갑절의 영감을 원하십니까?
왕하 2:9에 ‘엘리야가 엘리사에게 이르되 나를 네게서 취하시기(데려감을 당하기) 전에 내가 네게 어떻게 할 것을 구하라 엘리사가 가로되 당신의 영감이(성령이 역사하시는 역사가) 갑절이나 내게 있기를 구하나이다.’라고 말씀에서 많은 분들이 갑절의 영감을 간절히 원하고 있다. () 부분은 개역개정
얼마나 사모했으면 기도하는 분마다 그리고 능력을 추구하는 이마다 몇 배의 영감을 얻어 마치 신령한 존재로 독특한 계시를 받기를 원하는 분들을 주위에서 쉽게 찾아볼 수 있다. 이 글을 쓰는 본인도 그러한 안한 것이 아니라 더 많은 영감을 얻기를 간절히 바라는 사람 중에 하나였다고 부인하지 않는다.
엘리사가 엘리야로부터 갑절의 영감을 받아 엘리야보다 더 많은 능력을 행한 선지자인 줄로만 착각하여 한국 땅에 내로라는 영성이 뛰어난 분, 그리고 외국에서 영성이 뛰어난 분들을 모방하려고 분석하며 그 분들의 저서나 행적을 연구하기 시작했다. 그러나 그러한 영감은 모방하거나 연구해서 얻어지는 것이 아닌 이유가 바로 이것이다.
‘당신의 영감이 갑절이나 내게 있기를 구하나이다’는 히브리어 원문에 ‘바예히-나피-쉐나임 베루하카 엘라이’(yl'ae ^x]WrB. ~yIn:v.-yPian"-yhiyw)로 되어있다. 다시 번역을 하면‘하나님께서 주신 스승님의 영감 안에서 나를 향하여 똑같이 반복할 수 있는 입술로 선포할 수 있게 하여 주옵소서’하고 간구하는 말씀이다.
그런데도 많은 사명자들은 자신의 기도와 영성훈련을 하게 되면 과거에 인식하고 있었던 것처럼 영감이 넘치는 줄로 착각하고 있다. 지금도 어느 목사는 외국에 영성이 넘치는 분이 있으면 가방을 싸매 들고 그곳으로 찾아가 그 분을 만나 교분을 가져 한국으로 초청하는데 주저하지 않는다.
엘리야(WhY"liae)라는 말은“진리의 말씀을 배우고 익히며 실천하고 호흡하며 삶에 연결하는 존재”라는 뜻이다. 엘리사([v'ylia/w<)라는 말은 “자신과 연결된 말씀을 배우고 익히며 올바르게 방향을 잡아 되새김질 하여 사역을 하는 존재”라는 뜻이다. 엘리야는 길과 진리와 생명을 익히고 적용해 가지 않는 인간들에게 하나님의 원형과 본질로 돌이키게 하기 위해서 왔고 엘리사는 스승의 가르침대로 배우고 익히며 실천하여 그대로 전수하는 존재로 역할을 해왔다.
즉 엘리사가 엘리야로부터 갑절의 영감을 받아 더 높고 많은 영감을 얻어진 것이 아니라 엘리야와 똑같이 진리를 배우고 익히며 실천하였으며 성령의 역사를 그대로 전수할 수 있도록 역사할 수 있기를 간절히 바라는 염원의 장면이다. 그런데 스승보다 더 많은 영감을 얻어진 장면으로 오해하고 있다.
물론 스승과 제자에게 역사되어진 성령의 사건들이 다르고 말씀의 선포 내용이 다른 부분이 있다고 하더라도 하나님께서 엘리야에게 역사하신 것과 동일하게 역사하시며 말씀을 증거 하는데 그 원형과 본질이 달라지지 않게 해달라는 당부의 기도를 의미한다. 성경의 어느 한 부분을 선택하여 잘못 사용되어지는 오류가 없었으면 한다.
“옷”은 히브리어로‘비브가다유’(wyd'g"b.Bi)다. “생명 안으로, 진리 안으로 통과하며 보답하는 차원에서 사역하며 실천하기 위하여 부활하신 그리스도의 옷을 취했다”는 것을 의미한다.“둘로 찢었다”는‘바이크라엠 리쉬나임’(~yIn:v.li ~[er'q.YIw:)이다. 엘리야로부터 배운 진리를 반복하며 익혀서 창조의 과정을 목양 받는 속으로 들어가게 하였다는 의미가 담긴 내용이다.
하나님께서 아담과 하와에게 에덴동산에서 추방하기 전에 옷을 입혀 주시는 일을 지금도 일하신다는 말씀의 정신을 받아 부활하신 그리스도의 옷을 입는 것이 길이요, 진리요, 생명임을 접하는 사람들에게 깨닫게 하며 믿기만 하면 옷을 입힘을 받는 은총아래 생명과 진리 안으로 들어가게 된다는 것을 의미한다.
