믿음으로 달려가는 사람들(히11장29-히12장3)
성경본문/히11:29-12:3
29 믿음으로 저희가 홍해를 육지 같이 건넜으나 애굽 사람들은 이것을 시험하다가 빠져 죽었으며
30 믿음으로 칠일 동안 여리고를 두루 다니매 성이 무너졌으며
31 믿음으로 기생 라합은 정탐군을 평안히 영접하였으므로 순종치 아니한 자와 함께 멸망치 아니하였도다
32 내가 무슨 말을 더 하리요 기드온, 바락, 삼손, 입다와 다윗과 사무엘과 및 선지자들의 일을 말하려면 내게 시간이 부족하리로다
33 저희가 믿음으로 나라들을 이기기도 하며 의를 행하기도 하며 약속을 받기도 하며 사자들의 입을 막기도 하며
34 불의 세력을 멸하기도 하며 칼날을 피하기도 하며 연약한 가운데서 강하게 되기도 하며 전쟁에 용맹되어 이방 사람들의 진을 물리치기도 하며
35 여자들은 자기의 죽은 자를 부활로 받기도 하며 또 어떤이들은 더 좋은 부활을 얻고자 하여 악형을 받되 구차히 면하지 아니하였으며
36 또 어떤이들은 희롱과 채찍질 뿐아니라 결박과 옥에 갇히는 시험도 받았으며
37 돌로 치는 것과 톱으로 켜는 것과 시험과 칼에 죽는 것을 당하고 양과 염소의 가죽을 입고 유리하여 궁핍과 환난과 학대를 받았으니
38 (이런 사람은 세상이 감당치 못하도다) 저희가 광야와 산중과 암혈과 토굴에 유리하였느니라
39 이 사람들이 다 믿음으로 말미암아 증거를 받았으나 약속을 받지 못하였으니
40 이는 하나님이 우리를 위하여 더 좋은 것을 예비하셨은즉 우리가 아니면 저희로 온전함을 이루지 못하게 하려 하심이니라
12:1-3
1 이러므로 우리에게 구름 같이 둘러싼 허다한 증인들이 있으니 모든 무거운 것과 얽매이기 쉬운 죄를 벗어 버리고 인내로써 우리 앞에 당한 경주를 경주하며
2 믿음의 주요 또 온전케 하시는 이인 예수를 바라보자 저는 그 앞에 있는 즐거움을 위하여 십자가를 참으사 부끄러움을 개의치 아니하시더니 하나님 보좌 우편에 앉으셨느니라
3 너희가 피곤하여 낙심치 않기 위하여 죄인들의 이같이 자기에게 거역한 일을 참으신 자를 생각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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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론>
오늘은 8.15 광복 59주년째 되는 날이다. 36년 동안 나라의 주권을 빼앗긴 채 서러운 암흑의 삶을 강요당하던 우리가 광명의 자유를 찾은 날이다.
국가란 무엇인가? 나라가 있다는 것은 무슨 의미인가? 우리는 나라에 대해 어떤 의무를 갖는가? 우리의 나라를 다시는 질곡 속으로 빠지지 않고 찬란한 영광의 미래로 이끌기 위해 우리는 무엇을 해야 하는가? 여러 가지 생각을 해보게 된다.
Westminster 신앙고백서에는 국가와 위정자, 그리고 교회와의 관계에 대해 다음과 같이 서술하고 있다: “전 세계의 지상 왕으로 계시는 하나님은 그의 밑에, 그리고 사람들 위에 두어야 할 위정자들을 그의 영광과 공중의 안녕을 위하여 임명하여 그 목적에 따라 선량한 사람을 옹호 고무하고 악한 사람에 대해서는 벌을 주기 위하여 검의 세력으로 그들을 무장시켰다...위정자는 말씀과 예전의 관리, 또는 천국 열쇠를 장악하는 권력을 사칭해서는 안되나, 평화와 일치가 교회 안에 보급되고 하나님의 진리가 순결하게 보존되며 예전과 훈련에 있어서 모든 타락과 남용이 방지되며...질서 유지를 위하여 권력이 위정자들에게 주어졌다. 교회는 위정자를 위하여 기도해야 하며... 그들을 존경하고 세금을 바치고 그들의 합법적인 명령에 복종하고 그들의 권위에 복종하는 것은 국민의 의무이다.”
