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벧전 3:1) “아내들아 이와 같이 자기 남편에게 순종하라 이는 혹 말씀을 순종하지 않는 자라도 말로 말미암지 않고 그 아내의 행실로 말미암아 구원을 받게 하려 함이니” (벧전 3:2) “너희의 두려워하며 정결한 행실을 봄이라” (벧전 3:3) “너희의 단장은 머리를 꾸미고 금을 차고 아름다운 옷을 입는 외모로 하지 말고” (벧전 3:4) “오직 마음에 숨은 사람을 온유하고 안정한 심령의 썩지 아니할 것으로 하라 이는 하나님 앞에 값진 것이니라” (벧전 3:5) “전에 하나님께 소망을 두었던 거룩한 부녀들도 이와 같이 자기 남편에게 순종함으로 자기를 단장하였나니” (벧전 3:6) “사라가 아브라함을 주라 칭하여 순종한 것 같이 너희는 선을 행하고 아무 두려운 일에도 놀라지 아니하면 그의 딸이 된 것이니라” (벧전 3:7) “남편들아 이와 같이 지식을 따라 너희 아내와 동거하고 그를 더 연약한 그릇이요 또 생명의 은혜를 함께 이어받을 자로 알아 귀히 여기라 이는 너희 기도가 막히지 아니하게 하려 함이라 또는 그 아내를 더 연약한 그릇 같이 여겨 지식을 따라 동거하고”
5 월은 예수를 믿든지 안 믿든지를 막론하고 ‘가정의 달’임을 대부분이 다 알고 있습니다. 5월 첫 주일은 어린이 주일, 5월 둘째 주일은 어버이 주일, 5월 셋째 주일은 교사주일, 5월 마지막 주일인 오늘은 부부주일로 지키고 있습니다.
부부는 둘이 하나가 된다는 의미로 매년 5월 21일을 부부의 날로 2007년 5월 2일을 세계 최초로 대통령 령 제 20045호로, 2008년 12월 국회 본회의에서 국가기념일로 통과되었습니다. 물론 교회도 오래 전부터 가정의 달 5월 넷째 주일을 부부주일로 지켜 왔습니다.
해를 거듭할수록 사람들의 학력수준과 경제수준은 높아지는 반면, 부모를 폭행 협박 감금하고 심지어 살인을 하는 패륜 사건이 증가하고, 부부의 이혼율이 점점 더 증가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와 같은 가정의 붕괴는 결과적으로 사회와 국가를 불행하게 만드는 반인륜적인 범죄일 뿐 아니라, 하나님의 창조 질서에 위배되는 불신앙적인 죄악인 것입니다.
1) 하나님은 최초의 가정을 인간의 필요가 아니라, 하나님이 보시기에 독신으로 사는 것이 좋지 않았기 때문에 하나님이 만들어 주셨기 때문에 가정을 인위적으로 파괴하는 것은 하나님의 뜻을 거역하는 불신앙적인 죄가 된다는 것입니다.
(창 2:22) “여호와 하나님이 아담에게서 취하신 그 갈빗대로 여자를 만드시고 그를 아담에게로 이끌어 오시니” (창 2:23) “아담이 이르되 이는 내 뼈 중의 뼈요 살 중의 살이라 이것을 남자에게서 취하였은즉 여자라 부르리라 하니라” (창 2:24) “이러므로 남자가 부모를 떠나 그의 아내와 합하여 둘이 한 몸을 이룰지로다”
2) 예수님께서도 가정은 사람에 의해 만들어진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만드신 것이며, 단지 남녀가 한 가정에서 사는 것이 부부가 아니라 믿음 안에서 하나로 연합하는 것이라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부부는 수학적인 숫자로는 둘이지만 부부가 되면 누구도 나누어서는 안 되는 한 몸이 되는 신비한 연합을 통해 가정이 이루어졌다고 하셨습니다.
