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라와 민족을 위한 기도
(대하 20:1-4)
“1” 그 후에 모압 자손과 암몬 자손들이 마온 사람들과 함께 와서 여호사밧을 치고자 한지라 “2” 어떤 사람이 와서 여호사밧에게 전하여 이르되 큰 무리가 바다 저쪽 아람에서 왕을 치러 오는데 이제 하사손다말 곧 엔게디에 있나이다 하니 “3” 여호사밧이 두려워하여 여호와께로 낯을 향하여 간구하고 온 유다 백성에게 금식하라 공포하매 “4” 유다 사람이 여호와께 도우심을 구하려 하여 유다 모든 성읍에서 모여와서 여호와께 간구하더라
모태에서 울면서 태어난 인간은 야심한 밤길을 혼자 걷는 것을 두려워하고, 질병을 두려워하고, 사고를 두려워하고, 죽음을 두려워합니다.
그렇다면 누구를 의지하고 무엇을 해야만 두려움에서 자유롭게 되고 도리어 평안을 얻을 수 있을까요?
성경에 기록된 신앙의 위인들의 고백을 들어 보면 여호와 하나님께 피하고, 여호와 하나님을 의지하고, 여호와 하나님께 부르짖을 때 두려움이 물러가며, 두려움을 이기며, 두려움에서도 평안을 얻는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사 12:2) “보라 하나님은 나의 구원이시라 내가 신뢰하고 두려움이 없으리니 주 여호와는 나의 힘이시며 나의 노래시며 나의 구원이심이라”
여기서 ‘신뢰하고’라는 말은 ‘믿다, 의지하다, 안심하다, 안전하다’ 라는 뜻으로 기본적인 개념은 ‘확고부동이나 견고함’과 관련된 말로 미완료 시제입니다. 이는 기쁠 때나 슬플 때나, 형통할 때나 곤고할 때를 막론하고 하나님을 의지함으로 두려움이 없다는 뜻입니다.
그 이유는 그 모든 것들의 배후에 주권자가 여호와 하나님이시며, 그 하나님이 나의 아버지가 되심을 믿기 때문입니다.
(시 46:1) “ 하나님은 우리의 피난처시요 힘이시니 환난 중에 만날 큰 도움이시라”(시 46:2) “그러므로 땅이 변하든지 산이 흔들려 바다 가운데에 빠지든지”(시 46:3) “바닷물이 솟아나고 뛰놀든지 그것이 넘침으로 산이 흔들릴지라도 우리는 두려워하지 아니하리로다 (셀라)”
물론 오늘 처음 듣는 말씀이 아니고, 평소에 우리가 자주 들었고 잘 알고 있는 말씀임에도 불구하고 막상 어려움을 당하게 되면 그와 같은 평강이 내 마음을 주장하기 보다는 여전히 불안함을 떨쳐 버리지 못할 때가 많을 것입니다.
그 이유는 하나님을 믿지만 하나님 앞에 청결한 삶을 살지 못하면, 정직하지 못하면, 거룩하지 못하면 아무리 하나님을 신뢰하고 의지한다고 할지라도 하나님은 도와주시지 않는다는 죄의식 때문입니다.
환자에게 의사가 더 절실하게 요청되는 것처럼 하나님의 도우심이 아니고는 당면한 문제나 위기를 극복할 수 없음을 하나님이 더 잘 아시기 때문에 어떤 경우에든지 하나님을 의뢰하는 자를 외면하지 않으시고 반드시 도우시는 사랑의 하나님, 은혜의 하나님, 자비의 하나님, 긍휼히 많으신 하나님이십니다.
오늘 성경 본문이 그 중에 대표적인 말씀이라면 개인적으로 가정적으로 민족적으로 과거 어느 때보다 어려운 문제를 많이 끌어안고 고민하고 있는 이때에 어떻게 하는 것이 우리나라와 민족과 가정과 개개인이 사는 길이 무엇인가를 깨닫는 은혜의 시간이 되시기 바랍니다.
1. 그 후에-범죄 한 후에
우리가 성경을 많이 읽는 것도 좋지만 먼저 이해가 뒤따라야만 읽고 듣고 묵상하고 공부를 하는 것이 은혜가 되고 신앙 성장에 유익을 가져다줍니다.
