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 교/이규왕목사

생각하는 교사 (딤후 2:1-7)

미션(cmc) 2011. 5. 16. 10:16

생각하는 교사
(딤후 2:1-7)

“1” 내 아들아 그러므로 너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은혜 가운데서 강하고 “2” 또 네가 많은 증인 앞에서 내게 들은 바를 충성된 사람들에게 부탁하라 그들이 또 다른 사람들을 가르칠 수 있으리라 “3” 너는 그리스도 예수의 좋은 병사로 나와 함께 고난을 받으라 “4” 병사로 복무하는 자는 자기 생활에 얽매이는 자가 하나도 없나니 이는 병사로 모집한 자를 기쁘게 하려 함이라 “5” 경기하는 자가 법대로 경기하지 아니하면 승리자의 관을 얻지 못할 것이며 “6” 수고하는 농부가 곡식을 먼저 받는 것이 마땅하니라 “7” 내가 말하는 것을 생각해 보라 주께서 범사에 네게 총명을 주시리라 ”


하나님의 말씀인 성경은 기독교인들에게만 유용한 종교서적이 아니라 인종, 문화, 종교 등 다양한 계층을 막론하고 만민에게 유용한 대중성을 가진 진리입니다.
그 이유는 하나님은 기독교인만의 하나님이 아니라 만인의 하나님이시며 인간은 어느 누구를 막론하고 하나님이 필요없을 만큼 전능하지 못하며, 예수 그리스도의 속죄가 필요 없을 만큼 거룩한 존재가 아니라 상대적인 차이가 있을 뿐이지 다 유한하고 죄인들이기 때문입니다.
그와 같은 인간이 무엇보다 먼저 해야 할 일은 돈을 버는 일이 아니라 자신의 타락한 본성을 깨닫고 회개하고 돌이켜 변하여 새사람이 되어야만 선을 행할 수 있고 구원을 받을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렇다면 어떻게 해야 변하여 새사람이 될 수 있으며 선을 행할 수 있는 사람이 될 수 있을까요? 그것은 성경 말씀을 배우고 가르치는 일을 통해서 성령이 역사하실 때만 가능한 것입니다.
사도 바울은 예수 그리스도를 경험한 이후 결혼도 하지 않고 성경을 세상에 널리 전하고 가르치는 일을 위해 전 생애를 바치는 가운데 믿음의 아들이라고 일컫는 디모데에게 성경에 대해서 이렇게 편지하였습니다.
(딤후 3:15) “그대는 어려서부터 성경을 알았는데, 이 성경은 그대를 지혜롭게 하여 그리스도 예수를 믿는 믿음을 통해 구원을 얻게 하였습니다.” (딤후 3:16) “모든 성경 말씀은 하나님께서 감동을 주셔서 기록되었기 때문에 진리를 가르쳐 주며, 삶 가운데 무엇이 잘못되었는지 알게 해 줍니다. 또한 그 잘못을 바르게 잡아 주고 의롭게 사는 법을 가르쳐 줍니다.” 딤후 3:17) “말씀을 통해 하나님을 바르게 섬기는 자로 준비하게 되고, 모든 좋은 일을 할 수 있는 사람으로 자라게 됩니다.”

사도 바울은 당시 소 아시에서 가장 영향력있는 에베소 교회를 담임하고 있는 젊은 목사 디모데에게 과연 무엇이 가장 중요한 사역이어야 하는지에 대해서 깊이 생각해 보라고 말씀하고 있는 것입니다.
(딤후 2:7) “내가 말하는 것을 생각해 보라 주께서 범사에 네게 총명을 주시리라 ”
여기서 ‘생각해 보라’는 말씀은 ‘파악하다, 정확한 의미를 이해하다, 경험하다’는 뜻을 가진 말(noevw)로 동명령 현재 능동태로 계속적으로 생각해 보라는 말씀입니다. 그렇게 할 때 하나님께서 과연 무엇이 중요한지, 무엇이 정답인지를 깨닫는 통찰력과 지혜를 주신다는 것입니다.
오늘 교사주일을 맞이하여 교회 안에서 주일학교나 구역이나 셀에서 성경을 가르치는 교사의 역할과 사명이 얼마나 중요한지를 오늘 성경 말씀을 보다 더 깊이 생각하는 시간이 되어야 하겠습니다.