또한 하나님은 서로 남남인 둘이 한 몸이 되는 신비한 연합을 통해서 가정을 이루게 하셨을 뿐 아니라 그 가정을 누구도 나눌 수 없도록 울타리를 쳐주셨습니다.
(마 19:6) “그런즉 이제 둘이 아니요 한 몸이니 그러므로 하나님이 짝지어 주신 것을 사람이 나누지 못할지니라 하시니”
그렇다면 인위적으로 가정을 파괴하는 것이 왜 불신앙적인 죄일까요? 죄에 대한 정의가 하나님의 법을 어기는 것이라면, 이처럼 예수께서 “하나님이 짝지어 주신 것을 사람이 나누지 못할지니라”고 분명하게 선언하셨기 때문에 인위적으로 가정을 파괴하는 것이 불신앙적인 죄인 것입니다.
인생이란 겨우 밥이나 먹고 겨우 생명만 유지하는 것이 아니라, 매일 매일을 보람되고 행복한 삶을 살아야 하는 것이 아닙니까?
마찬가지로 부부는 평생 헤어지지 않고 함께 살기만 하면 다가 아니라 일평생 행복하게 살아야만 행복한 부부입니다.
그렇다면 부부가 어떻게 사는 것이 행복한 부부인지 인간은 상대적인 존재이기 때문에 기준점이 있어야만 한다면 과연 어떻게 사는 것이 행복한 부부일까요?
그 기준은 유명한 상담가가 정하는 것이 아니라 가정을 설계하고 만드신 창조주 하나님이 정하신 기준을 잣대로 삼아야 할 것입니다.
어떤 물건을 만들기 위해서는 먼저 세부 설계도를 그려서 그 설계도에 따라 빌딩을 건축하기도 하고 자동차나 냉장고를 만드는 것처럼 하나님께서 가정을 만드실 때에도 행복한 가정의 설계도를 성경에 그려 놓으셨고 행복한 가정의 모델 하우스고 만들어 놓으셨습니다.
인간을 가리켜 만물의 영장이라고 하지만 실상 인간은 태어날 때 아무것도 아는 것이나 할 수 있는 것이 없는 무지하고 연약한 상태로 태어나 자라가면서 부모와 선생과 이웃을 통해서 보고 듣고 배우고 훈련하는 과정의 반복을 통해서 비로소 새로운 것들을 경험하게 되고 알게 되고 할 수 있게 되는 것입니다.
인간은 어떤 부모 밑에서 태어나 어떤 스승의 가르침을 받았고 어떤 환경 속에서 자랐는가에 따라 성격이 형성되고 재능이 발견되어지기 때문에 성장 배경과 교육 환경이 중요한 것입니다.
인간이 가정에서 태어나 자라면서 부모의 사랑을 통해서 가정을 경험하고 부부의 사랑하는 모습을 통해서 새로운 가정을 만들 준비와 훈련을 받게 되어 가정을 대물림하게 되는 것입니다.
만일 어려서 부모의 사랑을 흡족하게 받으며 자랐다면 그도 자라서 남을 사랑하게 되고, 만일 부모가 서로 사랑하는 행복한 가정에서 자랐다면 그도 자라서 가정을 이루게 되면 부부가 사랑하는 행복한 가정을 만들어 가게 되는 것입니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어려서 그와 같은 사랑을 경험하지 못했을 것이고, 그와 같은 긍정적인 사랑을 경험하지 못했을 것입니다.
정반대로 부모에게 매를 맞고 욕을 먹으며 자라거나, 부모가 사소한 일로 시도 때도 없이 부부싸움을 하고, 분방을 하고 분방을 하는 모습을 보며 자랐다면, 막상 결혼을 하여 가정을 이룬다고 할지라도 어려서 보고 배운 것이 부정적인 것이기 때문에 행복한 가정을 이루는 방법을 알지 못하게 될 것입니다.
아이들이 본의 아니게 어려서부터 부모가 좋아하는 드라마를 어깨 너머로 보게되는데 공통된 소재는 대부분 삼각관계나 애증이 주제가 된 것들이며 비정상적인 스토리들입니다.