그렇게 하려면 무엇보다 성경을 읽을 때 전후 문맥을 연결하여 읽고 이해해야 하는 것입니다.
그 이유는 성경은 마치 전철역 표지판과 같아서 지나 온 역과 앞으로 갈 역이 나란히 기록되어 있습니다. 그래서 졸다가도 차창 밖의 표지판을 보게 되면 자기가 지금 어디에 있는지를 금방 알게 됩니다.
성경도 마찬가지입니다. 내가 지금 읽고 있는 성경 본문은 전후 문맥과 밀접한 관계가 있기 때문에, 그것을 모르고 읽는 것과, 이해하고 읽는 것과 전혀 딴판일 수 있습니다.
(대하 20:1) 그 후에 모압 자손과 암몬 자손들이 마온 사람들과 함께 와서 여호사밧을 치고자 한지라
여기서 ‘그 후에’라는 말은 언제 무슨 일이 일어난 후를 가리키는 것일까? 왜 그 사건이 일어난 후에 모암과 암몬 자손들이 마온 사람들과 함께 연합하여 여호사밧을 치려고 하는 것일까? 역사의 흥망성쇠를 주장하시는 하나님은 왜 그것을 용납하셨을까? 라는 궁금증을 가지고 성경의 전후 문맥을 짚어 보라는 것입니다.
1) 여호사밧의 실정
여호사밧이 우상숭배의 괴수 아합과 동맹을 맺음으로 여호와 하나님이 노하실 만한 잘못된 일을 하였습니다.
(대하 18:1) “ 여호사밧은 큰 부와 명예를 누렸습니다. 그는 결혼을 통해서 아합 왕과 동맹을 맺었습니다.”(대하 18:2) “몇 해 뒤에 여호사밧이 사마리아로 내려가서 아합을 방문했습니다. 아합은 여호사밧과 그와 함께 온 사람들을 대접하려고 양과 소를 많이 잡았습니다. 아합은 여호사밧을 부추겨 길르앗 라못을 치게 했습니다.”
(대하 18:28) “ 이스라엘의 아합 왕과 유다의 여호사밧 왕은 길르앗 라못으로 갔습니다.”(대하 18:29) “아합 왕이 여호사밧에게 말했습니다. “나는 변장을 하고 싸움터에 갈 테니, 왕은 왕의 옷을 입으십시오.” 아합은 변장을 하고 싸움터로 갔습니다.” (대하 18:33) “어떤 군인이 화살을 쏘았는데, 그 화살이 우연히 이스라엘의 아합 왕에게 맞았습니다. 화살이 갑옷 틈새를 뚫고 아합의 몸에 꽂혔습니다. 아합 왕이 전차를 모는 군인에게 말했습니다. “전차를 돌려서 이 싸움터에서 빠져 나가거라. 내가 다쳤다.”” (대하 18:34) “싸움은 하루 종일 계속되었습니다. 아합 왕은 전차 안에 겨우 버티고 서서, 저녁 때까지 아람 사람들을 막았으나, 해질 무렵에 숨을 거두었습니다.”(대하 19:1) “유다의 여호사밧 왕은 무사히 예루살렘의 자기 왕궁으로 돌아왔습니다.”
그 때에 하나님의 아들 선견자 예후가 여호사밧 왕을 맞이 하면서 하나님의 뜻을 예언하였습니다.
(대하 19:2) “하나니의 아들 선견자 예후가 나가서 여호사밧 왕을 맞아 이르되 왕이 악한 자를 돕고 여호와를 미워하는 자들을 사랑하는 것이 옳으니이까 그러므로 여호와께로부터 진노하심이 왕에게 임하리이다”
여기서 ‘진노하심’이라는 말은 하나님의 공의로우심으로 말미암아 죄에 대해서 징벌하시는 모습을 뜻하는 말입니다.
2) 여호사밧의 선정
그러나 여호사밧이 문제만을 일으킨 악한 왕은 아니었습니다. 역대 어느 왕 못지 않게 선정도 많이 베풀었습니다. 다 같이 오늘 성경 말씀을 함께 읽겠습니다.
