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 교/이규왕목사

그리스도와 연합 된 사람(롬 6:5-9)

미션(cmc) 2011. 4. 25. 08:12

그리스도와 연합 된 사람
(롬 6:5-9)

(롬 6:5) “만일 우리가 그의 죽으심과 같은 모양으로 연합한 자가 되었으면 또한 그의 부활과 같은 모양으로 연합한 자도 되리라” (롬 6:6) “우리가 알거니와 우리의 옛 사람이 예수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힌 것은 죄의 몸이 죽어 다시는 우리가 죄에게 종 노릇 하지 아니하려 함이니”(롬 6:7) “이는 죽은 자가 죄에서 벗어나 의롭다 하심을 얻었음이라”(롬 6:8) “만일 우리가 그리스도와 함께 죽었으면 또한 그와 함께 살 줄을 믿노니”(롬 6:9) “이는 그리스도께서 죽은 자 가운데서 살아나셨으매 다시 죽지 아니하시고 사망이 다시 그를 주장하지 못할 줄을 앎이로라”

오늘은 부활절입니다. ‘부활’이라는 말은 마치 사람이 잠에서 깨어 일어나는 것처럼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살아났다는 뜻입니다.
부활은 모든 사람들이 소원하는 ‘한 평생 동안 건강하게 오래 살기를 바라는 장수의 복’과는 비교가 되지 않은 죽을 몸이 변하여 죽지 않게 되고 썩을 몸이 변하여 썩지 않게 되는 영생의 축복입니다.
물론 과학을 종교처럼 신봉하는 현대인들에게는 쉽게 이해가 되지 않는 이야기 일 것입니다. 또한 우리 중에 어느 누구도 그와 같은 부활을 목격한 적이 없기 때문에 처음서부터 부활을 믿었던 것은 아닐 것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신구약 성경 전체에서 마치 기둥과 같이 핵심적인 진리가 바로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와 부활입니다.
만일 예수님이 십자가에 못 박혀 죽으시고 다시 살아나지 못했다면 우리의 믿음은 진공 상태처럼 공허하게 되고 말 것입니다. 그래서 사도 바울은 부활이 없는 기독교는 헛되다고 말하였습니다.
(고전 15:14) 그리스도께서 만일 다시 살아나지 못하셨으면 우리가 전파하는 것도 헛것이요 또 너희 믿음도 헛것이며 (고전 15:17) 그리스도께서 다시 살아나신 일이 없으면 너희의 믿음도 헛되고 너희가 여전히 죄 가운데 있을 것이요 (고전 15:19) 만일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가 바라는 것이 다만 이 세상의 삶뿐이면 모든 사람 가운데 우리가 더욱 불쌍한 자이리라
그렇다면 부활하신 예수 그리스도를 본 적이 없고 그 예수님을 믿고 부활한 사람을 만난 적이 없는 사람이 어떻게 부활을 믿을 수 있느냐? 하는 의문도 들을 것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성경과 지난 교회 역사를 보게 되면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을 믿었을 뿐 아니라 예수께서 십자가에 못박혀 죽으시고 장사한지 사흘만에 부활하신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소식을 널리 세상 사람들에게 전파하다가 욕을 먹고 매를 막고 감옥에 갇히고 사자 밥이 되고 화형을 당하기까지 하면서도 예수님의 십자가와 부활을 전한 사람들이 허다합니다.
(히 11:35) 여자들은 자기의 죽은 자들을 부활로 받아들이기도 하며 또 어떤 이들은 더 좋은 부활을 얻고자 하여 심한 고문을 받되 구차히 풀려나기를 원하지 아니하였으며(히 11:36) 또 어떤 이들은 조롱과 채찍질뿐 아니라 결박과 옥에 갇히는 시련도 받았으며(히 11:37) 돌로 치는 것과 톱으로 켜는 것과 시험과 칼로 죽임을 당하고 양과 염소의 가죽을 입고 유리하여 궁핍과 환난과 학대를 받았으니(히 11:38) (이런 사람은 세상이 감당하지 못하느니라) 그들이 광야와 산과 동굴과 토굴에 유리하였느니라
만일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이 역사적 사실이 아니라면 사람들이 다 살자고 일을 하는 것인데 죽임을 당하면서까지 예수를 믿고 예수를 전할 수 있을까요? 없었을 것이라고 생각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예수를 믿는 것 때문에 십자가와 부활의 복음을 계속하여 전하였기 때문에 그 복음이 이 땅에 들어오게 된 것이며 그로 말미암아 오늘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를 믿어 약속하신 말씀대로 구원을 얻게 되었고 교회가 세워지고 복음이 확산되게 된 것입니다.