그러므로 어디를 둘러보아도 행복한 가정의 모델이 없는 시대에서 요즘 청소년들이 자라가고 있으며, 점차 이혼율이 상승하고 있는 이유가 나름대로 사방 도처에 잠재되어 있는 것이 현실입니다.
그 결과 잘못된 가정, 상처뿐인 가정, 사랑이 없는 가정, 갈등하는 가정은 결국 사회와 국가를 병들고 불행하게 만드는 근본적인 요인이 될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가정을 만드신 하나님께서 그려주신 행복한 가정의 설계도는 부부가 서로 사랑하고 자녀들이 부모에게 효도하고 제자가 스승을 공경하는 것이었는데, 왜 세상이 고속도로에서 빠른 속도로 역주행하는 자동차처럼 가정과 사회가 역주행을 하는 세상이 되고 있는 것일까요?
그것은 하나님이 아름답게 만드신 가정에 죄가 들어왔기 때문입니다. 그 죄는 마치 구제역처럼 번져서 모든 가정들을 병들게 만들었기 때문입니다. 그와 같은 가정을 회복하기 위해서는 가정을 만드신 창조주 하나님의 설계도인 성경을 보아야 하고 시작품인 교회를 모델로 삼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1. 행복한 가정의 설계도인 성경
행복한 가정은 남편이나 아내 혼자서 만들 수 없습니다. 부부에게 모두에게 공평하게 책임과 의무가 주어졌기 때문에 부부가 각자 그 의무를 충실히 이행하게 되면 가정의 행복은 마치 호박처럼 주렁주렁 맺게 되는 것입니다.
1) 아내의 책임과 역할
(벧전 3:1) “ 이와 같이 아내들은 남편에게 순종하십시오. 그러면 하나님을 멀리하고 그 말씀에 귀를 기울이지 않던 남편들도 아내의 순종하는 모습에 의해 하나님을 믿게 될 것입니다. 억지로 설득하려는 백 마디 말보다 온전한 행동이 남편을 감동시킬 것입니다.”(벧전 3:2) “남편들은 여러분이 하나님을 경외하며 깨끗하게 살아가는 것을 지켜 보고 있습니다.”(벧전 3:3) “화려한 옷이나 보석을 걸치거나, 머리치장을 한다고 여러분이 아름답게 보이는 것은 아닙니다.”(벧전 3:4) “진정한 아름다움은 내면의 아름다움에서 나오는 것입니다. 온유하고 정숙한 마음을 가진 사람이 정말 아름다운 사람입니다. 이러한 아름다움은 없어지지도 않으며, 하나님께서도 귀하게 보시는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가정이라는 자동차가 고장 난 원인은 행복한 가정의 기본 설계도인 성경 과 역행을 하는 부부가 되어가고 있기 때문입니다.
성경은 분명히 행복한 가정을 위해서는 아내들이 믿음의 조상 아브라함의 아내 사라처럼 남편을 가정의 주인이라고 부르며 남편의 권위를 인정하고 복종하는 가정이 되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남편의 마음을 감동시키는 것은 부인의 겉치장이 아니라 내면의 아름다움과 정숙한 마음씨라는 것입니다.
2) 남편의 책임과 역할
물론 과거의 우리 어머니들에게서는 그러한 모습을 부분적으로나마 볼 수 있었으나 점차 그것이 무너진 이유와 책임은 남편들이 아내들에게 행복한 가정의 원리인 성경을 역행하는 가장노릇을 하였기 때문입니다.
이제는 남편에 대한 신뢰가 깨졌기 때문에 가부장 중심의 사회가 붕괴되고 여권이 신장되면서 남편들이 기를 피지 못하는 가정들이 점차 늘어가면서 가정에서 자녀들이 본을 받지 못하면서 문제의 가정을 양산하는 악순환이 시작된 것입니다.
그렇다면 행복한 가정의 설계도인 성경은 가정에서 남편의 책임과 역할에 대해서 무엇이라고 가르치고 있습니까?
