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 6:1) “이는 곧 너희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너희에게 가르치라고 명하신 명령과 규례와 법도라 너희가 건너가서 차지할 땅에서 행할 것이니” (신 6:2) “곧 너와 네 아들과 네 손자들이 평생에 네 하나님 여호와를 경외하며 내가 너희에게 명한 그 모든 규례와 명령을 지키게 하기 위한 것이며 또 네 날을 장구하게 하기 위한 것이라” (신 6:3) “이스라엘아 듣고 삼가 그것을 행하라 그리하면 네가 복을 받고 네 조상들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네게 허락하심 같이 젖과 꿀이 흐르는 땅에서 네가 크게 번성하리라”
요즘 세계 도처에서 일어나고 있는 지진 해일 화산 폭발 토네이도와 같은 기상 이변을 통해서 자연의 위력 앞에 인간이 자랑하는 과학이나 문화가 얼마나 무기력한 것인가를 실감하게 됩니다.
그렇다면 그와 같은 자연을 친히 만드시고 주관하시는 하나님은 어떤 분이신가를 우리가 바로 알아야 할 필요가 있는 것입니다.
성경은 그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당신이 어떤 분이시며 무엇을 우리를 왜 세상에 태어나게 하셨으며 무엇을 원하시고 기뻐하시는가를 우리에게 알려 주시기 위해서 성경을 통해 계시해 주셨습니다.
그 중에 가장 기본이 되는 말씀이 창세기요, 창세기 가운데서 핵심이라고 할 수 있는 말씀이 바로 엿새 동안 세상을 창조하시면서 마지막에 당신의 형상으로 인간을 지으시고 아담과 하와를 짝지어 한 가정을 이루게 하신 다음 선포하신 축복의 말씀입니다.
(창 1:28) “하나님이 그들에게 복을 주시며 하나님이 그들에게 이르시되 생육하고 번성하여 땅에 충만하라, 땅을 정복하라, 바다의 물고기와 하늘의 새와 땅에 움직이는 모든 생물을 다스리라 하시니라”
여기서 ‘복을 주시며’라는 말씀은 무릎 꿇다, 축복하다, 복을 주다, 찬양하다 라는 뜻으로 구약에서 축복은 성공, 번영, 생산, 장수를 위한 능력을 부여한다는 의미의 미완료 동사입니다.
또한 '다스리라’는 말은 지배하다는 뜻이고 많다, 크다, 증가하다 라는 뜻이고, ‘땅을 정복하라’는 뜻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이 인류에게 주신 생육과 번성과 충만과 정복의 축복은 한시적인 것이 아니라 지속적인 축복임을 알 수 있습니다.
물론 동식물은 (창 1:12) “땅이 풀과 각기 종류대로 씨 맺는 채소와 각기 종류대로 씨 가진 열매 맺는 나무를 내니 하나님이 보시기에 좋았더라” 는 말씀처럼 다양한 종류를 만드셨기 때문에 번성하고, 충만하기가 쉽지만 인간은 오직 한 가정이었기 때문에 하나님이 번성케 하여 주시지 않으면 생존조차 염려가 될 수 밖에 없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명령과 약속만 하시는 분이 아니라 그 약속을 지키시는 신실한 하나님으로 인간들을 계속해서 번성하게 하심으로 땅에 가득하였다고 하였습니다.
(창 9:7) “너희는 생육하고 번성하며 땅에 가득하여 그 중에서 번성하라 하셨더라”
그러나 문제는 타락한 인간은 그와 같은 번성의 축복을 받을 때 마다 하나님을 배반하고 범죄하고 타락하였습니다. 그 예가 에덴동산과 같았던 소돔과 고모라의 타락으로 불심판을 받은 일이고, 노아 홍수 심판을 받은 일이고, 바벨탑 사건이고, 이스라엘의 역사입니다.
이는 어느 시대, 어느 누구를 막론하고 만일 유형적인 번성과 더불어 영적인 번성이 선행되지 않게 되면 그 후유증으로 반드시 죄를 범하게 되고 도덕적이고 윤리적인 타락으로 말미암아 결국 징계와 심판과 멸망을 받게 된다는 인류 역사의 교훈을 간과하지 말아야 합니다.
아무리 값비싼 자동차라고 할지라도 고속 질주할 수 있는 액셀러레이터와 더불어 위기 상황에서 감속을 시키고 정지를 하여 대형 사고를 미연에 방지할 수 있는 블레이크가 잘 들어야만 편안하게 고속도로를 질주할 수 있습니다.
