복 있는 사람
( 시 1:1-6)
(시 1:1) 복 있는 사람은 악인들의 꾀를 따르지 아니하며 죄인들의 길에 서지 아니하며 오만한 자들의 자리에 앉지 아니하고 (시 1:2) 오직 여호와의 율법을 즐거워하여 그의 율법을 주야로 묵상하는도다 (시 1:3) 그는 시냇가에 심은 나무가 철을 따라 열매를 맺으며 그 잎사귀가 마르지 아니함 같으니 그가 하는 모든 일이 다 형통하리로다 (시 1:4) 악인들은 그렇지 아니함이여 오직 바람에 나는 겨와 같도다 (시 1:5) 그러므로 악인들은 심판을 견디지 못하며 죄인들이 의인들의 모임에 들지 못하리로다 (시 1:6) 무릇 의인들의 길은 여호와께서 인정하시나 악인들의 길은 망하리로다
우리는 지금 예수 그리스도를 믿든지 믿지 않든지 다 같은 육신을 가지고 대동소이한 현실을 살기에 그 느낌이나 반응에는 별 차이가 없을 것입니다.
이를테면 갈수록 무더운 여름 날씨와 잦은 장마로 불쾌지수가 높아져가고, 그 보다 더 가파르게 솟아오르는 물가고와 경제 불황에 더욱 짜증이 날 것입니다. 아니 여름의 대명사인 수박 한통에 무려 이만 원 내외라니 어처구니가 없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우리는 짜증나는 현실에서도 지난 한 해의 전반기를 돌이키며 하나님의 은혜에 대해서 특별히 감사하기로 작정한 맥추절을 오늘 맞이하였습니다.
지난 한 해의 전반기를 돌이키며 하나님의 은혜에 대해서 특별히 감사하기로 작정한 맥추절을 오늘 맞이하였습니다.
물론 자원하기 보다는 전국 교회가 연례적으로 지키는 명절이기 때문에 자칫하면 마음에서 우러나오는 맥추감사절이기보다는 마지못해 억지로 지키는 형식적인 명절이 되기가 쉽습니다.
맥추감사절을 그렇게 지켜서는 안 되는 이유는 맥추절은 교회나 어느 종교 지도자가 만든 날이 아니라 하나님이 성경을 통해서 맥추절을 지키라고 명령하신 날이기 때문입니다.
(출 23:16) “맥추절을 지키라 이는 네가 수고하여 밭에 뿌린 것의 첫 열매를 거둠이니라 수장절을 지키라 이는 네가 수고하여 이룬 것을 연말에 밭에서부터 거두어 저장함이니라”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성경을 주신 이유는 만복의 근원이신 하나님께서 태어날 때부터 죄인인 인간을 행복하게 하기 위해 주신 성경을 읽고, 듣고, 기억하고, 실천하고, 다른 사람에게 가르쳐서 지속적인 복을 받게 하기 위함인 것입니다.
그와 같은 신구약 성경 66권 중에 시편이 성경 한 가운데 있지만, 시편의 핵심은 하나님을 어떻게 믿고, 어떻게 사는 것이 성경에 약속하신 복을 받는 것인가에 대해서 실제적인 삶의 고백을 통해 구체적으로 가르쳐 주고 있습니다.
그 가운데 시편 1편 오늘 성경 본문은 시편의 첫 시작으로 시편 전체 내용이 무엇을 말씀하려고 하는지에 대한 서론이면 또한 시편 전체의 핵심을 가르쳐 주고 있습니다.
1. 두 종류의 인간
인터넷에 들어가서 검색을 하게 되면 지구상에 현재 인구를 실시간으로 보여주고 있는데 제가 검색하였을 때 지구 인구는 자그만 치 6,988,402,079명이었습니다.
물론 그 가운데 똑같은 사람은 하나도 없습니다. 인종, 혈통, 언어, 문화, 직업, 성격이 제 각기 다른 사람들이 끼리끼리 뭉쳐서 살지만 오늘 성경은 그 사람들을 크게 둘로 나누고 있습니다.
