견고한 믿음
(골 2:4-7)
(골 2:4) “내가 이것을 말함은 아무도 교묘한 말로 너희를 속이지 못하게 하려 함이니” (골 2:5) “이는 내가 육신으로는 떠나 있으나 심령으로는 너희와 함께 있어 너희가 질서 있게 행함과 그리스도를 믿는 너희 믿음이 굳건한 것을 기쁘게 봄이라” (골 2:6) “그러므로 너희가 그리스도 예수를 주로 받았으니 그 안에서 행하되” (골 2:7) “그 안에 뿌리를 박으며 세움을 받아 교훈을 받은 대로 믿음에 굳게 서서 감사함을 넘치게 하라”
2008년 5월 12일 오후 2시 28분 중국의 쓰촨 성 지방에 진도 8.0의 큰 지진으로 68,712명이 숨지고 17,921명이 실종이 되었다고 합니다. 지금 그곳에는 기념비가 세워져 있습니다.
지진이 일어났을 때 그처럼 많은 피해가 일어난 이유는 강진 때문만이 아니라 건물을 지을 때 견고한 기초위에 철근 콘크리트로 기둥과 벽을 쌓아야 하는데, 가난하기 때문에 벽돌로만 지었기 때문에 약간의 진동에도 쉽게 무너져 집안에 있던 사람들이 순식간에 매몰되는 바람에 피해가 학교가 무너져서 많은 학생들이 목숨을 잃었다고 합니다.
예수님께서 산에 올라 제자들에게 복음을 전하신 것을 기록한 마 5-7장까지의 성경 말씀을 흔히 산상보훈이라고 합니다. 물론 그 내용은 구구절절이 다 진리의 말씀입니다.
(마 5:14) “너희는 세상의 빛이다. 즉 모든 사람이 볼 수 있도록 밤에 불을 밝혀 둔 언덕 위의 마을과 같다.” (마 5:16) “너희 빛을 가리지 말고 모든 사람들에게 환하게 비추어라. 모든 사람에게 착하게 행동하라. 그래서 그들이 너희의 착한 행실을 보고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를 찬양하게 하라.”
그러나 아무리 좋은 말씀이라고 할지라도 듣지 못했거나, 알기는 하면서도 착한 행실을 하지 않는다면 듣고 아는 것이 아무런 의미가 없을 것입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산상 보훈 마지막에 지진에도 끄떡없는 견고한 집처럼 어떤 시험이 닥쳐와도 잘 이겨낼 수 있는 ‘견고한 믿음’에 대해서 집을 짓는 비유로 말씀하셨습니다.
(마 7:24) 그러므로 누구든지 나의 이 말을 듣고 행하는 자는 그 집을 반석 위에 지은 지혜로운 사람 같으리니 (마 7:25) 비가 내리고 창수가 나고 바람이 불어 그 집에 부딪치되 무너지지 아니하나니 이는 주추를 반석 위에 놓은 까닭이요 (마 7:26) 나의 이 말을 듣고 행하지 아니하는 자는 그 집을 모래 위에 지은 어리석은 사람 같으리니(마 7:27) 비가 내리고 창수가 나고 바람이 불어 그 집에 부딪치매 무너져 그 무너짐이 심하니라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것은 영혼의 집을 짓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어떻게 해야 어떤 시험이나 유혹이 지진처럼 흔들어 댈지라도 무너지지 않는 견고한 믿음의 집을 세울 수 있는지 오늘 성경에서 그 답을 찾고자 합니다.
1. 골로새 교회에 대한 바울의 염려
오늘 성경의 골로새 교회는 바울 사도가 개척하지 않았기 때문에 바울이 만나 본적이 없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도 바울은 로마 감옥에서 골로새 교회를 자기가 개척한 에베소나 빌립보 교회와 조금도 차별하지 않고 걱정하고 염려하였습니다.
(골 2:1) “내가 너희와 라오디게아에 있는 자들과 무릇 내 육신의 얼굴을 보지 못한 자들을 위하여 얼마나 힘쓰는지를 너희가 알기를 원하노니”
여기서 ‘힘쓰는지’라는 말(ajgwvn)은 운동장이나 법정이나 전쟁에서 상대방을 이기기 위해 죽기 살기로 싸우는 것과 같은 뜻입니다.
좀더 이해하기 쉽게 번역한 성경을 보면 사도 바울이 옥중에서 교회와 성도들을 위해 싸운다는 말이 그들을 위해 중보 기도하는 것을 뜻함을 알 수 있습니다.
