게 경배하러 왔노라 하니”
그 이유는 동방박사들이 그 별을 보고 아기 예수를 찾아 유대 땅에 와서 성탄의 소식을 알지 못하는 사람들에게 성탄의 소식을 유대인들에게 알리기 위함이었습니다.
왜냐하면 유대 백성들은 정반대로 성탄의 주님을 기다리지 않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동방박사들의 헤롯 왕궁 방문은 잠자는 유대 백성들의 영적인 잠을 깨우는데 충분하였습니다.
2. 소동하는 사람들
동방박사들은 별이 인도하는 대로 천리만리 먼 유대 땅 예루살렘에 와서 헤롯왕을 직접 알현하였다는 것은 그들이 어느 정도로 높은 신분과 지위를 가진 사람들인가를 짐작할 수 있습니다.
동방박사들은 머나 먼 이국땅에서도 아기 예수 탄생에 대한 소식을 알고 머나먼 동방에서 찾아왔음에도 불구하고 정작 헤롯왕과 예루살렘 사람들은 그 사실을 전해 듣고서 기뻐한 것이 아니라 소동을 하였습니다.
(마 2:3) “헤롯 왕과 온 예루살렘이 듣고 소동한지라” (마 2:4) “왕이 모든 대제사장과 백성의 서기관들을 모아 그리스도가 어디서 나겠느냐 물으니”
여기서 ‘소동한지라’라는 말은 ‘함께 뒤흔들다, 분기시키다, 선동하다, 어지럽히다, 불안하게 하다.’는 뜻으로 아기 예수의 탄생을 전혀 기뻐하지 않았습니다.
헤롯은 동방박사들이 찾는 왕이 누구인가를 알아보기 위해 성경을 잘 아는 모든 대제사장과 서기관들을 불러 모아 동방박사들이 찾는 유대인의 왕이 누구인지 어디서 태어난다고 예언하였는지를 성경에서 찾게 하였습니다.
그 결과 동방박사들이 찾는 유대인의 왕은 성경에 예언한 그리스도이며, 그리스도가 태어날 곳은 베들레헴이라고 미가 선지자가 예언한 사실도 알게 되었습니다.
(마 2:5) “이르되 유대 베들레헴이오니 이는 선지자로 이렇게 기록된 바” (마 2:6) “또 유대 땅 베들레헴아 너는 유대 고을 중에서 가장 작지 아니하도다 네게서 한 다스리는 자가 나와서 내 백성 이스라엘의 목자가 되리라 하였음이니이다”
아기 예수가 어디에서 태어날 것을 알게 된 헤롯과 대 제사장과 서기관들과 예루살렘 사람들은 누구보다 먼저 베들레헴으로 달려가서 아기 예수를 경배했어야 할 사람들이었습니다.
왜냐하면 하나님께서 그들에게 권세를 주시고, 성경을 연구하고 이해할 수 있는 지혜와 지식을 주신 이유가 바로 그 때문인 것입니다. 만일 그렇게 하였다면 그들은 가고 오는 역사 속에 유명한 인물들이 되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들은 하나님께서 주신 축복의 기회를 도리어 하나님의 뜻을 역행하고 대적하는 일에 악용을 하였습니다. 아기 예수를 찾아 경배하려고 하는 동방박사들과는 정반대로 아기 예수를 죽이려는 음모를 꾸미는 일에 악용을 하였습니다.
(마 2:7) “이에 헤롯이 가만히 박사들을 불러 별이 나타난 때를 자세히 묻고” (마 2:8) “베들레헴으로 보내며 이르되 가서 아기에 대하여 자세히 알아보고 찾거든 내게 고하여 나도 가서 그에게 경배하게 하라”
헤롯왕은 본래 권력에 대한 집착과 야심이 가득한 사람으로 자기의 기득권을 수호하기 위해 방해가 된다고 생각하면 자기 아내와 아들조차 무자비하게 죽이는 악독한 인물이었습니다.
헤롯왕은 동방박사들을 기다려도 연락이 없자 아기 예수가 누구인지 알지 못하기 때문에 어림잡아 두 살 미만의 사내아이들을 처참하게 다 죽였습니다.
(마 2:16) “이에 헤롯이 박사들에게 속은 줄 알고 심히 노하여 사람을 보내어 베들레헴과 그 모든 지경 안에 있는 사내아이를 박사들에게 자세히 알아본 그 때를 기준하여 두 살부터 그 아래로 다 죽이니”
이는 헤롯의 동방박사들에게 자기도 아기 예수에게 경배하겠다고 한 말이 본심이 아니었음을 적나라하게 드러내 보인 것입니다.
