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일장수 아주머니와 아저씨부부가 시장통 골목끝인
우리집에 도착한것은 하루일당 벌어오시는 아버지를
기다리다 기다리다지쳐 뜨뜻한 아랫목에
아버지가드실 밥 한공기를 남겨놓고
두부찌개 하나로 배를 채우고있을때였습니다
아버지는 늘 가족에게 자상하시기 보단 오히려 밖에서
남들에게 간이고 쓸개고 다 빼줄만큼 너그럽고
좋은분 이셨지만 결코 우리 가족은 그런 아버지를
이해를 못하고 자랐고,
아버지 말씀 한마디면 꿈뻑했습니다.
아버지 눈치를 살피며 조심스럽게 “누구? 다요...하시는
엄마 말씀에 그냥 조금 아는 사람들이라고 할뿐
더 이상 말씀을 안하셨습니다.
엄마는 그들 부부에게 밥은 좀 자셨느냐고 물었습니다.
아줌마와 아저씨는 조금 얼버무리며 대답대신
오늘 팔고남은 찹쌀떡을 건네주셨습니다.
그래도 아버지께서 모시고 온분들인데 밥 한끼
대접하지 않으면 안되겠기에 엄마는 없는 반찬에
다시 고슬고슬 밥을 하고 반찬도 만들어 우리가족이
먹는것 보다 후한상을 차려 대접했습니다.
그렇게 두분은 식사를마치고,
언제갈까 기다리고 있는데 아버지는
“ 거시기 오늘밤은 우리집에서 자쇼...”
“그러고 니들은 여기서 같이 자자...이”
아버지 말씀인데 안 된다고 못하는 우리는 그렇게해서
비좁은 방에서 여섯이 잤습니다.
어쩌다 그들 부부와 인연이 되어서 우리방을 빼앗기고
일주일을 버텨야만 했습니다...그래도 그렇지요.
매일 밤마다 엄마는 아버지를 못마땅해했습니다.
허락도 없이 낯선 사람들을 들였다고 내심
얼굴만 찡그리셨고 아버지는 오히려 얇은벽 너머
그들부부가 들을까 걱정을하셨습니다.
“어차피 남의집에서 구걸하며 잠을 자야할테고...
그들도 우리보다 많이 못한것 같은데...
우리가 저사람들이 정착할수 있을때까지 재워 드리고말지...
요즘같이 이렇게 추운데 어디로 내보내냐고...
그렇게는 못한다고 하셨습니다.
그 처음 온날 매정하지만 밥한끼로 끝내야했을 것을
왜못했는지 모르겠다며 비좁은 틈새를 이리저리
몸을 돌려가며 잠을 청하는 자식들 이마를 만져가며
한숨만 내쉬었습니다.
간혹 아버지는 그것도 모자라 그들 부부가
찹쌀떡을 팔러 다니고 과일을 팔고없는 시간에 옆방에다
그동안 아껴두고 입지 않았던 당신 내복이며
엄마가 입는 옷도 놓고 나오셨습니다.
또다시 추운 두달이 지났습니다.
서로가 많이 부족하고 어렵게 살았던 그때...
방 두개로 세들어 살았던 우리 가족곁에서 그들 부부도
우리가 살고있는 한지붕에서 간신히
방하나 얻어 살게 되었습니다.
아줌마와 아저씨 때문에 아버지와 엄마가
많이 다투어서 싫었는데 또다시 한 지붕이지만
방 하나 얻어서 다른 방으로 옮기던 날은
세상천금을 얻은 듯 우리가족은
다시 환한 웃음을 찾았습니다.
누가봐도 형편을 따지고 묻는다면
조금더 누가 더 잘살고 못 살고가
구분이 되지않을 만큼 똑같았습니다.
단지 몇년 세월이 흘러 아줌마와 아저씨 사이에는
3살된 연희라는 아이가 생겼고, 우리는 예전과 같이
어려운살림에 식구가 여섯 이었다는것 밖에는 없었습니다.