하나는 복 있는 사람이고, 또 하나는 악인들입니다. 사람들은 사람을 볼 때 빈부귀천, 남녀노소, 유 무식으로 구별을 하지만, 하나님은 복 있는 사람과 악인들로 구별하셨습니다.
(시 1:1) 복 있는 사람은 악인들의 꾀를 따르지 아니하며 죄인들의 길에 서지 아니하며 오만한 자들의 자리에 앉지 아니하고
(시 1:4) 악인들은 그렇지 아니함이여 오직 바람에 나는 겨와 같도다
여기서 ‘바람에 나는 겨와 같도다’라는 말은 지금은 잘 나가는 것 같지만 머지않은 미래가 ‘시들해지고 쇠약하게 된다’는 미완료 상태를 뜻하는 말입니다.
물론 세상에 어느 누구를 막론하고 다 ‘복 있는 사람’이 되기를 원하지 악인이 되기를 원하지 않을 것입니다. 왜냐하면 ‘복 있는 사람’은 무슨 일을 하든지 그 결과가 좋지만 악인은 그 결과가 좋지 않게 되기 때문입니다.
(시 1:3) 그는 시냇가에 심은 나무가 철을 따라 열매를 맺으며 그 잎사귀가 마르지 아니함 같으니 그가 하는 모든 일이 다 형통하리로다
여기서 ‘모든 일’이라는 말(hc;[)은 '일하다, 행하다, 만들다, 형성하다, 이루다'라는 뜻입니다. ‘형통하리로다’라는 말(jl'x)은 ‘앞으로 나가다, 발전하다, 번영하다’는 미완료 시제로 설령 지금은 어려울지라도 미래에는 반드시 형통하게 하실 것이라는 약속입니다.
물론 지금까지 지내 온 것은 물론 미래가 형통하게 되는 것도 포괄적으로 다 하나님의 은혜이지만, 세상에서 악하게 살아도 그와 같은 복을 받는다고는 성경은 말씀하고 있지 않습니다.
그렇다고 해서 복있는 사람은 악인보다 선하게 살았기 때문이라고도 말씀하고 있지도 않습니다.
과연 그 이유가 무엇일까요? 인간들이 보기에는 의인과 악인의 삶이 현격한 차이가 나는 것처럼 보일지 모르지만 본래 의인이나 악인이나 출발점은 동일하게 전적으로 타락한 죄인들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복 있는 사람이나 악인이나 둘 다 타락한 죄인이지만 복 있는 사람은 세상에서 사는 동안 악인과는 차별화된 삶을 살아가는 사람이라고 오늘 성경 본문이 가르치고 있습니다.
(시 1:1) 복 있는 사람은 악인들의 꾀를 따르지 아니하며 죄인들의 길에 서지 아니하며 오만한 자들의 자리에 앉지 아니하고
1) ‘악인들의 꾀를 따르지 아니하며’라는 말은 비록 사악한 사람들과 같은 세상을 살지라도 악한 일에 있어서 그들과 ‘동행하고, 교제하고, 의논하는 삶’을 살지 않으며,
2) ‘죄인들의 길에 서지 아니하며’라는 말은 역시 ‘악인들과 함께 죄를 생각하고 말하고 행동하거나, 머무르지 않는다’는 말이며,
3) ‘오만한 자들의 자리에 앉지 아니하고’라는 말은 ‘하나님과 교회와 신자들을 경멸하고 모욕하고 조롱하는 자들과 회합하거나 함께 거주하지 않는다’는 말입니다.
이는 내가 지금 누구와 친구가 되어 있고, 내가 누구와 더불어 무슨 일을 하고 있는가를 돌이켜 보면 내가 복있는 사람인지 악인인지를 알 수 있을 것입니다.
물론 우리의 현실이 기독교 국가가 아니고 신앙촌이 아니기 때문에 이 성경 말씀대로 산다는 것이 쉽지 않을 것입니다.
그래서 어쩔 수 없이 알면서도 먹고 살기 위해서 멀리해야 할 사람과 교제하고, 공모하고, 행동을 같이 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 결과 세월이 지나고 보면 점점 죄악에 빠지게 되는 반면 하나님과는 점점 멀어지게 되는 것입니다. 그렇게 되면 아무리 하나님을 믿고 교회를 다닐지라도 하나님이 성경에 약속한 형통의 복을 받지 못하는 것입니다.