(고후 11:15) “그러므로 사탄의 일꾼들도 자기를 의의 일꾼으로 가장하는 것이 또한 대단한 일이 아니니라 그들의 마지막은 그 행위대로 되리라”
성경은 이미 그러한 일이 일어날 것을 예레미야 선지자를 통해서 오래 전에 예언하였으며, 때가 되니 정확하게 그 예언이 다 이루어진 것입니다.
(마 2:17) “이에 선지자 예레미야를 통하여 말씀하신 바”(마 2:18) “라마에서 슬퍼하며 크게 통곡하는 소리가 들리니 라헬이 그 자식을 위하여 애곡하는 것이라 그가 자식이 없으므로 위로 받기를 거절하였도다 함이 이루어졌느니라”
이를 볼 때 우리가 교회 안팎에서 지위를 가지고 있고, 대제사장이나 서기관처럼 성경에 대한 해박한 지식을 가지고 있는 것이 중요한 것이 아님을 알아야 합니다. 그 보다 더 중요한 것은 동방박사들처럼 지위가 높고, 학식이 많을지라도 주님을 간절히 사모하고, 주님의 성품을 닮고자 간절히 원하는 심성을 가지고, 간절히 주님을 사모하는가 하는 것이 더 중요함을 배워야 합니다.
만일 그렇지 못할 때 그 사람은 하나님이 주신 지위와 성경 지식을 가지고 도리어 헤롯이나 대제사장과 같이 주의 일을 훼방하는 사람이 될 수 있음을 뜻하는 것입니다.
3. 기뻐하는 사람들
이스라엘 백성들은 하나님께서 오래 전부터 아브라함과 다윗을 통해서 약속하신 구세주의 탄생을 기다리던 민족입니다.
그러나 이제는 강대국들에 의해 멸망을 당하여 식민지 생활을 하고 있는 이스라엘 민족에게 유일한 소망은 메시아가 오심으로 구원받는 것뿐이었습니다.
그렇다면 동방박사들에게 그들이 기다리던 메시아가 탄생하셨다는 소식을 전해 들었을 때 크게 기뻐했어야 합니다. 과연 그랬을까요?
(마 2:2) “유대인의 왕으로 나신 이가 어디 계시냐 우리가 동방에서 그의 별을 보고 그에게 경배하러 왔노라 하니”(마 2:3) “헤롯 왕과 온 예루살렘이 듣고 소동한지라”
여기서 ‘소동한지라’라는 말(taravssw) 은 ‘함께 뒤흔들다, 분기시키다, 선동하다, 어지럽히다, 불안하게 하다’라는 뜻입니다.
이는 마치 성탄의 감격을 상실한 현대 크리스천들처럼 그들의 반응은 냉랭하다 못해 적대적이기까지 하였으니, 마치 주객이 전도되었다는 말처럼 동방박사들과는 상반된 모습이었습니다.
동방박사들은 이방인들임에도 불구하고 아기 예수를 예배하기 위해 머나먼 길을 오직 밤하늘에 별을 보고 기나긴 여행을 하면서 예루살렘까지 찾아온 것은 참으로 놀라운 일이 아닙니까?
그들이 지금까지 자기들을 인도하던 별을 잃어버렸을 때 당연히 유대인의 왕으로 오시는 이는 왕궁일 것이라고 생각하고 헤롯왕에게 찾아온 것입니다.
그러나 동방박사들은 헤롯왕으로부터 예상치 못한 반응에 의아해 하면서 베들레헴을 찾아 가던 중 다시 나타난 별을 보고 헤롯의 일당과는 대조적인 반응을 보였습니다.
(마 2:9) “박사들이 왕의 말을 듣고 갈새 동방에서 보던 그 별이 문득 앞서 인도하여 가다가 아기 있는 곳 위에 머물러 서 있는지라” (마 2:10) “그들이 별을 보고 매우 크게 기뻐하고 기뻐하더라”
여기서 ‘인도하여’라는 말은 ‘앞서가다, 나아가다, 밖으로 끌어내다’는 뜻이고, ‘머물러 섰다’는 말은 아기 예수가 태어난 베들레헴에 ‘멈춰섰다’는 뜻입니다.
동방박사들은 아직 아기 예수를 본 것이 아니라 별만을 보았을 뿐인데도 ‘매우 크게 기뻐하고 기뻐하더라’고 한 말씀처럼 너무나 기뻐하였습니다.