죤 칼빈은 정부와 그 통치자의 권세에 제한이 있음을 주장했다. 즉 하나님께 복종하는 한, 통치자는 정당한 위정자가 될 수 있으며, 하나님의 뜻을 거역하는 한, 그는 백성의 지탄을 받지 않으면 안 된다. 이 원리를 <복종과 저항>의 논리에 적응시킨다면 국가의 시책이 하나님께 영광이 되지 않는 한, 교회는 위정자에게 시정을 요구해야 한다는 것이다.
우리나라는 하나님의 복을 많이 받은 나라이다. 우리가 오늘날 이만큼 살게 된 것이나, 하나님을 섬기는 백성들이 이렇게 많아지게 된 것들은 하나님의 특별한 섭리가 아니고는 설명될 길이 없다.
100여년전 우리의 형편은 어떠했던가? 이땅에 처음 복음을 전하기 위하여 젊음을 불살랐던 언더우드 선교사의 기도문을 읽어보면 우리의 당시 어려웠던 상황을 알 수 있다:
주여, 오직 제 믿음을 지켜주소서.
오 주여, 지금 아무것도 보이지 않습니다.
주님, 메마르고 가난한 땅, 나무 한 그루 시원하게 자라 오르지 못하고 있는 땅에 저희들을 옮겨와 앉히셨습니다.
그 넓고 넓은 태평양을 어떻게 건너왔는지, 그 자체가 기적입니다.
주께서 붙잡아 뚝 떨어뜨려 놓으신 듯한 이곳, 지금은 아무것도 보이지 않습니다.
보이는 것은 고집스럽게 얼룩진 어둠뿐입니다.
어둠과 가난과 인습에 묶여 있는 조선 사람뿐입니다.
그들은 왜 묶여 있는지도, 고통이라는 것도 모르고 있습니다.
고통을 고통인 줄 모르는 자에게 고통을 벗겨주겠다고 하면 의심하고 화부터 냅니다.
조선 사람들의 속셈이 보이지 않습니다.
이 나라의 조정관리들의 내심도 알 길이 없습니다. 가마를 타고 다니는 여자들을 영영 볼 기회가 없으면 어쩌나 싶기도 합니다.
조선의 마음이 보이질 않습니다. 그리고 저희가 해야 할 일이 보이지 않습니다.
그러나 주님, 순종하겠습니다.
겸손하게 순종할 때 주께서 일을 시작하시고, 그 하시는 일을 우리의 영적인 눈으로 볼 수 있는 날이 올 줄 믿나이다.
”믿음은 바라는 것들의 실상이요 보지 못하는 것들의 증거니라.”(히 11:1).
이 말씀을 따라 조선의 믿음의 앞날을 볼 수 있게 될 것을 믿습니다.
지금은 우리가 서양귀신, 양귀자(洋鬼子)라고 손가락질을 받고 있사오나 자신들과 우리 영혼이 하나임을, 하늘 나라의 한 백성, 한 자녀임을 알고 눈물로 기뻐할 날이 있음을 믿나이다.
학교도 없고 그저 경계와 의심과 멸시와 천대만이 가득한 곳이지만, 이곳이 머지 않아 은총의 땅이 되리라는 것을 믿습니다.
주여, 오직 제 믿음을 지켜주소서!
언더우드 선교사의 기도처럼 우리는 이제 하나님의 은총의 땅으로 변한 이 땅에서 마음껏 주님을 찬양하며 경배하는 백성이 되었다.
그러나 이렇게 된 데에는 나라를 위하여 목숨을 아끼지 아니하고 노력한 수많은 사람들의 희생이 있었고, 특히 핍박과 박해에 굴하지 아니하고 순교적인 믿음으로 저항한 교회들의 피와 땀이 있었음을 잊어서는 안될 것이다.
