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학연수과/신앙서적의 요약

20: 21 비전/빌 에모트 지음/형선호 옮김

미션(cmc) 2010. 6. 19. 10:58

20: 21 비전

빌 에모트 지음/형선호 옮김

더난출판/2003년 3월/407쪽/18,000원

 

▣ 저 자 빌 에모트

1993년부터 세계적인 시사주간지 「이코노미스트」의 편집장으로 재직 중이다. 그 이전에는 이 주간지의 브뤼셀, 런던, 도쿄, 특파원으로 일했다. 『해는 또 다시 진다 : 일본이 일등이 될 수 없는 이유』『전 세계로 뻗어가는 일본 : 일본 다국적 기업들의 영향력, 전략 그리고 약점』등 네 권의 저서가 있다.

 

▣ 역 자 형선호

서울대학교 사회대학을 졸업하고 대우그

룹과 현대그룹에서 근무했으며, 영어 강사를 거쳐 현재 전문 번역가로 일하고 있다. 지금까지 『부자 아빠 가난한 아빠』『보보스』『경제학 벗기기』 등 50여 권의 책을 번역했다.

 

▣ Short Summary

세계적인 경제전문지 「이코노미스트」의 편집장 빌 에모트는 이 책에서 다음과 같은 두 가지 질문을 던진다. 미국은 21세기에도 모든 분야에서 지배적인 힘을 발휘할 것인가? 둘째, 자본주의는 유일한 대안으로서의 지위를 지켜갈 것인가? 두 가지 문제에 대한 빌 에모트의 시각은 분명하다. “미국이 주도하는 힘의 균형과 질서는 상당기간 지속될 것이며, 온갖 저항과 비판에도 불구하고 자본주의는 ‘부의 창출’이라는 목적에 가장 적합한 경제체제”라는 것이다. 저자는 이러한 주장을 뒷받침하기 위해 지난 100년간의 역사에 대한 압축적 분석과 현 상황에 대한 감각적 판단을 총동원하고 있다. 아울러 경제학자이자 저널리스트로서 정통 사회학자들과는 다른 관점에서 향후 21세기의 여러 문제들에 대한 전망을 제시한다. 한 마디로 이 책은 경제학자이자 저널리스트의 시각으로 본 '미국 중심의 세계 질서 및 이와 상호작용을 할 수밖에 없는 자본주의'에 대한 방대한 보고서라 할 수 있다

 

▣ 차 례

에필로그

1. 20세기와 21세기

 

제1부 도전받는 문화

2.미국 : 다자주의와 대결하는 일방주의

3.중국 : 역사의 자존심과 극과 극의 가능성

4.일본 : 안개 속을 걸어가는 사무라이

5.유럽 : 운명이 되어버린 미국을 향한 질투

6.도전받는 평화

 

제2부 의심받는 자본주의

7.강자들이 지배하는 유토피아

8.의심받는 자본주의

9.자본주의는 원래 불평등하다 1

10.자본주의는 원래 불평등하다 2

11.더러워지는 세계

 

프롤로그

12.새로운 질서와 자본주의의 선택

 

 

 

 

 

 

 

20: 21 비전

빌 에모트 지음/형선호 옮김

더난출판/2003년 3월/407쪽/18,000원

 

1. 미국 : 다자주의와 대결하는 일방주의

윈스턴 처칠은 미국의 지도력에 대해 다음과 같이 재치 있는 표현을 사용했다. “미국인들은 늘 올바른 결정을 한다. 다른 모든 대안들이 통하지 않게 되면 말이다.” 그것은 미국에 대한 유럽의 지속적인 선입견을 압축적으로 표현한 것이기도 하다. 미국이 주도하는 신세계는 왠지 어설프고, 서툴고, 속물적이며, 세계 무대에서 어떻게 행동해야 할지 잘 모른다는 선입견 말이다.

 

로널드 레이건 대통령은 1980년대 초에 소련을 ‘악의 제국’이라고 말한 후에 유럽에서 자주 조롱의 대상이 되었다. 2002년 1월에 조지 부시 대통령의 연두 교서는 유럽인들에게 새로운 조롱거리가 되었는데, 이 연설에서 그는 북한과 이란, 그리고 이라크를 ‘악의 축’이라고 얘기했다. 중국의 관리들은 일종의 표준적인 표현을 사용해 미국의 거만함과 간섭주의, 그리고 ‘패권주의’를 비난한다. 반세기에 걸친 미국의 지도력과 국제 문제에 대한 개입에 있어 가장 극명하게 부각되는 한 가지 사실이 있다. 즉, 이 기간에 미국이 폭격했거나 어떤 식으로든 공격한 나라들의 수와 인구가 다른 모든 나라들이 행한 수보다 더 많다는 사실이다.

 

세계를 지배하는 미국의 방식

미국의 세계 지배는 처음부터 제국주의 방식이 아니었다. 이러한 비제국주의 방식은 엄청난 군사적 우월성 때문에 가능했다. 미국의 힘은 여러 가지 방식으로 행사되고 전달된다. 직접적인 군사 행동, 군사 행동의 위협, 경제적인 압력, 외교적인 압력, 혹은 더 부드러운 방식의 사상적․문화적․이념적 영향력 등이다. 미국은 공식적으로 제국이 없었지만 비공식적으로는 있었다. 자국 내에서는 지켜졌던 원칙과 가치들이 다른 나라에서는 쉽게 무시되었다. 미국은 때로 독재자들을 옹호했고 민주주의를 뒤집어엎거나 인권침해가 자행되는 상황에 눈을 감았다.

 

미국은 1945년 이후, 거의 모든 국가들과 상호 호혜적인 관계를 맺으려고 했다. 호혜적인 정책은 강압적인 정책보다 제국을 유지하는 데 훨씬 적은 비용이 든다는 사실 때문이다. 물론 보스턴 대학교의 국제관계학 교수로서 『미국 제국(American Empire)』의 저자이기도 한 엔드루 바세비치 같은 사람들은 ‘소극적 초강대국’ 개념이 잘못된 신화라고 얘기한다. 미국 자체도 일종의 제국으로서 계약, 구매, 혹은 강압에 의해 획득한 영토들로 구성되어 있다고 그들은 말한다. 우리가 21세기를 위해 물어야 할 질문은 다음의 두 가지이다. 첫째, 미국은 현재의 지배력으로 무엇을 할 것인가? 둘째, 미국의 지배력은 앞으로도 계속될 것인가?