그 이유는 오직 하나 부활이 신학적 이론이나 과학적인 가설이 아니라 언제 어디서 누가 무엇을 어떻게 왜? 라는 육하원칙에 답변할 수 있을 만큼 역사적인 사실이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아무리 예수님의 부활이 사실이라고 할지라도 그것은 지금으로부터 이천년 전 과거사라면 현대를 살아가는 사람에게 그 과거가 무슨 의미가 있고 무슨 힘이 있고 얼마나 영향력을 끼칠 수 있겠는가 ? 의구심이 들지 않을 수 없습니다.
그 이유는 예수님의 부활이 추상적인 상상이나 가정이 아니라 그 예수님이 부활하신 것을 믿는 자에게는 그 같은 변화와 능력을 예수님과 동일하게 참여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것이 바로 예수님의 십자가와 부활에 대한 약속과 성취와 적용에 대해서 세세히 기록한 성경 말씀인 것입니다.
(롬 6:3) 무릇 그리스도 예수와 합하여 세례를 받은 우리는 그의 죽으심과 합하여 세례를 받은 줄을 알지 못하느냐
예수님의 부활은 꾸민 이야기나 신화가 아니라 오래 전 구약 성경에 선지자들을 통해 예언되고 약속된 말씀들이 때가 되어 예수님을 통해서 실제로 일어난 역사적인 사실이기 때문입니다.
1) 인간은 다 죽는 것이 아니라 죽음을 보지 않고 하늘나라에 가는 사람이 있었습니다. 구약의 에녹과 엘리야입니다.
(히 11:5) 믿음으로 에녹은 죽음을 보지 않고 옮겨졌으니 하나님이 그를 옮기심으로 다시 보이지 아니하였느니라 그는 옮겨지기 전에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자라 하는 증거를 받았느니라
2) 예수님의 부활은 제자들이 꾸며낸 이야기가 아니라 예수님이 세상에 오시기 수백 년,수천 년 전부터 선지자들을 통해 예언된 하나님의 약속이 때가 되어 그대로 이루어진 것입니다.
(삼상 2:6) 여호와는 죽이기도 하시고 살리기도 하시며 스올에 내리게도 하시고 거기에서 올리기도 하시는도다 (삼상 2:7) 여호와는 가난하게도 하시고 부하게도 하시며 낮추기도 하시고 높이기도 하시는도다
(시 49:15) 그러나 하나님은 나를 영접하시리니 이러므로 내 영혼을 스올의 권세에서 건져내시리로다 (셀라)
(호 6:2) 여호와께서 이틀 후에 우리를 살리시며 셋째 날에 우리를 일으키시리니 우리가 그의 앞에서 살리라). (호 13:14) 내가 그들을 스올의 권세에서 속량하며 사망에서 구속하리니 사망아 네 재앙이 어디 있느냐 스올아 네 멸망이 어디 있느냐 뉘우침이 내 눈 앞에서 숨으리라
예수님은 그 같은 예언의 말씀을 이루시기 위해 세상에 오셨으며, 부활을 한 번도 경험하지 못한 제자들에게 그 예언대로 부활하게 될 것을 미리 가르쳐 주셨습니다.
(눅 9:22) 이르시되 인자가 많은 고난을 받고 장로들과 대제사장들과 서기관들에게 버린 바 되어 죽임을 당하고 제삼일에 살아나야 하리라 하시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처음에는 제자들이 예수님의 부활을 믿지 않았으며 심지어 부활하신 주님을 보면서도 유령으로 착각을 할 정도로 의심을 많이 했었습니다.
(요 20:9) (그들은 성경에 그가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살아나야 하리라 하신 말씀을 아직 알지 못하더라)
예수님은 그 같은 제자들이 믿음을 갖게 하기 위해 부활하신 몸으로 사십일 동안을 함께 하셨습니다.
그 결과 부활하신 예수님을 체험한 사람들이 무려 오백여 명이나 되었습니다. 그 중에는 예수의 부활을 사기극이라고 단정하고 핍박하던 사울에게 부활하신 예수님이 나타나셔서 믿게 하셨습니다.
(고전 15:6) 그 후에 오백여 형제에게 일시에 보이셨나니 그 중에 지금까지 대다수는 살아 있고 어떤 사람은 잠들었으며(고전 15:7) 그 후에 야고보에게 보이셨으며 그 후에 모든 사도에게와(고전 15:8) 맨 나중에 만삭되지 못하여 난 자 같은 내게도 보이셨느니라
만일 예수님의 부활이 사실이 아니었다면 예수님의 제자들과 성도들이 십자가와 부활을 전하기 위해 온갖 핍박을 받고 심지어 순교까지 할 수 있었을까요?
그러나 부활이 명백한 사실이었기에 심지어 나약한 여 성도들조차 모진 고문을 당하면서도 신앙을 굽히지 않도록 만들었습니다.