** 3,1운동이 일어난 후 1년 간 교회가 입은 피해를 일본측 집계로 살펴볼지라도 그 수가 엄청나다. 살해당한 자 7,645명, 부상당한 자 45,562명, 체포당한 자 26,443명, 소각 당한 교회당 59동, 소각 당한 기독교 학교 3개소, 소각 당한 가옥 724동.
당시 교회는 고난받는 한국민족의 상징 그것이었다. (크리스챤 라이프 96,3월호 P,16)
일제가 한국교회 위에 가했던 박해는 이루 말할 수 없을 만큼 잔인하고 끈질긴 것이었다.
▶ 1) 1938년 평양 서문박 교회에 모였던 제27회 총회에서 신사 참배를 결의 할 때 경찰의 경계와 압박이 심했다.
그 당시 총대수가 목사 86명, 장로 85명, 선교사 22명, 합 139명이었다. 이때 비상 무장경관이 각 문에서 경계했고 총대가 앉은 주위를 둘러 매 3척마다 형사 1명 씩 서서 지키고 있었다.
▶ 2) 제27회 총회가 신사참배 결의한 후 200여 교회가 폐쇄되고 2천여명의 신자들과 지도자들이 투옥되고 주일 집회는 오전 중으로 제한하고 예배당 6처를 1처로 통합했고 예배당 종을 대포알 제조하는 일에 헌납시켰다.
그러나 이기선, 주기철, 최봉석, 채정민, 주남선, 한상동, 이원영, 목사 등과 전도사, 장로 등 백여명이 끝까지 진리를 수호하다가 주기철, 최봉석, 목사, 박관준 장로는 순교했고 그 외의 분들은 병 보석으로 또는 해방 후에 승리의 출옥을 했다.
우리 한국교회는 이처럼 자랑스런 믿음의 선진들을 보유하고 있다. 이들이 흘린 피와 땀으로 오늘의 한국교회가 번성하고 있는 것임을 알아야 겠다.
오늘 본문 말씀에도 이런 믿음의 사람들에 대하여 자세하게 소개해 주고 있다. 그들은 오늘 믿음의 경주를 하고 있는 우리의 모델로서, 하나님은 본문을 통하여 우리의 달려가는 모습이 어떠해야 하는가를 가르쳐 주신다.
A. 주님께서는 믿음의 사람들이 믿음의 역사를 일으켰다고 말씀하신다.
1. 히브리서 11장은 믿음의 사람들의 산맥을 이루고 있다.
본 장은 믿음장으로 알려져 있다. 여기 나오는 여러 인물들은 구약의 대표적인 사람들로서, 히브리서 기자는 이들을 믿음이라고 하는 렌즈를 통하여 투영하고 있다.
본 장은 이 하나님의 사람들이 어떻게 믿음으로 살았고, 어떻게 믿음의 역사를 이루었는지에 대해 구체적으로 보여준다.
2. 그들이 하나님을 신뢰했던 것은 환경이 좋았기 때문이 아니었다.
오히려 그들은 어려운 조건 속에서 위기와 어려움을 믿음으로 이기고 마침내 놀라운 승리를 거둔 사람들이었다.
3. 본문을 읽어가며 저들의 믿음의 역사를 살펴보자.
29절, “믿음으로 저희가 홍해를 육지 같이 건넜으나 애굽 사람들은 이것을 시험하다가 빠져 죽었으며”
이스라엘 백성이 바싹 마른 바다의 밑바닥을 거침없이 건넌 것은 믿음이 아니고서는 불가능한 도전이었다. 지도자 모세는 하나님의 뜻을 알고 또 하나님을 전적으로 신뢰했기 때문에, 주님이 무엇을 지시하시든지 그대로 따를 준비가 되어 있었던 것이다.
성도에게 문제가 되는 것은 장애물의 크기가 아니라 주님의 뜻과 능력과 신실하심에 대하여 온전한 신뢰를 하는가의 여부이다. 믿음이 있는 자들은 아무리 거대한 장애물이 앞을 가로막아도 결코 좌절하지 않는다. 믿음은 우리의 눈을 장애물에게로가 아니라 그것들을 임의로 주장하시는 하나님께로 향하도록 만들기 때문이다.