(벧전 3:7) “남편들아 이와 같이 지식을 따라 너희 아내와 동거하고 그를 더 연약한 그릇이요 또 생명의 은혜를 함께 이어받을 자로 알아 귀히 여기라 이는 너희 기도가 막히지 아니하게 하려 함이라
(벧전 3:7) “마찬가지로 남편들도 아내를 잘 이해하고 돌보아 주며 살아가십시오. 아내를 존중해 주시기 바랍니다. 아내는 남편인 여러분보다 더 연약합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여러분에게 주시는 것과 똑같은 은혜인 참생명을 아내들에게도 주셨습니다. 아내를 소중히 대함으로써 여러분의 기도가 막히지 않도록 하십시오.”
여기서 ‘지식을 따라(잘 이해해야 한다)’는 남편은 아내가 바라는 것이 무엇이고 관심사가 무엇이고 고민이 무엇이고 불만이 무엇이고 필요가 무엇인가에 대해서 알고 그것을 대처해 나가야 부부간에 불화가 없게 된다는 것입니다.
또 ‘동거하며(돌보아 주며)’라는 말은 혼자있게 하지 말고 함께 거주하며 함께 살아야 한다는 뜻이고, ‘연약한 그릇’이라는 말은 남자처럼 강하지 않기 때문에 상처를 쉽게 받을 수 있어서 함부로 대하지 말고 유리그릇처럼 조심해서 대하라는 것입니다.
더 나아가서 ‘생명의 은혜를 함께 이어받을 자(참 생명을 주셨다)’는 함께 시상을 받는다는 뜻으로 가정 행복의 공동 상속자가 되게 하셨다는 뜻입니다.
그래서 사회법에서도 부부가 갈라서게 되면 아무리 남편이 열심히 일을 해서 재산을 뫃았다고 할지라도 아내의 내조 없이는 불가능하기 때문에 재산을 공동 분배하게 되는 것입니다.
만일 교회를 다니는 남편이라면 교회만 잘 다닌다고 다가 아니라 가정에서 아내를 사랑하지 않으면 아무리 열심히 기도를 한다고 해도 하나님이 기도를 응답하시지 않으신다고 말씀하였습니다.
(벧전 3:7하) 이는 너희 기도가 막히지 아니하게 하려 함이라
2. 행복한 가정의 모델이 교회
그렇다면 왜 예수를 믿고 교회를 다니게 되면 행복한 가정을 이룰 수 있을까요? 그것은 하나님께서 가정을 행복한 가정의 모델로 세워 놓으셨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창조 사역의 절정이 바로 가정의 탄생이라면, 하나님의 구원 사역인 십자가 사건의 결과가 바로 신약 교회의 탄생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우리가 육신적으로 세상에 태어나며 경험하는 첫 공동체가 가정이라면, 예수를 믿고 영적으로 거듭나며 경험하는 첫 영적인 공동체가 바로 교회입니다.
가정의 기초가 부부 관계라면, 교회의 기초는 그리스도와 성도와의 관계입니다. 그런데 바울사도는 부부관계의 진정한 교훈을 우리가 그리스도와 성도의 관계에서 배워야 한다고 가르칩니다.
설령 어려서 부모에게서 배우고 본적이 없을지라도 아내들이 남편에게 복종하고 남편이 아내를 자기 몸처럼 사랑하는 것은 마치 예수 그리스도와 교회와의 관계를 통해서 배울 수 있기 때문입니다.
1) 아내의 책임과 역할
(엡 5:22) “아내들이여 자기 남편에게 복종하기를 주께 하듯 하라”(엡 5:23) “이는 남편이 아내의 머리 됨이 그리스도께서 교회의 머리 됨과 같음이니 그가 바로 몸의 구주시니라”(엡 5:24) “그러므로 교회가 그리스도에게 하듯 아내들도 범사에 자기 남편에게 복종할지니라”
(엡 5:22) “아내 된 사람들은 주님께 순종하듯 자기 남편에게 순종하십시오.”(엡 5:23) “그리스도께서 당신의 몸인 교회의 구원자로서 그 교회의 머리가 되시는 것처럼 남편은 아내의 주인이 됩니다.”(엡 5:24) “교회가 그리스도께 순종하는 것처럼 아내도 모든 일에 자기 남편에게 순종해야 합니다.”