2. 주야로 묵상하는 삶
성경을 묵상하게 되면 문제가 보이고 또한 그 문제에 대한 답이 보이게 됩니다. 우리가 예수를 믿는다고 현실을 도피할 수도 없고, 그렇다고 양다리를 걸치게 되면 세상에서도 교회에서도 다 불편하게 됩니다.
그렇다면 어떻게 그것을 극복하고 성경에 약속된 형통의 복을 받을 수 있는지 오늘 성경에서 그 답을 찾아야 하겠습니다.
(시 1:2) 오직 여호와의 율법을 즐거워하여 그의 율법을 주야로 묵상하는도다
여기서 ‘오직’이라는 말씀은 ‘절대적’으로 라는 뜻이 아니라 ‘만일 ---이면, 만일 ---일때’라는 뜻입니다.
이는 결코 강압적으로 억지로 하라는 명령이 아니라 하나님이 주신 자유의지를 가지고 결단해야 할 것을 가르치는 말씀입니다. 그것이 바로 ‘여호와의 율법’인 성경 말씀을 ‘즐거워하며, 주야로 묵상하는 삶’을 사는 것입니다.
여기서 ‘묵상하는도다’라는 말(hg;h)은 ‘신음하다, 슬퍼하다, 으르렁거리다, 명상하다, 깊이 생각하다’라는 미완료 시제로 평소에 하나님의 말씀인 성경을 어떻게 대해야 하는가를 가르치는 말씀입니다.
다시 말해서 평소 성경을 억지로 마지못해서가 아니라, 즐겁고 기쁜 마음으로 읽고, 듣고, 배우고, 지키는 삶이 악을 멀리하는 복 있는 사람의 삶이라는 것입니다.
(계 1:3) 이 예언의 말씀을 읽는 자와 듣는 자와 그 가운데에 기록한 것을 지키는 자는 복이 있나니 때가 가까움이라
예화
청교도들이 메이 플라워 호를 타고 미국에 도착하여 얼마 지나지 않아 그들 중 반 이상이 굶어 죽고 병들어 죽었습니다. 게다가 남아 있는 사람들마저 해마다 겹치는 흉년으로 고통을 당했습니다. 도무지 밝은 전망이 보이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전국적으로 금식 기도를 선포하고 경건한 이 신앙인들이 하나님께 매달려 "하나님, 이 상황을 돌보아 주십시오. 우리를 도와주시옵소서."라고 외치며 매어 달렸습니다.
이렇게 금식을 선포하고 기도를 한 것이 한두 번이 아니었습니다. 그런데 어느 땐가 또 한번 대단히 어려운 형편에 놓이게 되자 그들은 다시 금식 기도를 해야 한다고 생각했습니다.
금식 기도를 놓고 의논하는 자리에서 어떤 농부 한 사람이 "지금까지 우리는 금식하면서 하나님께서 도와주시기를 간절히 기도했습니다. 그러나 이제 달리 생각하기를 원합니다. 비록 농사가 흉년이 들고 형제자매들이 병으로 쓰러지는 어려움을 겪지만 이 가운데서도 우리가 감사할 것이 있다고 생각합니다. 식량이 풍족치 않고 여건이 유럽보다 편안하지는 않지만 신앙의 자유가 있고 정치적인 자유가 있습니다. 그리고 우리 앞에는 광대한 대지가 열려 있습니다. 이것을 가지고 금식 대신에 감사 기간을 정하고 하나님께 감사를 드리는 것이 어떻습니까?" 라고 제의했습니다.
농부의 그 말은 참석한 사람들에게 깊은 감화를 주었습니다. 그래서 금식 기도 주간을 선포하는 대신 감사 주간을 선포하고 하나님 앞에 감사한 것이 감사주일의 기본 동기인 것입니다.
우리의 현실은 자그마한 구멍가게를 할지라도 치열한 생존 경쟁이고, 우리의 신앙생활이 교회만 다니는 것으로 다가 아니라 우리의 신앙을 병들게 하는 온갖 유혹과 죄악과 불의와 이단과 싸워 이겨야 하는 영적 전투입니다.
