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 교/이규왕목사

성장하며 선교하는 교회(행 1:8-12)

미션(cmc) 2011. 6. 8. 20:39

성장하며 선교하는 교회
(행 1:8-12)


“8” 오직 성령이 너희에게 임하시면 너희가 권능을 받고 예루살렘과 온 유대와 사마리아와 땅 끝까지 이르러 내 증인이 되리라 하시니라 “9” 이 말씀을 마치시고 그들이 보는데 올려져 가시니 구름이 그를 가리어 보이지 않게 하더라 “10” 올라가실 때에 제자들이 자세히 하늘을 쳐다보고 있는데 흰 옷 입은 두 사람이 그들 곁에 서서 “11” 이르되 갈릴리 사람들아 어찌하여 서서 하늘을 쳐다보느냐 너희 가운데서 하늘로 올려지신 이 예수는 하늘로 가심을 본 그대로 오시리라 하였느니라 “12” 제자들이 감람원이라 하는 산으로부터 예루살렘에 돌아오니 이 산은 예루살렘에서 가까워 안식일에 가기 알맞은 길이라

예수님이 세상에 오셨을 당시 하나님께 제사를 드리는 성전이 있었고 사람들이 모여 성경을 배우는 회당이 있었습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을 믿는 사람이라면 성전에 가서 제사를 드리면 되었고, 성경을 배우기를 원하면 회당에서 가서 가르침을 받으면 되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사람들이 예수님을 누구라고 하는 질문하시고 또 제자들이 예수님을 누구라고 믿고 있는지를 질문하셨을 때 제자들이 사람들의 말을 빌려 여러 가지로 대답을 하였습니다.
그러나 수제자 베드로는 예수님을 가리켜 ‘주는 그리스도시오, 살아계신 하나님의 아들’이라고 신앙고백을 하였을 때, 예수님이 크게 기뻐하시면서 세상에 교회를 세우시겠다는 계획이었습니다.
(마 16:18) “또 내가 네게 이르노니 너는 베드로라 내가 이 반석 위에 내 교회를 세우리니 음부의 권세가 이기지 못하리라”
이 성경에 최초로 기록된 교회라는 단어(ejkklhsiva)로 그 뜻은 어떤 집단에에서 부름을 받은 사람들의 모임이라는 뜻입니다. 그 부름을 받은 집단이 세상이요, 부름 받은 자의 모임이 바로 교회라는 말입니다.
물론 ‘교회’라는 단어는 최초일지 모르지만 교회와 같은 성격을 가진 구약 시대의 교회가 있었습니다. 그 공동체가 애굽에서 부름을 받은 자들의 모임인 시내산 아래 모인 이스라엘 공동체를 가리켜서 교회라고 하였습니다.
(행 7:38) “시내 산에서 말하던 그 천사와 우리 조상들과 함께 광야 교회에 있었고 또 살아 있는 말씀을 받아 우리에게 주던 자가 이 사람이라”
그럼에도 불구하고 예수님께서 세우시겠다고 하신 교회와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은 공동체인 이스라엘 백성들의 모임과 오늘날 교회와 본질적인 차이는 무엇일까요?
만일 구약의 광야 교회가 완전하였다면 구태여 예수님께서 마치 또 다른 교회를 개척하는 것처럼 내 교회를 세우겠다고 말씀하시지 않으셨을 것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예수님께서 ‘내 교회를 세우리니’라고 하신 말씀은 광야 교회와 다른 교회요 성전과 다른 교회요 회당과 다른 교회를 세우시겠다는 말씀입니다.
사람이 무슨 계획을 세우게 되면 시간이 지체하기 전에, 우기나 겨울이 와서 공사가 어렵기 전에, 인건비와 재료대가 오르기 전에 계획한 일을 완수하려고 서두르게 됩니다.
예수님이 분명히 제자들 앞에서 시몬 베드로에게 ‘내 교회를 세우리니’라고 장담을 하셨음에도 불구하고 예수님은 교회를 세우는 일을 위해 제자들에게 헌금을 강요하시거나 대지나 건축재료를 구입하는 일을 전혀 하지 않으셨습니다.