(대하 19:3) “그러나 왕에게 선한 일도 있으니 이는 왕이 아세라 목상들을 이 땅에서 없애고 마음을 기울여 하나님을 찾음이니이다 하였더라” (대하 19:4) “여호사밧이 예루살렘에 살더니 다시 나가서 브엘세바에서부터 에브라임 산지까지 민간에 두루 다니며 그들을 그들의 조상들의 하나님 여호와께로 돌아오게 하고” (대하 19:5) “또 유다 온 나라의 견고한 성읍에 재판관을 세우되 성읍마다 있게 하고” (대하 19:6) “재판관들에게 이르되 너희가 재판하는 것이 사람을 위하여 할 것인지 여호와를 위하여 할 것인지를 잘 살피라 너희가 재판할 때에 여호와께서 너희와 함께 하심이니라” (대하 19:7) “그런즉 너희는 여호와를 두려워하는 마음으로 삼가 행하라 우리의 하나님 여호와께서는 불의함도 없으시고 치우침도 없으시고 뇌물을 받는 일도 없으시니라 하니라”
여호사밧이 우상 숭배하는 아합과 정략적으로 동맹을 맺기는 했지만 실상 여호사밧은 하나님이 미워하시는 우상을 제거한 왕이었습니다. 그것만이 아니라 백성들의 마음을 여호와 하나님께로 돌이키는 일을 선한 일을 하였습니다.
1) 여호사밧의 종교 개혁
① 산당과 아세라 목상들을 제하였고(대하 17:6).
② 남색하는 자를 쫓아내었고(왕상 22:46).
③ 유다 백성들에게 여호와의 율법책을 가르쳤고(대하 17:7-9).
④ 민간에 순행하여 백성들을 여호와께로 돌이키는 일을 하였고(대하 19:4).
⑤ 견고한 성들에 재판관을 세우고 예루살렘에 재판관을 세워 정당한 재판을 하도록 하였습니다(대하 19:5-7 대하 19:8-10).
2) 여호사밧의 정치 개혁
① 에돔을 접수하고 대리 통치자를 임명하였고,
② 유다에 있는 견고한 성에 군대를 주둔시키고, 아사왕이 탈취한 에브라임의 성읍들에도 수비대를 주둔시키었고,
③ 막강한 군사력을 보유하였고, 요새와 국고성을 건축하고(대하 17:12), 다시스와 교역을 위해 선박을 만들고, 아합 왕과 정치적으로 동맹을 맺기까지 하였습니다).
그 결과 외형적으로는 나라와 백성들의 부귀와 영화가 극에 도달하였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이처럼 여호사밧은 마치 두 얼굴의 사나이처럼 하나님 앞에서 상반된 양면의 모습을 하였습니다.
만일 여호사밧의 전자를 문제시 하게 되면 여호사밧은 하나님의 진노를 받아야 하고 후자를 생각하면 복을 받아야 마땅합니다.
그러한 여호사밧의 행위를 곰곰이 생각할 때 그러한 양면성은 여호사밧만이 아니라 하나님을 믿는 오늘 우리도 두 얼굴을 하고 있다는 생각이 들것입니다.
우리도 때로는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삶을 살기도 하고, 때로는 하나님을 불순종하는 삶을 살기도 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어떻게 여기까지 우리가 살아올 수 있었습니까? 과연 하나님은 그러한 우리를 어떻게 하셨습니까? 이제 우리는 하나님 앞에서 어떻게 하여야 할까요?
2. 하나님의 공의
하나님은 여호사밧을 어떻게 하셨을까요? 그것이 바로 오늘 성경 본문의 말씀입니다. 하나님은 여호사밧이 하나님을 전적으로 의지하지 않고 아합과 동맹을 맺어 국가의 안녕을 꾀하려고 한 일에 대해서 그냥 지나치지 않으시고 모압과 암몬과 마온 자손이 연합하여 여호사밧을 공격하게 하셨습니다.
(대하 20:1) 그 후에 모압 자손과 암몬 자손들이 마온 사람들과 함께 와서 여호사밧을 치고자 한지라 (대하 20:2) “어떤 사람이 와서 여호사밧에게 전하여 이르되 큰 무리가 바다 저쪽 아람에서 왕을 치러 오는데 이제 하사손다말 곧 엔게디에 있나이다 하니”
오늘 성경 본문에서 ‘그 후’란 여호사밧이 아합과 동맹을 맺고 길르앗 라못을 회복하기 위하여 전쟁을 하였다가 패하고 돌아온 이후를 말합니다.
