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학연수과/생활 신앙

[방선기 목사의 생활신앙(26)] 신비한 체험에 대해서

미션(cmc) 2011. 6. 23. 17:10

기적보다 세상에 덕을 끼쳐라

하나님 사랑 드러내지 못하는 신비체험은 곤란


   
  ▲ 방선기 목사  
기독교는 기적의 종교이다. 성경에는 성도들이 체험한 신비한 현상들이 소개된다. 물론 신앙이 없는 사람들은 그런 이적을 믿지 못한다. 그러나 성도들에게는 신비한 체험이 믿음을 견고하게 한다. 그래서 그런 체험을 추구하기도 한다. 그런데 지나치면 신비한 체험이 믿음의 전부인 것처럼 생각하고 기적이 없으면 믿음에 문제가 있는 것처럼 생각하기도 한다. 예수님의 이 말씀을 기억해야 한다. 주의 이름으로 선지자 노릇하며 귀신을 쫓아내고 많은 권능을 행했다고 말하는 사람들을 향해 예수님은 “내가 너희를 도무지 알지 못하니 불법을 행하는 자들아, 내게서 떠나가라”고 말씀하셨다(마 7:22-23).

그런데도 어떤 성도들은 여전히 특별한 체험과 기적을 앞세우며 신앙생활을 하려고 한다. 물론 하나님은 그런 일들을 허락하신다. 그러나 그가 일상의 삶에서 하나님의 뜻을 따라 살지 않는다면 그런 체험이나 기적은 그의 신앙에 유익을 주지 못한다. 오히려 교만하여 하나님의 영광을 가리거나 신비 체험의 부작용으로 악영향을 끼칠 수 있다.

이런 일로 힘들었던 고린도 교인들을 생각해보자. 그들에게는 영적 은사가 풍성하게 나타났으나 그들의 일상은 사도 바울이 보기에 한심했다. 서로 파벌을 이루어 다투느라 성령이 하나 되게 하시는 귀한 은혜를 체험하지 못했다. 심지어 근친상간을 하는 사람들이 있었는데 내버려두기도 했다. 교인들끼리 갈등이 생겼을 때 세속 법정으로 몰려가기도 했다.

이렇게 고린도교회 성도들은 그들의 강점이고 축복이라고 생각했던 각종 은사가 충만했으나 서로 하나 되지 못하는 실수를 범했다. 이것을 안타깝게 여긴 바울은 어떤 신비한 영적 은사보다 더 중요한 사랑을 사모하라고 강조했다(고전 12:31). 아무리 신비한 체험이나 기적을 행하더라도 사랑이 없으면 아무 것도 아니라고 했다(고전 13:1-3). 이것이 바로 유명한 ‘사랑장’의 배경이다. 다른 말로 하면 일상의 삶에서 사랑을 나타내는 것이 어떤 신비한 체험이나 기적적인 능력보다 더 중요하다는 것이다. ‘사랑으로써 역사하는 믿음’(갈 5:6)이기도 하고 생활신앙이라고도 말할 수 있다.

무언가 신비한 것을 추구하는 사람들에게 예수님이나 바울이 똑같이 기대하는 것은 평범한 일상의 삶에서 하나님의 뜻을 행하고, 하나님의 사랑을 나타내는 것이다. 너무 평범해서 시시해 보일지 모른다. 그러나 하나님은 이런 평범한 일상 속의 사랑을 가장 귀하게 보신다. 또한 중요한 사실은 세상 사람들은 신비한 체험이나 기적적인 일들은 이해하지도 못하고 믿지도 못한다는 점이다. 그러나 자기들과 함께 사는 크리스천 동료들에게 무언가 다른 모습을 보고 하나님의 사랑을 느낄 때 감동 받는다.

전에 ‘능력전도’(Power evangelism)가 유행한 적이 있다. 전도할 때 하나님의 신비한 능력이 나타나면 사람들이 훨씬 잘 믿을 수 있다는 것이다. 그저 말로만 예수님을 설명하고 전도했던 나에게 능력 전도는 꽤 큰 도전이 되었다. 주님은 강력한 능력을 통해서도 복음을 전하게 하신다. 그러나 성경은 능력전도만큼이나, 아니 그 이상으로 ‘생활전도’(Lifestyle evangelism)를 강조한다. 사도 바울이 데살로니가 교인들에게 보낸 편지에서 이것을 잘 설명해주고 있다. 사도 바울은 우선 말로 복음을 전했다. 그러나 그것이 전부가 아니었다. 능력과 성령과 큰 확신으로 전했다. 그것이 전부가 아니었다. “우리가 너희 가운데서 어떠한 사람이 된 것”(살전 1:5)을 강조했다. 즉 바울이 그들 가운데서 어떤 삶을 살았는지 데살로니가 교인들이 알고 있으니 그런 삶의 방식을 통해 전도하라는 것이다. 따라서 전도는 말만으로 안 된다. 성령의 능력이 함께 해야 한다. 그러나 그것 이상으로 전도자가 어떤 삶을 사느냐가 중요하다. 그래서 성 프란시스가 이렇게 말하지 않았는가? “복음을 전하세요. 언제나! 필요하면 말을 사용하세요.”

개인의 신앙적 표현이나 복음을 전하는 과정에서 무언가 신비한 것을 추구하고, 놀라운 일을 체험할 때 만족하고 그런 일이 일어나기를 기대하는 사람들은 그렇지 않은 신앙 스타일을 가진 사람들을 향해 무언가 신앙이 좀 부족하다고 생각한다. 그런데 지금까지 살펴본 대로 정작 성경은 신비한 체험을 부정하지 않지만, 삶 속에서 크리스천답게 살고 생활전도를 하는 것이 더 중요하다고 말한다.

생활 속에서 믿음을 드러내고, 생활 속에서 하나님의 사랑을 나누는 것이야 말로 가장 큰 믿음이다. 물론 방언이나 예언을 한다면 감사할 일이다. 그러나 그런 체험을 하더라도 나의 삶이 주님을 드러내지 못하고 하나님의 사랑을 나타나지 못한다면 곤란하다. 세상 사람들이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게 되는 것은 우리들의 신비한 체험이나 우리가 경험한 기적을 보기 때문이 아니다. 그들이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 이유는 매우 단순하다. “이같이 너희 빛을 사람 앞에 비치게 하여 그들로 너희 착한 행실을 보고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께 영광을 돌리게 하라.”(마 5:16). 기적의 체험보다 일상에서 소금과 빛으로 살면서 사람들에게 덕을 끼치는 삶이 바로 주님에게 칭찬 받는 생활신앙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