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 교/이규왕목사

성숙함으로 나아가는 교회/(엡 4:13-16)

미션(cmc) 2010. 1. 14. 18:32

성숙함으로 나아가는 교회

(엡 4:13-16)
(엡 4:13) “우리가 다 하나님의 아들을 믿는 것과 아는 일에 하나가 되어 온전한 사람을 이루어 그리스도의 장성한 분량이 충만한 데까지 이르리니” (엡 4:14) “이는 우리가 이제부터 어린 아이가 되지 아니하여 사람의 속임수와 간사한 유혹에 빠져 온갖 교훈의 풍조에 밀려 요동하지 않게 하려 함이라” (엡 4:15) “오직 사랑 안에서 참된 것을 하여 범사에 그에게까지 자랄지라 그는 머리니 곧 그리스도라”(엡 4:16) “그에게서 온 몸이 각 마디를 통하여 도움을 받음으로 연결되고 결합되어 각 지체의 분량대로 역사하여 그 몸을 자라게 하며 사랑 안에서 스스로 세우느니라”

지난 주일에 우리의 신앙은 교회를 출석하는 것으로 다 되는 것이 아니라 반드시 물과 성령으로 거듭나서 하나님을 아버지로 믿어지는 변화를 반드시 경험해야 한다고 하였습니다.
그러나 문제는 설령 그 같은 영적 변화를 경험하고 교회를 다닐지라도 그 신앙의 상태는 갓 태어난 어린아이와 같기 때문에 하나님께 쓰임을 받는 성숙한 그리스도인이 되기 위해서는 지속적으로 성장해야만 합니다.
그렇다면 지속적인 영적 성장을 위해서는 무엇이 필요할까요? 하나는 외부적인 영적에너지를 공급 받아야 하고 내부적으로 부단히 반복되는 교육과 훈련의 과정이 부담이 되고 힘이 들어도 그것을 견디어 내고자 하는 강한 의지가 있어야 합니다.
모든 부모가 자기의 자녀에 대해 나름대로의 꿈과 기대가 있는 것처럼 하나님 아버지께서도 자녀 된 우리에게 대와 비전을 품고 계심을 오늘 성경에서 가르치고 있습니다.
(엡 4:13) 우리가 다 하나님의 아들을 믿는 것과 아는 일에 하나가 되어 온전한 사람을 이루어 그리스도의 장성한 분량이 충만한 데까지 이르리니
여기서 ‘그리스도의 장성한 분량’이라는 말은 우리의 성장 모델이 성경에 나오는 아브라함이나 모세나 베드로나 바울과 같은 믿음의 사람들이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가 우리의 영적 성장 목표라는 말입니다.
다시 말해서 우리의 마음 자세는 그리스도 예수와 같은 마음이어야 하고, 우리의 삶의 방식은 예수 그리스도처럼 살아가기를 원하신다는 것입니다.
(빌 2:5) “너희 안에 이 마음을 품으라 곧 그리스도 예수의 마음이니” (고전 11:1) “내가 그리스도를 본받는 자가 된 것 같이 너희는 나를 본받는 자가 되라”
본래 우리는 타락한 아담의 자손이 아닙니까? 허물과 죄로 죽었던 우리가 아닙니까? 우리의 마음은 겸손하지 못하고 늘 교만하지 않습니까? 우리의 행실은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선을 행하기보다는 미워하시는 죄를 더 가까이 하는 삶을 살고 있지 않습니까?
하나님은 그러한 우리의 과거와 현재를 잘 아시면서 어떻게 우리의 미래가 그리스도의 장성한 분량이 충만한데 까지 이를 수 있단 말입니까?
아무리 생각해도 불가능할 것 같은데 오늘 성경은 우리를 그렇게 만들어 주시겠다는 것입니다. 과연 그것이 어떻게 가능하며 그렇게 되어지기 위해서 우리는 어떤 자세와 노력이 필요한지 오늘 성경 말씀을 통해서 그 답을 찾아야 하겠습니다.

1. 영적인 어린아이가 되지 말라
사람은 아무리 물과 성령으로 거듭나는 변화를 경험하였다고 할지라도 누구를 막론하고 그 내면에 긍정적인 성품과 부정적인 성품을 가지고 둘 다 가지고 있습니다. 다시 말해서 다른 사람에 비해 좋은 면과 좋지 않은 양면을 가지고 있다는 것입니다.