또 ‘매우’라는 말과 ‘크게’라는 말은 ‘대단히, 심히, 크게, 위대한‘ 이라는 최상급을 뜻하는 말이며, ‘기뻐하고’라는 말로는 부족했던지 ‘기뻐하고 기뻐하더라’고 거듭 말한 것은 동방박사들이 단지 별만을 보고서도 얼마나 기뻤했는가를 짐작할 수 있습니다.
물론 동방박사들이 나름대로 기쁜 일이 있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오늘 성경에서 다시 나타난 별을 보고 ‘매우 크게 기뻐하고 기뻐하더라’는 말은 지금까지 경험하지 못한 ‘최초, 최대’의 기쁨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입니다,
그렇다면 동방박사들은 별이 아니라 그렇게도 애타게 찾던 아기 예수를 만났을 때 그 기쁨은 얼마나 더 컸을까요?
동방박사들은 아기 예수 앞에 넙죽 엎드려 절하고, 자기들이 가지고 온 소중한 예물들을 아낌없이 아기 예수께 드림으로 성탄의 기쁨을 표현하였습니다.
동방박사들은 아기 예수에게 세상 사람들이 가장 소중히 여기는 황금과 유향과 몰약을 아낌없이 드린 최초의 예배자들이었습니다.
(마 2:11) “집에 들어가 아기와 그의 어머니 마리아가 함께 있는 것을 보고 엎드려 아기께 경배하고 보배합을 열어 황금과 유향과 몰약을 예물로 드리니라”
여기서 ‘엎드려’라는 말은 ‘쓰러지다, 넘어지다’라는 뜻으로 풀썩 자리에 엎드리는 모습으로 최대한 낮추는 겸손한 자세를 가리키는 말입니다.
또 ‘경배하고’라는 말은 헤롯왕에게 말한 것과 일관되게 ‘예배하다, 경의를 표하다’는 뜻으로 하나님께 예배를 드리고 왕을 공경하는 것과 같은 겸손한 자세로 아기 예수를 경배하였음을 뜻합니다.
또한 ‘보배합’은 값비싼 황금과 유향과 몰약이 든 보물 상자이며, ‘드리니라’는 말은 아낌없이 다 바쳤다는 뜻입니다.
이 세 가지 보물에 대해 학자들마다 해석이 다르지만 어떤 신학자는 세 가지 보물은 그들이 기다리던 구세주를 상징하는 의미를 담은 예물이라고 하였습니다.
이를테면 ‘황금’은 왕으로 오신 예수님, ‘유향’은 신성으로 오신 예수님, ‘몰약’은 시체에 바르는 것으로 수난과 죽음을 당하실 예수님을 상징한다고 해석합니다. 물론 정확한 해석인지는 모르겠지만 마음에 새겨도 좋은 해석이라고 생각됩니다.
그렇다면 하나님께서 왜 동방박사들을 머나먼 동방에서부터 불러내어 아기 예수를 경배하고 값비싼 예물을 바치게 하셨을까요?
그것은 아기 예수의 탄생이 이스라엘 사람들만이 아니라 이방나라 온 세상 만민들까지 기쁨이기 때문에 만천하에 알리기 위함이었습니다.
또한 요셉은 목수이기 때문에 가난하였습니다. 호적을 하라는 로마 황제의 명령에 복종하여 만삭된 마리아를 데리고 나사렛에서부터 고향 베들레헴에 왔으나 머물 여관이 없어서 마구간에 머물 정도로 가난 하였습니다.
그러므로 동방박사가 아기 예수께 드린 값비싼 예물은 곧 이어 헤롯이 아기 예수를 죽이기 위해 베들레헴 전역에 두 살 미만의 사내아이들을 죽이려고 할 때 황급히 머나먼 애굽으로 피신하여 가서 아기 예수를 안전하게 양육하는데 요긴한 재물로 쓸 수 있었습니다.
(마 2:13) “그들이 떠난 후에 주의 사자가 요셉에게 현몽하여 이르되 헤롯이 아기를 찾아 죽이려 하니 일어나 아기와 그의 어머니를 데리고 애굽으로 피하여 내가 네게 이르기까지 거기 있으라 하시니”
결 론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첫 번 성탄에 동방박사들이 아기 예수께 ‘최고의 기쁨과 최상의 예물’로 예물을 드렸다면 금번 성탄에 우리들은 어떤 예물을 드려야 할까요?
하나님은 우리에게 성탄의 기쁜 소식을 전하시기 위해, 별이 아니라 별보다 더 소중한 성경 말씀을 통해서 계시하여 주셨고 복음을 온 천하에 전파하기 위하여 주님의 몸된 교회를 세워주셨습니다.