그와 마찬가지로 모든 인간이 바라는 ‘번성’이라는 축복이 액셀러레이터와 더불어 반드시 ‘법’이라는 브레이크가 균형을 유지하지 않으면 인간이 바라는 번성은 도리어 멸망을 자초하는 독이 될 수 있다는 것입니다.
오늘 성경은 인간에게 필요한 진정한 번성이 무엇이며 그 번성의 축복을 유지하기 위해서 반드시 전제되어야 할 것이 무엇인가를 가르쳐 주고 있습니다.
1. 새 술은 새 부대에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의 하나님이신 여호와께서 아브라함의 자손인 이스라엘 백성들을 사백 삼십년간 애굽의 압제에서 자유와 해방을 얻게 하신 후 홍해를 건너 시내 산 아래로 모으셨습니다.
하나님께서 모세를 통해서 이스라엘 백성들을 거룩한 하나님의 백성으로 구별하시고 그들을 조상 아브라함에게 약속하신 젖과 꿀이 흐르는 가나안 땅으로 인도하여 새로운 나라를 건설하시기 위해 그들에게 율법을 주시고 하나님의 백성으로 언약을 맺으셨습니다.
그 언약의 내용은 출애굽 한 이스라엘 백성들이 여호와 하나님이 시내 산에서 모세를 통해 선포하신 언약의 말씀을 잘 지키면 번성하는 복을 주시겠다는 약속이었습니다.
(출 12:17) “너희는 무교절을 지키라 이 날에 내가 너희 군대를 애굽 땅에서 인도하여 내었음이니라 그러므로 너희가 영원한 규례로 삼아 대대로 이 날을 지킬지니라”
그리고는 이스라엘 백성들이 그 언약의 말씀을 지키는지 지키지 않는지를 시험하시기 위해 광야 길로 사십년 동안 인도하셨습니다.
물론 그 광야에는 먹을 것도 마실 것도 입을 것도 없는 거칠고 메마른 땅이었기 때문에 여러 가지 부족한 것이 많았고 위험한 곳이었기 때문에 오로지 여호와 하나님만을 의지해야만 살 수 있는 곳이었습니다.
하나님은 사십년 동안 그들에게 만나와 반석의 생수로 배부르게 먹고 마심으로 사람이 떡으로만 사는 것이 아님을 체험하게 하셨습니다.
물론 전능하신 하나님께서는 사십년이라는 기나 긴 시간을 낭비하지 않고 이스라엘을 당장 약속하신 젖과 꿀이 흐르는 가나안 땅으로 들어가게 하실 수 있으심에도 불구하고 그렇게 하시지 않으신 이유는 그들을 시험하시기 위함이었습니다.
(신 8:3) “너를 낮추시며 너를 주리게 하시며 또 너도 알지 못하며 네 조상들도 알지 못하던 만나를 네게 먹이신 것은 사람이 떡으로만 사는 것이 아니요 여호와의 입에서 나오는 모든 말씀으로 사는 줄을 네가 알게 하려 하심이니라”
이스라엘 백성들은 사십년 동안 뜨거운 햇빛과 한밤의 추위가 교차되는 광야에서 생존한다는 것이 불가능하였으나 낮에는 구름기둥 밤에는 불기둥으로 추위와 더위를 막아주심으로 하나님은 졸지도 주무시지도 않고 이스라엘을 지키시는 자이심을 체험하게 하셨습니다.
(시 121:4) “이스라엘을 지키시는 이는 졸지도 아니하시고 주무시지도 아니하시리로다”
이스라엘 백성은 그와 같은 하나님의 축복으로 사십년 동안 광야를 지나면서 번성하게 하셔서 육십만 명의 자녀를 얻게 하셨습니다. 배가가 되게 하신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말씀하신 것 중에 새 술은 새 부대에 담아야만 부대가 터지지 않고 새 술을 안전하게 보관할 수 있다고 하셨습니다.
(막 2:22) “새 포도주를 낡은 가죽 부대에 넣는 자가 없나니 만일 그렇게 하면 새 포도주가 부대를 터뜨려 포도주와 부대를 버리게 되리라 오직 새 포도주는 새 부대에 넣느니라 하시니라
그와 마찬가지로 광야에서 태어난 새로운 시대는 미래에 약속의 땅 가나안에 들어가서 새로운 나라를 건설해야 할 새 술이기 때문에 그들에게 새 부대와 같은 새로운 법이 필요하게 되었습니다.