1. 가르침의 중요성
바울이 제 1차 전도 여행 기간 중 루스드라에서 아버지가 헬라인이고 어머니가 독실한 유대인인 디모데를 만나서 복음을 전하여 개종을 시켰습니다(A.D. 48년경).
바울은 제 2차 전도 여행시 디모데를 비서 겸 조력자로 삼고 나중에는 사랑하는 믿음의 아들이라고 일컫게 되었습니다.
[딤후 1:2] 사랑하는 아들 디모데에게 편지하노니 하나님 아버지와 그리스도 예수 우리 주께로부터 은혜와 긍휼과 평강이 네게 있을찌어다
바울은 자신의 죽음이 멀지 않았음을 감지하고 믿음의 아들인 디모데에게 에베소 교회 담임을 위임하였기 때문에 에베소 교회의 열악한 환경에서 무엇보다 강해야 할 것을 권면하고 있습니다.
평소 사도 바울이 디모데를 사랑하고 있지만 더욱이 안타깝게 마음에 큰 부담을 갖고 무엇보다 간곡한 부탁을 합니다.
앞으로 바울의 도움과 격려 없이 홀로 바울의 몫까지 감당해야 한다는 것은 디모데에게 적잖은 부담이 되었을 것입니다.
더욱이 육체적으로, 성품적으로 유약한 디모데로서는 당시의 상황 자체에 두려움을 갖게 될 수 있는 위기의 순간이었습니다.
이러한 때에 바울은 디모데에게, 또 그런 상황에 있는 모든 성도에게 전하는 권면의 말씀입니다.
신앙의 위기를 느낄 때일수록 우리는 주님께 더욱 가까이 나아가야 합니다. 우리 안에 계신 주님은 위대한 전능자이십니다.
그러므로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으면 우리는 더 이상 겁낼 것이 없습니다. 주의 사명을 감당하는 원천은 주님의 은혜 안에 거하는 것임을 알아 늘 주님의 은혜와 도움을 구하고 그 앞으로 나아가야 합니다.
(딤후 2:1, 2) “ 내 아들아 그러므로 너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은혜 가운데서 강하고

사도 바울이 디모데에게 주께 받은 복음을 계승하여 준 목적은 디모데 한 사람의 구원을 위해서가 아니라 디모데를 통해서 또 다른 사람에게 복음을 계승시키게 하기 위해서였습니다.
디모데는 바울에게 안수 받음으로 그 사명을 계승하고 나중에는 에베소 교회를 담임목사가 되어 당시 유행하는 신화나 족보와 같은 다른 교훈을 사람들이 가르치지 못하게 하고 오직 복음만을 가르치게 하였습니다.
(딤전 1:3) “내가 마게도냐로 갈 때에 너를 권하여 에베소에 머물라 한 것은 어떤 사람들을 명하여 다른 교훈을 가르치지 말며 (딤전 1:4) 신화와 끝없는 족보에 몰두하지 말게 하려 함이라 이런 것은 믿음 안에 있는 하나님의 경륜을 이룸보다 도리어 변론을 내는 것이라”
이어서 바울은 디모데에게 자신에게 들은 것을 타인에게 가르치도록 부탁해서 그들로 하여금 또 다른 사람에게 성경을 가르치게 하라고 권면하였습니다.
(딤후 2:2)“ 또 네가 많은 증인 앞에서 내게 들은 바를 충성된 사람들에게 부탁하라 그들이 또 다른 사람들을 가르칠 수 있으리라”
다른 사람에게 복음을 가르치도록 부탁할 사람은 학벌이나 외모가 오직 신실하고 진실된 믿음의 사람이어야 한다고 했습니다.
여기서 '충성된'이라는 말은 '믿음직한, 진실한'이란 의미이고, ‘부탁하라’는 말씀은 ‘넘겨주다, 위탁하다, 천거하다‘ 는 뜻입니다.
여기서 ‘가르칠 수 있으리라’는 말은 ‘무엇을 받아들이기 위해 반복해서 손을 뻗힌다’는 뜻을 어근으로 삼는 말로, 이는 가르치는 자와 배우는 자 사이에 반복적인 학습 활동을 거쳐서 체계 있고, 철저하게 지식을 습득할 수 있다는 말입니다.
대표적인 사례가 바로 예수님이 열악한 환경 가운데서 무엇보다 열두 제자를 선택하여 특별히 가르치는 일에 전념하신 일입니다. 가르침의 사역은 예수님의 공생애 기간 중에 행하신 가장 중요한 직무 중에 하나였습니다.
예수님의 가르치심의 특징은 가르치는 대상이나 장소에 대해서 제한을 두지 않으셨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누구든지 예수님의 가르침을 받을 수 있었고, 회당이나 성전이나 바닷가나 산이나 들판을 가리지 않고 언제 어디서나 예수님은 사람들을 가르치셨습니다.
물론 열두 제자는 지극히 서민적인 평범한 사람들을 제자로 삼아 가르치신 일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예수님의 가르치심이 과연 효과적인 것인가에 대한 의구심도 들었지만 주님의 계획은 적중하여 그 제자들을 통해 지상에 예루살렘 교회가 세워졌습니다.