선지자 예후는 그러한 여호사밧 왕을 향하여 그가 악한 자를 돕고 여호와를 미워하는 자를 사랑하였으므로 하나님의 진노가 임할 것이라고 선포한 바 말씀이 그대로 임한 것입니다.
(대하 19:2) 하나니의 아들 선견자 예후가 나가서 여호사밧 왕을 맞아 이르되 왕이 악한 자를 돕고 여호와를 미워하는 자들을 사랑하는 것이 옳으니이까 그러므로 여호와께로부터 진노하심이 왕에게 임하리이다
여호사밧은 그와 같은 하나님의 징계에 대해서 두려움을 느끼고 겸손히 하나님을 의지하고 하나님의 도우심을 구하였습니다.
(대하 20:3) “여호사밧이 두려워하여 여호와께로 낯을 향하여 간구하고 온 유다 백성에게 금식하라 공포하매”
당시 여호사밧은 116만 명이나 되는 군사력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모압과 암몬 연합군의 남유다 침공은 여호사밧의 잘못에 대한 하나님의 징계가 분명합니다.
당시 남유다의 군사력은 두려워할 정도로 절박한 상황은 아니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호사밧이 두려워하며 하나님께 간구한 것은 자신의 잘못에 대한 하나님의 징계로 인식하였기 때문입니다.
여기서 ‘여호와께로 낯을 향하여’라는 말은 마음을 여호와께로 정하여 도움을 구하기로 작정하였다는 말입니다. 이를 통해 우리는 여호사밧이 진정한 하나님의 사람이었음을 알 수 있습니다.
여호사밧은 인간적인 방법으로 위기를 극복하려고 하지 않고 하나님께 구하는 방법을 택했습니다. 여호사밧은 위기에 때에 가장 먼저 하나님을 찾았습니다.
그 이유는 모압 연합군이 두려워서가 아니었습니다. 그는 하나님을 두려워한 것입니다. 즉 여호사밧은 이번 침공이 하나님으로 말미암은 것이라는 사실을 알았고, 따라서 자기에게 아무리 강력한 군대가 있을지라도 하나님의 은혜가 없다면 전쟁에서 이길 수 없다는 것을 알았기에 두려워하며 하나님께 매달린 것입니다.
오늘 우리도 어려움을 만날 때 여호사밧과 같은 자세가 필요합니다. 먼저 자신의 허물이 무엇인가를 돌이켜 보며 겸손히 여호와의 낯을 구하여야 합니다.
(욥 1:22) 이 모든 일에 욥이 범죄하지 아니하고 하나님을 향하여 원망하지 아니하니라 (계 3:19) 무릇 내가 사랑하는 자를 책망하여 징계하노니 그러므로 네가 열심을 내라 회개하라
여호사밧은 온 백성들에게 금식을 선포함으로 국가의 위기 사항을 알게 된 백성들이 예루살렘에 모여 함께 금식하며 한 마음으로 기도하였습니다.
이것은 왕이 공식적으로 공포한 최초의 금식 선포입니다(Barker). 물론 그 이전 사사 시대에도 급박한 재난이 있을 때 백성들을 모으고 금식을 선포한 적이 있었습니다.
(삿 20:26) “이에 온 이스라엘 자손 모든 백성이 올라가 벧엘에 이르러 울며 거기서 여호와 앞에 앉아서 그 날이 저물도록 금식하고 번제와 화목제를 여호와 앞에 드리고”
그러나 왕국 시대에 이르러 왕이 개인적으로 금식한 일은 있어도(삼하 12:16) 온 백성들을 향하여 금식을 선포한 것은 최초였습니다.
여호사밧은 하나님의 긍휼과 자비가 아니고서는 위기를 결코 해결할 수 없다고 믿었기 때문에 백성들과 합심하여 위기를 돌파하기 위해 금식을 요청한 것입니다.
