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활에서 믿음이 드러나야 한다
종교에 묶인 신앙 풀고 진정한 개혁정신 이어가야
▲ 방선기 목사 |
알리스터 맥그라스는 종교개혁의 영성에 대해 이렇게 말했다. “평범한 사람들의 일상은 사실상 모든 영역에 걸쳐, 수도원 안에서 자라던 풍부한 영성으로부터 영향을 받지 못했다. … 종교개혁과 더불어 유럽의 대도시들이 그리스도인들의 새로운 사고와 행동방식의 요람이요 그것이 녹아든 도가니로 등장하면서, 영성이 형성되는 중심은 차츰 차츰 수도원으로부터 장터로 옮겨갔다. … 종교개혁은 그리스도의 신앙을 이 새 시대의 상황과 생활방식에 연결시키려고 이루어진 하나의 끊임없는 시도였다.”
또 이런 말도 했다. “종교개혁의 영성은 일상 세계에서 이루어지는 삶에 그 뿌리를 내리면서 아울러 그 삶을 지향한다. … 종교개혁 영성의 핵심 요소들-가장 두드러지는 것은, 이신칭의와 윤리의 실천이라는 교리지만-은 심지어 집안 살림을 챙기는 것과 같은 가장 평범한 일상생활에도 새로운 차원의 의미와 중요성을 부여하였다.”(종교개혁 시대의 영성)
중세교회와 비교했을 때 종교개혁자들은 생활신앙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대표적인 예로 종교개혁의 불을 댕긴 루터는 마태복음 6장 24절~34절을 주석하면서 이렇게 말했다. “모든 세상에 하나님을 섬기는 일이 아닌 것이 없을 것이고 교회뿐 아니라 집까지 부엌, 광, 작업장, 논과 밭까지도 하나님을 섬기는 장소가 될 수 있다.”
칼뱅도 누가복음 10장 38절을 주석하면서 이렇게 말했다. “세속적인 일들을 멀리하고 묵상에 침잠함으로써 천사와 같은 삶을 영위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은 오류를 범하고 있는 것이다. 우리는 사람이 부지런히 노동하도록 창조된 존재이고 자기 소명에 열중하고 어떻게 공동선을 위해 살 수 있는가를 부지런히 살피는 일만큼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제사가 없음을 잘 알고 있다.”
그런데 이런 깨달음으로 시작된 개신교 신앙은 시간이 가면서 점차 중세교회의 신앙을 닮아간다. 종교적으로는 그럴듯한 모습을 갖추고 있지만 생활 속에서는 그 신앙이 제대로 표출되지 못한 것이다.
이런 현실에 대해서 폴 스티븐스는 이렇게 지적한다. “기독교의 겉모습은 하나님을 발견하고 기쁘게 해드리기 위해 또한 제대로 기도하기 위해 정형화된 종교적 기구이다. 반면 기독교의 핵심은 하나님이 초월적인 의미와 억제할 수 없는 기쁨으로 우리의 일상적 삶 속에 들어오시는 것이다.” 또 이렇게 말했다. “영성은 한마디로 하나님과 나누는 교제다. 그러나 성경적인 그리스도인이라면 이 교제를 매일의 삶, 현실의 삶으로 구체화하고 구현하고 엮어내야 할 것이다.”(현대인을 위한 영성)
지금까지도 교회는 믿음의 관심사를 종교적인 영역으로 제한해 왔다. 예배드리러 가는 것, 말씀과 기도생활에 충실한 것, 사람들을 교회로 인도하는 것 등은 정말 믿음으로 해야만 하는 중요한 일들이다. 그러나 종교적 활동만이 신앙의 전부라고 이해해서는 안 된다. 우리의 일상생활 속에서 믿음이 드러나야 한다.
도로시 베스는 이에 대해서 분명하게 말한다. “우리 주위에 속한 인간관계의 기본적인 모습이 계속 바뀌는 이 시대에 살면서 과연 그리스도인이란 어떤 의미인지 깊고도 풍부한 설명을 열망한다. 우리는 우리의 일터와 기독교 신앙이 어떤 관계인지 알고 싶어 한다. 그리스도인으로서 친구 관계, 부부관계, 자녀교육, 공적인 삶과 정치적인 삶, 돈을 어떻게 쓰는지의 문제 등을 어떻게 해결해 나가는 것이 올바른 것인지 알고 싶어 한다. 어떤 그리스도인들은 이러한 문제에 대하여 스스로 노력하여 해답을 찾으려 하기보다는 이미 다른 사람들이 발견하여 쌓아놓은 재고의 해답들로 만족하고 자신이 원하는 답을 찾았다고 생각하기도 한다. 그러나 많은 경우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만족스러운 통찰력으로 우리가 무엇을 하여야 하고 어떤 사람이 되어야 하는가를 분별하도록 도와주는 신앙을 찾고 있다.”(일상을 통한 믿음 혁명)
비슷한 맥락에서 마이클 프로스트도 우리의 믿음이 가지고 있는 문제점을 지적한다. “여러 면에서 볼 때 하나님을 제한하지 말고 그 분이 펼치시는 ‘새로운 일’을 보라고 도전하는 부흥사와 교회 지도자들이 오히려 하나님을 특별한 사건에만 한정시키고 있지 않나 하는 생각이 든다. 물론 하나님을 특별한 사건에서 배제시키려는 것은 아니다. 성경과 교회 역사에는 하나님의 영이 굉장한 모습으로 임하신 사건들이 즐비하다. 그러나 나는 그 분이 가장 단순하고 평범한 일 가운데 조용한 변화를 이루시는 모습 또한 우리가 볼 수 있어야 한다고 생각한다.”(일상, 하나님의 신비)
종교개혁주일을 보내면서 우리 시대에 날마다 새로운 교회의 개혁을 생각해본다. 종교의 개혁만이 아니라 종교에 묶인 신앙이 일상생활 속에서 살아 움직이도록 족쇄를 풀어주어야 진정한 개혁의 전통을 이어가는 것이 틀림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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