그 이유가 무엇일까요? 주님이 세우시겠다는 교회는 단순한 성전이나 회당과 같이 돌을 다듬고 나무를 깎고 벽돌을 찍어서 세우는 교회가 아니라 지금까지 세상에 없었던 특별한 교회를 세우기 위함이었습니다.
그 특별한 교회는 건물이 아니라 예수님이 십자가에 달려 피를 흘리셔서 값을 지불하신 교회이며, 예수님이 교회의 머리가 되시며 그 머리에 연합된 몸이 바로 교회가 되고 교인들은 그 안에서 사방에 연결되어 있는 교회를 뜻하는 것입니다.
(엡 1:22) “또 만물을 그의 발 아래에 복종하게 하시고 그를 만물 위에 교회의 머리로 삼으셨느니라” (엡 1:23) “교회는 그의 몸이니 만물 안에서 만물을 충만하게 하시는 이의 충만함이니라”
여기서 ‘충만하게 하시는 이’라고 한 ‘충만’이라는 말은 ‘가득하고, 넘치고, 충족시키고, 완전하게 하고, 성취하다’는 뜻으로 쉬운 성경은 이렇게 번역을 하였습니다.
(엡 1:23) “교회는 그리스도의 몸이며, 모든 것을 넘치도록 채우시는 분이 계신 곳입니다.
이는 예수님께서 교회를 세우시는 이유는 마치 아프리카에 가서 복음을 전하는 선교사들이 물이 귀한 원주민들에게 우물을 파줌으로 물 한통을 긷기 위해 수 킬로미터를 걷지 않아도 우물이 있어서 목마른 사람들에게 한 두 모금이 아니라 두고두고 넘치도록 채워주는 것과 같은 은혜가 공급되는 통로가 되게 하시겠다는 말입니다.
예수님께서 지상에 세우시는 교회가 바로 그러한 교회이며 예수님께서 그와 같은 교회를 지상에 세우시기 위해서 시멘트나 철근이나 모래를 준비하신 것이 아니라 당신의 몸을 십자가에 못 박아 흘리신 피 값으로 세우신 교회를 뜻하는 것입니다.
예수님이 십자가에 달려 피 흘리시기 전에는 지상에 교회처럼 보이는 성전과 회당이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사람들은 영적으로 목말라 하였고 지상에 교회가 세워질 수 없었습니다.
그러므로 분명히 예수님께서 ‘내 교회를 세우리니’라고 말씀하셨음에도 불구하고 지상에 교회가 세워질 수 없었던 것입니다. 그러나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달려 피흘려 죽으심으로 인간의 죄를 대신 속죄해 주시고 십자가에 달려 죽으신지 사흘 만에 부활하심으로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죽음을 믿는 자에게 사죄와 영생의 복을 주신 것입니다.
그 최초의 교회가 바로 예루살렘 교회이며, 예루살렘 교회는 예수님께서 마 16장에서 베드로에게 ‘네 위에 내 교회를 세우리니’라고 말씀하신 것처럼 예루살렘에 지상 최초의 교회가 세워진 것입니다.
그렇다면 예수님께서 그와 같이 급박한 방법을 동원하셔서 지상에 교회를 세우신 이유가 나름대로 따로 있을 것입니다.
그것이 바로 오늘 성경 본문 행 1:8 의 말씀처럼 땅끝까지 예수님의 십자가와 부활을 믿는 자들이 모인 교회가 해야 할 지상 최대의 사명이 바로 최초의 찬양 예배가 되는 것입니다.
그와 같은 원리를 따라 예수님은 예루살렘 성전이나 회당과 달리 세상 방방곡곡에서 하나님의 외아들 독생자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영접한 사람들의 공동체인 교회를 통해서
1) 개개인을 살리고, 가정을 살리고, 민족을 살리고, 세상을 살리는 복음을 땅 끝까지 전도하고 선교하여,
2) 이스라엘 백성들이 성전을 세워 하나님을 예배하고 회당에 모여 성경을 공부한 것처럼,
3) 온 세상 사람들이 창조주 하나님께 영광과 찬송을 돌리는 예배자가 되게 하기를 원하시는 것입니다.