비록 왕정시대이지만 놀라운 일은 그와 같은 여호사밧의 결단에 대해 온 유다 백성들이 합심하여 묵묵히 따른 것입니다.
(대하 20:4) “유다 사람이 여호와께 도우심을 구하려 하여 유다 모든 성읍에서 모여와서 여호와께 간구하더라”
여기서 ‘간구’라는 말은 아주 열심히 여호와 하나님의 도우심을 구하는 모습을 뜻합니다. 남 유다 백성들은 국가적인 위기 앞에서 한 마음 한 뜻이 되어 하나님께 은혜 베푸시기를 간절히 구하였습니다.
유다와 예루살렘 백성이 여호와의 성전의 새 뜰 앞에 모였습니다. 그러자 여호사밧이 그들 앞에 여호와 하나님께 회개하는 마음으로 구하였습니다.
1) 하나님께서 구원하여 주신 일을 회고하며 기도하였습니다.
(대하 20:6) “이르되 우리 조상들의 하나님 여호와여 주는 하늘에서 하나님이 아니시니이까 이방 사람들의 모든 나라를 다스리지 아니하시나이까 주의 손에 권세와 능력이 있사오니 능히 주와 맞설 사람이 없나이다” (대하 20:7) “우리 하나님이시여 전에 이 땅 주민을 주의 백성 이스라엘 앞에서 쫓아내시고 그 땅을 주께서 사랑하시는 아브라함의 자손에게 영원히 주지 아니하셨나이까”
(대하 20:10) “옛적에 이스라엘이 애굽 땅에서 나올 때에 암몬 자손과 모압 자손과 세일 산 사람들을 침노하기를 주께서 용납하지 아니하시므로 이에 돌이켜 그들을 떠나고 멸하지 아니하였거늘”
2) 여호와 하나님이 약속하신 말씀을 붙들고 기도하였습니다.
(대하 20:8) “그들이 이 땅에 살면서 주의 이름을 위하여 한 성소를 주를 위해 건축하고 이르기를” (대하 20:9) “만일 재앙이나 난리나 견책이나 전염병이나 기근이 우리에게 임하면 주의 이름이 이 성전에 있으니 우리가 이 성전 앞과 주 앞에 서서 이 환난 가운데에서 주께 부르짖은즉 들으시고 구원하시리라 하였나이다”
3) 오직 여호와 하나님만 바라보며 전심으로 기도하였습니다.
(대하 20:11) “이제 그들이 우리에게 갚는 것을 보옵소서 그들이 와서 주께서 우리에게 주신 주의 기업에서 우리를 쫓아내고자 하나이다”(대하 20:12) “우리 하나님이여 그들을 징벌하지 아니하시나이까 우리를 치러 오는 이 큰 무리를 우리가 대적할 능력이 없고 어떻게 할 줄도 알지 못하옵고 오직 주만 바라보나이다 하고”
여호사밧 왕은 위기를 만났을 때 이전처럼 다른 나라의 도움을 청하지 않고 백성을 향해 여호와께 도움을 청하라고 명한 것은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신앙적인 처사였습니다.
여호사밧 왕은 비로소 여호와 하나님만이 그의 힘이시요 방패시요 산성이심을 알고 여호와 하나님만을 의지한 것입니다.
(시 46:1) "하나님은 우리의 피난처시요 힘이시니 환난 중에 만날 큰 도움이시라".
3. 하나님의 사랑
여호사밧 왕을 비롯하여 유다의 모든 백성이 여호와 앞에 섰습니다. 심지어 그들의 아내와 아이들도 함께 여호와 하나님 앞에서 서서 합심하여 기도하였습니다.
(대하 20:13) “유다 모든 사람들이 그들의 아내와 자녀와 어린이와 더불어 여호와 앞에 섰더라”
이처럼 여호사밧 왕과 유다 백성들이 합심하여 금식하며 하나님의 도우심을 구한 기도에 대해 여호와 하나님은 어떻게 하셨을까요? 침묵하지 않으셨습니다. 먼저 두려움에 떨고 있는 왕과 백성들의 마음을 어루만지셨습니다.