성경은 교회를 가리켜 예수님의 몸이라고 일컫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예수님의 몸된 교회는 예수님이 무엇을 기뻐하시고 원하시는지를 알아 그것을 구현해 나가야 합니다.
신약 성경에는 ‘제자’라는 말이 315번 언급되어 있으며 예수께서 제자들에게 마지막 당부하신 말씀도 모든 민족을 제자로 삼으라는 명령이었습니다.
(마 28:19) “그러므로 너희는 가서 모든 민족을 제자로 삼아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의 이름으로 세례를 베풀고”
오늘 성경 말씀은 그와 같은 성경 교육이 왜 중요하며, 가르치는 교사의 역할이 무엇이며, 어떤 마음의 자세가 필요한지에 대해서 가르치고 있습니다.

2. 세 가지 비유
만일 교회 안에서 성경 교육이 신학을 나온 전문성을 가진 목회자만의 전유물이었다면 교회가 오늘처럼 부흥하고 성장하지 못했을 것입니다.
교회 안에서 성경을 가르치는 교사는 영적으로 얼마나 중요한가를 오늘 성경 말씀대로 좀 더 깊이 생각하게 되면 정신이 번쩍 날 수밖에 없을 것입니다.
“3” 너는 그리스도 예수의 좋은 병사로 나와 함께 고난을 받으라 “4” 병사로 복무하는 자는 자기 생활에 얽매이는 자가 하나도 없나니 이는 병사로 모집한 자를 기쁘게 하려 함이라 “5” 경기하는 자가 법대로 경기하지 아니하면 승리자의 관을 얻지 못할 것이며 “6” 수고하는 농부가 곡식을 먼저 받는 것이 마땅하니라 “