문제는 그 긍정적인 성품이 그리스도를 만나게 되면 대박이 터지는 것이고, 부정적인 성품이 마귀와 만나게 되면 인생이 망가지는 것입니다.
그 부정적인 성품 중에 하나가 오늘 성경에서 ‘어린아이가 되지 말라’는 말씀입니다. 물론 어린아이에게 좋은 점이 있습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도 어린아이를 사랑하셨고 또 제자들에게 어린아이와 같지 아니하면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갈 수 없다고 하실 정도로 어린아이에 대해서 긍정적으로 말씀하셨습니다.
(마 18:3) “이르시되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너희가 돌이켜 어린 아이들과 같이 되지 아니하면 결단코 천국에 들어가지 못하리라”
여기서 ‘어린아이’는 7세까지의 어린이로 무능력하여 무분별하여 매사를 전적으로 부모에게 의존하지 않고는 생존할 수 없다는 것입니다.
예수님의 제자는 어린아이처럼 겸손히 자신의 연약함을 인정하고 하나님 아버지를 전적으로 신뢰하여야 할 것을 뜻하는 말씀입니다.
그러나 부정적인 면에서는 어린아이는 순진하지만 좌우와 선악에 대한 분별력이 없어서 나쁜 어른에게 쉽게 미혹을 받아 납치나 유괴를 당하기 쉽다면, 그 대표적인 예가 전 국민적 분노를 샀던 조두순의 성폭행 피해자 ‘나영이 사건’입니다.
오늘 성경에서 ‘어린 아이가 되지 말라’는 말씀도 그와 같이 부정적인 의미로 말씀하고 있는 것입니다.
(엡 4:14) “이는 우리가 이제부터 어린 아이가 되지 아니하여 사람의 속임수와 간사한 유혹에 빠져 온갖 교훈의 풍조에 밀려 요동하지 않게 하려 함이라”
여기서 ‘속임수’라는 말은 주사위를 가지고 사기를 치는 야바위꾼을 뜻하며, ‘간사’는 잘못이라는 말과 절차나 방법이라는 두 말을 합친 것으로 절차나 방법이 잘못된 악을 가리키며, ‘유혹’이라는 말은 교활하고 간교한 방법으로 신앙이 어린 성도들을 미혹하기 때문에 빠져들기 쉽다는 것입니다. 그 결과 영적인 어린아이는 ‘온갖 교훈의 풍조에 밀려 요동한다’는 말씀처럼 믿음이 흔들리게 됩니다.
오늘도 믿음이 어린아이와 같은 성도들이 교회 안에서 상처를 쉽게 받고 시험을 받게 될 때 그것을 이기기보다는 믿음이 흔들려서 신앙을 포기하거나 교회를 이전하는 것도 바로 그 때문입니다.
영적인 어린아이도 그와 같다는 것입니다. 영적인 어린아이는 분별력이 없어서 무엇이 잘못된 신앙이고 이단이고 비성경적인 것인지 잘 알지 못하기 때문에 겉으로 드러나는 현상이나 주변에 미혹하는 사람의 말만 듣고 따라가다가 이단과 사이비에 빠져 교회를 떠나고 가정이 파탄에 이르는 경우도 종종 있습니다.
그러므로 오늘 나의 영적 상태가 마치 어린아이와 같다면 그것이 잘못된 것은 아니지만, 잘 못되기 쉬운 약점을 가지고 있음을 깨닫고 어서 믿음이 자라서 그리스도 예수의 장성한 분량에 이르도록 성숙해져야만 합니다.
그렇다면 오늘 성경 말씀에서 우리가 어떻게 해야 어린아이와 같이 미성숙산 나의 믿음이 건강하게 성장하여 성숙한 그리스도인으로 자라갈 수 있다고 말씀하고 있습니까?

2. 그리스도에게까지 자라가라.
지구상에는 아담과 하와를 제외하고 어느 누구도 어린 시절을 거치지 않고 어른이 된 사람은 없을 것입니다. 지금은 나이 많은 노인이지만 거슬러 올라가면 모태에서 핏덩이 태어나 어머니의 젖을 먹으면서 자랐던 어린 시절이 있을 것입니다.