그 때에 여호와의 영이 야하시엘에게 내렸습니다. 야하시엘은 스가랴의 아들입니다. 스가랴는 브나야의 아들이고, 브나야는 여이엘의 아들이고, 여이엘은 맛다냐의 아들입니다. 야하시엘은 레위 사람으로서 아삽의 자손을 통해서 여호아 하나님이 말씀하셨습니다.
1. 하나님의 위로
여호사밧의 죄에 대한 징계로 내리신 전쟁임에도 불구하고 그 전쟁은 하나님께 속한 전쟁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비록 대적이 연합하여 몰려 온다고 할지라도 눈에 보이는 숫자 때문에 두려워하거나 놀라지 말라는 것입니다. 그 이유는 마치 녹화방송을 보는 것처럼 그 전쟁은 이미 하나님께 속한 전쟁으로 결론이 내려졌다는 것입니다.
(대하 20:15) “야하시엘이 이르되 온 유다와 예루살렘 주민과 여호사밧 왕이여 들을지어다 여호와께서 이같이 너희에게 말씀하시기를 너희는 이 큰 무리로 말미암아 두려워하거나 놀라지 말라 이 전쟁은 너희에게 속한 것이 아니요 하나님께 속한 것이니라”
여호사밧과 유다 백성들은 그 전쟁에 이기기 위해서 아무것도 할 필요가 없다는 것입니다. 마치 홍해가 갈라질 때처럼 서서 구경만 하라는 것입니다. 두려워하거나 놀라지 말라는 것입니다. 그 이유는 여호와 하나님이 그들과 함께 하시기 때문이라는 것입니다.
(대하 20:17) “이 전쟁에는 너희가 싸울 것이 없나니 대열을 이루고 서서 너희와 함께 한 여호와가 구원하는 것을 보라 유다와 예루살렘아 너희는 두려워하지 말며 놀라지 말고 내일 그들을 맞서 나가라 여호와가 너희와 함께 하리라 하셨느니라 하매”
2. 하나님의 승리
여호사밧이 땅에 엎드려 하나님께 경배하였습니다. 유다와 예루살렘의 모든 백성들도 여호와 앞에 엎드려 경배드렸습니다. 그 때에 고핫과 고라의 자손 레위 사람들이 자리에서 일어나 큰 목소리로 이스라엘의 하나님을 찬양했습니다.
여호사밧의 군대가 아침 일찍 드고아 광야로 나갔습니다. 그들이 길을 떠나려 할 때에 여호사밧이 서서 말했습니다.
“유다와 예루살렘 백성이여, 내 말을 들으시오. 여러분의 하나님, 여호와를 믿으시오. 그러면 굳게 설 수 있을 것이오. 주의 예언자들을 믿으시오. 그러면 성공할 수 있을 것이오.””
여호사밧은 백성과 의논하여 여호와께 노래할 사람, 곧 거룩하고 놀라우신 여호와를 찬양할 사람들을 뽑았습니다. 그들이 군대 앞에서 행진하며 찬양했습니다.
“여호와께 감사드리자. 여호와의 사랑은 영원하시다.””
그들이 노래를 시작하며 주를 찬양하자, 여호와께서는 유다를 치러 온 암몬과 모압과 세일 산에서 온 사람을 공격할 복병을 숨겨 놓으셨습니다. 그리고 암몬과 모압과 세일 산 사람을 치게 하셨습니다.
그러자 암몬과 모압 사람이 세일 산 사람을 공격하기 시작했습니다. 그들은 세일 산 사람을 죽여 멸망시켰습니다. 그러더니 그들은 또 자기들끼리 서로 죽였습니다.”
유다 사람들이 광야를 내려다볼 수 있는 곳에 이르러 적의 큰 군대를 살펴보았을 때 눈에 보이는 것은 오직 땅 위에 널린 시체들뿐이었습니다. 적군은 아무도 도망치지 못했습니다.
여호사밧과 그의 군대가 시체들로부터 값 나가는 물건을 빼앗으러 내려가 보니, 양식과 옷가지와 그 밖의 값진 것들이 많았습니다. 너무나 많아서 다 가지고 갈 수 없을 정도였고, 다 거두어들이는 데 삼 일이나 걸렸습니다. 완벽한 승리였던 것입니다.