본문 30절, “믿음으로 칠일 동안 여리고를 두루 다니매 성이 무너졌으며”
이스라엘이 가나안땅에서 첫 번째 맞딱뜨린 장애물 여리고성은 전차가 그 위에서 달릴 수 있을 정도의 거대한 이중 성벽으로서, 제대로 훈련된 군사를 갖지못한 이스라엘로서는 난공불락의 요새였다.
본절에 여호수아의 이름이 거명되지 않는 것은 이스라엘 백성 전체의 믿음이 여리고 성 함락에 결정적인 요소였음을 보여준다. 성을 무너뜨리기 위하여 단순히 성 주위를 돌도록 하신 하나님의 명령이 상식적으로나 이성적으로 이해하기 힘들었을 것이지만 모든 백성들은 믿고 따랐던 것이다.
“할 수 있거든이 무슨 말이냐? 믿는 자에게는 능치 못할 일이 없느니라”(막9:23)고 하신 예수님의 말씀처럼 믿음은 모든 어려움을 극복하게 하는 것이다.
본문 31절, “믿음으로 기생 라합은 정탐군을 평안히 영접하였으므로 순종치 아니한 자와 함께 멸망치 아니하였도다”
라합은 이방여인이었고 기생(포르네) 곧 ‘몸파는 여자’였지만 믿음으로 구원을 받았을 뿐 아니라 예수님의 족보에 그 이름이 올라가는 영광을 누리게 되었다. 혹자는 당시 이스라엘이 여리고를 함락시킬 확률이 순수한 군사력으로만 보았을 때 100만분의 1이었다고 하는데, 그럼에도 라합은 불가능을 가능으로 바꾸시는 하나님의 전능성을 믿었던 것이다.
32절, “내가 무슨 말을 더 하리요 기드온, 바락, 삼손, 입다와 다윗과 사무엘과 및 선지자들의 일을 말하려면 내게 시간이 부족하리로다”
여기 언급된 인물들은 신정시대의 인물들과 왕정시대의 인물들로 나눌 수 있다. 이들에게 있는 한가지 공통점은 모두가 하나님에대한 믿음으로 위대한 역사를 경험하게 되었다는 것이다.
구약에 익숙한 히브리서 수신자들에게는 이들이 어떤 믿음을 가졌고 또 믿음으로 어떤 활약상을 보여주었는지에 대한 자세한 언급이 필요 없을 정도였다.
4. 믿음으로 이 땅에서 승리의 삶을 살았던 많은 증인들이 있다.
33,34절, “저희가 믿음으로 나라들을 이기기도 하며, 의를 행하기도 하며, 약속을 받기도 하며, 사자들의 입을 막기도 하며, 불의 세력을 멸하기도 하며, 칼날을 피하기도 하며, 연약한 가운데서 강하게 되기도 하며, 전쟁에 용맹되어 이방 사람들의 진을 물리치기도 하며...”
역사적으로 하나님께서 위대한 일에 쓰신 사람들이 지닌 공통점과 특징은 믿음을 삶의 수단과 행동의 매개로 삼았다는 것이다. 그들의 삶에서 믿음을 빼버리면 남는 것이 아무것도 없게 될 것이다.
전쟁의 영웅들인 기드온이나 입다, 삼손, 다윗은 싸움터에 나갈 때에 칼이나 창보다 믿음이라는 무기를 더욱 중히 여겼다. 교회와 그리스도인들이 지상에 하나님의 나라를 확장하기 위해서 사용해야 할 병기는 바로 믿음이다. 믿음만이 이 세상을 이긴다.
믿음으로 살았던 사람들은, 개인의 허물이 전혀 없었던 것은 아니지만, 지도자로서 자기 직무를 수행함에 있어 언제든지 의로우신 하나님 편에 서고자 하였다.
이들 가운데 사자들의 입을 막은 다니엘이나 삼손, 다윗을 보라. 죽음의 위협 앞에서도 하나님을 의뢰하는 믿음의 행위가 얼마나 놀라운 결과를 가져오는지 생생하게 교훈하는 대목이다.