(골 2:1) “여러분과 라오디게아에 있는 교회를 위해서, 또 나를 개인적으로 알지 못하는 다른 많은 사람들을 위해서, 내가 얼마나 기도하면서 싸우고 있는지 알아주기 바랍니다.”
그렇다면 사도 바울이 로마 옥중에서 골로새 교회와 라오디게아 지역에 있는 성도들을 위해서 싸우고 있다는 말은 무슨 뜻일까요?
그것은 사람이 구원을 받을 수 있는 유일한 길은 예수님의 십자가와 부활을 믿음으로 만 구원을 얻을 수 있다는 복음을 부인하거나 약화시켜 인간의 선행이나 율법의 준수나 종교적인 경건 훈련이나 지식 습득을 통해서 구원을 얻을 수 있다고 가르치는 이단들로부터 교회들을 지켜내기 위한 영적인 싸움이 바로 기도임을 뜻하는 것입니다.
바울 사도가 그와 같은 기도를 하게 된 동기는 이단자들이 교묘한 말로 골로새와 라오디게아 교회를 미혹을 하고 있다는 소식을 들었기 때문입니다.
(골 2:4) “내가 이것을 말함은 아무도 교묘한 말로 너희를 속이지 못하게 하려 함이니”
여기서 ‘교묘한 말’이라는 말(piqanologiva)은 ‘설득력있는 말, 설득하는 기술’이라는 뜻으로 이단자들이 매우 설득력 있는 말로 성도들을 미혹한다는 말입니다.
이에 대해 로마 감옥에 갇혀 있는 바울이 그들을 위해서 할 수 있는 일은 기도 외에는 아무것도 할 수 없었습니다.
기도가 무엇인지? 그 본질과 중요성을 아는 사람은 세상에서 기도보다 더 강력한 일이 없음을 믿습니다. 그래서 아무것도 할 수 없을 때에만 기도하는 것이 아니라 무슨 일을 하든지 최우선적으로 기도하는 사람입니다.
사람이 볼 때 기도는 아무것도 하지 않고 가만히 앉아만 있는 것처럼 보일 것입니다. 그러나 기도는 마귀의 도전을 방어하는 장벽과 철조망인 것입니다.
지금도 악한 마귀는 사람들에게 육체적인 질병이나, 경제적인 손실이나, 마음에 분노, 불안, 좌절, 시기, 미움, 욕심을 불어 넣어, 사람들로 하여금 나쁜 생각, 나쁜 말, 나쁜 행동으로 죄를 범하게 합니다.
그것만이 아닙니다. 예수 믿는 성도들끼리 분쟁하게 하고 시험에 빠져 교회를 떠나 이단으로 넘어가게 하고, 교회 안에 분쟁을 일으켜서 부흥하지 못하게 하려고 끊임없이 도전하고 있습니다.
그럴 때 흔들림이 없는 견고한 믿음의 사람은 오늘 사도 바울이 보여준 것처럼 기도로 마귀와 싸우는 사람입니다.
이를 위해 예수님이 가르쳐주신 주기도문에 ‘우리를 시험에 들게 하지 마시옵고 다만 악에서 구하옵소서’라고 기도하라고 가르치셨습니다.
또한 베드로 사도는 (벧전 4:7) “만물의 마지막이 가까웠으니 그러므로 너희는 정신을 차리고 근신하여 기도하라 (벧전 5:8) “근신하라 깨어라 너희 대적 마귀가 우는 사자 같이 두루 다니며 삼킬 자를 찾나니” 라고 하였습니다.
오늘도 견고한 믿음의 사람은 마귀가 사랑하는 가족과 친구와 이웃과 나라와 민족을 시험하지 못하도록 바울 사도와 같이 기도의 성벽과 철조망을 튼튼히 세워야 합니다.
(눅 22:46) 이르시되 어찌하여 자느냐 시험에 들지 않게 일어나 기도하라 하시니라
2. 골로새 교회를 위한 바울의 소원
오늘 성경에서 사도 바울이 로마 옥중에서 멀리 떨어진 골로새교회와 라오디게아 지역의 성도들을 위해 기도한다고 할 때 과연 그 기도가 얼마나 영향을 끼칠 수 있겠는가 하는 의구심이 들지 모르겠습니다.
때때로 세계 도처에서 자살 폭탄 테러로 무고한 사람들을 많이 죽고 다치게 만드는 이슬람 과격파 탈레반들이 제일 무서워하는 것은 무인 조종 전투기입니다. 사람이 직접 타지 않고 미국 국무성에서 아프카니스탄의 텔레반 지도자가 숨어 있는 곳을 공격하여 사살했다는 뉴스를 본적이 있을 것입니다.