오늘 성경 말씀이 바로 광야에서 태어난 새 시대에게 주시는 새로운 언약인 새 부대와도 같은 새로운 세대에게 새로운 법을 선포하신 후 그 법을 새로운 시대에게 반드시 잘 가르치라고 하신 말씀입니다.
(신 6:1) “이는 곧 너희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너희에게 가르치라고 명하신 명령과 규례와 법도라 너희가 건너가서 차지할 땅에서 행할 것이니”
여기서 ‘가르치라’는 말씀은 ‘소를 모는 막대기’를 의미하는 말에게서 파생(dm;l]m)된 단어로 '가르치고, 배우고, 시행한다'는 세 가지의 의미를 지니고 있는 말입니다.
오늘날로 말하면 이미 예수 그리스도를 한 평생 믿고 있는 기성세대가 아니라 내일에 이 민족과 교회를 이끌어가야 할 새로운 세대들에게 가르쳐야 할 자녀 교육 지침서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 교육은 입으로만 가르치고 머리로만 아는 것으로 그치는 생명력 없는 교육이 아니라 하나님 여호와를 어떻게 경외해야 하는 가를 부모로부터 평생 동안 듣고 보고 배워 몸으로 실천하게 하는 산 교육이어야 함을 가르치고 있습니다.
(신 6:2) “곧 너와 네 아들과 네 손자들이 평생에 네 하나님 여호와를 경외하며 내가 너희에게 명한 그 모든 규례와 명령을 지키게 하기 위한 것이며 또 네 날을 장구하게 하기 위한 것이라”
여기서 ‘규례와 명령을 지키게’라는 말씀은 ‘준수하다, 주의하다’는 뜻과 더불어 ‘보존하다’는 뜻이 함축된 말입니다.
성경이 가르치고 있는 올바른 가치관은 돈과 명예와 권세가 최고가 아니라, 정의로우신 하나님과 자비로우신 예수 그리스도를 배워서 그와 같은 마음으로 이웃을 사랑하면서 정의로운 삶을 사는 것이 성공적인 삶이라는 것입니다.
그것이 바로 성경이 가르치고 있는 모든 규례와 명령의 핵심 가치이며 그것을 자녀들에게 부지런히 가르쳐 지키게 해야 할 교육이념이라는 것입니다.
2. 새로운 세대 새 율법
오늘 성경 말씀은 아직 가나안 땅에 들어가지 않은 새로운 세대들을 어떻게 가르칠 것인가 하는 자녀 교육의 지침서입니다.
언제 가나안 땅에 들어가게 될지 기약이 없습니다. 가나안 땅에는 수천년 동안 살고 있는 원주민들이 있습니다. 그들은 생존을 위해 수많은 전쟁을 경험하였기 때문에 강한 군대입니다.
그에 비해 이스라엘 백성들은 광야에서 태어나 살았기 때문에 가나안 사람들에 비해 모르는 것이 많고 약한 부분이 많습니다. 그러므로 가나안 사람들을 물리치고 그 땅에 새로운 나라를 건설한다고 하는 것은 그들의 힘으로 불가능하게 생각되는 일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은 이스라엘 백성들을 사십년 동안 한미 연합합동 훈련과 같은 군사훈련이나 지진 대비훈련과 같은 실용적인 훈련을 시키시지 않고 신앙 훈련, 교만을 버리고 자기를 낮추는 겸손훈련, 사람이 떡으로만 사는 것이 아니고 하나님의 말씀으로 산다고 하는 가치관의 훈련, 우상을 버리고 여호와 하나님만을 경외하는 신앙 훈련을 사십년 동안 집중적으로 하게 하셨습니다.
그 이유가 무엇일까요? 하나님께서 중요하게 생각하신 것은 이스라엘의 새로운 세대가 장차 가나안 땅에 들어가서 가장 쉽게 넘어지게 될 것은 가나안 군대가 아니라 무신론의 가나안 문화임을 아셨기 때문입니다.