오늘 우리에게 성탄의 기쁜 소식을 알리는 ‘큰 별’은 성경 말씀이요 교회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입니다. 우리는 교회에 나아와서 성탄에 대한 말씀을 읽고 들을 때마다 동방박사들과 같은 큰 기쁨이 있어야 합니다.
하나님의 말씀인 성경은 예수 그리스도의 성탄을 믿는 그리스도인들에게 항상 기뻐하라고 명령하고 있습니다.
(빌 4:4) “주 안에서 항상 기뻐하라 내가 다시 말하노니 기뻐하라”
그리스도인의 기쁨은 다른 사람보다 더 많고, 더 높고, 더 크고, 더 강하기 때문에 기뻐하는 상대적인 기쁨이 아닙니다. 그러한 기쁨은 언제 또 변할지, 잃어버릴지, 작아질지, 약해질지 모르는 한시적인 기쁨이요 불안한 기쁨입니다.
그러나 성탄의 주님이 우리에게 주시는 기쁨은 언제, 어디서든지 변함이 없고, 누구도 빼앗아 갈 수 없는 항구적인 기쁨입니다.
(요 14:27) “평안을 너희에게 끼치노니 곧 나의 평안을 너희에게 주노라 내가 너희에게 주는 것은 세상이 주는 것과 같지 아니하니라 너희는 마음에 근심하지도 말고 두려워하지도 말라”
그 이유는 성탄의 주님을 믿음으로 천지를 지으신 창조주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기 때문입니다.
억만 가지 죄를 사죄함 받았기 때문입니다. 성령께서 나와 함께 하셔서 위로하시고 힘을 주시며 도우시기 때문입니다. 합력하여 선을 이루기 때문입니다. 전화위복케 하시기 때문입니다. 영생과 천국의 소망이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한 소망이 있는 사람에게는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인한 고난이 오히려 동방박사들이 보고 크게 기뻐하던 별과 같은 것들입니다. 왜냐하면 그리스도를 위해 받는 오늘의 고난은 장차 하늘에서 받을 상급이기 때문에 원망이나 불평이 아니라 도리어 기쁨인 것입니다.
(마 5:12) “기뻐하고 즐거워하라 하늘에서 너희의 상이 큼이라 너희 전에 있던 선지자들도 이같이 박해하였느니라” (벧전 1:6) “그러므로 너희가 이제 여러 가지 시험으로 말미암아 잠깐 근심하게 되지 않을 수 없으나 오히려 크게 기뻐하는도다”
설령 고통스러운 것일지라도 그것이 결과적으로 축복이요 행복이기 때문에 누가 시켜서가 아니라 억지로가 아니라 자원하여 기쁜 마음으로 하라는 것입니다.
(골 1:24) “나는 이제 너희를 위하여 받는 괴로움을 기뻐하고 그리스도의 남은 고난을 그의 몸된 교회를 위하여 내 육체에 채우노라”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인해 잃어버리고, 손해를 보고, 고난을 받고, 오해를 받을지라도 낙심하거나 포기하지 않아야 할 까닭은 알고 보면 그것들이 바로 하늘에 상급이 있음을 보여주는 약속의 별이기 때문입니다.
(벧전 1:8) “예수를 너희가 보지 못하였으나 사랑하는도다 이제도 보지 못하나 믿고 말할 수 없는 영광스러운 즐거움으로 기뻐하니”(고후 6:10) “근심하는 자 같으나 항상 기뻐하고 가난한 자 같으나 많은 사람을 부요하게 하고 아무 것도 없는 자 같으나 모든 것을 가진 자로다”
우리가 성탄의 주님께 드려야 할 예물은 마음의 기쁨과 감사만이 아니라 구체적인 감사의 예물입니다.
만일 동방박사들이 바친 보물이 아니었다면 세 식구는 객사하고 말았을 것입니다. 해마다 성탄절이면 우리들도 동방박사들처럼 성탄을 기뻐하고 믿음과 감사를 담은 예물을 드려야 하겠습니다.
물론 성탄 헌금만이 아니라 모든 헌금이 예배와 교육과 전도와 선교와 구제와 성도의 교제를 위해 쓰이지만 특별히 성탄헌금은 전액은 주님의 사랑을 전하는 구제에 사용되어지는 이유도 같은 맥락입니다.
그러므로 내가 넉넉하기 때문이 아닙니다. 여유가 있기 때문이 아닙니다. 좋기만 해서가 아닙니다. 동방박사들처럼 아기 예수의 탄생이 너무나 감사하기 때문에 최고의 기쁨과, 소중히 여기는 재물을 인색함이 없이 예물로 드림으로 성탄의 복음을 세상에 널리 전하는 일에 유용하게 쓰여 짐으로 주님이 영광을 받으시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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