“엘리야의 몸에서 떨어진 겉옷을 주워가지고”라고 하였는데 주운 것이 아니고 ‘야렘’(~r,Y"w:)이다.“여러 방향으로 확장하며 사역하고 하나님과 함께의 극치인 매달림 속에 귀중하게 여기고 있다”는 뜻이다. 엘리사가 그 겉옷을 가지고“물을 쳤다”는 말씀은“엘리야와 똑같은 사역을 시작하였다”는 말이다.“물”(마임 ~yIM;) 연관된 단어들은“사역”을 뜻하고 있다.
따라서 구약의 말씀은 단순히 단어해석으로 끝날 수 없는 구문으로 되어 있어 알파벳 한 자 한 자마다 소중한 뜻이 담겨져 있음을 인식해야 한다. 그런데 성경의 오리엔트 문명에서 나온 여러 나라의 설화나 비석, 그리고 문서에서 표절했다고 주장하는 이들이 있지만 그 내용만큼 전혀 다르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이 글을 읽는 독자들은 신앙선배들보다 내가 더 많은 내용의 진리를 알았다고 선배들을 우습게 여기지 말라. 그들이 없었다면 지금 현재 내가 존재할 수 없는 것이다. 필자도 현재에 존재할 수 있도록 인도와 가르침이 없었다면 이런 내용을 알아낼 재간이 없었을 것이며 자극과 도전을 받지도 않았을 것이다.
일반인들도 마찬가지다. 오늘날 선생은 많이 있지만 진정한 스승이 없다는 것이다. 학생들은 많지만은 진정한 제자는 없다는 것을 의정부에서 목회할 때 고등학교 일본어 선생님에게 들은 얘기다. 요즘 학생 같은 선생들이 너무나 많다는 것은 무엇을 뜻하는 것일까? 즉 학생처럼 행동하며 말하는 선생들이 즐비하다는 것이다.
오늘날 학생들이 선생님을 우습게 아는 이유가 바로 이런 이유라고 볼 수 있다. 교회학교나 주일하교에서 가르치는 선생들의 신앙을 본받지 못하는 이유가 무엇일까? 성경을 가르친다고 해서 교회학교 교사가 아니다. 그들에게 전수할 수 있는 신앙도 없으면서 신앙을 전수하겠다고 하니 기가 막힐 노릇이다.
그렇다고 주눅 들어 교사를 그만 두려고 하지 말라. 자신을 성찰할 수 있는 기회라고 여긴다면 자신의 신앙을 점검하여 자신의 영감을 갑절을 받아서 하나님의 말씀을 올바르게 가르치는 존재가 되어야 한다. 지식으로 전하지 말고 내가 알고 있는 부분을 전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본질과 뿌리를 가르치는 존재가 되어야 한다.
아브라함의 순종의 신앙이 이삭의 겸손의 신앙을 낳고, 이삭의 겸손의 신앙이 야곱의 인내의 신앙을 낳고, 야곱의 인내의 신앙이 유다의 찬송의 신앙을 낳는 일에 매진해야 할 것이다. 또한 아브라함의 생명의 근원이시고 다윗의 신앙의 뿌리이신 예수 그리스도의 세계를 만들어 나가야 할 것이다. (마 1장 1절)
이것이 갑절의 영감을 받는 것이며 에녹(전수하는 존재)가 므두셀라에게 엘리야가 엘리사에게 신앙의 전수하는 것처럼 신앙의 뿌리와 원형을 전하는 교사가 되어야 한다. 성경을 가르치다 보면 한두 번 들어보고 별 것 아니라고 하여 안 나오고 신통하게 여기지 않아서 중단해 버리는 경우가 허다하다.
필자의 강의를 듣고 금방 은혜 받았다고 길길이 날 뛰고 흥분하는 사람들은 얼마가지 못해 그만 중단해 버리는 사례가 있으며 자신의 신앙으로 판단하여 기준에서 벗어나면 포기해 버린다. 가르치기를 원한다면 올바르게 배워야 한다. 무식하면 얼마나 용감한지 잘 알지만 그런데 배우지 않고 가르쳐대는 것을 보면 경악할 지경이다.
설교하기 위해서 성경을 보고 성경을 가르치기 성경을 보는 것보다는 자신을 성찰하고 하나님의 형상을 만들어나가면 하나님께서 주신 원형과 뿌리를 찾고자 그리고 본질과 올바른 개념과 의미를 알기 위해서 성경을 배워야 하지 않겠는가?출처/창골산 봉서방 카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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