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학연수과/생활 신앙

[방선기 목사의 생활신앙(30)] 내 집에 대해서

미션(cmc) 2011. 6. 23. 17:13

거룩한 하나님 집으로 만들어야

사람 섬기며 영적 교제 나누는 소통의 공간으로


   
  ▲ 방선기 목사  
우리나라에서 사는 보통 사람들은 내 집을 갖는 꿈을 가지고 살아왔다. 살 집 외에도 몇 채씩 가진 사람들이 있지만 아직 평생소원을 이루지 못한 사람들도 많다. 집이 없는 것은 설움이기도 하고 평생의 걱정거리이기도 하다. 예수님이 염려에 대해서 가르치면서 무엇을 먹을까 무엇을 입을까 걱정하지 말라고 하셨는데(마 6:25) 아마도 주님이 오늘 설교하신다면 어디서 살까 걱정하지 말라고 하실 것 같다.

집을 가지고 싶어 하는 것은 의식주의 필요를 느끼는 사람들에게 자연스러운 욕구이다. 사람이 살아가기 위해서는 먹고 입는 것 외에 주거 공간이 필요하다. 집은 그것이 크든 작든 세상에서 개인의 삶을 위한 필수적 공간이며 경우에 따라 피난처 역할도 한다. 집은 가족이 함께 사는 공간이지만 현실적으로 재산상의 가치도 크다. 우리 삶에서 집이 이렇게 중요한 만큼 신앙적으로도 중요한 의미를 지닌다. 생활신앙의 측면으로 내 집을 어떻게 보아야 할지 생각해 보자.

첫째는 내 집을 초월하는 신앙이 필요하다. 우리 주님은 여우도 굴이 있고 새도 깃들일 곳이 있는데 인자는 머리를 둘 곳조차 없다고 하신 것을 보면(마 8:20) 편안히 쉴만한 집을 가지지 못하신 것 같다. 예수님을 따르던 제자들도 집을 버리고 주를 좇았다고 고백했다(막 10:28-29).

그렇다고 오늘날에도 주님을 따르는 제자들에게 집 없이 살 것을 요구하시지는 않을 것이다. 다만 집이 살아가는데 필요한 도구이지만 집이 없이도 살아갈 수 있음을 보여주신 것 같다. 크리스천도 집을 마련하기 위해서 노력할 수 있지만 집이 삶에 절대적인 것으로 생각해서는 안 된다. 주 안에 있다면 전세를 살아도 행복할 수 있어야 한다. 내 집을 가지고 있지 못하고 사글세를 내는 것도 어려운 궁핍에도 자족할 수 있어야 한다(빌 4:12).

반면 내 집을 가지고 있는 사람들은 집을 주신 하나님께 감사해야 한다. 이 세상은 자기 집을 가지지 못한 사람들이 너무도 많다. 집이 있어도 편안한 삶을 살기에는 너무 부족한 집들도 많이 있다. 먹을 것과 입을 것이 부족한 곳에 사는 사람들이 살 집이 제대로 있을 리가 없다. 물론 좀 더 나은 집을 가지려고 애쓸 수도 있다. 그러나 기본적으로 현재 주신 집에 만족하면서 오히려 그 집을 통해 하나님의 일에 헌신하도록 해야 한다.

둘째, 내 집은 사람을 섬기는 공간이다. 한 사람에게 있어서 자신의 집은 세상에서 가장 개인적인 공간이다. 그러나 외부와 차단된 공간이 되어서는 안 된다. 크리스천들에게 집은 나그네나 손님들을 맞이하는 공간이 되어야 한다. 물론 현대사회에는 호텔과 같은 숙박시설이 있어서 손님들을 그런 곳에 모실 수도 있다. 그러나 가장 친밀한 공간을 손님과 나누는 것은 사도 바울이 말하는 손님 대접의 사역이 될 수 있다(롬 12:13).

아브라함은 손님을 접대하다가 부지중에 천사를 영접하는 특권을 누렸는데 그런 일은 오늘 우리 삶 속에서도 얼마든지 기대할 수 있고 노력해야 한다(히 13:2). 가끔 외국에 가서 그곳에 있는 성도들의 집에서 환대를 받을 때가 있는데 호텔에서는 느낄 수 없는 축복을 누렸다. 그래서 생각해 본다. 조금 여유가 있다면 내 집에 손님을 위한 방 하나 정도는 마련하는 것이 크리스천의 미덕일 수 있다.

셋째, 내 집은 주님의 일을 하는 공간이다. 그리고 집은 영적인 교제의 공간이 될 수 있다. 브리스길라와 아굴라는 명설교자였지만 요한의 세례까지만 아는 아볼로를 집으로 데리고 와서(행 18:26 NIV, they invited him to their home) 정확하게 말씀을 알려주었다. 학생 선교단체에서도 가정을 영적 훈련 공간으로 삼는 경우가 있다. 모든 크리스천들이 다 그렇게 할 수는 없겠지만 가정에서 영적인 교제가 이루어지고, 나아가서 복음을 전하는 사역이 이루어진다면 집이야말로 정말 거룩한 곳이 될 수 있다.

넷째, 내 집은 하나님의 집이 될 수 있다. 브리스길라와 아굴라의 집에는 교회가 있었다(고전 16:19). 이것은 초대교회에서 보편적인 현상이었던 것 같다(몬 1:2). 성전으로 인식되는 교회당은 훨씬 나중에 나타난 현상이다. 지금도 교회라고 하면 예배를 위해 사용하는 독립된 건물로 생각하는 사람이 많은데 우리가 사는 집도 얼마든지 모이는 곳이 될 수 있다. 최근에 가정교회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고 있다. 가정교회에 대한 정의는 조금씩 차이가 있겠지만 가정이 교회가 되고 내 집이 그 모임의 장소가 된다는 것은 교회가 시작된 역사를 생각할 때 매우 바람직하다고 생각한다.

우리는 종교적인 목적을 위해 지어진 예배당이나 기도원 같은 곳만을 거룩한 곳으로 생각한다. 그러나 주님 안에서는 거룩한 장소가 따로 있는 것이 아니다. 정말 하나님께 예배드린다면 그 공간이 거룩한 곳이 될 수 있다. 야곱이 잠을 자고 꿈을 꾸었던 루스가 벧엘 곧 하나님의 집이 되었고(창 28:17-18) 모세가 양을 치던 호렙산이 거룩한 땅이 될 수 있었던 것은(출 3:5) 그곳에 하나님이 임하셨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우리가 사는 집도 하나님이 임하시는 하나님의 집, 거룩한 땅이 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