1) 교사는 예수의 좋은 군사라는 것입니다.
교회는 마치 군대와 같아서 영적으로 거짓 복음을 전하는 이단자들과 하나님이 미워하시는 우상 숭배와 기독교를 핍박하든 여타 종교와의 영적 전쟁을 벌이고 있는 큰 군대입니다.
' 좋은 군사'는 그리스도를 전하면서 많은 반대와 핍박을 견디며 악을 대적하며 싸우는 자를 가리키는 것으로, 바울은 자신과 마찬가지로 앞으로 디모데 역시 당하게 될 핍박을 예측하고 그에게 미리 충고하고 있습니다.
무엇보다 군인은 복무하는 기간 동안 자기 마음대로 행동할 수 없는 것처럼 교사는 자신에게 주어진 임무에 전심전력(全心全力)하기 위해서는 사적이고 세상적인 일을 과감히 포기하고, 주의 나라와 복음을 위하여 자신의 삶 전체를 바쳐야 한다는 것입니다.
군인이 자기 상관을 기쁘게 하는 것을 제일 목적으로 삼는 것처럼 교사는나를 영적인 군사로 모집한 그리스도의 명령을 준행하며 복음을 선포함으로 그리스도를 기쁘시게 하는 것을 그의 삶의 유일한 목적으로 삼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2) 교사는 올림픽 국가 대표선수와 같다는 것입니다.
고대 올림픽경기에서 법을 지키지 않으면 절대 면류관을 얻을 수 없습니다. 그런데 고대 올림픽 경기 규칙 중에는 오늘날과는 좀 다른 규칙이 있었습니다.
신학자 웨스트는 ‘경기 전 10개월간의 예비 훈련을 받아야 하는데 규정된 훈련과 규칙적인 생활, 엄격한 식생활을 지켜 나가야하고 만일 규칙을 어기면 운동 경기에 참여하는 것이 금지되었다’고 말합니다.
복음 전도도 마찬가지입니다. 복음을 전하기에 앞서 자신부터 복음에 합당한 생활을 해야 합니다. 경기하는 자가 경기 규칙을 지켜야 하는 것처럼 복음 전도자는 복음을 전하는 내용에 있어서 오직 그리스도의 복음만을 전해야 합니다.
(고전 9:24) 운동장에서 달음질하는 자들이 다 달릴지라도 오직 상을 받는 사람은 한 사람인 줄을 너희가 알지 못하느냐 너희도 상을 받도록 이와 같이 달음질하라
여기서 '경기하는'이라는 말은 '분투하다' 혹은 '경쟁하다'라는 의미로 운동 선수가 법대로 경기에 임할 때 승리의 월계관을 받을 수 있듯이 바울은 디모데에게 그리스도께서 전해 주신 성경의 가르침과 복음을 따라 행할 때 주님 앞에서 면류관이 주어진다는 사실입니다.
이는 결코 복음을 전하는 교사의 일이 개인적인 자유 시간을 희생당하는 것 같지만 결코 그 수고가 헛되지 않다는 것입니다.

3) 교사는 씨 뿌리는 농부와 같다는 것입니다.
복음 전도자는 결실을 기대하며 복음의 씨를 뿌려야 합니다. 그리고 자신의 자녀처럼 돌봐야 합니다.
말씀을 연구하여 가르치고, 기도하고, 심방하여 마음을 나누고, 복음이 상대의 마음에 완전히 터를 잡아 그로 하여금 주님을 영접하여 새 생명이 되어 홀로 설 수 있을 때까지 최선의 노력을 아끼지 말아야 합니다.
복음 전도는 씨만 뿌리면 자연적으로 결실을 맺는 것이 아닙니다. 누군가의 인내와 수고가 있어야 합니다.
(갈 4:19) 나의 자녀들아 너희 속에 그리스도의 형상을 이루기까지 다시 너희를 위하여 해산하는 수고를 하노니
바울은 디모데에게 복음 전파와 주의 교훈을 가르칠 사람들을 세우라고 부탁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그에 합당한 사람들을 선별하는 기준은 ‘충성됨’입니다. 복음 전파에 합당한 사람은 바로 충성된 사람입니다. 많은 사람들이 복음 전파하는 자는 특별해야 하고, 특별한 은사가 있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복음 전도자가 갖추어야 할 최고의 덕목은 ‘충성’입니다. 충성됨만 있으면 하나님께서 지혜도 주시고 할 말도 가르쳐주십니다.
(고전 9:24) 운동장에서 달음질하는 자들이 다 달릴지라도 오직 상을 받는 사람은 한 사람인 줄을 너희가 알지 못하느냐 너희도 상을 받도록 이와 같이 달음질하라
복음 전파는 결코 쉬운 일이 아닙니다. 바울이 말한 대로 해산하는 여인의 고통처럼, 우리의 온 뼈마디를 탈골시키고, 기진맥진하는 고통이 반드시 따릅니다. 때문에 내 열정으로 단 순간에 많은 열매를 거두겠다고 덤비면 지쳐 결국에는 아무 것도 못합니다. 복음 전파자에게도 농부의 마음과 그 수고가 필요합니다. 복음 전도자는 결실을 기대하며 복음의 씨를 뿌려야 합니다. 그리고 자신의 자녀처럼 돌봐야 합니다.
기도하고, 심방하고, 마음을 나누고, 복음이 상대의 마음에 완전히 터를 잡아 그로 하여금 주님을 영접하여 새 생명이 되어 홀로 설 수 있을 때까지 최선의 노력을 아끼지 말아야 합니다. 복음 전도는 씨만 뿌리면 자연적으로 결실을 맺는 것이 아닙니다. 누군가의 인내와 수고가 있어야 합니다.
(요 4:35) 너희는 넉 달이 지나야 추수할 때가 이르겠다 하지 아니하느냐 그러나 나는 너희에게 이르노니 너희 눈을 들어 밭을 보라 희어져 추수하게 되었도다 (요 4:36) 거두는 자가 이미 삯도 받고 영생에 이르는 열매를 모으나니 이는 뿌리는 자와 거두는 자가 함께 즐거워하게 하려 함이라