(신 31:16) “또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이르시되 너는 네 조상과 함께 누우려니와 이 백성은 그 땅으로 들어가 음란히 그 땅의 이방 신들을 따르며 일어날 것이요 나를 버리고 내가 그들과 맺은 언약을 어길 것이라”
새로운 이스라엘의 가장 취약한 부분이 영적인 연약함이기 때문에 가나안 땅에 들어가서 쉽게 무너지게 될 것을 우려하여 대비하게 하는 영적인 지침서인 그 모든 규례와 명령이 기록된 성경 교육을 철저하게 해야 함을 오늘 신명기 전체에서 강조하고 있습니다.
(신 6:2) “곧 너와 네 아들과 네 손자들이 평생에 네 하나님 여호와를 경외하며 내가 너희에게 명한 그 모든 규례와 명령을 지키게 하기 위한 것이며 또 네 날을 장구하게 하기 위한 것이라”
여호와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들을 애굽에서 구원하여 내기고 가나안 땅으로 인도하시는 이유는 이스라엘을 복주시고 번성하게 하여 세계 만민 앞에서 우상을 버리고 여호와를 경외하는 것이 인생의 본분이며 그렇게 하는 민족과 개인을 하나님이 얼마나 번성하게 하시는가를 본보여 주시는 샘플로 이스라엘을 택하신 것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스라엘 민족은 어려울 때는 하나님을 잘 따르다가도 번성하게 되면 하나님을 배반하는 기질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하나님이 그것을 우려하여 지속적으로 번성하는 길과 방법을 오늘 성경을 통해서 가르치라고 하시는 것입니다.
(신 6:3) “이스라엘아 듣고 삼가 그것을 행하라 그리하면 네가 복을 받고 네 조상들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네게 허락하심 같이 젖과 꿀이 흐르는 땅에서 네가 크게 번성하리라”
여기서 ‘번성하리라’는 말(bb'r;)은 ‘수효가 많다, 증가하다, 세력이 커지다’는 뜻을 가진 미완료 동사(@WBr]Ti)로 미래에 번성을 약속하시는 말씀입니다.
그와 같은 이스라엘 백성들이 마침내 가나안 정복을 하여 새로운 나라를 건설한 것은 군대의 힘이 아니라 만군의 여호와 하나님만을 의지한 신앙의 힘이었습니다.
그러나 문제는 이스라엘 백성들이 가나안 땅에 들어가서 어떻게 해야 할 것을 가르치신 지침서인 신명기의 말씀을 자녀들에게 가르치기를 점차 소홀히 하면서 하나님께서 우려한 날이 오고야 말았습니다.
그 때가 바로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번성만 있었지 영적인 브레이크인 여호와 하나님의 규례와 명령에 대해서는 무지하고 무관심하였던 영적 암흑시대라고 일컫는 사사시대였습니다.
(삿 2:10) “ 여호수아와 같은 시대에 살았던 사람들이 다 죽고, 후에 그들의 자녀들이 자라났습니다. 그 자녀들은 여호와를 알지 못했으며, 여호와께서 이스라엘을 위해 어떤 일을 하셨는지도 알지 못했습니다.” (삿 2:11) “그래서 그들은 악한 일을 하였고, 바알 우상들을 섬겼습니다. 그들은 여호와께서 보시기에 나쁜 일을 했습니다.” (삿 2:12) “그들은 이스라엘 백성을 이집트 땅에서부터 이끌어 내신 조상들의 하나님 여호와를 배반하고, 주변 사람들이 섬기는 신들을 섬기기 시작했습니다. 그 때문에 여호와께서 분노하셨습니다.” (삿 2:13) “이스라엘 사람들은 여호와를 따르지 않고 바알과 아스다롯을 섬겼습니다.” (삿 2:14) “이스라엘 백성에게 화가 나신 여호와께서는 약탈자들이 이스라엘 백성을 공격하여 그들이 가진 것을 빼앗게 하셨습니다. 이스라엘 백성은 적들이 공격해 오는 것을 스스로 막아 낼 수 없었습니다.” (삿 2:15) “이스라엘 사람들은 싸우러 나갈 때마다 졌습니다. 이는 여호와께서 그들에게 벌을 내리셨기 때문이었습니다. 여호와께서 이미 그들에게 경고하셨던 대로 되었습니다. 그래서 이스라엘 사람들은 많은 괴로움을 겪었습니다.”
3. 값진 유산은 무엇인가?