어린 시절에는 같은 학교를 다니면서 개인차가 별로 두드러지게 나타나지 않고 거의 다 비슷비슷함을 볼 수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점차 가정에서 어떤 부모와 학교에서 어떤 스승을 만난 자라고 가르침을 받으며, 사회에서 어떤 경험을 하며 자라 성인이 되었는가에 따라 점점 개인차가 벌어져서 성인이 된 후에는 각 사람의 소유나 지위가 어떤 경우에는 하늘과 땅만큼 벌어지는 것을 보게 됩니다.
영적인 신앙도 마찬가지입니다. 인간은 어느 누구나 불신앙의 상태로 태어나서 부모나 이웃의 전도를 받고 교회에 출석할 때는 믿음의 차이가 별로 나지 않습니다.
그러나 교회를 다니는 동안 어떤 사람은 교회만 출석하는 것으로 그치지 않고 여러 가지 교육과 훈련을 받으면서 믿음이 점차 자라는가 하면 어떤 사람은 신앙의 나이가 수년 수십 년이 되어도 처음 교회를 출석할 때와 별반 차이가 없어 보입니다. 왜냐하면 아무런 성장 교육을 받지 않고 주일만 출석하기 때문에 신앙이 정체 상태에 머물러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점차 신앙의 연조가 더해질수록 어떤 사람의 신앙은 쑥쑥 자라는 아이처럼 어떤 성도는 본인은 잘 느끼지 못하지만 주변 성도들의 눈에 보기에도 확연하게 수년 사이에 신앙이 몰라보게 성장하였음을 보게 됩니다. 과연 그 원인이 무엇일까요?
(엡 4:15) “오직 사랑 안에서 참된 것을 하여 범사에 그에게까지 자랄지라 그는 머리니 곧 그리스도라”
여기서 ‘그에게까지’라는 말은 우리의 믿음은 그리스도 안에서 자라야 한다는 말이나 그리스도와 함께 자라야 한다는 성장의 방법이 아니라, 그리스도에게까지 자라야 한다는 신앙의 목표를 가리키는 말씀입니다.
그리스도에게까지 자라는 방법은 ‘오직 사랑 안에서 참된 것을 하는 것’이라고 말씀하고 있는 것처럼 사랑과 참된 진리를 실천하는 것은 이원론적인 것이 아니라 상호 보완적인 관계로 사랑이 없는 진리나 진리가 없는 사랑이나 아무런 의미가 없으며 오로지 사랑과 진리가 하나가 될 때 그 신앙이 그리스도에게까지 자랄 수 있다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우리가 어떻게 사랑 안에서 참된 것을 실천하는 성숙한 그리스도인이 될 수 있습니까?
그것은 한 마디로 나 혼자의 힘으로는 될 수 없지만 누군가의 도움을 받으면 그리스도에게까지 자랄 수 있다는 것이 바로 그리스도의 몸된 교회의 지체의 원리입니다.

1) 머리이신 그리스도
우리가 몸담고 있는 교회는 단순한 조직체나 생명이 없는 건물이 아니라 마치 사람의 몸과 같은 생명을 가진 유기체로 교회의 머리는 그리스도 예수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엡 4:15) “오직 사랑 안에서 참된 것을 하여 범사에 그에게까지 자랄지라 그는 머리니 곧 그리스도라”

2) 몸된 교회
머리는 반드시 몸과 연결되어 있는 것처럼 교회는 머리되신 그리스도의 몸이며, 성도들은 몸된 교회에 붙어있는 지체들이라는 것입니다.
(고전 12:12) “몸은 하나인데 많은 지체가 있고 몸의 지체가 많으나 한 몸임과 같이 그리스도도 그러하니라

3) 성장하는 지체
어린 아기는 하루 동안 얼마나 자랄까? 아기는 생후 2년 동안 초고속으로 자란다. 처음 아기가 태어나면 키가 50㎝ 정도에 불과하지만 6개월만 지나도 평균 17㎝나 자라고 다음 6개월간은 8㎝ 정도 자란다고 합니다.
키뿐 아니라 몸무게도 늘어난다. 아기가 태어날 때 몸무게는 보통 3.36㎏ 정도에 불과하지만 이후 6개월간 매일 20~30g씩 증가한다. 생후 1년 정도가 되면 출생 시보다 무려 3배에 해당하는 10㎏ 정도가 된다고 합니다.
그렇게 자라기 위해 아이는 무엇을 했습니까? 시장에 가서 먹 거리를 사다가 요리를 했습니까? 헬스를 하고 등산을 했습니까? 오로지 엄마 품을 떠나지 않고 먹고 자고 싸고, 먹고 자고 싸기만 했을 뿐입니다.