오늘 교사주일을 맞이하여 내가 하는 일과 내가 하여야 할 일과 내가 할 수 있는 일 중에서 세상의 그 무엇으로도 불가능한 사람을 구원하고 사람을 변화시키는 복음의 말씀을 전하고 가르치는 교사일이 얼마나 중요한가를 깊이 생각하고 그 일에 자원하고 자부심을 갖고 충성을 다하는 주일학교와 구역과 셀의 교사들이 되시기 바랍니다.
그렇게 할 때 단 한번 뿐인 인생을 어떻게 사는 것이 무엇을 위해 사는 것이 최선의 삶인지를 깨닫는 지혜와 총명을 하나님께로부터 받게 될 것입니다.

3. 교회 교육의 중요성
교회가 예나 지금이나 예배, 교육, 전도, 구제, 선교 등 다양한 사역 중에 성경 교육을 위한 투자에 비중을 많이 두는 이유는 진정한 성경 교육이 없이는 바른 예배나 전도나 구제나 선교가 불가능하기 때문입니다.
물론 교회를 통해서 주일 중심으로 이루어지는 교회 교육이, 엿새 동안 이루어지는 일반 교육과 비교할 때 전문성이나 시간과 물질의 투자 면에서 부족한 면이 많이 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모태 신앙이거나 유년 주일학교 시절부터 교회 교육을 경험하며 자란 성인들은 그와 같은 교회 교육을 통해서 성경을 배우게 되었고, 하나님을 알게 되었고, 예수님을 믿게 되었고, 진정한 사랑의 삶이 무엇인가를 배우게 되었을 것입니다.
만일 그나마 교회 교육이 없다면 오늘날 전통적인 진리나 가치관을 거부하고 끊임없는 변화와 개혁을 주장하는 포스트모더니즘 시대에 수많은 청소년들이 하나님을 알지 못하였을 것입니다.
그러나 교회 교육은 급변하는 세상 가치관에 따라 인간관계나 국가관이나 세계관 시시 때때로 달라지는 일반 교육과 달리 만고불변의 성경을 절대적인 진리로 믿고 가르치기 때문에 그 나마 전통적인 가치관이나 윤리나 도덕을 유지시켜주고 있습니다.
물론 성경을 중심으로 하는 교회 교육은 마치 유행처럼 급변한 시대의 최신 정보만이 최고의 지식이라고 생각하는 일반교육과 비교할 때 융통성이 없는 진부한 교육이라고 오해할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모든 국가가 금을 절대화폐의 가치로 삼는 이유가 금은 변하지 않기 때문이라면, 성경은 영원불변하신 하나님께서 인간을 구원하시기 위해 성령의 감동으로 기록된 하나님의 말씀이기 때문에 시시때때로 변하는 세상지식을 따를 필요가 없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어느 시대를 막론하고 누구든지 성경을 읽고 듣고 배우는 자에게 구원과 교훈과 책망과 바르게 변화시키는 효능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일반 교육으로는 기대하기 어려운 부패한 인간의 심성을 변화시키는 탁월한 능력을 가지고 있는 것입니다.
세상의 일반 교육은 가르치는 사람의 능력에 따라 교육의 효과가 달라지지만 성경은 가르치는 사람이 누구이든지 가르치는 성경 자체가 사람을 변화시키는 능력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모든 사람에게 가능성과 희망을 주고 있다는 말입니다.
예화: 교도소에서 온 편지
그럼에도 불구하고 성경에 대한 무지나 종교적인 편견을 가진 일반 교육자들이 도덕과 윤리 교육이 전무한 이 시대에 아무런 대안도 없이 학생들에게 성경을 가르치지 못하게 하는 것은 미래의 시대를 더욱 불행하게 만드는 자살골인 것입니다.
일반 교육이나 성경 교육을 막론하고 반드시 가르치는 교사와 가르침을 받는 제자가 있어야 하며, 상호간에 신뢰와 사랑이 동반되어야만 합니다.
그렇게 하기 위해서는 먼저 가르치는 교사가 배우는 제자에게 신뢰를 받을 수 있는 실력과 감동을 줄 수 있는 인격을 겸비해야만 교육에 효과가 일어날 수 있습니다.
특별히 교회에서 이루어지는 성경 교육은 교사 자신이 먼저 성경을 배우는 과정을 통해서 먼저 변화를 경험해야만 합니다.