그렇다면 여호사밧과 유다 백성들은 그 같은 승리를 얻기 위해 무엇을 하였습니까? 오로지 여호와 하나님을 의뢰하고 기도한 것 뿐입니다. 오직 여호와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였을 뿐입니다.
여호사밧 왕온 온 백성들과 더불어 하나님께 찬양을 드린 것뿐 입니다. 마치 해 다 논 밥을 숟가락만 들고 맛있게 먹는 것처럼 다 이긴 전장에 가서 전리품을 이삭 줍듯이 거두었을 뿐입니다.
이것이 바로 신앙의 힘입니다. 회개의 힘입니다. 합심 기도의 힘입니다. 말씀 순종의 힘입니다.
3. 하나님께 영광 돌림
중환자가 수술을 잘 끝냈다고 안심하고 이전처럼 무리를 해서는 안 되며, 장기간 입원 환자가 사지가 굳지 않도록 물리치료를 열심히 해야 합니다.
신앙도 마치 그와 같습니다. 비록 승리하였을지라도 자만해서는 안 되고 반드시 마무리를 잘 해야 합니다. 그 점에 있어서 여호사밧은 우리에게 좋은 본을 보여주었습니다. 여호사밧은 하나님이 주신 승리에 대해 자기가 영광을 가로채지 않고 예루살렘으로 돌아와 곧장 여호와의 전으로 나아가 온 백성과 더불어 하나님께 찬송과 영광을 돌렸습니다.
(대하 20:27) “유다와 예루살렘 모든 사람이 다시 여호사밧을 선두로 하여 즐겁게 예루살렘으로 돌아왔으니 이는 여호와께서 그들이 그 적군을 이김으로써 즐거워하게 하셨음이라” (대하 20:28) “그들이 비파와 수금과 나팔을 합주하고 예루살렘에 이르러 여호와의 전에 나아가니라”
여호아 하나님은 그와 같은 여호사밧을 그냥 두지 않으셨습니다. 더욱 축복하여 주셨습니다.
1) 주변 국가들로 하여금 하나님을 두려워하게 만들었습니다.
(대하 20:29) 이방 모든 나라가 여호와께서 이스라엘의 적군을 치셨다 함을 듣고 하나님을 두려워하므로
여기서 ‘두려워 하므로’라는 말씀의 뜻은 강력한 공포의 감정을 가지고 하나님을 두려워하는 미완료 형으로 이로 말미암아 이방 나라들이 유다를 괴롭히지 못하게 되었습니다.
2) 나라와 민족을 평안하게 만들어 주셨습니다.
(대하 20:30) 여호사밧의 나라가 태평하였으니 이는 그의 하나님이 사방에서 그들에게 평강을 주셨음이더라
여기서 ‘태평하였으니’라는 말씀은 분쟁과 시끄러운 일은 물론 근심과 걱정이 없는 평온한 상태를 뜻하며, ‘평강을’ 이라는 말은 ‘휴식하다, 쉬다’는 뜻의 와우 계속법 미완료동사로 승리와 구원의 결과를 뜻하는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여호사밧의 잘못된 처사로 인해 하나님이 징계를 내리셨을 때 여호사밧이 즉각 돌이켜 회개하고 온 백성에게 금식을 선포하고 합심하여 기도하게 한 결과입니다.
결 론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는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의 하나님을 믿습니다. 어제도 오늘도 내일도 영원토록 살아계셔서 역사를 주관하시고 심판하시는 하나님을 믿습니다. 여호사밧과 유다 백성들의 기도를 들으시고 전화위복하게 하신 하나님을 나의 하나님만이 아니라 우리들의 하나님, 우리 민족과 국가의 하나님으로 믿어야 합니다.
지금 우리나라가 외교적으로, 정치적으로, 경제적으로, 교계적으로 얼마나 어렵다는 것을 모르는 사람은 아무도 없을 것입니다. 지금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이 무엇이며, 우리가 해야 할 일이 무엇이라고 생각합니까?
정권이 바뀔 때마다 새로운 지도자들에게 희망을 걸지만 시간이 지나고 나면 역시 그 인물이 그 인물이라는 것을 깨닫고 실망감을 금할 길 없습니다.
우리 민족이 염원하는 행복과 민족의 통일과 전 국민이 골고루 잘사는 이상적인 국가를 건설할 위대한 지도자가 과연 해 아래서 누구라고 생각합니까?