(시 106:48) “여호와 이스라엘의 하나님을 영원부터 영원까지 찬양할지어다 모든 백성들아 아멘 할지어다 할렐루야” (시 117:1) “너희 모든 나라들아 여호와를 찬양하며 너희 모든 백성들아 그를 찬송할지어다”
물론 그것은 말처럼 쉬운 일이 아닙니다. 왜냐하면 인류의 조상 아담과 하와를 타락하게 만들었던 사탄의 권세아래 종노릇하고 있는 인류를 마치 애굽에서 사백 삼십년간 종살이하던 히브리 민족을 하나님께서 구원하시기 위해 어린양을 잡아 그 피를 문설주에 바른 희생이 필요했던 것처럼 누군가가 인간의 죄를 대신하여 피 흘려 죽어야만 하는 희생이 요구되었습니다.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에 달려 피 흘려 죽으신 이유도 바로 그 때문입니다. 그래서 예수님의 십자가 전하는 일을 복음 전파라고 하는 것입니다.
복음 전파는 사람에게 무슨 피해를 입히거나 손해를 주는 일이 아니라 사람들로 하여금 지난날의 죄를 회개하고 예수 그리스도를 마음에 구주로 영접하여 하나님을 사랑하고 이웃을 사랑하는 삶을 살게 하는 정말 선한 일이요, 정말 필요한 일이요, 정말 복된 일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복음을 전파하는 일은 예수님께서 몸소 겪으신 것처럼 제자들이 반드시 경험한 것처럼 이전에 사람들을 타락하게 만든 사단의 엄청난 저항을 각오해야만 하는 일이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복음을 전하는 일을 포기할 수 없는 것은 마치 해산의 고통을 통해서 한 생명이 세상에 태어나는 것처럼 한 영혼이 태어나는 해산의 고통이기 때문입니다.
(갈 4:19) “나의 자녀들아 너희 속에 그리스도의 형상을 이루기까지 다시 너희를 위하여 해산하는 수고를 하노니”
그래서 예수 그리스도는 십자가에 달려 죽으신 것이며, 대부분의 예수님의 제자들은 복음 전파를 위해 순교를 당했으며, 지금도 복음이 처음 믿는 사람이나 가정이나 국가에 들어가는 과정에는 반드시 저항과 고난을 피할 수 없게 되는 것입니다.

우리나라도 예외가 아니었습니다. 조상 대대로 우상숭배와 잘못된 종교에 종노릇하고 있는 조선 사람들에게 복음을 전하러 이 땅에 발을 디디었던 토마스 목사님은 대동강변에서 참수를 당하여 최초로 피를 쏟았습니다.
그 뿐만이 아니라 수많은 주의 종들과 성도들이 이 땅에 영혼들이 예수를 믿어 구원을 받게 하려고 복음을 씨뿌리고 가꾸는 일을 위해 고난과 투옥과 순교의 피눈물을 이 땅에 쏟았기 때문에 오늘 우리가 이 같은 신앙의 자유가 주어지게 된 것입니다.
(시 126:5) “눈물을 흘리며 씨를 뿌리는 자는 기쁨으로 거두리로다”
물론 지금은 우리가 예수를 믿는다고 누가 잡아가두거나 불이익을 주는 일이 별로 없지만 우리가 그 복음을 다른 사람에게 전하려고 하면 많은 저항과 무관심과 냉대를 경험하게 됩니다. 다시 말해서 오늘도 복음 전파는 여전히 씨를 뿌리는 수고와 눈물의 기도를 요구합니다.
선교는 더 말할 것이 없습니다. 수많은 사람들이 오로지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다는 이유 하나만으로 이웃에게 외면을 당하고 투옥을 당하고 고문을 당하고 순교의 피를 요구하고 있습니다.