2) 남편의 책임과 역할
(엡 5:25) “남편들아 아내 사랑하기를 그리스도께서 교회를 사랑하시고 그 교회를 위하여 자신을 주심 같이 하라”
(엡 5:25) “남편들은 그리스도가 교회를 사랑하듯이 아내를 사랑하십시오. 그리스도는 생명을 내어 주시기까지 교회를 사랑하셨습니다.”
아내의 책임에 비해 남편의 책임이 너무 간단하게 기록되어 있는 것 같아도 남편이 아내를 사랑해야 하는 기준이 예수 그리스도께서 교회를 위해 십자가에 달려 죽으시기 까지 사랑하신 것처럼 남편들도 아내를 위해 자신을 죽이기까지 사랑해야 한다는 것은 결코 남편의 책임이 아내보다 가벼운 것이 아닌 것입니다.
그리스도는 교회의 남편이요, 교회는 그리스도의 신부입니다. 그리스도는 교회를 사랑하십니다.
주님께서는 교회가 보잘것없어도, 부족해도, 마음에 들지 않아도 사랑하셨습니다. 우리가 아직 죄인 되었을 때에도 주님은 우리를 사랑하셨습니다(롬 5:8).
그리스도께서는 교회가 영광스럽고 아름다워서가 아니라 영광스럽고 아름답게 만들기 위해서 교회를 사랑하셨습니다.
따라서 아내에 대한 남편의 사랑도 이와 같아야 합니다. 아내가 처음 사랑할 때와는 달리 세월의 흐름과 함께 점차 부족해 보이기도 하고 보잘것없이 보일 수도 있습니다. 그럼에도 남편은 아내를 사랑해야 합니다. 사랑은 아내가 완벽해서 하는 것이 아닙니다. 주께서는 우리가 비록 허물과 약점과 죄가 많을 지라도 우리를 사랑하시고 신부로 맞아 주셨습니다.
남편은 그리스도의 이러한 그리스도의 사랑을 본받아야 하는 것입니다. 오늘 성경은 25-33 절에서 '아내 사랑'을 세 번이나 반복해서 강조하고 있습니다.
가) 남편은 희생적인 사랑
그리스도는 교회를 위해서 '자신'을 주셨습니다. 교회에 대한 그리스도의 사랑이 그러합니다. 그리스도는 당신의 교회를 위해 생명을 내어줌으로써 그의 신부 된 성도들을 구원하셨습니다. 이것이 교회를 향한 주님의 사랑의 특징입니다.
부부간에도 이러한 사랑이 있어야 합니다. 진실한 사랑은 고통의 순간을 통해서만 입증되며, 또 어떠한 고통도 극복케 합니다.
따라서 부부간에는, 특히 가정의 머리가 되는 남편에게는 희생적이고 지속적인 사랑이 있어야 하는 것입니다.
무엇보다도 남편은 아내 위에 군림하기 위해 있는 존재가 아님을 기억해야 합니다. 지난 날 가정 문제요인 중 큰 부분은 남편들의 잘못된 권위주의가 문제였습니다.
아내는 남편에게 예속되고 남편은 아내 위에 군림한다는 남편들의 잘못된 부부관이 끊임없이 많은 문제들을 발생시킨 것입니다. 따라서 남편은 아내를 사랑과 인격의 대상으로 보아야 하며, 복종을 강요하기보다 아내를 위해 먼저 희생할 줄 알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나) 사랑의 수고에 따르는 고통
그리스도께서 교회를 위해 당신을 십자가에 못박으신 것처럼 남편이 아내에게 '자기를 준다'는 일이 결코 말처럼 쉽지 않습니다.