 

1914~18년의 ‘세계대전’은 도발국들의 힘이 다하고 미국이 영국과 프랑스 편에 선 후에야 비로소 끝이 났다. 제2차 세계대전에서도 상황을 끝낸 것은 1941년 말에 시작된 미국의 참전과 히틀러의 소련 침공 때문이었다. 미국은 1945년 이후 힘이 약해진 영국으로부터 완전히 지도력을 넘겨받았다. 미국의 정책 목표는 냉전이 시작되던 1947년부터 소련이 무너지던 1991년까지, 제2차 세계대전을 야기한 요인들이 - 경제적인 불안정, 각 국이 서로 고립되는 것, 전체주의 사상의 확산 등 - 재현하지 않게 막는 것이었다. 즉, 그것은 미국이 지배력을 확보하고 소련을 제압하기 위한 시도였다는 것이다. 하지만 이런 목표들이 부작용을 초래한 것도 사실이다. 세상을 하나의 프리즘으로 - 이 경우에는 공산주의 억제의 프리즘 - 보는 바람에 특정한 사건들이 원래의 의도나 예상보다 훨씬 더 오래 지속되는 결과를 낳았다는 사실이다.

 

아직 냉정한 판단을 하기에 이를 수도 있는 사안 중 하나는, 미국이 1980년대에 아프가니스탄에서 소련의 점령에 대항해 싸운 회교 민병대를 비밀리에 지원한 것이다. 이것은 소련이 중앙아시아에서 지리멸렬한 소모전에 발목이 잡혀, 결국 1989~91년의 몰락으로 이어지도록 만든 필요하고도 효과적인 방법이었을까? 아니면 그것은 1990년대에 아프가니스탄이 혼란에 빠져들어 극단적인 탈레반 정권을 탄생시킴으로써, 빈 라덴과 그의 테러조직인 알 카에다에 은신처를 제공토록 만든 것에 불과했을까?

 

미국은 냉전의 종식과 함께 외교 정책의 방향과 응집력을 잃고 다소 방황하였다. 아프가니스탄은 몇몇 다른 분쟁지역처럼 더 이상 관심의 대상이 되지 못했다. 그러다가 9․11 테러가 일어났다. 이 사건을 계기로 초강대국 미국의 역할과 태도는 새로운 시대에 접어들게 되었다. 미국의 지배력을 사용할 분명한 목표, 세상을 보는 또 하나의 프리즘이 다시 등장했기 때문이었다. 이것은 처음에 ‘테러와의 전쟁’으로 규정되다가 곧 부적절한 것으로 판명되었다. 그보다 이것은 지구촌의 안정, 특히 미국의 안정에 대한 위협과의 전쟁이었다. 알 카에다의 테러 공격은 공동의 위협이었다. 이슬람 과격파들에 의한 테러에서 한 가지 두드러진 특성은 그것에 대항하는 국제연대의 규모가 냉전기간에 나타났던 서구 각국의 연대보다 훨씬 더 크다는 점이다.

 

군사력과 경제력의 함수관계

사실 미국은 이미 1980년대에 경제 지배력을 잃고있다는 지적을 받았다. 1970년대의 석유파동이 월남전 참전으로 인한 인플레이션 효과와 결합되어 경제 성장을 더디게 했는데, 이것은 미국이 전 세계의 패권을 놓고 소련과 다투는 동안에 일어났다. 이 시기 로널드 레이건 대통령은 군비경쟁의 수준을 한층 더 높여 새로 미사일을 배치하고 ‘스타워즈’ 계획을 발표했다. 영국인 사학자 폴 케네디는 경제적인 곤경과 군사적인 야심의 이와 같은 결합을 보면서, 1988년에 발표된 『강대국의 흥망(The Rise and Fall of the Great Powers)』이라는 책에서 그와 같은 ‘제국주의적 확장’ 때문에 많은 강대국들이 쓰러졌으며 미국도 그렇게 될지 모른다고 경고했다.

 

미국은 20세기 초에 일인당 GDP에서 영국을 제치고 세계에서 가장 부자 나라가 되었지만, 영국으로부터 지도자 역할을 넘겨받은 것은 50년이 지난 후였다. 중요한 것은 단순한 크기나 부가 아니라 그것을 국제적으로 사용할 수 있는 능력과 의지이다. 우리는 다음과 같은 역설에 유념할 필요가 있다. 즉, 미국의 ‘제국주의적’ 역할은 - 지구촌의 평화를 유지하면서 동시에 자유무역과 자본주의를 통해 전 세계의 경제발전을 도모하려는 역할은 - 장기적으로 미국의 경제적인 지배력을 줄이기 위한 것이었다. 국가 간 GDP 격차가 크게 좁혀진 것은 서로에게 유익한 일이었고, 무역과 민주주의를 확산시킨 미국의 노력에서 상당 부분 도움을 받은 것이었다. 세계가 여전히 무역과 자본의 자유로운 이동에 열려 있는 한, 미국 자신은 여전히 경제적인 활력을 유지하는 것이다. 미국 자체의 성장과 개발은 가난한 나라들도 지속적인 성장을 할 때 큰 도움을 받을 것이다.

 

다원주의와 일원주의의 충돌

미국인들은 당연히 세계에서 자신들이 결코 무시할 수 없는 ‘권력’이라는 사실에 만족해한다. 그들은 미국이 세계 최대의 강대국이라는 사실을 좋아한다. 1945년 이후에 설립을 도운 여러 국제적 기구들에서 발견되는 흥미로운 점은, 그와 같은 기구들 IMF, 세계은행, 유엔, 그리고 WTO 등이 다른 나라들을 무시하는 미국의 능력을 오히려 제한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그러나 실제로 그런 일은 벌어지지 않았으며 미국의 동맹국은 냉전 이후에 오히려 늘어났다.

 

전문가들이 다원주의나 일원주의의 이점에 대해

미국이 혼자서 가야 하는지 동맹국들과 협력해야 하는지에 대해 논의할 때, 그들은 종종 군사적인 측면에 시각을 한정시키는 경향이 있다. 하지만 군사적 측면만이 전부는 아니다. 어쨌거나 다원주의는 단순하게 어떤 계획에 대한 지지를 끌어내는 것보다 더 많은 것을 의미한다. 그것은 통제를 벗어날 수도 있는 집합적 의사결정 과정에 동의할 것을 요구한다. 이런 과정은 초강대국으로서 용납하기 어려울 수도 있다. 미국은 세계 각국의 다원적인 노력을 돕고 종종 주도적인 역할을 하다가 막판에 가서 발을 빼곤 했다. 그러나 앞으로는 힘든 상황의 도래도 예측해 볼 수 있다. 다원주의의 미국에 대한 핵심적 약점은 - 다른 나라들이 원한다면 단결해서 대항할 수 있는 상황은 - 확대될 것이다.