과연 내 힘만으로 그것들을 이겨 낼 수 있습니까? 그래서 과거에 그렇게 믿음이 좋았던 사람도, 현재 나름대로 교회를 잘 다니는 사람도 때로 넘어지고 쓰러지고 시험에 들고 범죄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나 성경에 기록된 수많은 신앙의 선진들과 앞서간 신앙의 선배들이 오늘 나와 같은 연약한 육체를 가지고 나보다 더 열악한 환경에서 승리의 삶을 살 수 있었던 비결이 있다면 무엇일까요?
그것이 바로 오늘 성경의 시편 기자처럼 주야로 말씀을 읽고 그 말씀을 붙들고 기도하며 찬송하는 삶을 꾸준히 살아갈 때 결국 그 말씀이 연약한 나를 붙잡아 주었기 때문입니다.
오늘 우리가 생각을 바꿔야 할 것은 성경은 결코 시간이 많고 마음이 편할 때 읽는 것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정말 인생살이가 힘들고 지쳐 쓰러질 수밖에 없을 때 진정으로 필요한 것이 신앙이요 여호와의 말씀을 묵상하는 삶이라는 것입니다.
그 이유는 여호와의 말씀을 묵상하는 삶은 마치 물에 빠진 사람이 구명 밧줄을 잡는 것처럼 힘든 삶을 살아갈 수로고 더욱 단단히 붙잡아야 할 구명대와도 같기 때문입니다.
3. 감사를 묵상하는 삶
우리가 과연 어떻게 눈에 보이지 않는 하나님을 사랑할 수 있습니까? 그것은 오로지 사랑하시는 하나님이 우리에게 예물로 주신 성경 말씀을 마치 신혼부부가 손에 가락지를 보며 행복해 하는 것처럼, 시시때때로 흐믓해 하고 즐거워하고 기뻐하는 마음으로 여호와의 율법인 성경 말씀을 읽고, 듣고, 배우고, 묵상하고 실천하는 삶입니다.
그 사람이 하나님을 사랑하는 사람이고, 하나님은 그 사람에게 영 육간에 승리할 수 있는 힘을 주시는 것입니다.
(시 28:7) “여호와는 나의 힘과 나의 방패이시니 내 마음이 그를 의지하여 도움을 얻었도다 그러므로 내 마음이 크게 기뻐하며 내 노래로 그를 찬송하리로다” (잠 8:17) “나를 사랑하는 자들이 나의 사랑을 입으며 나를 간절히 찾는 자가 나를 만날 것이니라
그렇다면 우리가 여호와의 말씀 가운데서 무엇을 묵상해야 할까요? 물론 우리가 묵상해야 할 것들이 너무 많지만 오늘 맥추절에 걸맞게 ‘여호와께 감사하라’는 말씀을 묵상하자는 것입니다.
출애굽한 이스라엘 백성들이 사십년 동안 광야 생활을 하는 동안 오직 하나님이 매일 내려주시는 만나를 먹었기 때문에 어떻게 농사를 지어야 하는지 몰랐습니다.
그러한 이스라엘 백성들이 사십년 광야 생활을 마치고 가나안 땅에 들어가서 농사를 지어 첫 열매를 수확했다면 그 결실이 많지 못할 것입니다.
세상에 여러 직업 중에 농사는 정직한 직업 중에 하나입니다. 그 이유는 심는 대로 거두기 때문입니다.
다 같은 논밭이지만 농부가 파종의 시기와 배수 조절과 거름과 농약을 어느 정도 적절하게 뿌리는가에 따라 수확량에 있어서 큰 차이가 납니다.
하나님은 농사 경험이 없는 이스라엘 백성들을 잘 아시면서 그들이 첫 열매를 거두었을 때 하나님께 감사의 제사를 드리라고 하신 것이 맥추절의 유래입니다.