우리 국민은 이제 더 이상 어느 특정 정당이나 정치인에게 줄을 서는 들러리 노릇을 그만 두어야 합니다. 국민 각자가 자기 본연의 위치로 돌아가서 자기가 해야 할 일이 무엇인지 그 일에 더욱 정진을 해야 합니다.
존 파이퍼는 ‘영적 침체를 극복하라’ 저서를 통해서 세상에는 피로, 스트레스, 과중한 업무, 만성 질병 등 기뻐할 수 없는 일들이 가득하다. 그와 같은 영적침체를 만났을 때 복음의 근본으로 돌아가는 것이 영적회복의 근본적인 해결방안이라고 하였습니다.
그 것은 나라와 민족이 어려울 때 우리 민족과 교회가 살길은 여호사밧 왕처럼 하나님 앞에서 잘못된 것을 회개하고 돌이켜 기도하고 유다 백성들처럼 여호와 하나님의 얼굴을 바라보며 합심하여 기도하는 것이 복음의 본질로 돌아가는 일입니다.
이제 우리 민족은 호국의 달 6월을 맞이하면서 나라와 민족을 위해 여호사밧처럼 우리의 허물과 죄를 회개하고 전 국민이 합심하여 기도해야 할 때입니다.
나라와 민족과 가정과 교회가 어려울 때는 평소에 기도하지 않던 사람들도 기도해야 합심하여 기도해야 합니다. 그 이유는 오늘 성경 말씀처럼
첫째, 하나님은 모든 나라를 다스리시는 만왕의 왕이시기 때문이며(대하 20:6),
둘째, 하나님은 기도하면 응답하겠다고 약속하였기 때문이며(대하 20:7-11),
셋째, 하나님은 대적자를 심판하시는 분이기 때문이며(대하 20:12),
넷째, 하나님은 모든 어려움에서 구원하시는 분이기 때문이며(대하 20:14-17),
다섯째, 하나님은 말씀을 믿고 순종하는 자를 높이 올리시는 분이시기 때문입니다(대하 20:18).
사람은 연약하여 실수하거나 넘어질 때가 많이 있습니다. 성경 말씀에도 의인은 하나도 없다고 했습니다.(롬3:21) 사람은 누구나 하나님 앞에 죄를 짓고 또한 사람 앞에 실수를 합니다. 그러나 어떤 사람은 자신의 잘못한 점을 용감하게 인정할 줄 아나, 어떤 사람은 자신의 잘못을 인정하지 않고 도리어 변명과 핑계만 댑니다.
그러나 우리는 여호사밧 왕처럼 우리는 우리의 삶에 위기가 닥칠 때, 가장 먼저 하나님 앞에 나아가서 우리의 삶에 대한 하나님의 통치권을 인정하고 찬양해야 합니다. 그런 다음 하나님의 약속을 붙잡고 도우심을 간구할 때, 하나님의 돕는 손길이 나타나 우리를 위기 가운데서 구해주시는 것입니다.
어떠한 어려움이 온다 해도 주님만 바라봄으로 영적·육적인 침체를 박차고 일어서시기를 바랍니다. 작은 것이라 해도 희망을 보게 하소서. 언제나 우리를 괴롭히는 침체의 늪에서 헤어나게 하소서. 하나님만 의지하고 바라봄으로 세상을 이기는 저희들이 되게 하소서.
(사 55:1) 오호라 너희 모든 목마른 자들아 물로 나아오라 돈 없는 자도 오라 너희는 와서 사 먹되 돈 없이, 값 없이 와서 포도주와 젖을 사라(사 55:2) 너희가 어찌하여 양식이 아닌 것을 위하여 은을 달아 주며 배부르게 하지 못할 것을 위하여 수고하느냐 내게 듣고 들을지어다 그리하면 너희가 좋은 것을 먹을 것이며 너희 자신들이 기름진 것으로 즐거움을 얻으리라(사 55:3) 너희는 귀를 기울이고 내게로 나아와 들으라 그리하면 너희의 영혼이 살리라 내가 너희를 위하여 영원한 언약을 맺으리니 곧 다윗에게 허락한 확실한 은혜이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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