자기희생이 비록 봉사의 방법이요 사랑의 한 표현 수단이지만, 역시 고통스러운 것을 부인할 수는 없는 사실입니다.
결혼하기 전에는 이기적인 독립체였던 '나'가 결혼을 통해서 새로운 공동체인 존재인 '우리'로 상황이 바뀌었기 때문에 이해 순응하는 어려움이 따르기 마련입니다.
또한 서로가 가까워짐에 따라 약점과 결점이 노출됨에 따라 서로를 비난하며 무시하는 아픔도 있을 수 있습니다. 두 사람의 조화를 위해서는 반드시 서로의 양보가 요구됩니다.
상대방에 대한 존중심 없는 양보란 결국 상대방을 근본적으로 무시하는 행위이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부부간에는 서로 상대방의 인격을 존중하며 서로의 부족함을 메워 주는 사랑의 수고가 끊이지 말아야 합니다.
입으로는 사랑의 고백을 연발하면서도 사랑의 수고가 뒤따르지 않는다면 그것보다 더 허망한 일은 없는 것입니다. 특별히 남편이 '아내의 머리'라는 말은 아내를 짓눌러도 된다는 말이 아니라 아내를 사랑하고 보호할 책임이 있는 남편에게 더 많은 사랑의 수고를 요구하는 것입니다.
결혼을 한지 오래 되었다면 부부간에 권태기도 경험을 하였을 것이고 때로는 부부 싸움도 여러 번 하였을 것입니다. 혹시 우리 가정에 주의 경보가 울린 것이 아닌가를 돌이켜 보면서 행복한 가정의 설계도인 성경 말씀으로 우리 가정이 되돌아가서 무엇이 우리 부부 사이에 문제점인지를 깨닫고 그것을 회개하고 돌이켜 새로운 변화가 일어나아먄 부부간의 행복이 아니라 온 가족의 행복을 기대할 수 있습니다.
예화
한번은 젊은이가 벌목을 하는 목장에 가서 취직을 하려고 주인을 찾아갔습니다. "주인님, 일을 할 수 있겠습니까? 저를 좀 써주십시오". 주인이 하는 말이 "그것은 자네에게 달렸어, 일을 잘하면 되는 것이고, 일을 잘 못하면 안 되는 것이지" 그래서 도끼를 받아들고 월요일에 얼마나 열심히 일을 했는지 모릅니다. 화요일에도 열심히 하고, 수요일에도 열심히 하고, 목요일에도 한나절을 했는데 주인이 불렀습니다. 그리고는 지금까지 일한 품삯을 계산해 주면서 가지고 가라고 하였습니다. "주인님, 제가 이렇게 열심히 했고 다른 일꾼들이 놀고 또 쉬는 시간에도 저는 일을 했는데 이럴 수가 있습니까?" 그 때 주인이 이야기를 합니다. "그러면 왜 그런 결과가 나오지?" "무슨 말씀이신데요?" "자네가 월요일에는 일등으로 제일 많은 성과를 올렸지. 둘째 날은 중 가운데쯤이었고, 셋째 날은 제일 꼴지야, 오늘은 지켜보니 영 형편이 없어. 왜 그렇지? 점점 능률이 떨어지고 있으니 더 이상 기대할 수가 없어. 가지고 가"라고 하였습니다. 이 젊은 청년은 이상했습니다. 그 때 주인이 "자네 혹시 도끼를 갈아서 날을 세운 일이 있나? 없나?"라고 물었습니다. "없습니다" "그러니까 그렇지" 도끼는 열심히 나무를 찍어서 하루를 일한 다음에는 반드시 갈고 갈아서 날을 세워야 하는데 도끼날을 세우기 위해서 가는 시간이 헛되게 보내는 시간인가? 그 시간이 노는 시간인가? 내일을 위해서 준비하는 시간이 아닌가? 라는 주인의 말에 결국 대답을 못했습니다. 그 젊은 이는 반드시 도끼는 여러 번 사용하고 난 다음에는 반드시 날을 갈고 세워야 한다는 사실을 모른 것입니다.