설령 신앙의 자유가 있다고 해도 복음은 우연히 뿌려지거나 아생화처럼 수고 없이 저절로 자라는 것이 아닙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상한 일은 뿌려진 복음은 결코 고사 당하거나 정체하지 않고 마치 산불처럼 확산되고 마치 계곡물처럼 흘러내려 마른 들판을 적셔 생명을 소생시킨다는 것입니다.
그 이유는 복음이 사람의 말이 아니라 오직 성령의 능력과 확신으로 된 것이며 살아계신 하나님의 성령의 역사가 반드시 복음 전파하는 사람과 복음이 전파되는 현장에서 역사하시기 때문입니다. 그것이 바로 오늘 성경에서 예수님께서 보증하신 말씀처럼 성령의 권능인 것입니다.
(행 1:8) “오직 성령이 너희에게 임하시면 너희가 권능을 받고 예루살렘과 온 유대와 사마리아와 땅 끝까지 이르러 내 증인이 되리라 하시니라”

하나님의 꿈은 하나님의 형상으로 지음을 받은 아담을 통해 인류가 번성하여 땅에 충만하여 땅을 정복하여 하나님의 사랑이 흘러넘치는 아름다운 세상을 만드시는 일이었습니다.
물론 인류의 타락으로 그 꿈이 무산된 것처럼 보였으나 독생자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서 회복되기를 원하셨습니다. 예수님은 열두 제자를 훈련시키셔서 그들을 통해서 그 꿈을 이루기를 원하셨습니다. 그것이 바로 오늘 성경의 사도행전 1장 8절의 말씀입니다.
그러나 예수님의 제자들은 모든 민족을 제자로 삼는 선교보다는 땅위에 왕국이 세워지는 일에 더 큰 관심을 갖고 예수님에게 그 날이 언제 도래할지를 물었습니다.
(행 1:4) 사도와 함께 모이사 그들에게 분부하여 이르시되 예루살렘을 떠나지 말고 내게서 들은 바 아버지께서 약속하신 것을 기다리라 (행 1:5) 요한은 물로 세례를 베풀었으나 너희는 몇 날이 못되어 성령으로 세례를 받으리라 하셨느니라 (행 1:6) 그들이 모였을 때에 예수께 여쭈어 이르되 주께서 이스라엘 나라를 회복하심이 이 때니이까 하니
예수께서 갈릴리 호수 가에서 제자들을 부르실 때 너희로 사람을 낚는 어부가 되게 하리라고 하신 그 비전을 마지막 부활승천하시기 직전까지 초지일관하게 유지하시면서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행 1:7) 이르시되 때와 시기는 아버지께서 자기의 권한에 두셨으니 너희가 알 바 아니요 (행 1:8) 오직 성령이 너희에게 임하시면 너희가 권능을 받고 예루살렘과 온 유대와 사마리아와 땅 끝까지 이르러 내 증인이 되리라 하시니라
여기서 ‘오직’이라는 말씀은 예수를 믿는 성도들이 해도되고 안해도 되는 것이 아니라 필히 해야 할 책임과 의무가 무엇인지를 말씀하고 있는 것입니다.
이는 교회가 해야 할 여러 가지 일중에 가장 중요한 사명이 땅끝까지 선교하는 일임을 가르치는 말씀인 것입니다.
물론 그 일은 입으로만 되어지는 일이 아니라 사람이 있어야 하고, 기도와 물질의 후원이 있어야 하기 때문에 교회를 세워 교회를 통해 인재를 양성하여 파송하고 파송한 선교사들을 기도와 물질로 지원하여 선교지에 또 교회를 세워 교회를 성장하여 동일한 선교의 비전을 가지고 기도하고 성장하여 인재를 양성하여 또 다른 선교사를 파송하여 기도와 물질로 후원하는 일을 주님 오시는 날까지 연쇄적으로 하게 하심으로 땅끝까지 복음이 전파되게 하시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이 일을 위해 우리 교회를 세우셨고, 우리 교회를 성장시키셨고, 우리 교회를 통해 지역을 복음화하게 하시고 우리 교회가 성장하면서 선교하는 교회가 되게 하신 것입니다.