하물며 천지를 만드신 하나님은 인간보다 더 능력이 많으신 분입니다. 기도는 그 하나님께서 역사하시는 도구라면 기도의 능력은 더 크다는 믿음을 가져야 합니다.
사도 바울은 그와 같은 기도의 능력을 믿기 때문에 비록 로마 감옥에서 멀리 떨어진 골로새와 라오디게아 지방의 교회들을 시험하는 이단들과 싸우는 기도를 한 것입니다. 오늘 성경은 사도 바울이 골로새와 라오디게아 교회의 성도들이 이단들의 유혹에 넘어가지 않기 위해 무엇이 필요한지를 구체적으로 기도한 내용을 볼 수 있습니다.
(골 2:2) “이는 그들로 마음에 위안을 받고 사랑 안에서 연합하여 확실한 이해의 모든 풍성함과 하나님의 비밀인 그리스도를 깨닫게 하려 함이니”
1) 여기서 ‘마음에 위안’이라는 말(parakalevw)은 ‘초청하다, 훈계하다, 격려하다, 위로하다’라는 뜻으로 슬픔의 때에 친절한 격려에서 위로하는 것을 뜻합니다.
이단이나 악한 마귀가 노리는 표적은 예수를 믿고 교회를 다니는 사람들이 마음에 상처를 받거나 육체적으로 연약해졌을 때라는 사실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그러므로 성도들 간에는 상처를 주고받지 말고, 흔히 말하는 섭섭증에 걸리지 말아야 합니다.
악한 마귀는 하나님과 인간 사이를, 인간과 인간 사이를 이간하여 원수와 불화의 관계로 만듭니다. 그러므로 마귀가 제일 좋아하는 대상은 마음에 미움이 가득하고, 공동체가 분열하고, 갈등하는 것입니다.
정반대로 마귀가 싫어하는 적극적인 사랑과 위로를 주고받으며 서로 하나가 되는 교회와 성도들이 되어야 합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사랑은 원수를 사랑하여 화목하게 만들어 자녀가 되게 하고 형제가 되게 하고 친구가 되도록 하나로 결합시키는 힘이 있습니다.
그러므로 마귀를 대적하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예수님의 십자가 사랑으로 구원을 받은 성도들이 하나님을 사랑하고, 성도들끼리 사랑하고, 힘을 합쳐서 이웃을 사랑하는 일에 힘써야 합니다. 그러한 성도들이 모인 교회는 마귀가 무너뜨릴 수 없는 견고한 교회가 되는 것입니다.
2) ‘사랑 안에서 연합’이라는 말은 ‘사랑으로 함께 결합시키다, 조화시키다’라는 뜻입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사랑은 원수를 사랑하여 화목하게 만들어 자녀가 되게 하고 형제가 되게 하고 친구가 되도록 하나로 결합시키는 힘이 있습니다.
그러나 악한 마귀는 하나님과 인간 사이를, 인간과 인간 사이를 이간하여 원수와 불화의 관계로 만듭니다. 그러므로 마귀가 제일 좋아하는 대상은 마음에 미움이 가득하고, 공동체가 분열하고, 갈등하는 것입니다.
그러한 사람을 공격하고, 그러한 교회를 시험하는 일이 마귀가 가장 즐겨하는 일입니다. 반면에 마귀가 제일 두려워하는 대상은 사랑을 실천하는 사람들이 모인 사랑이 충만한 교회입니다.
그러므로 마귀를 대적하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예수님의 십자가 사랑으로 구원을 받은 성도들이 하나님을 사랑하고, 힘을 합쳐서 이웃을 사랑하는 일에 힘써야 합니다.
3) 그 다음 ‘확실한 이해의 모든 풍성함’ 이라는 말(suvnesi")은 ‘이해력, 통찰력’이라는 뜻으로 영적인 분별력을 뜻하는 것입니다.
당시 교회와 성도들을 미혹하던 초기 영지주의는 물질은 근본적으로 악하고 오직 영만이 선하다는 이원론으로 육체는 금욕을 통해 말살되어야 하고, 오로지 신령한 지식을 추구하는 신비주의를 통해서 하나님께 나아갈 수 있다고 주장하는 이단으로 오랜 세월동안 기독교를 위협해왔습니다.