(출 23:16) “맥추절을 지키라 이는 네가 수고하여 밭에 뿌린 것의 첫 열매를 거둠이니라 수장절을 지키라 이는 네가 수고하여 이룬 것을 연말에 밭에서부터 거두어 저장함이니라”
그 이유가 무엇일까요? 하나님께 드린다고 해서 하나님이 가져가시는 것도 아니고 제물로 태워서 드리는 것인데 별로 많지 않은 소득에 대해서 맥추 감사절을 지키라고 하시는 하나님의 숨겨진 의도가 무엇이었을까요? 그것은 한 마디로 하나님이 베풀어 주시는 큰 은혜만이 아니라 일상생활 중에 베풀어 주시는 하찮은 작은 것일지라도 감사를 잊어서는 안 된다는 것을 처음서부터 교육시키기 위함인 것입니다.
어떻게 하면 이스라엘 백성들이 첫 열매인 적은 소득을 놓고 하나님께 감사의 제사를 드릴 수 있었을까요?
무엇보다 두 가지 요소가 필요하였습니다. 하나는 비록 현재의 소득이 적을 지라도 지난 날 애굽에서 자유와 해방을 얻었기 때문에 가나안 땅에 들어와서 농사를 지을 수 있게 된 것을 생각할 때 적은 소득을 놓고서도 감사할 수 있습니다. 그래서 이스라엘 백성들의 감사의 근원이 출애굽을 기념하는 유월절이 근간이 되고 있는 것입니.
또 하나는 비록 보리를 거두는 첫 열매의 소득이 적을지라도 장차 더 많은 것을 주실 수장절을 생각하면 현재 적은 소득을 놓고서도 감사할 수 있는 것입니다.
이는 오늘 우리들도 마찬가지입니다. 현실 경제가 비록 어렵고 힘들어도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로 이미 크신 구원을 얻었으며, 장차 하나님의 나라의 영원한 기업을 약속하신 것을 소망하는 삶을 살 때 언제 어디서나 감사할 수 있습니다.
그래서 오늘 성경에서 복 있는 사람은 주야로 여호와의 율법을 묵상하는 사람이라면, 여호와의 율법인 성경에서 최우선적으로 묵상해야 할 것이 있다면 ‘여호와 하나님께 범사에 감사하며 사는 삶’이라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세상을 살아가는 동안 언제 어디서 무슨 일을 당하든지 범사에 어제나 오늘이나 내일이나 한 결같이 감사하며 사는 것이 하나님의 뜻이라고 명령하시는 것입니다.
(살전 5:18) “범사에 감사하라 이것이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너희를 향하신 하나님의 뜻이니라”
여기서 ‘범사’라는 말(pa'")은 ‘모든 또는 어떤 것이든지 온갖 종류, 그리고 전체의 모든 것이라는 말로 우리의 인생의 전반을 뜻하는 말입니다.
또 ‘하나님의 뜻’이라는 말(qevlhma)은 ‘바라다, 원하다’라는 말에서 유래된 것으로 하나님은 우리가 범사에 감사하며 사는 것을 신구약 전체를 통해서 하나님이 소원하고 계시다는 것입니다.
(시 30:4) “주의 성도들아 여호와를 찬송하며 그의 거룩함을 기억하며 감사하라” (골 3:17) “또 무엇을 하든지 말에나 일에나 다 주 예수의 이름으로 하고 그를 힘입어 하나님 아버지께 감사하라”
1) 감사는 영혼의 보약입니다.
감사는 마음과 건강과 생활을 변화시키는 파동, 힘, 에너지입니다. 감사는 물질적인 풍요로움과 사회적인 성공을 끌어들이는 힘이 있고, 감사는 어려운 일이 닥쳤을 때 문제를 해결하고 위기를 극복하는 능력을 강화시켜 주며, 감사는 자부심과 자신감을 높이고, 변화나 위기에 대한 대처 능력을 높인다는 것입니다.
2) 감사는 육체의 보약입니다.
감사는 육체적인 질병이나 스트레스를 완화시킴으로써 건강을 증진하고, 면역계를 강화하며 에너지를 높이고 치유를 촉진하여 줍니다.
감사는 심장이나 몸 그리고 정서에 좋은 반응을 일으켜 혈압이 떨어지고, 소화 작용을 촉진할 뿐 아니라 마음을 편안하게 하여 스트레스를 감소하게 한다는 것입니다.