 

국제협약은 기본적으로 국가 간의 약속이며, 따라서 다른 서명국들이 약속을 실제로 이행한다는 신뢰는 협약 유지의 중요한 요소이다. 맹주 국가인 미국이 기본적으로 자신들은 협약을 지키지 않으면서 다른 나라들만 준수할 것을 바란다면, 결국에는 어떤 나라도 협약을 지키지 않는 결과가 나타나게 된다. 이 점은 국제연합이 1990년대에 이라크와 북한에서 무기사찰을 할 때 보여준 적이 있다. 그러나 미국의 이라크 공격은 다원주의를 명분으로 내세우고 있지만 결국 일원주의 행동이 될 것이다.

 

9․11 테러 후에 미국은 외교 정책을 시행하는 단 하나의 분명한 프리즘, 즉 자신들의 힘을 사용할 분명한 목표를 갖게 되었다. 미국은 국제적인 역할을 수행할 능력을 유지할 것이며 경제적으로 여전히 활력을 유지할 수 있지만, 일원주의를 추구하는 최근의 경향은 앞으로도 계속될 가능성이 높고, 미국의 지도력은 상당 기간 계속되겠지만 파할 수 없는 갈등도 나타날 수밖에 없다. 미국의 입장에서 본다면 예측할 수 없는 도전이 수많은 불안정한 나라들로부터 터져 나온다. 세계 최대의 인구를 보유한 중국이 한 세기 동안의 잠에서 깨어나 야심을 드러내고 있다. 유럽과 일본 같은 다른 열강들도 맹주국가 미국에게 적지 않은 도전을 제기하고 있는 상황이다. 적어도 미국의 입장에서 본다면, 세상은 미국의 지도력이 없다면 한층 더 어렵고 무질서한 모습일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21세기는 여전히 또 하나의 질문을 안고 있다. 즉, 그렇다면 미국이 만드는 세상은 얼마나 질서정연할 것인가?

 

 

2. 중국: 역사의 자존심과 극과 극의 가능성

9월 11일의 테러가 있기 전까지는 부시 행정부의 많은 고위 관리들 역시 중국을 장기적으로 가장 다루기 힘든 도전 상대로 생각했다. 그러나 중국과 미국의 이런 화해 분위기는 아직 축하하기에 이르다. 중국은 여전히 미국의 가장 우려할 만한 잠재적 도전국이며, 2001년 가을에 일어난 어떤 일도 그 본질을 바꾸지는 못했다. 중국은 1945년 이후 탄생한 공산주의 열강 중에서 남은 마지막 국가이다. 일본도 1930년대와 1940년대에 여전히 의존적인 국가였음에도 아시아와 전 세계의 평화에 심각한 위협이 되었다. 결국에는 중국도 같은 길을 걷게 될지 모른다.

 

무시할 수 없는 중국의 위협

우리는 중국의 위협을 결코 무시해서는 안 된다. 중국은 한동안 미국의 경쟁국이 되기 어렵겠지만, 그럼에도 아시아 지역에서 불안의 원천이 되기에 충분하다. 그리고 아시아의 불안은 전 세계의 평화를 위협할 수 있다. 중국의 정치 체제는 이미 오래 전부터 이념적인 지도력을 상실했고, 보다 시장 중심적인 경제의 발전과 더불어 발전하지 못했다. 경제적인 실패나 혼란은 공산당의 붕괴나 해체를 초래할 수 있다. 중국의 공산당은 동맹국들도 없이 소외된 상태이며 아시아 지역에 대한 미국의 지배력에 적개심마저 갖고 있다. 내부의 투쟁이나 외부의 상황으로 몰릴 때, 그런 적개심을 표출하기 위해 아시아 지역, 특히 대만에 대해 군사적인 행동을 시도할 수도 있다.

 

중국도 유럽 못지 않은 비극들을 경험했고 제2차 세계대전 때는 전쟁의 한가운데 있었다. 오늘날 중국은 이미 자유주의와 민주주의의 승리를 선언한 나라들에게 너무 기뻐하지 말라고 경고한다. 티베트는 물론 서부의 신장성 일부에서도 중국은 세계의 남은 제국들 가운데 하나로 군림하고 있다. 중국은 일인당 소득이 미국의 4분의 1만 되어도 인구가 4.5배 이상 많기 때문에 절대적인 GDP 수준에서 미국에 접근하게 된다. 실제로 2002년이나 2030년경에 미국을 제치고 세계 최대의 경제대국이 될 가능성은 얼마든지 있다. 그렇게 된다면 중국은 다시 열강의 반열에 오르게 된다. 2000년과 2001년 사이 중국 지도자들이 WTO에 가입하려 애쓴 노력을 엿볼 수 있었다. 중국의 WTO 가입은 이제 향후 몇 년 동안 경제의 새 분야들을 세계와의 경쟁에 노출시키고, 국제적으로 합의된 행동 규칙들에 정면으로 부딪치게 할 것이다. 중국 공산당의 지도자들은 경제 성장과 현대화만이 유일한 선택이라고 믿는 것 같다.

 

지금까지 압제와 임의적인 정의, 그리고 관료의 부패에 대한 분노는 겉으로 드러나지 않고 있다. 그것은 부분적으로 대부분의 중국인들이 생활수준의 개선을 느끼기 때문이고, 부분적으로 효과적인 통치와 치안유지 때문이다. 하지만 우리는 1989년에 베이징의 천안문 광장에서 몇 천 명의 학생들이 시위를 일으키자, 중국 지도부가 위협을 느끼고 군대를 동원해 수백 명의 학생들을 학살한 것을 기억해야 한다. 당시의 시위는 경기침체와 인플레이션이 맞물리면서 경제가 나빠진 것이 근본적인 원인이었다. 경제적 불확실성이야말로 중국의 정치적 안정을 위협하는 가장 본질적인 요소이다. 중국에 안정적인 법치는 없으며, 계약들의 힘은 주로 정부와 정권의 힘이 계속된다는 믿음에 기초한다. 인도네시아처럼 중국도 계약들이 무효화되고 온갖 분야에서 신뢰가 무너지는 경제 위기가 도래할 수 있다. 혼란의 와중에서 누군가 새로운 차원의 독재를 시도하며, 중국의 유교적인 전통에 기초해 개인보다 국가를 우선시할 수도 있다는 것이다.