육신의 성장만 아니라 영적 성장도 그와 같이 하나님의 은혜 안에서 영적으로 먹고 마시고 쉼을 통해서 성장함을 가르치고 있습니다.
(엡 4:16) “그에게서 온 몸이 각 마디를 통하여 도움을 받음으로 연결되고 결합되어 각 지체의 분량대로 역사하여 그 몸을 자라게 하며 사랑 안에서 스스로 세우느니라”
여기서 온 몸은 교회이고, 마디라는 말과 연결되고 결합된다는 말은 성도들과의 돈독한 관계를 항상 유지하는 것을 뜻하는 동분사 현재형입니다.
또한 ‘도움을 받음으로’라는 말은 신앙적인 공급을 받는 것을 뜻하고, 그 도움으로 말미암아 각자에게 맡겨진 위치에서 구체적으로 활동을 함으로써 하나님께서 개개인의 신앙이 자라게 하시고 몸된 교회가 자라게 하여 주시는 것입니다.
(골 2:19) “머리를 붙들지 아니하는지라 온 몸이 머리로 말미암아 마디와 힘줄로 공급함을 받고 연합하여 하나님이 자라게 하시므로 자라느니라”
이는 성도 개개인의 성장은 혼자서 성경을 공부하고 혼자서 기도하고 혼자서 은혜를 받으면 되는 것이 아님을 알아야 합니다. 반드시 몸된 교회를 떠나지 말아야 하고 지체된 성도들과 좋은 관계 속에서 기도를 배우고 성경을 배우고 삶을 배워야 합니다.
이는 결코 자신의 굳은 결심이나 열심만으로 믿음이 자라는 것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머리되신 주님에게 붙어 있어야 하며, 지체된 성도들 속으로 들어가야 하며, 다른 사람에게 듣고 배우고 본받은 것을 삶으로 나누며 실천하는 경험이 반드시 필요하다는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성장하는 그리스도인의 공통점은 생명의 근원이신 그리스도와지체인 성도들과의 좋은 관계를 지속적으로 유지하는 것을 통해서 성장되어진다는 것입니다.
사도 바울은 그리스도인들의 신앙 성장에 대해서 ‘(고전 3:7) 그런즉 심는 이나 물 주는 이는 아무 것도 아니로되 오직 자라게 하시는 이는 하나님뿐이니라’고 하였습니다. 예수를 믿는 그리스도인들이 설령 물과 성령으로 거듭난 변화를 경험하였을지라도 지속적으로 성장하기 위해서는 누군가 심어야 하고, 누군가 물을 주어야만 한다고 하였습니다. 그러나 그것만으로 성장하는 것이 아니라 그것들은 하나의 과정일 뿐 궁극적으로 자라게 하시는 이는 하나님이시라는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심지도 않고 물을 주지도 않는데 저절로 자라게 하시는 분이 아닙니다. 그렇게 자라는 것은 잡초입니다. 알곡은 반드시 누군가 심어야 하고 거름을 주어야 하며 하나님은 그 위에 따뜻한 햇볕을 비추어 온전히 자라게 하시는 분입니다.
물론 그리스도인의 영적 성장을 주도하시는 이는 하나님이시지만 하나님은 인간과 더불어 인간을 통해서 성장시켜나감을 알 수 있습니다. 그래서 (고전 3:9) “우리는 하나님의 동역자들이요 너희는 하나님의 밭이요 하나님의 집이니라”라고 말씀하신 것입니다.

3. 사랑 안에서 스스로 세워 나아가라
하나님이 지으신 모든 생명체의 성장은 단번에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고 점진적이고 유기적으로 성장하도록 창조하셨습니다.
그러나 어느 생명체를 막론하고 성장이 궁극적인 목적이 아니라 성숙하여짐으로 많은 결실을 맺어 또 다른 열매를 맺는 알곡이 되는데 목적이 있습니다.
육신의 성장만이 아니라 영적인 성장도 마찬가지입니다. 허물과 죄로 죽었던 영혼이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물과 성령으로 거듭나 새 사람이 되어, 말씀과 성령으로 점진적으로 자라서 마침내 신앙의 알곡으로 성장하여 또 다른 영혼을 구원하는 영적인 종자가 되는 것이 신앙 성장의 궁극적인 목적인 것입니다.