3) 감사는 공동체의 보화입니다.
감사는 범사에 만족감과 기쁨을 증가시킴으로써, 인간관계를 향상시키고 갈등을 해소하며, 사랑이 넘치도록 만들어 주고, 구성원들이 서로 협력하도록 이끌어 줍니다.
결 론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는 가만히 앉아서 성경을 읽고 묵상하기만 하면 다가 아닙니다. 하나님 앞에서 마음에 원망과 불평을 버리고 아주 사소한 것부터 빠짐없이 범사에 감사의 기도, 감사의 찬송, 감사의 예물을 드리는 것입니다.
이 세상에서 제일 행복한 사람은 악을 멀리하고, 여호와의 율법을 주야로 묵상하는 가운데 범사에 감사하는 삶으로 하나님의 소원을 이루어 드리는 성도입니다.
. 사람은 범사에 감사한 만큼 사람은 행복하게 살 수 있습니다. 인도의 시성 타고르가 "감사의 분량이 곧 행복의 분량이다"라고 했듯이 행복은 감사와 정비례합니다
그러므로 세상에서 가장 행복한 사람들은 가장 많이 소유한 사람들이 아니라, 가장 많이 감사하는 사람입니다.
(수 1:8) 이 율법책을 네 입에서 떠나지 말게 하며 주야로 그것을 묵상하여 그 안에 기록된 대로 다 지켜 행하라 그리하면 네 길이 평탄하게 될 것이며
이 세상에서 제일 행복한 사람은 악을 멀리하고 여호와의 율법을 주야로 묵상하는 가운데 범사에 감사하는 삶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소원을 이루어 드리는 성도입니다.
우리 주변을 돌아보면 감사할 형편이 아닌 사람이 오히려 더 감사하고 정말 감사해야 할 사람은 오히려 불평을 더 많이 합니다. 지난 세월을 돌아볼 때 우리는 감사하기보다 불평을 더 많이 했습니다.
건강 있는 사람이 건강 주신 하나님께 감사하지 못할 때가 많습니다. 건강 잃고 중병에 걸린 사람이 오히려 하나님께 더 감사하지 않습니까?
오늘날 현대인의 질병 중에 만연하여 있는 것 중의 하나는 감사 불감증입니다. 감사를 모릅니다. 범사에 감사하기 보다는 늘 불평과 원망을 하며 삽니다. 욕구 불만이 가득합니다. 만족하지 못하는 소유욕의 노예가 되어 있습니다.
초대 교회의 교부였던 크리소스톰은 "사람에게는 근본적인 죄가 하나 있는데 그것은 감사하지 않는 죄"라고 했고 우리가 감사하지 못하는 이유는
1) 모든 것이 우연히 이루어 졌다고 생각할 때 감사하지 못하고,
2) 자기 힘과 능력으로 이루어 졌다고 생각할 때 감사하지 못하고,
3) 다른 사람과 비교할 때 감사하지 못한다고 말하였습니다.
범죄 심리학자인 소퍼(Soper)박사는 감옥과 수도원의 생활은 별로 차이가 없다. 교도소에 있는 복역수와 수도원에 있는 수도사의 차이에 대해서 "교도소에 갇힌 사람들은 하루 종일 불평과 요구만하지만 수도원에 수도사는 하루 종일 감사의 기도를 드린다"고 했습니다.
1) 비록 땅에 살아도 깨달으면 하늘에 사는 것입니다.
2) 움막에 살아도 하나님의 은혜를 깨달으면 그 곳이 천국입니다.
3) 비록 힘겨운 직장 생활에서도 깨달아지면 그곳은 선교지 되지만 못 깨달으면 그곳은 수용소 되는 것입니다.
감사는 가정이나 직업에 대한 만족감과 기쁨을 증가시킴으로써 인간관계를 향상시켜줍니다. 감사는 사랑이 넘치도록 만들며, 갈등을 해소하고, 협력을 도모하도록 만드는 힘이 있습니다( C.넬슨).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범사에 감사하라는 이유가 바로 이 같은 복을 우리에게 주시기 위함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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