 

그러나 현재 가장 중요한 것은 중국의 정치체제가 어떻게 될 것인지에 대한 추측이 아니라 그런 일이 일어날 때 어떤 상황이 벌어질 것인지 알아내는 일이다. 대만은 1895년부터 1945년까지 일본의 식민지였다가, 1948~49년 후에는 국민당의 망명 정부가 들어섰다. 이제 홍콩과(1997년) 마카오를(1999년) 돌려 받은 입장에서, 다음 차례는 대만이라고 본토인들은 말한다.

 

 

3. 일본 : 안개 속을 걸어가는 사무라이

일부에서는 일본이 미국을 제치고 세계의 맹주 국가가 될 것이라고 예측하기도 했다. 하지만 1990년 이후 일본의 주식과 부동산 시장이 무너지면서 이 나라는 계속해서 실망과 좌절을 맛보았다. 경제성장률은 급락했고 실업률은 치솟았다. 1990년대에 일본의 잠재력과 중요성을 과대평가한 것과 1990년대와 2000년대 초에 그것을 과소평가한 것 모두, 일반적인 분석들이 종종 힘과 지도력과 특히 지정학적 중요성의 잘못된 지표들에 초점을 맞춘다는 사실을 보여준다. 일본은 1985년부터 1990년까지 엔화 가치가 상승했기 때문에 여러 면에서 정상의 자리에 올랐다. 마찬가지로 미국은 1995~2001년에 달러의 강세 때문에 여러 면에서 지배적인 위치가 한층 더 강해졌다. 정확한 분석을 위한 첫 번째 걸음은 일본이 세계의 지배적인 국가가 될 수도 있다는 1980년대의 일반적인 통념을 무시하는 것이다. 이유는 그런 일을 가능하게 하는 주요 변수가 일본에 존재하지 않기 때문이다.

 

변화에 대한 일본의 저항

현재의 경제적인 규모로 볼 때, 일본은 큰 변화를 야기할 수단과 전략적 중요성 모두를 갖고 있다. 일본은 그렇게 하기로 선택하면 동아시아 지역과 전 세계 모두에서 큰 변화를 야기할 수 있다. 먼저 경제를 분석하는 것이 순서일 것이다. 1985년이 지나자 외적인 경제 상황이 극적으로 변하기 시작했다. 미국은 엄청난 무역 적자에 시달리기 시작했고 달러의 가치는 급락했다. 불과 2년 만에 엔화에 대한 가치가 반이나 떨어졌다. 1987년 10월에 미국의 주식시장이 무너지면서 미국을 비롯한 부자 나라들에서는 탄식이 흘러나왔다. 달러의 추가적인 가치 하락을 막기 위해, 일본은 자국의 이자율을 한층 더 낮추었다. 이렇게 해서 1987~90년의 거품경제가 시작되었다. 엄청난 돈이 풀려나갔다. 엔화의 가치는 높아졌지만, 이것은 다시 주식과 부동산의 가격 상승으로 강화되었다. 필연적인 악순환이 등장했다.

 

거품은 정치인, 기업, 그리고 일반적인 투자가들을 비롯해 그것 때문에 부자가 된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에게 득이 되는 것이었다. 게다가 경제는 인플레이션 없이도 잘 돌아가고 있었고, 재무부와 자민당의 정책가들도 그것을 인정했다. 그래서 일본 은행은 파티를 일찍 끝내고 싶은 생각이 없었다. 거품이 꺼진 것은 일본 은행이 마침내 이자율을 높여 돈의 가치를 올렸을 때였다. 기업들은 돈이 공짜라고 생각했기 때문에 돈을 빌려 투자하는 호기를 부려왔었다. 가계들도 갑자기 가치가 높아진 부동산과 주식을 믿고 많은 돈을 빌렸었다. 은행들은 그런 파티에 밑천을 대주다 엄청난 규모의 악성부채를 떠 안게 되었다.

 

그러다가 1990년 1월 2일 주식시장이 무너졌다. 부동산 가격도 같은 운명에 처했다. 이와 같은 금융충격이 닥치면 경기 후퇴나 침체는 불가피했다. 그러나 일련의 막대한 예산을 사용해 수요를 떠받치려는 노력은 있었지만 금융 시스템의 치료나 잠재력의 발산은 일어나지 않았고, 가계들의 신뢰도 계속해서 떨어졌다. 왜 올바른 대응책이 이루어지지 않았는지의 이유는 ‘변화에 대한 저항’ 때문이었다. 일본 내의 특정한 그룹들, 즉 입법과정을 통제하거나 방해하는 능력을 통해 성공한 그룹들의 저항 때문이었다. 이러한 저항은 한때 너무나도 활기찼고 새 개념들을 기꺼이 도입할 것 같았던 일본 경제를 경직된 기계조직으로 바꾸고 말았다. 문제의 해결은 기본적으로 정치적인 과제이다. 2003년 2월 총리를 맡고 있는 고이즈미는 2001년 4월에 총리가 되었을 때 변화에 필요한 과제를 다루겠다고 공언했다. 개혁의 진행이 필요하다는 숙제를 안고 있지만, 사실 일본은 단기 및 중기적 관점에서 생산성 향상의 가능성이 무척 크다. 규제가 완화되고 개혁된 일본의 전망은 밝다.

 

위험한 재무장의 유혹

경제적인 개혁이 제대로 수행되지 못하고 규제 완화가 더 많은 문제를 야기한다면 어떻게 되는가? 다시 또 정치적인 과정이 실패한다면, 그 결과는 좌절일 것이다. 이런 상황에서 가장 우려되는 결과는 극단적인 주장을 펼치는 정당들과 정치인들의 부상이다. 정치적으로 보다 민족주의적인 경향을 띠게 되는 것, 그리고 내부적으로 보다 분열적이고 도발적인 정치로 변하는 것, 이것이 지속적인 경제적 실패에 따른 가장 우려되는 결과들이다. 일본의 경제적인 부침은 주로 자국민들에게만 영향을 끼치지만, 정치 및 안보적 변화는 많은 나라들에게 영향을 끼칠 게 분명하다. 사실 아시아는 전체적으로 이전보다 더 위험한 곳이 되고 있다. 동아시아를 비롯한 이 지역의 많은 나라들은 막강한 군대를 유지할 수 있다.