결 론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가 가정의 문제는 부부간의 성격차도 아니고 고달픈 인생살이에 결혼식 때 주례자 앞에서 다짐했던 어떤 경우에서도 서로 사랑하고 존중히 여기겠다고 맹세한 사랑의 도끼날이 무뎌진 것입니다.
사랑의 도끼의 날을 세워 놓고 한번 찍는 것은 무딘 도끼로 열 번을 찍는 것보다 능률이 더 좋습니다.
우리의 가정에서 사랑의 도끼날을 세우는 일이 무엇입니까? 서로 책임 전가하던 생활을 버리고 성경으로 돌아가 부부간의 문제점이 무엇인가를 깨닫고 회개하고 서로 화해하고 사랑의 도끼날을 갈고 세우는 것입니다.
성경은 사랑의 도끼날을 세우는 숫돌입니다. 기도는 그라인더입니다. 좋은 교회는 가정과 같은 교회인 것처럼 가정은 교회와 같은 가정이 되어야 행복한 가정이 될 수 있는 것입니다.
흔히 교회를 오해하는 사람은 아내나 남편이 예수를 믿으면 가정을 소홀히 하고 직장을 소홀히 하지 않을까? 염려하고 두려워하는데 그것은 교회를 가지 못하게 하는 마귀의 시험인 것입니다.
이단이 아닌 다음에야 교회는 가정을 화목하게 만들고 행복하게 만드는 곳이지 가정을 파괴하고 분란 시키는 곳이 아님을 우리는 알고 교회와 가정이 서로 연대를 하여 가정을 파괴하는 악한 세력들과 싸워 이겨야 합니다.
그러므로 행복한 가정을 위해서는 행복한 가정 설계도인 성경으로 돌아가고 행복한 가정의 모델 하우스인 교회에 나와서 진정한 부부의 사랑에 대해서 가르침을 받고 치유를 받고 훈련을 받을 때 가정에 놀라운 사랑의 혁명이 일어나게 되는 곳입니다.
성경에는 그와 같은 가정 파괴의 현상들이 종말이 되면 더욱 가속화될 것이라고 경고하고 있으며, 그에 대한 대비책까지 가르쳐 주고 있기 때문에 우리는 성경을 통해서 지금 우리가 살아가는 시대가 어느 시점인지를 깨닫고 성경이 처방하고 있는 행복한 가정을 이루어야 합니다.
온 가족이 예수 그리스도를 진심으로 믿고 행복한 가정의 설계도인 성경을 열심히 읽고 배워 행복한 아내 행복한 남편이 되어 행복한 자녀들로 자라게 해야만 이 나라 이 민족의 미래에 행복이 있는 것입니다.
그렇게 하기 위해서는 바로 지금 이 시간 이 자리에서 마음의 문을 활짝 열고 우리의 구원과 우리 가정의 행복을 위해 십자가에 달려 돌아가시고 죽은 지 사흘 만에 부활하신 예수 그리스도를 나의 마음을 열고 내 마음에 모셔 드려야 합니다.
(행 16:31) “이르되 주 예수를 믿으라 그리하면 너와 네 집이 구원을 받으리라 하고” (롬 10:10) “사람이 마음으로 믿어 의에 이르고 입으로 시인하여 구원에 이르느니라” (요 1:12) “영접하는 자 곧 그 이름을 믿는 자들에게는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권세를 주셨으니”
예수님은 우리에게 선행 공덕을 요구하시지 않고 단지 마음을 열고 주님을 믿겠노라고 고백하기만 하면 되는 것입니다.
(계 3:20) “볼지어다 내가 문 밖에 서서 두드리노니 누구든지 내 음성을 듣고 문을 열면 내가 그에게로 들어가 그와 더불어 먹고 그는 나와 더불어 먹으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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