하나님은 천지를 만드셨다면 인간은 길을 만들었습니다. 인간은 길을 따라서 걸어가고 길을 따라서 행동을 합니다. 길은 반드시 목적지를 향해 만들어졌기 때문에 길을 따라서 가지 않으면 목적지에 이를 수가 없습니다.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당신 자신을 가리켜 ‘내가 길이요’라고 말씀하셨는데 여기서 ‘길’이라는 말은 사람이 걷는 길만이 아니라 비유적인 말로 예수님이 구원으로 인도하고 올바른 삶의 방식이 되심을 뜻하는 말입니다.
그러므로 누구든지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것은 구원의 길로 가는 것이며, 올바른 삶을 살아가고 있는 것입니다.‘
(요 14:6) “예수께서 이르시되 내가 곧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니 나로 말미암지 않고는 아버지께로 올 자가 없느니라”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오늘 성경 본문에서 땅 끝까지 증인이 되게 하기 위해서는 반드시 길이 필요하며 그 길을 따라 복음이 전파되고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의 이름으로 세례를 주어 교회를 세우고 그 교회를 통해서 땅 끝까지 복음이 전파되어지기를 원하신 것입니다.
그 길이 바로 실크로드를 통해 서방의 복음이 아시아권에 들어왔던 것처럼 이제는 정반대로 실크로드 선상에 있는 지역에 복음을 전하여 교회를 세우고 그 교회들을 통해서 땅 끝까지 복음이 전파되어지는 길을 닦는 작업이 필요하게 되었습니다. 하나님께서 이미 우리 수원제일교회 세계 선교회를 통해서 많은 사역들을 하게 하셨으며 더 나아가서 실크로드 선교 사역에 우리 수원제일교회를 들어 쓰심을 감사합니다.

예화
KWMA 공식 발표한 자료에 따르면 2011년 1월 현재 169개국에 22, 014명 선교사를 파송했습니다.
실크로드 출발지인 중국에 3, 245명, 중앙아시아와 터키 사역자들이 1,730명을 파송했다. 한국 전체 선교 ¼ 사역들이 실크로드 선상에 있습니다. 향후 10년 안에 중국교회가 세계 선교에 중심축에 들어오기까지 한국 선교는 등받이 역할이 요구됩니다. 그중에 하나가 어떻게 하면 중국교회가 중앙아시아 선교에 교두보가 되게 하는가 하는 문제입니다.
이를 위해 수원신학교 안에 세계 선교신학원을 세우게 하시고 현재 열일곱명의 중국인 학생들이 신학을 공부하고 있으며 미국과 홍콩 대만 말레시아 등 여러 지역에 중국 목사님들이 와서 중국어로 강의를 하면서 인재를 양성하고 있으며 오는 9월 부터는 대학을 졸업한 중국 청년들을 초청하여 대학원을 운영할 구체적인 계획이 수립되고 있고 내일 삼년 교육 과정을 마친 소수의 학생들이 졸업식을 거행하게 됩니다.
그것만이 아닙니다. 우리 교회가 파송한 선교사를 통해서 양육을 받은 중국의 현지인들이 이제는 제자훈련이나 교회 성장이 아니라 세계 선교에 대한 훈련과 교육을 받고 싶다는 요청을 해왔습니다. 이를 대비하여 ‘비전을 품고 희망을 나누고’라는 사도행전 강해와 함께 나눌 문제지를 이미 중국어로 번역을 끝내어 현장에서 사용할 수 있도록 준비를 해 놓았습니다. 얼마나 감사한 일입니까?
그 동안 중국 교회를 섬기는 일에 전념을 해온 우리 교회가 이제는 한 걸음 더 나아가서 중앙아시아를 포함하여 실크로드를 거쳐 마침내 예수님이 탄생하신 베들레헴 땅까지 복음이 이어지게 하는 일에 우리 교회가 쓰임을 받기를 위해 기도해왔습니다.
그러던 중에 실크로드 포럼을 만나게 되었고 후원이사가 되고 선교훈련원 이사장이 되어 직접적으로 관여하게 되었습니다.