 

중국이나 북한에서 제기하는 위협이 도화선이 되어, 일본의 민족주의가 힘을 얻을 수도 있다. 이와 같은 상황은 일종의 악순환을 일으킬 것이다. 일본은 현재 중병이 든 경제에도 불구하고 이미 세계 3위의 군비 지출 국가이며 해군력은 영국보다도 막강하다. 하지만 헌법의 제한과 반핵 원칙 때문에 행동반경이 좁다는 한계는 근원적인 불안감을 피하기 어렵게 만든다. 보다 민족주의적인 정부, 보다 가시적인 군사적 힘, 나아가 결국에는 보다 공개적인 핵개발이 21세기에 일본이 걸어가는 길이 될 수도 있다.

 

 

4. 유럽 : 운명이 되어버린 미국을 향한 질투

현재 지구상에서 오직 한 곳만이 경제적인 힘이나 거의 모든 통계적 수치에서 미국에 필적할 수 있다. 바로 유럽연합(EU)이다. 유럽과 미국의 경제는 장기적으로 팽팽한 균형을 보이며 시소게임을 펼칠 가능성이 높다. 유럽의 일부로서 유럽의 문화와 문명에 상당한 공헌을 한 역사에도 불구하고, 러시아는 유럽과 별개의 지역으로 간주된다. 2001년 9월 11일의 뉴욕 테러 이후 국제 정치에서 가장 큰 변화는 러시아와 미국의 화해 분위기였다. 적대적인 국가였던 두 나라는 테러와 중앙아시아의 불안정에 대해서, 그리고 대량살상무기의 확산을 통제할 필요성에 대해서 공통의 이해관계를 만들어가고 있다. 이제는 러시아와 미국의 연대가 서유럽을 위협하는 것처럼 보이기도 한다. 유럽대륙에는 모두 8억 명의 인구가 살고 있다. 그중에서 4억 명 정도는 이미 유럽연합에 가입했고, 모두 2억 6천만의 인구가 살고 있는 러시아, 우크라이나, 그리고 터키는 유럽과의 관계를 확대시킬 것이 분명하다. 유럽은 ‘철의 장막’에 의한 이념 및 군사적 장벽 때문에 나뉘어져 있었다. 이제 그런 장막이 걷히고 공산주의가 무너진 상황에서 양쪽의 새로운 성장, 새로운 교역, 새로운 투자의 잠재력은 매우 크다.

 

고단한 유럽연합의 역사

유럽은 - 여기서 말하는 ‘유럽’은 EU의 15개 회원국이다 - 단일 국가로 통일되거나 하나의 목소리를 내는 그 어떤 단위가 되고 싶어하지 않는다. 러시아와 동유럽을 제쳐두고, 현재 유럽연합을 구성하는 서유럽의 부자 나라들만 생각해 보자. 유럽연합은 1957년에 창설된 이후 그 성격은 물론 존재 방식 또한 다양하게 나타났다. 유럽연합은 부분적으로 초국가적인 단위이고, 부분적으로는 정부 간 협력기구의 성격을 갖는다. 그것은 부분적으로는 개방적이고, 부분적으로는 보수적이며, 부분적으로는 민족주의적이라는 것을 뜻한다. 그것은 또 부분적으로는 경제적인 연합체이고, 부분적으로는 정치적인 연합체임을 표시한다. 일부 국가들은 - 특히 벨기에와 네덜란드는 - 더 큰 정치적 단위의 일부가 되기를 원하는 것 같다. 하지만 다른 나라들은 - 특히 영국과 덴마크, 그리고 스웨덴은 - 그렇게 되기를 원하지 않는다.

 

지금까지 유럽연합에서 주도적인 역할을 수행한 독일과 프랑스 같은 큰 나라들은 중간 정도의 입장을 보이고 있다. 유럽연합은 1951년의 석탄 및 철강 공동체, 1957년의 유럽경제공동체, 1987년의 유럽공동체, 그리고 1993년에 시작된 현재의 유럽연합 등과 함께 기본적으로 전쟁의 방지가 목적이었다. 그리고 이것은 유럽연합의 성격이 기본적으로 소극적인 것임을 보여준다. 교역과 인적 교류의 자연적 패턴은 두 차례의 전쟁과 50년 동안의 경제적인 민족주의로 심하게 왜곡되어 있었다. 따라서 유럽의 ‘경제공동체’ 내지 ‘공동시장’은 비록 또 다른 정치적 분열인 철의 장막이 유럽대륙을 반으로 나누고 있던 시기임에도 불구하고, 교역과 투자의 흐름을 개방해 자연적 흐름을 되살리려는 시도였다고 할 수 있다.

 

실제로 유럽연합이 달성한 주요 업적들 가운데 많은 것들은 개방적인 것이었다. 그렇게 되면 현재 각국의 협력을 어렵게 만드는 의심들은 사라지게 되고, 더 넓은 정치적 통합의 길이 열릴 수도 있다. 하지만 이것은 너무 낙관적인 전망이다. 공동농업정책의 개혁이나 철폐에 대한 희망은, 현재 그것으로 덕을 보는 사람들의 보수주의와 그것 대신에 일련의 새로운 규칙, 보조금, 그리고 쿼터를 도입해 유기농업과 환경보호를 꾀하려는 환경론자들의 열망 때문에 도전 받게 될 것이다.

 

유럽연합의 회원국들은 가장 중요한 미래의 문제들을 앞서 내다보고 준비하며 실행한다. 단일 통화의 채택은 그와 같은 합의의 하나였다. 유럽의 단일 통화는 1971년에 처음 제시되어 1992년에 마스트리트 조약으로 구체화되었고, 1999년에 정식으로 출범한 후 2002년에 본격적으로 지폐와 동전이 사용되었다. 그러나 똑같이 중요한 또 하나의 사건은 유럽연합의 규모를 확대해 중부와 동부 유럽의 국가들도 포함시킨 것이었다. 이것은 1989~91년에 베를린 장벽이 무너지면서 공산주의가 함께 사라지고, 소련이 해체되면서 서유럽의 몇몇 지도자들에 의해 제안되었다.