사람은 누구나 결혼을 하여 자녀를 낳게 되면 모든 관심사는 자녀들에게 쏟게 되어 있습니다. 예를 들면 열심히 돈을 버는 이유 자녀들의 교육비를 위해서, 자녀들이 교육이 끝나도 열심히 돈을 모으는 이유 자녀들의 결혼을 위해서, 나이가 많아도 돈을 아끼는 이유 자녀들에게 유산을 물려주기 위해서가 아닙니까?
그렇다면 우리 그리스도인들이 자녀들에게 물려 주어야 할 최상의 유산이 무엇일까요? 물론 ‘배워서 남주냐?’ 라는 말씀처럼 재산보다 교육이라고 생각할 것입니다.
예를 들면 서울이나 수원을 막론하고 아파트 값이 비싼 지역의 공통점은 교통이 편리하고 장사가 잘되고를 떠나 학군이 좋은 곳입니다.
옛날에는 신실한 그리스도인들은 교회 주변으로 몰렸습니다. 그 이유는 무엇보다 언제든지 교회에 나와서 기도할 수 있고, 매일 새벽기도 가기 좋고, 무엇보다 자녀들을 주일학교에 보내기 좋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요즘은 달라졌습니다. 자녀들의 입시교육 위주로 이사를 하고 교회를 떠나는 것을 당연하게 생각하고 있습니다. 심지어 대학에 들어갈 때까지 주일학교에 열심히 다니는 것이 학업에 지장이 된다고 생각하는 교인들이 다수입니다.
갈수록 치열해지는 입시경쟁으로 말미암아 이제는 학교에서 가르치는 공교육만으로 부족해서 사교육을 병행하지 않으면 학교에서 따라갈 수 없다는 생각에 아이들이 학교에서 파한 후에도 집으로 돌아오지 않고 여러 가지 과외를 하는 것이 보편화되고 있는 것이 교육의 현실입니다.
설령 그렇게 해서 좋은 학교를 나오고 좋은 직장에 다니게 되었다고 해서 그 사람이 존경받는 인물이 됩니까?
만일 그것이 사실이라면 왜 이 사회에서 지탄의 대상과 갈등하는 부부들이 서민이 아니라 출세하고 성공했다고 생각되는 사람들이 다수일까요?
그것은 우리가 생각하는 성공이라는 가치관이 성경과 너무나 거리가 먼 잘못된 가치관을 가지고 어려서부터 자라가고 있기 때문입니다.
사람이 사람답게 살아야 한다는 인성교육의 기회가 입시위주 교육에서는 전혀 없다는 것입니다. 그 결과 아이들의 정서가 메말라 가고 있습니다. 음주와 쾌락추구의 무신론 문화에 익숙해지면서 정서가 삐뚤어지고 점점 더 난폭해져가고 있습니다.
유일하게도 인간이 인간답게 사는 길은 인간을 지으신 창조주 하나님이 인간에게 행복을 주시기 위해 가르쳐 주신 계명과 규례와 법도가 기록된 성경 말씀을 가르침 받는 길임을 오늘 성경이 가르치고 있습니다.
영적으로 정서적으로 척박한 현실에서 그와 같은 인성 교육이 가능한 곳이 바로 주일학교 뿐 임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예화
요즘 군부대에서 한미 또는 육해공 연합 훈련이 활발하게 이루어지고 있습니다. 그 훈련의 목적은 만일 적의 침략을 받게 될 경우를 대비한 가상훈련들입니다. 그래야만 실제 상황에서 피해를 최소화하고 위기를 극복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불이 일어나지 않았지만 그것을 대비해서 소방 훈련을 합니다. 지진이나 해일이 일어나지 않았지만 대비 훈련을 하게 되면 일본 사람들처럼 피해를 최소화할 수 있습니다. 물론 평소 그와 같은 훈련의 필요성을 전혀 느끼지 못하는 사람들에게는 형식적인 것처럼 생각되지만, 만약에 진짜 전쟁이 나고 화재가 나고 지진이 일어나면 훈련을 받은 사람은 신속한 조치를 취할 수 있지만, 전혀 훈련 경험이 없는 사람은 우왕좌왕하다가 죽게 되는 것입니다.
만약에 우리가 자녀들의 신앙 교육에 소홀히 하게 되면 미래에 우리 자녀들은 가나안 문화에 오염이 되고 동화가 되어 신앙을 다 버리게 될지도 모를 위기가 훤히 내어다 보이고 있습니다.