지난 2011년 5월23(월)-27일 실크로드 포럼이 벌써 3차 포럼이 있었습니다. 실크로드 선상의 선교사들 가운데 각 지역에서 십년 이상 사역을 하고 있는 시니어 사역자들만 80여명 가까이 모여서 ‘ 20/20- 즉 지난 20년을 회고하고 반성하고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고 오는 새 20년을 어떻게 나아갈 것인가에 대한 전망을 나누는 포럼에 주강사로 참석을 하고 돌아왔습니다.
금번에 참석한 선교사님들은 회교권이 강세인 실크로드 선상에 있는 십여개의 나라에서 선교사역을 하고 있는 있었기 때문에 정착하는 일조차 쉽지 않은 곳이었습니다.
그 모임을 통해서 지난 시간을 회고할 때 많은 시행착오가 있었음을 고백하였습니다. 인간관계 갈등, 현지인들과의 아픔, 제도권 국가 교회인 정교회와 힘겨루기, 동역자들을 잃는 아픔, 아군끼리 갈등도 있었다고 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실크로드 선교에 있어서 하나님은 일찍이 우리 민족인 고려인과 조선족들을 중국과 중앙아시아에 미리 보내셔서 한국 선교사들의 선교의 거점이 될 수 있게 하셨습니다.
그로 인해 서구선교가 할 수 없는 많은 교회개척을 했고 이제는 현지교회 리더십이 생겨 교회가 이양과 자립을 하고 있는 형편입니다.
이제는 향후 20년을 바라보며 전략을 세워야할 시점이 되었습니다. 구체적으로 이슬람보다 더 나은 생활 전도 전략, 비즈니스 선교 사역, 사역 패러다임의 전환,
중앙아시아 소수민족 선교, 역사 발전과 시너지(Synergy)선교, 힘없고 돈 없는 선교, 필드 없는 선교, 한국형 선교전략에 대해서 고민을 하였습니다.
또한 포럼을 통한 무엇보다 소중한 수확은 방만한 신학교 운영이 연합해 현지 신학교 협력 체제 구축(Network)하는 청신호와 디아스포라 현지인 선교훈련과 교회에 대한 전략이 수립하게 되었습니다. 이는 중국에서 터키까지 실크로드 선상에 한국 선교가 자리매김을 하고 있게 된 것입니다.
제가 이 모임에 주강사로 초청을 받아 참석하여 선교사들에게 말씀을 전하면서 실크로드 선교사역에 비전을 넓히고, 수고하는 선교사들을 격려하고, 개별적인 만남과 상담을 통해 위로를 하게 하셨습니다.
포럼이 끝난 후 선교사들이 겉치레로만 아니라 진심으로 고마움을 표하는 모습을 보면서 제에게는 큰 보람과 격려를 받았으며 이 은혜를 우리 성도들과 더불어 나누기를 원하는 것입니다.
이는 자랑하려고 하는 것이 아닙니다. 이 모든 일들은 우리의 힘으로 될 수 있는 일이 아닙니다. 하나님이 우리 교회를 들어 쓰시고 있는 것입니다.
일찍이 우리 수원제일교회를 선교하는 교회가 되도록 백명의 선교사 파송의 꿈을 가지고 어느 교회보다 먼저 선교사를 파송하는 교회가 되게 하신 안중섭 목사님과 그 꿈이 점차 현실로 이루어지도록 후임목사가 동일한 비전을 가지고 구체적으로 활동할 수 있도록 온 성도들이 적극 기도와 물질로 후원을 아끼지 않고 있기 때문에 가능할 수 있는 것입니다.

결 론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하나님께서 1957년 4월 19일에 우리 수원제일교회를 이곳에 세우신 이유가 바로 그와 같은 깊은 뜻을 이루시기 위함인 것입니다.
지난 주간 두 차례에 걸쳐서 새 생명 축제가 있었지만 시간이 갈수록 필요성은 알지만 실제로 실천에 옮기려고 하면 가장 어렵게 느껴지는 것이 복음 전도라는 것을 우리 성도들이 실감을 하였을 것입니다.