 

유럽연합의 경계선은 조만간에 멀리 동쪽까지 확대되어 러시아, 우크라이나, 벨라루시까지 넓어질 것이다. 영역 확대의 추세는 앞으로도 계속될 것으로 보인다. 일단 유럽연합이 방향을 잡고 움직이기 시작하면 그 기세는 엄청날 것이기 때문이다. 유럽연합의 성격, 행동, 그리고 정책들은 동유럽의 다른 나라들과 - 특히 강대국인 러시아와 - 맺게 되는 새로운 관계, 그리고 남동쪽의 가장 중요한 나라인 터키와 맺게 되는 관계가 규정할 것이다. 두 나라 모두 서유럽과는 많은 차이가 있다. 그러나 두 나라 모두 이제는 20세기와는 다른 21세기의 전략이 필요하다는 데 동의한다. 소련이 무너진 다음 해인 1992년에 공산주의를 버리고 새롭게 등장한 러시아는, 무역과 해외의 직접투자로 자극 받는 자본주의만이 강한 나라로 만들 수 있을 것이다. 정치적인 측면에서, 미국과의 관계는 러시아가 핵 강국인 동안에는 여전히 필요하고 중요할 것이다. 그러나 현실적인 측면에서, 러시아에 가장 중요한 것은 독일 및 유럽연합과의 만남이다.

 

유럽은 하나가 될 수 있을까?

바로 국제적인 위기, 혹은 일련의 위기들이 일어나 유럽이 뭉치지 않으면 생존과 번영을 보장할 수 없을 때이다. 이들에게 남은 유일한 문제는 러시아의 위협에 관한 것이다. 1990년대 후반 유럽인들은 진정한 유럽적 방위력을 갖추기 위해 실질적인 노력을 기울였다. 그러나 다른 재정적 압력들과 단일 통화 자체의 압력을 받고 있는 유럽의 나라들은 그렇게 할 여유가 없다. 유럽은 발전과 통합을 통해 경제적으로 분명히 번창하겠지만, 미국과의 일시적인 견해 차이 속에서 보다 강경한 입장을 취하고, 러시아와 느슨하고 비공식적인 연대까지도 추구할 것이다. 점점 더 많은 나라들의 동참 속에서 다양한 나라들의 관심을 반영하려는 혼합적 성격은, 유럽연합이 안고 있는 가장 아이러니한 특성이고 지배적인 힘을 발휘하지 못하게 하는 주요 원인이다. 하지만 그것 역시 유럽의 생존을 위해 가장 좋은 것이기도 하다.

 

 

5. 도전받는 평화

인류의 역사에서 평화와 안정이 오래도록 지속된 적은 거의 없었다. 수많은 전쟁이 큰 나라들, 작은 나라들, 식민 제국들과 그들의 억압받는 민중들, 개별 국가들의 지역들이나 부족들 사이에서 사상과 토지, 자원과 사람, 정체성과 개성들을 놓고 벌어졌다. 하버드 대학교의 헌팅턴 교수가 1993년에 냉전 이후의 세상이 물리적이건 그 밖의 어떤 식이건 7, 8개 주요 문명 그룹들 간의 충돌로 이루어질 것이라고 예견했다.

 

잃어버린 자존심과 독립성의 회복

반체제 세력은 오래 전부터 서구에 대한 저항을 세력 확산의 기회로 사용하며, 서구의 현대적인 문명은 더 순수하고 진실하고 소중하고 전통적인 것을 파괴한다고 주장했다. 이와 같은 반발은 종종 종교적인 색채를 띤다. 현대 서구사회의 대표적인 특성 가운데 하나가 세속성이기 때문이다. 사회를 지배하는 법들은 세속적이고 국가 역시 그러하다. 이처럼 세속적인 특성은 자신들의 종교가 인간이 만든 법보다 우월한 신의 법을 따른다고 믿는 사람들에게 위협으로 여겨진다. 이와 같은 믿음은 스스로 신의 법을 해석한다고 주장하는 사람들에게 엄청난 힘을 주기 때문에 정치적으로 강력한 의미를 갖는다. 절대주의와 순수성에 대한 극단적 호소가 그런 가치들에 대한 서구의 위협과 적절하게 결합되어 대중의 지지를 얻는 데 효과적으로 사용되곤 했다.

 

잃어버린 자존심과 독립성을 되찾으려는 아랍 국가들의 욕망은 뿌리깊은 것이다. 중국처럼 아랍 국가들도 과거에는 유럽보다 더 발전되어 있었다. 1973년에, 이스라엘이 국가를 세운 이후 세 번째로 아랍과 전쟁을 한 후에, 아람의 산유국들은 사우디아라비아의 주도로 유럽, 일본, 그리고 북미에 대한 석유 공급을 제한해 서구를 상대로 자신들의 힘을 과시했다. 이른바 ‘제1차 석유파동’으로 명명된 이 시기는 사실 범 아랍권의 협력관계가 처음으로 가시화된 시기였다. 수많은 정치 및 종교적 지도자들이 서구에 대항하는 ‘지하드’(이 아랍어는 노력, 투쟁, 그리고 전쟁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의미를 갖는다)를 선언했으며 보다 ‘회교적인’ 법률과 정책을 채택했다. 비단 아랍 국가들뿐만이 아니었다. 아프가니스탄 등도 마찬가지였다.

 

알 카에다 조직은 대중운동이라는 이름으로 메시아적 목표를 추구한다. 알 카에다의 근거지인 중앙아시아는, 북쪽의 코카서스부터 남쪽과 동쪽의 파키스탄에 이르기까지, 군벌들은 폭력과 - 마약 및 보석에서 비롯되는 - 돈을 주무르고 성직자들은 종교적인 복음주의를 주무른다. 이들은 그와 같은 힘을 이용해 지배력을 유지한다. 그들이 자행하는 테러는 국가들 간의 더 넓은 갈등과 다른 곳의 더 큰 불안을 야기해, 지구촌의 안전을 위협하는 결과를 초래할 수 있다. 냉전이 남긴 군사적 능력과 함께, 현대적인 자본주의의 부정적인 영향도 상황을 악화시켰다. 그것은 크건 작건 무기거래가 세계적인 문제가 되었다는 사실이다. 세계화나 - 가령 유럽연합 같은 - 초국가적 정부기구를 옹호하는 사람들은 민족주의를 낡은 개념으로 치부하고 민족국가를 낡은 형태의 정부라고 비판한다. 하지만 현재 민족주의의 기본적인 감성적 측면이 약해지고 있다는 증거는 거의 없다. 그것은 존 로버츠가 『21세기 (Twentieth Century)』라는 자신의 책에서 다음과 같이 지적한 것과 같다. “민족주의는 가장 극적인 신화 만들기가 사람들을 움직여 역사상 가장 혁명적인 세기의 정치에서 가장 큰 힘을 발휘했다.”