그런데도 아버지는 늘 한결 같으셨습니다.
친척도 없고 아는 사람도 없는 낯선지방에 와서
살아보겠다고 고생하는 아저씨에게 아버지가 매일
소개를해서 같이 노동판에서 일을 하셨고.
어쩌다 큰건이 하나잡히면 아버지밑에서
페인트 칠하는법도 배우고 벽지 붙이는법도 배워가며
하나하나 자리를 잡았습니다.
그렇게 인연을 맺어서 미운정고운정을 쌓아가며
한지붕에서 살았습니다.
가끔씩 쌀이 떨어진날은 우리식구가 먹을꺼와
옆집 연희네꺼까지 챙기셨습니다.
왕사탕하나면 족했던 자식들에게
이젠 왕사탕이 필요가 없게되었고...
아버지는 옆집 연희에게 왕사탕을 사다줬습니다.
겉으로 표현못하고 속으로 아버지 때문에
끙끙앓고만 사신엄마를 천번백번 이해하게 되었습니다.
어쩌다 아버지가 사다준 왕사탕을
연희가 마루에 앉아 빨고 있으면 나는 얼른
왕사탕을 빼앗아 달아나곤 했습니다.
그러다 아버지에게 들키는 날은 애기꺼 빼앗아 먹었다고
추운겨울 대문 밖에서서 두손을 번쩍들고 벌을 섰습니다.
어린맘에 철부지 동생과 저는 이대로 갔다가는
아버지 사랑을 연희에게 죄다 뺏기면
안되겠다고 생각을 했습니다.
나보다 한참 어린동생 이지만 얄미운 연희를
골탕 먹이는 것으로 우리는 조금씩 화풀이를 했습니다.
연희엄마가 장사를 하러 나가고없어,
엄마가 연희를 봐줄때는 가장 골탕 먹여줄 기회였습니다.
괜히 연희양볼을 잡아 늘어뜨리면서 울리기 일쑤였고
우리 키보다 높은곳에 올려놓고 도망가기도 했습니다.
그러던 어느날 강도가 높은 장난을 했습니다.
학교에서 짝궁과 가끔씩 장난하는 놀이가 생각났습니다.
짝궁몰래 짝궁이 의자에 앉을 무렵 지우개를 세워놓는장난,
얌전히 앉아있는 짝궁 불러놓고 고개를 돌리는 짝궁에게
손가락으로 찌르는 장난을 연희에게 했는데...
그날은 손가락대신 연필심이 뾰족한 심지를
연희가 안보는곳에 숨겨놓고 연희를 불렀습니다.
“연희야...~~ 연희야... 언니좀봐라.........
아...다른때 같으면 불러도불러도 고개를
돌리는 듯 돌리는듯 하다가 다시 되돌리더니만
이때는 왜그렇게 빨리도 순식간에 획~ 돌아버리던지요.
연희 고개돌리는 강도가 어찌나 쌨던지
이름을 불렀더니 금새 대답 대신 고개를
쑤욱 돌리는순간 연필심에 찢겨
눈꼬리가 찢어져 피가 흘렀습니다.
아악과 동시에 찢어질듯한 울음소리에 놀란 엄마는
마늘을 까다말고 정신없이 방안으로 들어와
연희 상태를 보고 악을 쓰고 우는 연희를 안고
무작정 병원으로 달려갔습니다.
시장통에서 과일 장사하는 아줌마에게 달려갔습니다.
아줌마도 병원으로 달렸습니다.
다행히 눈안은 이상이 없고 눈꼬리 부분에
찢어진 곳을 꿰매었습니다.
그날... 엄마는 아버지에게 혹독하고
매정한소리만 들으셔야했고
아버지는 연희얼굴에 평생 짊어지고 갈
상처를 남겨줬다며 아저씨 아줌마에게
용서를 빌었고 아이만 안고 계셨습니다.