왜 예나 지금이나 사람들이 기독교에 만족하지 못하고 정통적인 성경 해석에 만족하지 못하고 신비주의적인 해석에 미혹을 받게 되는 것일까요?
그것은 성경에 대한 무지나 오해로 인해 자기가 현재 믿고 있는 기독교와 성경에 대한 확실한 이해와 확신의 결여로 말미암은 당연한 결과입니다.
마귀가 인류의 조상을 유혹할 때 사용한 방법에서 찾아 볼 수 있습니다. 마귀는 먼저 하와가 하나님의 말씀에 대해 불확실함을 알고 하와를 유혹하였습니다.
예나 지금이나 마찬가지입니다. 마귀가 좋아하는 대상은 불신자가 아닙니다. 이단들의 공격 목표는 새 신자가 아닙니다. 나름대로 잘 믿는 줄 알지만 성경에 대해 불확실한 지식을 가지고 있는 어중간한 신자입니다.
4) 여기서 ‘깨닫는’이라는 말은 당시 교회를 가장 어지럽게 하는 그노시라는 영지주의에 대항하는 말(ejpivgnwsi")로 ‘명확한 지식, 하나님을 아는 지식’을 가리키는 말입니다.
기성 교회에서 이단으로 넘어가는 사람들의 공통점은 성경으로 만족하지 않고 보다 더 깊은 신비를 알고 싶어 하는 영적인 탐욕 때문입니다.
그러나 세상에 성경보다 더 특별한 진리는 없습니다. 그리스도 예수 그리스도 안에 모든 지혜와 신비가 다 감추어져 있음을 알아야 합니다.
(골 2:3) “그 안에는 지혜와 지식의 모든 보화가 감추어져 있느니라”
가) 영원하신 하나님의 독생자가 사람이 되어 세상에 오셨다는 성육신이 감추셨던 하나님의 비밀인 것입니다.
나) 예수께서 십자가 위에 달려 죽으심으로 많은 사람들의 죄를 속량하셨다는 사실도 하나님의 비밀인 것입니다.
다)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도 이 세상에서 처음 이루어진 신비한 사건이며, 더구나 그 부활을 믿는 모든 성도들도 동일하게 부활하게 된다는 것도 하나님의 비밀입니다.
라) 예수 그리스도께서 이미 부활 승천하셨지만 지금도 성령으로 우리와 함께하시고 우리의 삶 속에서 활동하시는 사실도 하나님이 감추셨던 비밀입니다.
이 사실을 깨달은 사도 바울은 누구보다 고학력자요 철저한 유대교인으로써 헬라 철학에도 능통한 사람이었지만 결국 그 모든 것들을 배설물처럼 버릴 수 있었던 것은 그리스도 예수를 아는 지식이 가장 고상함을 깨달았기 때문입니다.
(빌 3:8) “또한 모든 것을 해로 여김은 내 주 그리스도 예수를 아는 지식이 가장 고상함을 인함이라 내가 그를 위하여 모든 것을 잃어버리고 배설물로 여김은 그리스도를 얻고”
3. 골로새 교회에 대한 바울의 사랑
사도 바울은 자신이 개척한 에베소 교회나 빌립보 교회와 조금도 차등을 주지 않고 동일하게 걱정하고 염려하며 기도한 것은 그 만큼 바울이 큰 인물이었음을 뜻하는 것입니다.
오늘 성경 본문을 보면 사도 바울이 골로새 교회와 라오디게아 교회 성도들을 얼마나 사랑하는지를 잘 나타내 보여주고 있습니다.
(골 2:5) “이는 내가 육신으로는 떠나 있으나 심령으로는 너희와 함께 있어 너희가 질서 있게 행함과 그리스도를 믿는 너희 믿음이 굳건한 것을 기쁘게 봄이라”
흔히 속담에 눈에 멀면 마음에서도 멀어진다는 말이 있습니다. 그러나 사도 바울은 비록 육신적으로는 로마 감옥에 갇혀 있기 때문에 골로새 교회 성도들을 만나볼 수 없다고 해서 마음까지 멀어진 것이 아니라 심령으로는 그들과 함께 있다고 한 것은 그 만큼 마음으로 사랑하고 있다는 말입니다.
그리스도 예수를 믿는 성도들의 사랑은 육체의 거리가 문제가 아니라 마음의 거리가 문제인 것입니다.