 

 

6. 의심받는 자본주의

20세기에 비록 도전을 받았어도 자본주의는 괄목할 성과를 거두었다. 자본주의의 성공에 기여하는 요인들은 - 신뢰, 위험 안기, 금융적인 뻔뻔함 등 - 실패도 초래하는데, 이것은 여러 가지 방식으로 일어날 수 있다. 정치적 문제도 때때로 불황을 야기한다. 2001년 9월에 일어난 뉴욕과 워싱턴에 대한 테러 공격으로 초래될 수도 있다. 실패에는 보다 근본적인 이유들이 있다. 인간의 행동도 실패에 일조한다. 그러나 경제활동은 결국 인간의 심리에 관한 것이다. 그것은 위험을 안으려는 신뢰나, 위험을 피하려는 조심성에 관련되어 있다. 자본주의는 호황에서 불황으로 자연스럽게 이동하다가도, 다시 호황으로 돌아가는 모습을 보인다. 하지만 자본주의의 최대 약점은 경기 주기가 때로 위기로 확대되는 불안정성에 있다는 것이다.

 

청산과 안정

1920년대의 미국은 희망의 시기였다. 1990년대처럼 당시 미국은 이른바 ‘신경제’를 구가하고 있었다. 그러다가 주가 폭락이 일어났다. 정책의 정통성을 지배하는 두 단어를 기억할 필요가 있다. 바로 ‘청산’과 ‘안정’이다. 많은 나라들에서 - 특히 미국에서 - 정부의 고위 관리들은 과도한 시설, 부채, 기업, 은행, 그리고 행태를 청산하는 것이 - 다시 말해, 청소하는 것이 - 필요하다고 굳게 믿었다. 또 하나의 관련된 단어는 안정이었다. 안정의 이름으로 저질러진 이 마지막 실수는, 케인즈의 주장과 나중에 루즈벨트 대통령의 ‘뉴딜 지출 계획’ 때문에 기억되고 있다. 여러 다양한 요인들 중에서 어느 것이 1930년대의 대공황이 가장 큰 영향을 끼쳤는지는 논란의 여지가 있다. 하지만 그냥 일상적이었을 경기 불황이 정부의 잘못으로 20세기의, 어쩌면 인류 역사에서 가장 끔찍한 경제적 재앙으로 변했다는 점에서는 논란의 여지가 없다.

 

경제 역사가 가르쳐주는 한 가지 교훈은, 특히 지난 세기에 있었던 다양한 환율 체제의 연속적인 실험에서 - 금본위제, 변동환율, 1945년 후에 달러 중심의 고정환율, 관리적인 변동환율, 그밖에 등등 - 얻을 수 있는 교훈은, 환율 관리의 방식에는 ‘정답’이 없다는 것이다. 1930년대의 미국에서는 국내 정책에 관한 정치적 압력이 높아져, 경제적 관리가 환율의 안정을 보장할 수 없었다. 어느 면에서 이것은 거대 국가와 경제의 특권이다. 이들의 경제에서 다른 나라들과의 무역이 차지하는 비중은 상대적으로 작기 때문에, 환율을 중요한 요인으로 다룰 필요가 없었던 것이다. 이것은 현재 유로 지역이 다른 통화들을 다룰 때도 적용되지만, 그들의 내부적인 관계에는 적용되지 않는다. 그러나 대공황은 21세기를 위해 일부 고무적인 측면도 보여주었다.

 

지난 100년 동안에 큰 나라가 1920년대와 1930년대에 미국이 경험한 대공황에 비유될 만한 고통을 당한 경우는 하나밖에 없다. 그것은 1980년대, 1990년대, 그리고 아쉽게도 그 후에도 일본에서 일어났다. 1920년대에 미국이 그랬듯이, 일본도 1980년대에 신경제가 도래했다고 환희에 차 있었다. 그러다가 모든 것이 무너졌다. 니케이 지수는 1990~98년에 64퍼센트나 폭락했고, 부동산 가격도 비슷한 폭락을 경험했다. 일본은 미국처럼 대공황을 경험하지 않았으며, 여전히 높은 생활수준과 비교적 낮은 실업률을 기록했다. 일본의 위기는 이미 배운 교훈들 때문에 더 큰 위기로 발전되지 않았다. 1930년대의 교훈과 밀접한 관련이 있다. 하지만 일본 정부는 현실을 부정하고 잘못된 회계를 방관하면서 개혁을 추진하지 않았다.

 

일본에서 일어난 1990년의 붕괴는 경제적인 측면에서 모든 것이 한꺼번에 무너지는 상황이 아니라, 서서히 구멍이 뚫리는 결과를 초래했다. 2001년에 일본에서 사용된 언어 가운데 일부는 1930년대 초에 미국에서 사용된 언어를 닮기 시작했다. 2001년에 개혁을 부르짖으며 총리로 취임한 고이즈미는 고통, 청소, 청산이 필요하다고 역설했다. 1930년대에 널리 인식되었고 1990년대에 일본에서 다시 보았듯이, 자본주의의 불안정성은 정부가 완화적이고 안정적인 역할을 수행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이 가운데서 많은 것들은 규제적인 것이다. 그러나 더 많은 세금과 더 많은 규제는 사람들의 경제적인 자유를 침해하는 것일 수도 있다. 자본주의는 그것을 조금씩 진행하려는 체제이다. 불평등에 대한 걱정은 늘 우리 곁에 있는 것 같다.

 

 

7. 자본주의는 원래 불평등하다 1

자유적이고 민주적인 사회에서는 정치 및 시민적 권리에서 모든 사람들이 평등해야 한다고 믿는다. 이와 같은 믿음은 이미 미국을 비롯한 많은 나라들의 헌법에 구현되어 있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불평등이 삶의 투쟁일 뿐 아니라, 자본주의의 본질적인 특성이라는 점이다. 경쟁과 불평등은 같은 동전의 다른 측면이다.