구체적인 핍박은 없지만 복음 전도가 갈수록 점점 더 어려워지고 있다는 것을 실제로 경험하였을 것입니다. 복음에 대해서 사람들이 너무나 냉랭하기 때문에 말 붙이는 것조차 쉽지 않아 망설이게 됨을 경험하였을 것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복음 전도를 위해 태신자를 작정하고 꾸준히 기도하고 접촉하고 관계를 맺고 오랜 기간 동안 관심을 갖고 시간과 물질을 투자하는 사람은 반드시 열매를 거두는 것을 경험하였을 것입니다.
그렇다면 선교는 더 말할 것이 없을 것입니다. 우리 교회가 세계선교회라는 이름으로 세계 각처에 선교사를 파송하고 기도와 물질로 후원을 하고 있습니다.

선교사님들이 인종과 문화와 기후와 관습이 제 각기 다른 이역만리 타국에 가서 가족과 함께 정착하여 뿌리를 내리는 일이 결코 쉬운 일이 아님을 누구나 다 이해할 것입니다.
국내에서 전도하는 일도 어렵다고 하는데 어떻게 낯선 이방 땅에 가서 복음을 전하여 사람들을 예수 믿게 하고 교회를 세우고 그 교회를 통해서 선교를 하게 하는 일이 인간의 수고와 노력으로 가능할 수 있을까요?
더구나 복음에 대해서 적극적으로 거부하고 핍박하는 회교도 땅이라면 더 말할 것이 없을 것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 교회에서 파송을 받은 선교사님들의 사역지를 둘러 보거나 다른 교회가 파송한 선교사님들이 사역하고 있는 이슬람권에서 사역하고 있는 선교사님들을 만나 대화를 나누게 되면 참으로 기적 같은 일들이 여전히 일어나고 있는 것입니다.
오늘 오후에 이어질 선교대회를 통해서 우리 교회가 파송한 선교사님들이 어떻게 맨땅에 헤딩을 하여 선교의 열매를 맺고 있는지 선교 보고를 통해서 우리가 기도하고 후원하는 일이 결코 헛되지 않으며 우리 교회가 파송한 선교사들이의 수고가 결코 헛되지 않으며 얼마나 아름다운 열매를 맺고 있는가를 맛보게 될 것입니다.
온 교우들이 오늘 있을 세계 선교대회를 통해서 하나님이 어떻게 우리 교회를 통해 일을 하시는지 우리 교회가 얼마나 많은 축복을 받은 교회인지를 재삼 확인하고 하나님께 감사와 영광을 돌리는 시간이 되어야 하겠습니다.
그리고는 그것으로 만족하지 말고 더욱 힘써 기도하고 선교사들을 후원하는 성도들이 다 되시기 바랍니다. 그러한 성도들에게 하나님의 더 크고 놀라운 은혜와 축복이 함께 하실 것입니다.
오늘 성경에 제자들이 보는데서 부활 승천하신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땅끝까지 이르러 복음의 증인으로 살라는 사명을 남겨두셨습니다. 그 주님이 다시 오시겠다면 그 이유가 무엇일까요?
(행 1:11) 이르되 갈릴리 사람들아 어찌하여 서서 하늘을 쳐다보느냐 너희 가운데서 하늘로 올려지신 이 예수는 하늘로 가심을 본 그대로 오시리라 하였느니라
그것은 예수님의 달란트 비유처럼 우리에게 주신 사명을 얼마나 충성했는가를 심판하기 위해서입니다.
주님이 우리에게 맡기신 전도와 선교 사역은 많이, 크게 가 능사가 아니라 주님이 우리에게 주신 달란트를 가지고 최선을 다할 때 주님은 다섯 달란트를 남긴 종과 두달란트를 남긴 종을 똑같이 칭찬하신 것처럼 칭찬을 하실 것입니다.
(마 25:23) 그 주인이 이르되 잘하였도다 착하고 충성된 종아 네가 적은 일에 충성하였으매 내가 많은 것을 네게 맡기리니 네 주인의 즐거움에 참여할지어다 하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