사도 바울의 마음속에는 항상 골로새와 라오디게아 교회 성도들에 대한 깊은 사랑과 관심으로 인해 이단들의 공격에도 불구하고 교회의 질서가 잡혀가고 있고 성도들이 믿음을 굳건하게 지켜나가고 있음을 마치 눈으로 보고 있는 것과 같다는 것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도 바울은 골로새와 라오디게아 교회의 성도들이 예수님을 구주로 영접하고 교회의 질서가 회복되고 굳건한 믿음을 가지고 있는 것으로 만족하지 않았습니다.
마치 가는 말에 채찍질하는 경마장의 기수처럼 반에서 일등하는 아들이 전 학년에서 일등을 하기를 바라는 부모의 마음처럼 사도 바울은 골로새교회와 라오디게아 교회에게 좀 더 믿음이 견고해지기 위해 필요한 세 가지를 오늘 성경에서 강조하고 있습니다.
(골 2:6) “그러므로 너희가 그리스도 예수를 주로 받았으니 그 안에서 행하되” (골 2:7) “그 안에 뿌리를 박으며 세움을 받아 교훈을 받은 대로 믿음에 굳게 서서 감사함을 넘치게 하라”
첫째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말씀을 실천하는 순종의 삶을 살라는 것입니다.
여기서 ‘그 안에서 행하되’라는 말(peripatevw)은 영어로 현재 진행형과 같은 동명사 현재 능동형으로 매일 계속해서 그리스도 안에서 살아가라는 것입니다.
견고한 믿음은 예수 그리스도를 영접한 것만으로 만족하지 않고 예수 그리스도를 보다 깊이 아는 것일 뿐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와 함께 하는 삶일 뿐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살아가는 것입니다.
둘째 예수 그리스도 안에 믿음의 뿌리를 박고 살라는 것입니다.
여기서 ‘그 안에 뿌리를 박으며’라는 말(rJizovw)은 비유적인 말로 ‘확고하게하다, 튼튼한 기초를 가지다’라는 뜻으로 그리스도 안에서 생명력으로 공급받는 삶을 살라는 것입니다.
우리가 구원을 얻는 일에 있어서는 현재 성경만으로 충족한 것이기 때문에 개정판이나 증보판이 필요가 없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견고한 믿음은 하나님이 이미 계시하여 주신 성경에 깊이 뿌리를 박고 살아간다면 유별난 영적 체험이나 별다른 가르침이 필요가 없는 것입니다.
흔히 가정에서 아이들이 주식인 밥을 잘 먹지 않는 아이가 간식을 좋아하고, 간식을 좋아하는 아이가 유해식품을 좋아하고, 그런 아이가 질병에 취약한 것처럼 우리의 신앙도 주식인 전통 교회가 가르치는 성경으로 만족하지 않게 되면 이단의 미혹에 넘어가기 쉬운 것입니다.
셋째 그 믿음에 굳게 서서 ‘감사가 넘치는 삶‘을 살라는 것입니다.
여기서 ‘감사’라는 말(eujcaristiva)은 기쁨의 감정을 표현하는 말로 ‘잘, 좋게, 바르게, 적절하게’라는 뜻으로 ‘넘치게 하라’라는 말은 ‘과도하게 넘치다, 초과하다, 풍성하다’는 뜻으로 역시 동분사 현재 능동형으로 계속해서 흘러넘치게 하라는 명령의 말씀입니다.
견고한 믿음의 필수조건 중에 하나는 나 같은 죄인이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구원받은 것을 확신하고 감사 찬송하는 삶을 사는 것입니다. 설령 육체적인 부족함에도 불구하고 감사와 찬송을 할 수 밖에 없는 것입니다.
마귀의 표적이 되는 사람은 구원의 확신과 감사를 잃어버리고 사사건건 원망하고 불평하는 사람임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오늘도 수십 년 신앙 생활하던 교회를 버리고 떠나는 사람의 공통점은 교회에 대한 불만이 많은 사람입니다.
교회는 인간이 불완전한 인간이 모인 곳입니다. 사랑이 필요한 사람들이 모인 곳입니다. 사랑을 받고자 하지 말고 사랑을 베풀고자 하는 사람이 되어야만 그 같은 시험을 이길 수 있습니다.
이에 반해 이단자들의 공통점은 자기들끼리 깊은 유대가 형성되어 있습니다. 마치 군대 조직과도 같이 자기들이 신봉하는 교주나 지도자를 위해 목숨이라도 바칠 각오가 되어 있습니다. 그 좋은 예가 이슬람 공동체의 연합과 자살 테러단들입니다.