결 론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 교회는 1953년 4월 19월에 18명이 한 가정에 모여서 시작된 수원제일교회가 오늘에 이르기까지 무엇보다 중요하게 여긴 것은
1) 헌신적인 주일학교 교사들의 수고와
2) 성경 강해 중심의 설교와 지속적인 교리 교육과
3) 제자훈련과 셀 소그룹 모임을 통해 평신도를 변화시키는 일이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안타까운 것은 점차 시간이 갈수록 그와 같은 열기가 식어져가고 있다는 것입니다.
그 결과 주일학교 교사를 지원하는 사람들이 많지 못하며, 성경 강해나 교리 설교 보다는 귀에 듣기 편한 시사성 설교를 선호하며, 제자훈련이나 셀 모임에 참석하는 것을 부담스럽게 생각합니다.
점차 주일 낮 예배 한 시간으로 신앙생활이 전부인 성도들이 늘어가고 있는 안일 무사한 신앙으로는 자녀들과 후손들에게 신앙의 유산을 물려주기는커녕 자신의 신앙유지도 어려워질 것이라는 우려를 금할 수 없습니다.
사람은 자기가 좋아하는 일을 위해 시간과 물질과 관심을 쏟게 됩니다. 그렇다면 예수님은 공생애 기간에 무엇에 가장 많은 시간과 물질과 관심을 쏟으셨는가를 보면 예수님이 무엇을 중요하게 여기셨는가를 짐작할 수 있습니다.
(마 9:35) “예수께서 모든 도시와 마을에 두루 다니사 그들의 회당에서 가르치시며 천국 복음을 전파하시며 모든 병과 모든 약한 것을 고치시니라”
우리가 전해 받은 복음은 먼저 들은 사람이 다른 사람에게 전해 주어야 확장되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전능하셔서 말씀 한마디면 인간의 마음을 움직일 수 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사람에 의해 복음이 전파되도록 하셨으며, 그것을 통해 당신이 택한 자로 믿고 구원 얻도록 하셨습니다. 주님께서는 분명 사람들에게 복음 전파의 사명을 주셨습니다. 복음 전파는 우리에게 맡겨진 절박한 사명입니다.
(마 28:19) 그러므로 너희는 가서 모든 민족을 제자로 삼아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의 이름으로 세례를 베풀고 (마 28:20) 내가 너희에게 분부한 모든 것을 가르쳐 지키게 하라 볼지어다 내가 세상 끝날까지 너희와 항상 함께 있으리라 하시니라
어느 특정인이 아니라 우리 모두에게 주신 사명입니다. (고전 3:9) 우리는 하나님의 동역자들이요 너희는 하나님의 밭이요 하나님의 집이니라
오늘의 교회도 바로 이 같은 원리를 따라 주일학교나 구역 셀의 교사들이 세워지고 있는 것입니다.
아름다운 교회 건물로는 사람을 모이게 할 수 는 있을지 몰라도 사람을 변화시킬 수는 없습니다. 그러나 성경 말씀은 모인 사람을 변화시키는 능력을 가지고 있습니다.
아무리 전 세대에 교회를 아름답게 건축하여 다음 세대에 물려준다고 할지라도 영적인 지도자의 교육과 훈련이 미흡할 경우 교회의 본질인 사랑과 화평이 깨어지고 분쟁과 분열과 혼란에 빠지게 될 위험성이 큽니다.
그러나 전 세대에 성경 중심의 교회 교육과 제자훈련을 통해서 사람을 변화시키고 영적으로 성장시켰다면 세월이 흘러 갈수록 그 교회는 화기애애한 가운데 부흥하고 성장하게 될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