(히 11:35) 여자들은 자기의 죽은 자들을 부활로 받아들이기도 하며 또 어떤 이들은 더 좋은 부활을 얻고자 하여 심한 고문을 받되 구차히 풀려나기를 원하지 아니하였으며(히 11:36) 또 어떤 이들은 조롱과 채찍질뿐 아니라 결박과 옥에 갇히는 시련도 받았으며(히 11:37) 돌로 치는 것과 톱으로 켜는 것과 시험과 칼로 죽임을 당하고 양과 염소의 가죽을 입고 유리하여 궁핍과 환난과 학대를 받았으니(히 11:38) (이런 사람은 세상이 감당하지 못하느니라) 그들이 광야와 산과 동굴과 토굴에 유리하였느니라
물론 우리와 똑같이 연약한 사람들이었으나 설령 복음을 전하다 죽게 되면 부활할 것을 확신하고 담대히 복음을 전했을 때 그 복음에 능력이 나타났습니다.
(롬 1:16) 내가 복음을 부끄러워하지 아니하노니 이 복음은 모든 믿는 자에게 구원을 주시는 하나님의 능력이 됨이라 먼저는 유대인에게요 그리고 헬라인에게로다
그렇다면 오늘 우리는 어떻습니까? 만일 그같은 고난을 당하게 된다면 부활 신앙을 끝까지 포기하지 않을 자신이 있습니까? 왜 그리고 어떻게 우리도 그와 같은 믿음을 가질 수 있을까요?
예수님의 부활은 이천년 전에 단 한번 있었던 일임에도 불구하고 예수님이 구약 성경은 물론 예수님이 부활하여 승천한 후에 기록된 바울서신과 요한 계시록에도 부활이 기록되어 있을 정도로, 부활은 성경의 일부가 아니라 전부라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마 22:30) 부활 때에는 장가도 아니 가고 시집도 아니 가고 하늘에 있는 천사들과 같으니라 (고전 15:12) 그리스도께서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살아나셨다 전파되었거늘 너희 중에서 어떤 사람들은 어찌하여 죽은 자 가운데서 부활이 없다 하느냐 (계 20:6) 이 첫째 부활에 참여하는 자들은 복이 있고 거룩하도다 둘째 사망이 그들을 다스리는 권세가 없고 도리어 그들이 하나님과 그리스도의 제사장이 되어 천 년 동안 그리스도와 더불어 왕 노릇 하리라
그 가운데 오늘 성경 본문을 우리의 신앙을 보다 더 깊은 곳으로 인도하는 말씀입니다. 오늘 성경은 예수님의 십자가와 부활을 믿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지를 가르치고 있습니다.
예수님이 나의 죄를 대신하여 십자가에 달려 죽으신 것과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나신 부활을 믿는 자에게 세례를 주는 것은 예수님과 연합을 시켜주는 것이라고 하였습니다.
(롬 6:3) 무릇 그리스도 예수와 합하여 세례를 받은 우리는 그의 죽으심과 합하여 세례를 받은 줄을 알지 못하느냐 (롬 6:5) 만일 우리가 그의 죽으심과 같은 모양으로 연합한 자가 되었으면 또한 그의 부활과 같은 모양으로 연합한 자도 되리라
여기서 ‘연합한 자’ 라는 말은 ‘함께 씨가 뿌려지거나 심어져 함께 싹이 트고 자라는 것’을 의미하는데 이것은 우리가 그리스도의 죽음에 접붙여졌다는(Calvin) 뜻으로, 그리스도와 내가 죽고 사는 것을 같이하는 결합 상태라는 것입니다.
본래 생판 모르는 남남이었으나 서로 만나 사랑하게 되면 믿음을 갖게 되고 믿음을 갖게 되면 결혼하여 부부가 되어 부모 형제보다 더 친밀하여 일심동체가 됩니다.
마치 남편의 성공이 아내의 성공이요, 남편의 실패가 아내의 실패인 것처럼, 예수님의 십자가와 부활을 믿는 사람은 예수님의 십자가 죽음이 곧 나의 죽음이요, 예수님의 부활이 곧 나의 부활이라는 것입니다.
(롬 6:6) “우리가 알거니와 우리의 옛 사람이 예수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힌 것은 죄의 몸이 죽어 다시는 우리가 죄에게 종 노릇 하지 아니하려 함이니”(롬 6:7) “이는 죽은 자가 죄에서 벗어나 의롭다 하심을 얻었음이라”
내가 믿는 예수를 욕 먹이지 않게 하기 위해서, 내가 믿는 예수님을 기쁘시게 하기 위해서 선하게 살아야 하겠다는 결심을 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예수를 믿으면 사람이 변하게 된다는 것입니다.