다니엘의 세 친구 사드락, 메삭, 아벳느고는 바벨론 왕 느부갓네살의 풀무불의 능력을 믿음으로 소멸시킨 젊은이들이다. 하나님은 견고한 믿음을 지킨 자들에게 과학이나 이성으로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기적을 행하셔서 구원하심으로써, 그 생명을 보호하시며 주변의 불신자들을 깜짝 놀라게 하신 것이다.
본서 기자가 이처럼 독자들에게 믿음의 영웅들에 관한 일들을 상세하게 회상시키는 것은 시험과 핍박 가운데서 흔들리고 있는 히브리 출신의 성도들에게 새로운 용기와 믿음을 북돋아주기 위함이었다. 그들에게 지금 필요한 것은 흔들리지 않는 믿음으로 인한 견고함과 불굴의 정신이었다. 이것은 오늘 우리들에게도 동일하게, 아니 그때 그 사람들보다 훨씬 더 크게 필요한 것이다.
5. 믿음의 사람들 가운데는 영원한 삶을 위하여 이땅의 삶을 희생한 사람이 많다.
우리 모두 경건한 마음으로 본문 35~38절을 읽자:
“여자들은 자기의 죽은 자를 부활로 받기도 하며 또 어떤 이들은 더 좋은 부활을 얻고자 하여 악형을 받되 구차히 면하지 아니하였으며, 또 어떤 이들은 희롱과 채찍질 뿐 아니라 결박과 옥에 갇히는 시험도 받았으며, 돌로 치는 것과 톱으로 켜는 것과 시험과 칼에 죽는 것을 당하고 양과 염소의 가죽을 입고 유리하여 궁핍과 환난과 학대를 받았으니, (이런 사람은 세상이 감당치 못하도다) 저희가 광야와 산중과 암혈과 토굴에 유리하였느니라”
하나님은 믿음의 종들이라 해서 모든 경우 어려움에서 건져내신 것은 아니다. 그들이 받은 악형은 참으로 엄청난 것이었다. 북을 치는 사람이 힘껏 북을 두드리는 것처럼, 대적자들은 믿음의 사람들을 북 모양으로 생긴 형틀위에 뉘여 고정시키고, 먼저 쇠창살로 어깨와 팔, 엉덩이, 다리 등의 관절을 찔러 탈골시킨 뒤 죄수의 앞가슴을 분쇄하듯이 쳐서 죽였는데, 이를 ‘튐파논’이라 불렀다.
제사장 여호야다의 아들 스가랴는 우상을 섬기던 백성들 앞에 서서 하나님의 이름으로 그들을 책망하다가 성전 뜰 안에서 돌에 맞아 순교하였다.
선지자 이사야는 므낫세 왕이 보는 앞에서 톱으로 켜져 두 동강이 나 죽었는데, 이사야는 ‘큰소리로 울부짖거나 울지 않았으며, 그의 몸이 두 조각으로 잘릴 때까지 그의 입술이 성령으로 말하였다’고 전해진다.
** 안티오커스 애피파네스가 B.C.170년경 유대 종교를 말살하려는 대 박해를 일으켰을 때, 일곱 형제가 순교한 이야기는 너무도 감동적이다. 7형제를 목전에서 차례차례 차바퀴에 매달아 돌려 쇠못에 찢겨 죽이고, 철못손으로 찢어서 죽이고, 달군 가마에 볶아 죽이고, 쇠갈구리로 가슴통을 꿰어 매달아 죽이고, 점점이 자르고, 돌방아로 깨고, 끓는 가마에 끓여 죽여도 오히려 여호와를 찬송했던 그런 사람들이 우리 선배들이다.
본문 38절은 말한다: “이런 사람은 세상이 감당치 못하도다” 그들은 믿음의 경주를 능력있게, 성공적으로 감당했던 사람들이다. 그들은 그들의 시대에서 영광스럽게 하나님을 섬기고, 주의 교회를 세웠던 사람들이다. 하나님은 이런 그들을 믿음의 모델로서, 오고오는 세대의 사람들에게 내세워보이고 계신다.
B. 주님께서는 그들이 우리에게 증인이 되어 응원하고 있다고 말씀하신다.
1. 본문 12:1, “이러므로 우리에게 구름 같이 둘러싼 허다한 증인들이 있으니...”