엄마는 우리에게 결코 야단을 치지 않으셨습니다.
연희네랑 살면서 많은 일들을 겪었습니다.
그러면서 연희가 중학교 2학년이 되었을때
결국 연희네 가족은 고향인 부산으로 갔습니다.
그동안 미운정 고운정이 다 들어버린 연희네와
자주 만나지는 못하더라도
전화로 서로의 안부를 전했습니다.
가끔씩 연희가 여름방학이 돌아오거나
겨울방학이 돌아오면 일주일은 저희집에서
보내다 가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언제부터인가 소식이 뜸하게 끊겼는데
제가 결혼할 때 결혼식장에서 아저씨와 아줌마를
무척 오랜만에 뵈었는데 그분들 곁에 아무말없이
쑥쓰러워하며 서 있는 연희를 봤습니다.
연희를 본순간 가슴이 탁 막히는듯 했습니다.
그때 그상처...를 봤습니다.
세상에 아직도 그 상처가 굵게 남아있다니...
많이 놀랐습니다.
많은해를 거듭하고 오랜만에 연희를 봤는데
연희 눈꼬리의 상처를 보고 놀라지 않을수가 없었습니다.
결혼날 시집가는 딸을 바라보는 애틋한 아버지의 표정은
온데간데 사라지고 마냥 깊게 패여있는 연희의 상처만
어루 만지는 아버지를 보고 자꾸만 안타까운 표정으로
바라보는 아버지 표정을 왜 자꾸 만지실까
의아해 하는 연희표정을 보면서 사실 저는 순간
미안함은 사라지고 연신 이뻐보이고 멋져 보이기만한
신랑얼굴만 바라볼 뿐이었습니다.
사람이 이렇게 또 간사해집니다.
연희는 아직 연희눈꼬리에 상처가 있는 이유를 모릅니다.
연희 아버지와 엄마가 우리가 한짓을
아직 말씀을 안 하셨나 봅니다.
아버지는 지금도 말씀하십니다.
처지가 어려워 서로 도와주고 도와가며 살았더니
더좋은 인연이된 것이 더욱더 고맙고 감사하다며
오히려 아줌마와 아저씨에게 내 부모처럼
잘 해드리며 살아라 말씀하십니다.
때론 살면서 처지가 남보다 많이 부족하고
힘들게 살면서도 남을 도와주려고 애쓰는 아버지를
이해못하고 살아왔지만 지금은 아버지를 많이 존경합니다.
친동생처럼 지내고 있는데 만약 그사실을
연희에게 말한다면 혹시나 연희가 배신감과 실망감에
우리 형제들을 미워하게 될까봐 그러셨을거라 생각하니
많이 미안하고 그분들께 많이 죄송합니다.
그래도 언젠가는 말해야 하는데 자신이 없습니다.
가끔 연희에게서 안부전화가 온다고 합니다.
시집간 언니도 잘 지내는지,,,
카리쓰마 오빠도 잘 사는지 안부를 묻는 답니다.
그리고 한번 찾아오겠다고 아버지께
약속을 했다는데 언젠가는 연희를 또 만나겠지요.
2004년 새해첫날을 맞고 시골에계신 부모님께도,
친정 부모님께도 새해 복많이 받으시고,
올해는 모쪼록 건강하시고 행복하게 사시라는
새해인사를 건네고 전화 수화기를 내려놓는 순간 문득,
연희 부모님과 연희가 생각이났습니다.
전엔 몰랐는데,,,
세월이 많이 흐른 지금은 연희를 생각하면...
우리 형제 때문에 평생을 안고 살아갈 상처때문에
미안한 맘이 많았던지 결코 연희를 잊을수는 없었습니다.
언젠가는 연희도 알게 되겠죠.
연희가 알게되면 저를 참많이 원망하겠죠?
나중에! 연희를 만나게 되면 그땐 정말
그동안 미안했던거,다 갚을거에요.
[옮긴 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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