만일 이와 같이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살고 성경 말씀에 믿음의 뿌리를 박고 감사가 넘치는 삶을 사는 것이 바로 오늘 설교 제목의 말씀처럼 견고한 믿음의 절대조건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오늘 성경의 골로새 교회나 라오디게아 교회는 이 같은 바울의 권고를 듣지 않고 부실한 믿음의 생활을 하다가 결국 무너져 버리고 말았습니다.
오늘 성경 말씀 서두에 ‘라오디게아 교회’라고 하면 우리가 잘 알고 있는 요한 계시록에 나오는 일곱 교회 중에 가장 문제가 많은 교회인 것입니다.
(계 3:14) “라오디게아 교회의 사자에게 편지하라 아멘이시요 충성되고 참된
증인이시요 하나님의 창조의 근본이신 이가 이르시되” (계 3:15) “내가 네 행위를 아노니 네가 차지도 아니하고 뜨겁지도 아니하도다 네가 차든지 뜨겁든지 하기를 원하노라”
간혹 기회가 되어 성지 순례를 가보면 골로새 교회의 유적은 찾아보기 어렵고, 라오디게아 지역은 거대한 석조 건물이 즐비했던 화려한 고대 도시였음을 알 수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석조 건물도 지진 앞에는 무색하리만큼 산산이 무너지고, 부서져 버린 황량한 유적지를 볼 수 있을 것입니다.
사진 자료
골로새와 라오디게아 교회
저도 성지 순례 중에 그 같은 광경을 보면서 우리가 후손들에게 물려 줄 것은 화려한 건물이 아니라 견고한 신앙뿐이라는 생각을 절실하게 한 기억이 납니다.
결 론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믿음이 흔들리지 않고, 지속적으로 그리스도 안에서 살아가는 견고한 믿음의 비결은 무엇보다 먼저 그리스도 안에 깊이 뿌리를 내리는 것입니다.
제 아무리 거대한 배라고 할지라도 닻을 내려서 고정시키지 않게 되면 파도가 치는 대로 흔들리게 마련이고 제 아무리 큰 나무라고 할지라도 그 뿌리가 땅 속에 단단히 박혀있지 않으면 큰 바람이 불 때, 넘어지게 되어 있습니다.
그래서 제주도의 한라산 꼭대기에 주목은 태풍에도 잘 견디는 반면, 제주시 도심에 심은 가로수는 뿌리가 깊지 못하기 때문에 쉽게 넘어지는 것을 가다금 볼 수 있습니다.
앞서간 신앙의 선진들도 그와 같은 마귀의 시험과 유혹을 부단히 받으면서도 그것을 이길 수 있었던 비결이 바로 오늘 성경 말씀처럼 뿌리 깊은 견고한 신앙 때문이었음을 잊지 말아야 하겠습니다.
(히 11:1) “믿음은 바라는 것들의 실상이요 보이지 않는 것들의 증거니” (히 11:2) “선진들이 이로써 증거를 얻었느니라”
어떤 사람들은 장차 더 나은 생명의 부활을 얻으려고 감옥에서 풀려나는 대신 매맞고 사형을 당하기도 하였습니다. 그들은 하나님을 배반하고 자유의 몸이 되기보다는 죽음을 선택한 것입니다.
어떤 사람들은 조소당하고 매 맞고, 다른 사람들은 쇠사슬에 묶여 감옥에 갇혔습니다. 어떤 사람들은 돌에 맞아 죽고, 어떤 사람은 톱에 두 동강으로 잘려 죽었습니다.
또 어떤 사람들은 믿음을 버리고 풀려나기 보다는 칼에 맞아 죽는 편을 택하였습니다. 어떤 사람들은 양이나 염소의 가죽으로 변장을 하고 광야와 산을 방황하였고 동굴이나 토굴에서 숨어 살며 굶주림과 병과 학대에 시달려야 하였습니다.
이 사람들은 끝까지 하나님을 믿었으므로 하나님께 인정을 받았습니다. 그러나 약속하신 것을 전부 다 받은 것은 아니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위해 보다 더 좋은 것을 준비해 두신 것을 그들에게도 주시려고 기다리라고 하셨던 것입니다.
우리의 신앙도 마찬가지입니다. 마귀의 유혹과 시험의 태풍을 만나도 쓰러지지 않는 견고한 믿음은 영원히 변하지 않는 진리인 예수 그리스도에게 깊이 뿌리는 박고 믿음 안에서 넘치는 감사의 삶을 사는 것이 바로 견고한 믿음의 고층 빌딩을 건축하는 삶인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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