이전에는 내가 살기 위해서 남을 죽이려고 했으나 이제는 내가 믿는 그리스도처럼 남을 위해 내가 죽어야 하겠다는 생각을 하게 되는 것입니다.
우리가 그러한 마음을 먹을 때 나와 함께하시는 내가 믿는 그리스도께서 기뻐하시고 또 나에게 그렇게 살 수 있는 힘을 주십니다.
그렇게 한 평생을 부활하신 그리스도와 함께 살면 설령 죽게 된다고 할지라도 내가 믿는 예수 그리스도가 부활하신 것처럼 나도 부활하게 됩니다.
(롬 6:8) “만일 우리가 그리스도와 함께 죽었으면 또한 그와 함께 살 줄을 믿노니”(롬 6:9) “이는 그리스도께서 죽은 자 가운데서 살아나셨으매 다시 죽지 아니하시고 사망이 다시 그를 주장하지 못할 줄을 앎이로라”
누구를 막론하고 부활하신 그리스도가 ‘나와 함께하신다’는 믿음을 가지고 살아야만 1) 진실하게 살 수 있고, 2) 사랑하고 용서하며 살 수 있고, 3) 강자 앞에서도 비굴하지 않을 수 있고, 4) 어려움을 만나도 부활한다는 믿음으로 이겨나갈 수 있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이전까지 죄악 중에 살았지만 그리스도와 연합된 사람은 그 죄를 회개하고, 주님의 말씀 앞에 나를 굴복시키고, 그 주님의 복음을 위해 자신의 시간과 물질을 드려 주님을 기쁘시게 하는 일에 병기로 드리는 삶을 살게 됩니다.
(롬 6:13) 또한 너희 지체를 불의의 무기로 죄에게 내주지 말고 오직 너희 자신을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살아난 자 같이 하나님께 드리며 너희 지체를 의의 무기로 하나님께 드리라
그러한 믿음으로 세상을 살다가 죽게 되면 주님과 연합되었기 때문에 주님의 영광에 동참하게 됩니다.
주께서 예비하신 처소는 영광이 가득 찬 곳이며 눈물과 애통함과 사망과 아픈 것이 전혀 없는 곳입니다.(계 21:4)

결 론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100년도 살지 못하는 짧은 어간 동안 남에게 착한 일 한번 하지 못하고, 남에게 피해를 주며 살다가 죽는 다면 너무 허무하지 않습니까?
십자가와 부활을 믿는 성도들에게 죽음은 현실 도피처가 아니라 현실을 어떻게 살았는가를 계산하는 시상대입니다.
설령 선하게 살기 위해 십자가와 부활의 복음을 전하기 우해 때로는 억울한 고난을 당하게 될지라도 낙심하거나 좌절하지 않고, 죽어도 다시 산다는 부활의 소망을 가지고 인내하고, 도전하는 삶을 살아야 하겠습니다.
그 이유는 나와 하나가 되신 예수님만이 내가 가야 할 길이요, 내가 믿고 따라야 할 진리이기 때문입니다.
그 예수님을 따르면 나를 거듭나 새사람이 되게 하여 주시고, 나를 선한 길로 인도하시고, 나를 죽음에서 부활하게 하여 주시겠다고 약속하셨습니다.
(요 14:6) “예수께서 이르시되 내가 곧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니 나로 말미암지 않고는 아버지께로 올 자가 없느니라”
그러므로 과거에는 어떻게 살았든지 이제부터라도 누구를 막론하고 부활하신 그리스도가 나와 함께하신다는 믿음을 가지고 살아야만
1) 진실하게 살 수 있고,
2) 사랑하고 용서하며 살 수 있고,
3) 어떤 어려움을 만나도 이겨나갈 수 있는 것입니다.
주님은 나의 과거를 따지지도 묻지도 않으시고 오늘 내가 믿는 믿음 하나만 보시고 나를 용서하시고 나를 구원하시고 나를 변화시키십니다.
그와 같은 부활의 믿음을 가질 때 주님은 나에게 “너는 반드시 일어날 것이라고, 승리할 것이라고, 성공할 것이고, 새 삶을 살게 될 것이고, 부활하게 될 것이다”라고 바로 지금 내 마음에 말씀하시는 주님을 믿고, 그리스도와 하나가 되기 바랍니다.
(요 11:25) “예수께서 가라사대 나는 부활이요 생명이니 나를 믿는 자는 죽어도 살겠고” (요 11:26) “무릇 살아서 나를 믿는 자는 영원히 죽지 아니하리니 이것을 네가 믿느냐” (요 11:27) “가로되 주여 그러하외다 주는 그리스도시요 세상에 오시는 하나님의 아들이신 줄 내가 믿나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