(요 15:2) “무릇 내게 붙어 있어 열매를 맺지 아니하는 가지는 아버지께서 그것을 제거해 버리시고 무릇 열매를 맺는 가지는 더 열매를 맺게 하려 하여 그것을 깨끗하게 하시느니라”
오늘 성경 말씀도 마찬가지입니다. 신앙 성장의 목표는 그리스도 예수에게까지 자라가라는 말씀처럼 그리스도 예수처럼 생각하고 말하고 행동하는 그리스도로 충만한 그리스도인이 되라는 것입니다. 그러한 그리스도인을 가리켜 성숙한 그리스도인이라고 하는 것입니다.
물론 과연 우리가 그렇게 될 수 있을까? 너무 이상적이고 추상적인 목표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기도 할 것입니다. 물론 그것은 우리의 의지나 훈련의 결과가 아니라 그리스도의 영으로 충만할 때만이 가능하며 그러한 상태를 가리켜 성령충만이라고 하는 것입니다.
그 좋은 예가 초대 예루살렘 교회입니다. 예수님의 승천을 목격한 백 이십 명이 예루살렘을 떠나지 말라는 예수님의 명령에 순종하여 요엘 선지자의 예언을 믿고 기도에 힘쓰는 중 오순절에 모두 다 성령의 충만을 받았습니다. 다시 말해서 변화를 경험하였습니다.
(행 2:3) “마치 불의 혀처럼 갈라지는 것들이 그들에게 보여 각 사람 위에 하나씩 임하여 있더니”(행 2:4) “그들이 다 성령의 충만함을 받고 성령이 말하게 하심을 따라 다른 언어들로 말하기를 시작하니라
그러나 성령의 충만함을 받은 예루살렘 교회 성도들은 그것으로 만족하지 않았습니다.
1) 성전에 모이기를 힘썼습니다.
2) 예수께서 부활하신 주일을 거룩하게 지켰습니다.
3) 사도들에게 성경을 열심히 가르침 받았습니다.
4) 모여서 열심히 기도하였습니다.
5) 성도들끼리 아름다운 교제를 나누었습니다.
6) 사랑을 실천하였습니다. 말로만의 사랑이 아니라 자신의 소유를 팔아 가난한 자들에게 나눈 결과 예루살렘 교회 안에는 굶는 자가 없게 되었습니다.
그들은 분명히 오순절 성령 체험을 통해서 놀라운 변화를 경험하였음에도 불구하고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세례를 받았을 뿐 아니라 사도들의 가르침을 통해서 영적으로 성장하는 과정을 잘 밟았습니다. 그 결과,
(행 2:42) “그들이 사도의 가르침을 받아 서로 교제하고 떡을 떼며 오로지 기도하기를 힘쓰니라”(행 2:43) “사람마다 두려워하는데 사도들로 말미암아 기사와 표적이 많이 나타나니”(행 2:44) “믿는 사람이 다 함께 있어 모든 물건을 서로 통용하고”(행 2:45) “또 재산과 소유를 팔아 각 사람의 필요를 따라 나눠 주며”(행 2:46) “날마다 마음을 같이하여 성전에 모이기를 힘쓰고 집에서 떡을 떼며 기쁨과 순전한 마음으로 음식을 먹고”
예루살렘 교회의 그 같은 변화는 결코 저절로 된 것이 아니며 성령의 역사로만 된 것도 아니며 ‘가르침을 받아, 서로 교제하며, 서로 통용하고, 나눠주며, 마음을 같이하여’라는 말씀과 같이 지체들 간에 협력과 나눔과 교제와 훈련을 통해서 이루어진 결과물입니다. 그것을 입증하는 것이 교회의 부흥과 성장입니다.
(행 2:47) “하나님을 찬미하며 또 온 백성에게 칭송을 받으니 주께서 구원 받는 사람을 날마다 더하게 하시니라”
주님의 몸된 교회의 부흥과 성장은 지체된 성도들의 성장과 불가분의 관계를 가지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성도들의 영적 성장이 없이는 교회의 부흥은 불가능한 것입니다. 그러므로 성도들 한 사람 한 사람의 성장은 교회 부흥과 직결되어 있기 때문에 교회 부흥을 프로그램이나 이벤트 행사로 되어지는 것이 아니라 성도 개개인의 성장으로 말미암아 교회가 부흥하고 성장하는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후일 지상 교회가 재현하기를 원하는 이상적인 교회, 성령 충만한 교회 모델이 되었습니다. 그 같은 예루살렘 교회가 바로 오늘 성경 말씀처럼 ’사랑 안에서 스스로 세워가는 성숙한 교회상’인 것입니다.