본문을 다시 번역하면, ‘우리는 우리를 둘러서 있는 이렇게 많은 증인들의 구름을 가지고 있다’ 가 된다.
‘증인들의 구름’이란 경주가 펼쳐지고 있는 거대한 원형 경기장의 스탠드를 가득 메우고 있는 꽉 들어찬 관중에 대한 비유이다. 그들은 신앙의 경주를 하고 있는 성도들에게 열렬한 응원을 보내주고 있다.
2. 참으로 영광스럽게 믿음을 지키며 승리의 경주를 감당했던 그들은 이제 바통을 우리에게 넘겨주고 있다. 문제는 우리이다.
오늘 우리 모두는 믿음의 경주를 하고 있는 사람들이다.
이 경주는 하나님을 신뢰하는 믿음으로 나아가야 하는 경주, 끝까지 믿음으로 나아가야 하는 경주이다.
이 경주는 어려움과 환난이 덮쳐와도 변함없이 믿음으로 달려야 하는 경주이다. 마치 지금 그리스에서 온 세계인의 이목을 집중시키며 진행되고 있는 올림픽의 경기 선수들처럼, 우리 모두는 숨을 헐떡이며 비지 땀을 흘리면서도 기어코 이겨야 하는 경기자이다.
3. 지금 바통은 우리에게 주어졌다.
4천년 전 아브라함이 쥐고 달렸던 바통, 이삭과 야곱과 요셉이 차례로 받아서 힘껏 쥐고 달렸던 그 바통, 모세가 가지고 달렸던 그 바통, 앞서간 수많은 순교자들이 가지고 달렸던 그 바통을 이제 우리가 받아 쥐고 있다.
이것이 혹심한 신앙 박해의 시대를 살았던 초대 교회 그리스도인들이 가졌던 ‘자기 정체성’(Identity)이었다.
이 소중한 바통을 물려받았다는 것, 이것은 초대 그리스도인들에게 감격이었다. 이것은 그들에게 희열이며 축복이었다.
그러한 자기 정체성의 확인은 박해와 고통을 이길 수 있게 하였다. 사랑하는 남편을, 사랑하는 부모님을, 사랑하는 자녀들을 순교의 제물로 바치고 난 후에도 슬픔과 아픔을 이기고 그들은 바통을 쥐고 달렸던 것이다.
4. 그들은 경주를 위하여 모든 거추장스런 것들을 벗어던져 버렸다.
이것은 모든 경주자들에게 반드시 필요한 것이다. 신앙의 경주자들이 벗어버려야 할 것들에는 의심, 교만, 나태 등이 포함될 것이다. 신앙의 경주에 방해되는 것은 그것이 무엇이든지 단호히 제거해버리는 결단이 필요하다.
경주자 여러분! 우리에게 이 바통이 넘어 왔고, 이제 우리가 달릴 차레이다. 다 달리고 나면 우리도 그것을 다음 주자에게 넘겨 주어야 한다.
C. 주님께서는 우리가 믿음으로 달려가기 위해서 예수님을 바라보라고 말씀하신다.
1. 본문 12:2, “믿음의 주요 또 온전케 하시는 이인 예수를 바라보자!”
이 믿음의 경주에서 승리하기 위해서 한가지 잊지 말아야 할 것은 믿음의 주자들이 예수님을 바라보아야 한다는 것이다.
예수님은 믿음의 창시자요 완성자이시다. 예수 그리스도는 친히 십자가의 구속 사역을 감당하심으로써 기독교 신앙의 시작점이 되셨고, 장차 심판주로 다시 오실 것이다.
2. 그러므로 우리 모두는 예수님을 바라보아야 한다.
신앙의 경주자들이 승리하기 위해서는 그 시선을 우리 구주 에수님에게로 계속해서 주목해야 한다.
육상경기에 출전하는 자들이 결승점만을 바라보고 달리듯이, 우리는 신앙의 궁극적 대상인 예수 이외의 모든 것으로부터 눈을 떼고 오직 예수 그리스도에게만 주목해야 한다.