 

안과 밖에 존재하는 구조적인 불평등

불평등은 늘 있을 것이고, 경쟁도 늘 있을 것이다. 불평등에 대한 여러 가지 대응들 중에서 가장 일반적인 것은 다음과 같다. 즉, 특정한 상황이나 특정한 수용점 너머에서는 격차가 너무 커져 파괴적이고 비전통적인 반응을 초래할 수 있다. 하나는 사회와 국가 ‘안의’ 불평등이고, 다른 하나는 사회나 국가들 ‘간의’ 불평등이다. 대부분 나라들 간의 불평등은 20세기를 거치면서 많이 줄어들었다. 다시 말해, 소득의 분배가 상당히 정교하고 고르게 이루어졌다. 그러나 20세기에 나라들 ‘안의’ 격차는 거의 지속적으로 벌어졌다. 불평등을 야기하는 요인들과 그것에 대한 정치 내지 사회적 대응들은 두 범주들 사이에서 서로 달랐다. 즉, 국가들 ‘안의’ 불평등은 국가들 ‘간의’ 불평등보다 정책, 정치, 그리고 행태에 계속해서 영향을 미치는 측면에서 훨씬 더 중요하다. 그것은 불평등의 정도를 규제하는 방식으로 상황을 바꾸게 한다. 하지만 이것이 국제적인 측면에서는 일어나지 않았다.

 

불평등의 가장 까다로운 문제는 계급들 간이 넓은 구분에 관한 것에서, 일반 대중과 사회적으로 소외된 ‘하급 계층’ 간의 격차에 관한 문제로 그 성격이 변했다. 어떤 측면에서는 불평등을 더 다루기 힘든 문제로 만들기도 한다. 대부분의 가난 해결책은 공적인 돈을 필요로 하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와 같은 돈은 다수의 유권자들이 제공한다. 민주주의가 다수의 이익을 위해 봉사하는 것이 아니라, 이제는 다수가 소수를 돕겠다고 동의하는 것이 필요하게 된다. 가장 큰 사회 및 정치적 질문들 가운데 하나는, 그들이 기꺼이 그렇게 할 것인지의 여부일 것이다. 향후 민주적인 사회들에 정말로 문제가 될 수 있는 것은 운이 좋은 다수와 하급 계층 사이의 분열일 것이다. 자본주의의 본질적인 불안정성이 나타날 때, 하급 계층에 속하는 사람들의 수는 늘어날 것이다. 이 문제의 해결책은 장기적으로 공공 교육의 확대와 경제성장의 과실을 함께 나누려는 노력에 달려 있다.

 

8. 자본주의는 원래 불평등하다 2

자본주의의 본질적인 속성은 부자 나라들과 가난한 나라들의 격차가 줄어들 수 있게 만든다. 이론적으로 그것들은 가능하지만 실제로는 그렇게 되지 않는다. 사실 가난한 사람들의 빠른 성장은 부자 나라들에 위협이 되지 않는다. 서로가 서로에게서 더 많은 상품과 서비스를 살 수 있고, 부자 나라는 한층 더 부자가 될 수 있다. 그러나 국가들 간의 불평등은 오히려 더 높아졌다.

 

불평등이 가져오는 여러 문제들

불평등은 엄청난 기회의 상실을 뜻한다. 가난한 나라들이 더 발전하고, 더 부자가 된다면, 우리 모두 함께 부자가 될 수 있다. 비슷한 상황은 1940년대와 1950년대에도 있었다. 그때 미국은 세계에서 가장 부자인 나라였고, 유럽은 전쟁 때문에 망가져 있었다. 미국인들은 ‘마셜 플랜’을 통해 유럽에 투자를 함으로써, 경제적으로 더 번창할 수 있었다. 불평등의 원인인 가난을 걱정해야 하는 이유들은 있다. 가난한 나라들은 정치 및 사회적 제도들이 취약하여, 혼란이나 내전으로 빠져들 가능성이 높다. 그것들은 종종 이웃 국가들을 끌어들여 더 큰 분쟁으로 확대되곤 한다. 둘째, 그것은 질병과 테러이다. 테러의 위험은 보다 분명하다. 2001년 9월 11일에 일어난 뉴욕 테러는 이것을 간접적으로만 확인한다. 하지만 그들과 그들의 추종자들은 이슬람 국가들이 전체적으로 가난하며 희망이 없고, 그것은 수세기에 걸친 서구 제국의 침탈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이런 시각은 아프가니스탄에 직접적으로 적용된다. 만일 이 나라가 그렇게 가난하지 않았다면 알 카에다 테러 조직의 전진 기지가 되지 않았을 것이다.

 

많은 사람들은 전쟁에 대한 두려움 때문에 불평등을 걱정한다. 전통적인 경제 방식으로 생활 수준과 국력을 높일 수 없다고 느끼는 나라들은 군사적인 수단을 사용할 수도 있기 때문이다. 이라크는 1990년에 쿠웨이트를 침공해 단순한 영토뿐 아니라 석유자원도 확보하려 했다. 다시 말해, 불평등은 예측이 어려운 독재정권의 수를 늘릴 수도 있다. 흔히 ‘불량 국가’라고 얘기되는 이런 나라들은 기술의 발전 때문에 위험성이 한층 더 커졌다. 그러나 국가들간의 불평등은 21세기의 세상에 분명하고 확실한 위험을 불러오지는 않는다. 세계화와 신기술이 부자 나라들에게 그것을 더 큰 걱정거리로 만들 수 있다. 하지만 그와 반대되는 방향으로 움직이는 요인들도 있다. 즉, 세계화와 신기술은 문제를 야기하면서 동시에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 불평등에 초점을 맞추기보다, 가난과 그것이 제기하는 도덕적 도전들에 초점을 맞추는 것이 더 낫다. 불평등은 기본적으로 가난한 나라들의 실패가 아니라, 부자 나라들의 성공이 야기한다. 가난의 지속과 확산은 그와 같은 성공에 도덕적인 그림자를 던진다.

 

물론 20세기의 경험은 그렇게 고무적이지 않다. 대부분의 기간에 대부분의 가난한 나라들은 경제적으로 정체되었다. 그러나 21세기를 어느 정도 낙관적으로 볼 수 있는 이유도 있다. 상황은 더 많은 나라들이 성장하는 데 훨씬 더 유리하다. 국제적인 무역과 투자는 전보다 더 크게 열려 있다. 신기술의 이전은 빠르고 광범위하다. 지구적인 평화는 그런 대로 유지되고 있다. 1990년대에 와서야 소련의 몰락과 함께 뿌리를 내리기 시작했다. 가난한 나라들은 21세기에 경제적 및 사회적으로 발전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