(엡 4:16) 그에게서 온 몸이 각 마디를 통하여 도움을 받음으로 연결되고 결합되어 각 지체의 분량대로 역사하여 그 몸을 자라게 하며 사랑 안에서 스스로 세우느니라
이는 교회가 건강하게 성장하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서로 연합하여 서로 도움으로 사랑이 충만한 교회와 성도들로 자라가야 하는 것입니다.
육신의 성장이 혼자 힘으로 불가능한 것처럼 영적이 성장도 혼자의 힘으로 불가능한 것입니다. 그러므로 교회는 새 신자 한 사람을 알곡 성도가 되게 하기 위해 ‘세례, 전도, 기도, 선교, 큐티, 은사개발학교’ 등 다양한 성장 프로그램을 개설할 준비를 하고 있습니다. 물론 영적 성숙이 지적인 성장만을 뜻하는 것이 아니기에 모든 과정이 말씀과 성령을 통한 전인적인 양육프로그램이 되어야 하겠습니다.

결 론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오늘의 지상 교회는 하늘에서 떨어지거나 땅에서 솟아난 교회가 아니라 바로 그와 같은 예루살렘 교회가 낳은 열매들입니다. 그러므로 예루살렘 교회와 같은 교회가 되기 위해 나름대로 교회론을 정립하고 신학교를 세워 목회자를 가르치고 교회를 세우고 비전을 세우고 일군을 세우고 양육 프로그램을 만들어 훈련을 시키는 것입니다.
그래서 교회 정문으로 들어온 새 신자가 뒷문으로 나가지 못하게 하고, 교회가 구태의연하지 않도록 변화를 시도하고 해마다 새로운 목표와 비전을 제시하기도 하는 것입니다.
과거에는 그 같은 교회가 세상에 변화가 가장 빠른 곳이 되어 교회를 다니는 사람들이 정치 경제 문화 사회 교육 예술 분야에 리더들이 되었습니다.
그러나 지금은 정반대로 세상에서 가장 변화가 늦은 곳이 교회가 되어 세상을 향해 아무런 영향력을 발휘하지 못하고 오히려 세상 사람들에게 질타를 당하는 무기력한 교회로 전락되어 버렸습니다.
그 이유가 어디에 있을까요? 교회를 다니고 있는 성도들이 변화를 거부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변화를 위해 시간과 물질과 노력을 하려고 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주일에 교회를 출석하는 다수의 성도들이 될 수 있는 대로 편하게 예수를 믿으려고 합니다. 성경을 연구하고 깊은 기도를 하고 각가지 교육과 훈련에 참여하는 것은 마치 교회의 지도자가 되려는 소수의 사람들을 위한 특별과정처럼 생각하고 움직여 주지 않고 있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형상으로 지음을 받은 사람들이며 물과 성령으로 거듭난 하나님의 자녀들입니다. 하나님은 각 사람에게 지혜와 지식과 각종 은사들을 부어 주심으로 놀라운 가능성과 잠재력을 심어 주셨음을 믿어야 합니다. 문제는 믿음으로 그것을 개발하고 성령의 능력을 받게 될 때 놀라운 일을 할 수 있게 됩니다.
곰이 겨울잠을 자고 있는 동안에는 얼마나 힘센 동물인지 알 수 없는 것처럼 우리가 지금 영적으로 잠을 자고 있기 때문에 그 가능성과 잠재력을 깨닫지 못하고 있는 것입니다.
예화
지난 명절 연휴에 손주들이 모였습니다. 제일 먼저 도착하자마자 피아노 앞에 앉아서 결혼 행진곡을 치는 것이었습니다. 결혼식에 알바를 가도 되겠다고 칭찬을 하였습니다. 그러나 그 아이는 일년 전에 저보다 피아노를 치지 못했습니다. 저는 한손으로 스와니 강을 조금 칠 정도입니다. 그러나 저는 중학생때부터 지금까지 피아노를 칠 생각을 하지 않고 어쩌다가 ‘미래도 미래도 쏠라시도’만 쳤으나 아이들은 하기 싫었지만 독려에 마지 못해 학원을 다니고 연습을 하는 동안에 그렇게 진보하게 된 것입니다. 만약 계속 훈련을 받는다면 유명한 피아니스트도 될 가능성이 있지만 저에게는 전혀 불가능한 이야기입니다. 이것이 바로 훈련을 받지 않고 연습하지 않은 어른과 정반대로 훈련과 연습을 계속하는 어린아이의 차이 인 것입니다.