우리의 신앙도 마찬가지입니다. 그러므로 오늘 신명기의 말씀은 이 시대의 부모들과 자녀들에게 주시는 영적인 지침서임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결 론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하나님께서 당신의 백성들에게 원하시는 것은 고난이 아니라 번성하는 축복이라는 것입니다. 성경은 번성의 방법과 번성을 지속적으로 유지하는 노하우를 공개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법인 성경 말씀은 과거로부터 현재에 이르기까지 더 나아가서 우리의 후손들에게 길이길이 물려주어야 최상의 유산인 것입니다.
학교는 세상이 필요로 하는 지식을 우리 자녀들에게 가르쳐 줍니다. 가정에서 부모는 자녀들에게 번성을 지속시켜 나아가 하는 하나님의 법을 가르쳐서 지키게 해야 합니다. 이 세상에서 그와 같이 경건한 신앙을 배울 수 있는 유일한 장소는 가정이고 최선의 교사는 부모로 하나님이 맡겨 주셨습니다.
그러므로 부모는 자녀들의 신앙 교육을 위해서 성경에 무지하지 말아야 하고 성경 말씀에 벗어나는 모순된 삶을 자녀들에게 보이지 말아야 합니다.
위대한 사도 바울이 누구보다 사랑하고 아낀 사람이 청년 디모데였습니다. 두권의 편지와 대 교회인 에베소 교회 담임목사가 되게 하였습니다. 그 이유는 디모데에게서 청결한 양심과 거짓이 없는 믿음을 보았기 때문입니다.
(딤후 1:3) “내가 밤낮 간구하는 가운데 쉬지 않고 너를 생각하여 청결한 양심으로 조상적부터 섬겨 오는 하나님께 감사하고”
그것은 유대인과 헬라인의 부모에게서 태어난 다국적 청년이었지만 그의 외조모와 어머니로부터 값진 신앙 유산을 물려받았기 때문이었습니다.
디모데가 위대한 사도 바울의 수제자가 되고 믿음의 아들이 되었던 비결은 그의 어머니의 신앙 교육의 힘 때문이었다고 바울이 증거하고 있습니다.
(딤후 3:15) 또 어려서부터 성경을 알았나니 성경은 능히 너로 하여금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믿음으로 말미암아 구원에 이르는 지혜가 있게 하느니라 (딤후 3:16) 모든 성경은 하나님의 감동으로 된 것으로 교훈과 책망과 바르게 함과 의로 교육하기에 유익하니 (딤후 3:17) 이는 하나님의 사람으로 온전하게 하며 모든 선한 일을 행할 능력을 갖추게 하려 함이라
성경은 신구약을 막론하고 자녀들에게 물려주어야 최상의 유산을 ‘여호와를 경외하고 성경 말씀대로 순종하는 삶을 살도록 가르치고 훈련하는 것이다’ 라고 명령하고 있습니다.
그 이유는 과거 이스라엘 백성들이 소홀히 하거나 망각하게 되면 번성 후에 범죄하고 교만하다가 결국 징계와 심판과 멸망의 수순을 밟은 것처럼, 오늘 우리의 자녀들도 동일한 길을 걷기가 쉬운 세상을 살아가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이스라엘 백성들이 자손에게 물려주어야 할 최상의 유산은 가나안 땅이 아니라 그 땅을 잘 지켜나갈 수 있는 영적 관리 능력이었던 것처럼, 오늘 우리들이 자녀들에게 물려주어야 유산도 많은 부동산과 통장이 아니라 하나님으로부터 지속적인 번성의 축복을 받을 수 있는 신앙을 물려주는 것이 언젠가 우리가 그들의 곁을 떠난 이후에도 지속적으로 하나님의 축복을 받아 누리게 하는 최상의 유산이 될 것입니다.
(신 6:7) “네 자녀에게 부지런히 가르치며 집에 앉았을 때에든지 길을 갈 때에든지 누워 있을 때에든지 일어날 때에든지 이 말씀을 강론할 것이며”(신 6:8) “너는 또 그것을 네 손목에 매어 기호를 삼으며 네 미간에 붙여 표로 삼고”(신 6:9) “또 네 집 문설주와 바깥 문에 기록할지니라” (신 6:24) “여호와께서 우리에게 이 모든 규례를 지키라 명령하셨으니 이는 우리가 우리 하나님 여호와를 경외하여 항상 복을 누리게 하기 위하심이며 또 여호와께서 우리를 오늘과 같이 살게 하려 하심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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