내 힘으로 달리는 사람은 넘어질 수밖에 없다. 환란과 핍박이 닥쳐올 때, 자기에게 손해가 덮여올 때, 그는 끝까지 달릴 수 없다. 세상 속에서 믿음으로 산다는 것이 그렇게 호락호락하지 않기 때문이다.
그러나 주님을 바라보는 것은 환경과 조건을 넘어서서 믿음으로 승리할 수 있는 유일한 비결이다.
우리 예수님은 가장 위대한 모범을 보이셨으며, 장래의 영광을 위해 눈앞의 고난과 모욕과 조롱과 십자가의 길을 믿음으로 걸어가신 분이시다.
<나가는 말>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경주장에 선 우리에게는 이처럼 훌륭한 신앙의 선진들로 구성된 응원단이 있다. 그들은 우리에게 증인이 되어 박수를 보내며 응원하고 있다.
8.15 광복이 오기까지 그리도 많은 사람들이 신앙의 절개를 지키며 승리의 경주를 수행하였다.
지금도 북한 땅에는 초대교회 못지 않은 박해 속에서 신앙의 경주를 용감하게 경주하는 동포들이 있음을 기억하자.
** 2000년 2월 10일 함북 무산시에서 리영희라는 37세의 여성이 총살을 당했다. 그는 죽기 전 다급한 목소리로 ”여러분, 예수님을 믿으세요!”라고 말했다. 그는 ”주여!”라는 외마디 소리를 마지막으로 순교했다. 그때 총살형을 지켜보았던 한 사람이 탈북해서 중국에서 복음을 전하는 한국 선교사에게 그 사실을 통보하여 리영희의 죽음은 널리 알려지게 되었다.
리영희와 그의 남편은 굶주림을 견디다 못해 두만강을 건너 탈북했다. 그들은 한국 선교사에 의해 운영되던 처소교회를 찾아갔다. 그의 남편은 복막염을 앓고 있었다. 처소교회에서는 그를 병원에 입원시켰다. 3개월 후 회복되어 두 부부는 먹을 것과 입을 것과 성경을 가지고, 두만강을 건너 자기 동네로 돌아왔다.
리영희는 그 후 2년 동안 중국을 들락날락하면서 소형 성경책을 가지고 와서 동포들에게 전달했다. 그러다가 결국 보위부에 의해 체포되었다. 리영희는 자기를 고문하는 자들에게 계속해서 말했다.
”하나님은 살아계십니다. 그러니 동무들도 예수님을 믿어야 합니다.”
그는 극심한 고문 속에서도 끝까지 자기를 도와준 선교사의 이름과 처소교회의 위치를 말하지 않았다. 그리고는 기꺼이 순교했다. 이 소식을 전하는 한국 선교사는 이렇게 기록하고 있다.
”지금 북한에는 도처에 순교의 피가 흐르고 있습니다. 99년 한해만 하더라도 400여명이 공개처형을 받았는데 그중 1/3이 기독교인이었다고 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북한 땅에 제2, 제3의 리영희가 양육되고 있으며 수십 개의 지하교회가 만들어지고 있습니다. 우리 또한 순교를 당하는 그날까지 이 일을 할 것이며 주님이 다시 오시는 그날까지 이 일은 계속될 것입니다.”
오늘 이 땅에서도 예수님을 위하여 기꺼이 목숨을 바치는 이들이 있음을 잊지 말자.
여러분은 지금 바통을 쥐고 달리고 있는 신앙의 경주자인가? 그런 자각이 있는가?
여러분은 경주에 걸림돌이 되고 있는 겉옷들과 얽매이기 쉬운 죄들을 던져버렸는가?
그리고 우리 믿음의 주요 온전케 하시는 이인 예수님을 날마다 바라보고 있는가?
나의 지난 경주의 기록은 어떠했으며, 어떤 목표를 갖고 있는가?
우리가 주님을 바라보며 그분의 능력에 전적으로 의지할 때, 성령의 도우심과 인도하심이 우리와 함께할 것이다.
설교:박순오 목사(대구 서현교회) 8.15광복절기념주일설교/ 2007-08-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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