우리의 신앙도 마찬가지입니다. 아무런 영적인 훈련을 받지 않고 평생 열심히 교회를 다니는 기성신자와 교회를 나온지 얼마 되지 않지만 교회가 준비한 양육 프로그램의 과정을 열심히 참여하는 새신자의 차이는 십년이 아닐지라도 삼사년만 지나도 엄청난 격차가 벌어질 것입니다.
그러므로 이 핑계 저 핑계를 하는 동안 내 주변에 급성장하는 새 신자들의 모습을 보게 될 것입니다. 교회를 수십 년 다니지만 기도의 응답이나 송이 꿀 같은 성경의 맛이나 성령의 충만함이나 영적 은사에 대한 체험이 없기 때문에 역동적인 신앙생활을 하지 못하고 있는 나의 속사람을 일깨워야 할 것을 주님이 강력하게 명령하고 계십니다.
이를 테면 ‘게으르지 말고 열심을 품고 주를 섬겨라, 모이기를 힘쓰라, 쉬지 말고 기도하라, 때를 얻든지 못 얻든지 전하라, 배우기를 힘쓰라, 진일보하는 모습을 보이라’고 명령하고 있습니다. 소리 내어 다 같이 읽으시겠습니다.
(딤전 4:13) “내가 이를 때까지 읽는 것과 권하는 것과 가르치는 것에 전념하라”(딤전 4:14) “네 속에 있는 은사 곧 장로의 회에서 안수 받을 때에 예언을 통하여 받은 것을 가볍게 여기지 말며”(딤전 4:15) “이 모든 일에 전심 전력하여 너의 성숙함을 모든 사람에게 나타나게 하라”
물론 예수를 믿고 천국 가기 위해서가 아닙니다. 그것은 믿음으로 가는 것이요 은혜로 가는 것이기 때문에 어떤 행위와 노력을 강조하는 것은 비성경적이고 이단적인 것이 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구원받은 그리스도인들에게 그 같은 명령을 하는 이유는 성숙한 그리스도인이 되어 다른 사람을 구원하는 알곡 성도가 되게 하기 위함입니다.
(딤전 4:16) “네가 네 자신과 가르침을 살펴 이 일을 계속하라 이것을 행함으로 네 자신과 네게 듣는 자를 구원하리라”
내안에 하나님이 심어 놓으신 아름다운 잠재력을 무시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내게 잠재력이 없는 것이 아니라 그것을 파묻어 놓은 것입니다. 이제라도 늦지 않았습니다.
물론 한 두주, 한두 달 사이에 금방 차이가 나지 않을 것입니다. 꾀가 날 것입니다. 포기하고 싶을 것입니다. 이제서 무슨 이라는 생각이 들 것입니다. 그러나 이제부터라고 생각을 바꿔 보시기 바랍니다.
그렇게 삼사년만 지나면 내가 얼마나 달라지고 우리 교회가 얼마나 변화하였는지를 느끼게 될 것입니다.
지금보다 더 훌륭하게 생각하고 말하고 행동할 수 있습니다. 좋은 성품을 가진 성도, 성경을 잘 가르치는 교사, 성령 충만한 셀 리더나 말씀이 들도 될 수 있습니다. 주일마다 새 신자를 교회로 인도하는 열성적인 전도자가 될 수도 있습니다. 이웃을 돕는 봉사대열에 참여하게 될 것입니다. 더 깊은 영적인 기도를 할 수도 있고 다른 이에게 응답받는 기도에 대해 조언도 해줄 수 있습니다. 교회안과 밖에서 다양하게 영향력을 미칠 수 있습니다. 교회를 다니는 것이 즐겁고 행복할 것입니다.
이제 우리 모두 ‘미래를 향해 나아가는 2010 년’ 이 되도록 열심을 품고 스스로 행동하는 그리스도인들이 되어야 하겠습니다. 이를 위해 먼저 자신의 신앙 성장에 걸 맞는 예배와 양육과정을 선택하여 보다 더 성숙한 그리스도인으로 자라가야 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